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보궐정오16권, 숙종 11년 1685년 6월

싸라리리 2025. 10. 24.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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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임자

대신과 비국(備局)의 당상관(堂上官)들을 인견(引見)하였다. 좌의정(左議政)                     남구만(南九萬)이 ‘이단하(李端夏)가 주장하였던 적곡(糴穀)을 더 비축(備蓄)하여야 한다’는 일로 다시 주사(籌司)에 모여 의논하기를 청하였다. 호조 판서(戶曹判書)                     박신규(朴信圭)가 말하기를,
"우상(右相) 정재숭(鄭載嵩)이 탁지(度支)에 있었을 적에 이 의논에 난색(難色)을 가졌습니다. 그러기에 묘당(廟堂)에서 모두 불편(不便)하다고 여기어서 관문(關文)을 띄웠다가 도로 중지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이단하는 마침 외지(外地)에 있었기에 미처 서로 보고(報告)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다시 문의(問議)하여 처리하기를 명하였다. 이단하가 이 일 때문에 박신규에게 노하여 상소하고는 향리(鄕里)로 돌아가기까지 했는데 말에 성을 내어 원망함이 많았다. 그런데 비답에 ‘이와 같은 거조(擧措)는 경(卿)에게 바라는 것이 아니니, 사직하지 말고 올라오라’ 하였고, 박신규도 이로써 사직을 아뢰었으니, 사람들이 이를 비웃는 이가 많았다.

 

6월 미상 □□

좌의정(左議政)                     남구만(南九萬)이 대흥 산성(大興山城)의 은 도적을 조사하여 죄를 다스렸던 일을 잘못하였다는 것으로 형조 판서(刑曹判書)                     남용익(南龍翼)과 및 포도 대장(捕盜大將)                     신여철(申汝哲) 두 사람을 처벌하기를 청하였다. 그런데 치대(置對)하는 말이 침노하고 헐뜯는 것이 많이 있었기에 이로써 차자를 올렸더니 미안(未安)하다는 비답을 받았으므로                        【차자와 비답은 위에 보인다.】                      인고(引告)하고 면직(免職)되기를 원하였다. 임금이 여러 번 유시하였지만, 오래도록 명을 받들지 않다가 도승지(都承旨)를 보내 돈유(敦諭) 재촉하니 비로소 나와 일을 보았다. 대신(大臣)은 도(道)로써 임금을 섬기는 법인데 지금 남구만이 이륜(彛倫)을 먼저 내세우고 절도(竊盜)를 뒤로 미룬 것은 형정(刑政)의 근본을 깊이 얻은 것이다. 그런데도 임금에게서 그르다고 물리치는 교명이 있었으므로, 의리(義理)를 인용하여 굳이 사직하여서 거취(去就)에 스스로 경솔하지 않으려 하였으니 또한 대신의 체통인 것이다. 그런데 초사(初史)에는 그를 한독(狠毒)하고 괴려(乖戾)한 자로 배척하였으니 진실로 그를 원망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곳곳마다 원한을 풀려고 한 것인데 부르면 오고 물리치면 가는 무리들은 끝내 몸을 잃어버리고 의(義)를 저버리는 데에 이르게 됨을 전연 알지 못하고 있으니, 아!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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