4월 15일 갑진
좌의정(左議政) 남구만(南九萬)이 사신(使臣)으로 갔다가 돌아올 때에 연로(沿路)에서 들었던 세 가지 옥사(獄事)로 차자를 올렸다. 먼저 선천 부사(宣川府使) 이홍술(李弘述)이 사람을 함부로 죽인 일 【이 문단은 위에 보인다.】 을 논(論)하였다. 또 정제선(鄭濟先)을 감사(減死)한 과실(過失)을 논하였는데, 그 줄거리를 말하면,
"만일 왕명(王命)을 받든 신하는 범인(凡人)과 다름이 있으니, 사람을 죽이고도 상명(償命)하지 않는다면 알지 못하겠습니다마는, 천자(天子)005) 의 아버지와 왕명 받든 신하는 어떻게 다르기에 고요(皐陶)006) 가 법을 집행하였겠습니까? 한 고조(漢高祖)의 삼장 약법(三章約法)에 다만 ‘사람을 죽인 자는 죽는다’고 하였을 뿐이니 일찍이 귀천(貴賤)과 존비(尊卑)의 구별없이 역대(歷代)로 통행(通行)하여 지킴으로써 대경(大經)을 삼고 있었으니, 어찌 일찍이 왕명을 받든 자와 범인은 차이가 있다고 하는 의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해부(該府)에서 초두(初頭)에 의계(議啓)한 것이 본률(本律)을 버리고서 임금의 재가(裁可)를 바로 청하였고, 또한 대신들과 의논하여 부회(傅會)해서 의논이 생겼으므로 전하께서 법을 굽혀 이를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대각(臺閣)들이 쟁집(爭執)하지 못한 것을 어찌 이상히 여기겠습니까? 전하께서 이미 임금의 재가를 청한 것으로 해부(該府)를 꾸짖으시고, 또 논집(論執)하지 않았다 하여 대신(臺臣)들을 책망하시니 그렇다면 정제선이 마땅히 죽어야 함을 전하도 또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위복(威福)의 권한이 본래 전하에게 있으므로 사람을 형벌하고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한결같이 주상의 마음에서 결정되는 것이니 또 어찌 대신(臺臣)들의 말을 기다리겠습니까? 전하께서 만일 ‘나는 비록 법을 굽히지마는 대관들은 법을 준수하지 않을 수 없다’ 하신다면, 이는 인조(仁祖) 때의 김경징(金慶徵)의 일과 거의 서로 비슷한 것입니다. 김경징이 강도(江都)를 지키지 못하였을 때 대간들이 안율(按律)하라는 청이 있었습니다만 얼마 아니 있어 정지하였으니, 그것은 인조(仁祖)께서 사정(私情)을 따른 엄한 전교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에 유백증(兪伯曾)이 상소하기를, ‘군주는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권병(權柄)을 가지고 있는데도 권세(權勢)있는 사람에게는 감히 법대로 행하지 못하고서 손을 양사(兩司)에게 빌리려고 하십니까? 전하도 그를 오히려 두려워하시면 양사에서만 이를 괴로와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더니, 인조께서 노하시어 김경징의 죄를 바루라고 명하였습니다. 오늘날 어리석은 신하가 전하에게 바라는 것은 인조(仁祖)께서 말을 거절하지 않았던 것으로 본받는 것입니다."
하였다. 대흥 산성(大興山城)의 은(銀)을 훔친 도적의 일을 【이 문단은 위에 보인다.】 논(論)하였다. 남구만의 차자 가운데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형벌한다’는 말은 대개 주상이 정제선은 마땅히 사형에 해당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차마 법대로 하지 않으셨기에 격분함이 있어서 말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은 도적의 일에 대해서는 어찌 흠휼(欽恤)을 힘써 주장함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그런데 초사(初史)에서는 그의 실언(失言)이라고 배척하였으니, 이는 ‘허물이 없는 가운데서 허물을 구한 것’이라고 이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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