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현종실록20권, 현종 13년 1672년 11월

싸라리리 2025. 12. 1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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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임신

김만중(金萬重)을 헌납으로 삼았다.

 

상이 하교하기를,
"지금 이단하(李端夏)가 지어 올린 제문을 보고 나도 모르게 놀랍고 밉쌀스러웠다. 선왕께서 끝까지 매몰차게 대우하지 않으신 것은, 옛날 의빈(儀賓)으로는 이 한 사람만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지 당론의 마음을 믿어주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 선왕께서 평소에 매우 미워하신 것은 당론이었으며 심지어 의빈 중에 당론에 빌붙은 자가 있으면 더욱 통렬히 미워하셨기 때문에 항상 여러 부마(駙馬)들에게 신칙하는 말씀이 이것에 있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단하가 감히 당론을 부식시키려는 꾀를 내어 마침내 홍주원(洪柱元)의 제문 중에 말끝마다 칭찬을 하였고 ‘끝까지 경의 마음을 믿는다.’는 말로 끝맺어 마치 선왕께서 그의 마음을 믿어 우대한 것처럼 하였다. 차마 이런 짓을 하는데 무슨 짓을 하지 못하겠는가. 그가 앞장서서 사리를 돌아보지 않고 임금의 뜻을 빌려다가 당론을 부식하였으니 그 죄를 엄중하게 캐묻지 않을 수 없다. 이단하를 잡아다 엄하게 국문하여 죄를 결정하라."
하였다. 정원이 다시 생각할 것을 아뢰니, 상이 이르기를,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는 분수나 의리가 매우 엄한 것이다. 그런데 제문에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것이 비록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은총받은 일을 두루 말하였는가 하면, 심지어는 선왕께서 통렬히 미워하시던 일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신하된 자가 감히 당론을 찬양하려는 꾀를 내어 마치 그의 마음을 믿고 우대하신 것처럼 하였으니, 그의 간교하고 윗사람을 기망하려는 마음은 차마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경들은 감히 몽롱하고 모호한 말로 구원하려고 하니 참으로 매우 놀랍다."
하였다. 정원이 다시 생각할 것을 재차 아뢰니, 상이 이르기를,
"임금에게 고하는 말을 이같이 교묘하게 꾸며서는 안 된다. 그 내용 중에 ‘선조(先朝)의 두 신하’부터 ‘매우 융숭하게 대우했다’까지의 여덟 구절은 쓴 의도가 환하게 드러나 가릴 수 없다. 그런데도 경들은 온갖 말로 구원하려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임금을 속이는 죄에 빠지고 말았으니, 아, 역시 놀랍고 괴이하다."
하였다. 세 차례째 아뢰자, 상이 이르기를,
"갈수록 더욱 교묘하게 꾸며대고 있으니 매우 놀랍다."
하고, 이어서 하교하기를,
"신하가 임금을 섬길 적에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 그런데 여러 승지들의 계사는 심하게 기망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 자못 통탄스럽다. 우선 중하게 추고하라."
하였다.

 

집의 조원기(趙遠期)가, 이단하를 잡아다 문초하라는 명을 도로 거둘 것을 계청하였는데 상이 따르지 않았다. 정언 김해일(金海一)과 심유(沈濡)도 간하니, 상이 이르기를,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데 귀중한 것은 충직함이다. 어찌 너희들같이 임금을 속이고 교묘하게 꾸며 말하는 자가 있겠는가. 내 매우 미워한다."
하였다. 김해일이 성상의 비답이 준엄했다는 이유로 인피하고 나갔다.

 

11월 2일 계유

정언 심유도 성상의 비답이 준엄했다는 이유로 인피하고 물러나 물론을 기다렸다.

 

집의 조원기가, 이단하를 잡아들이라는 명령과 여러 승지들을 추고하라는 명령을 도로 거둘 것을 계청하였는데, 상이 모두 따르지 않았다.

 

우의정 김수항과 옥당의 모든 신료들도 모두 차자를 진달하여 명을 도로 거둘 것을 청하였는데, 상이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부가 처치하여 김해일과 심유를 출사시킬 것을 청하니, 상이 따랐다.

 

대사간 이홍연(李弘淵)이 패초에 나아가지 않아 체차되었다.

 

고 참찬 이자(李耔), 교리 이연경(李延慶), 참판 김세필(金世弼), 영의정 노수신(盧守愼)·김육(金堉), 대사성 김식(金湜), 청풍군(淸風君) 김권(金權), 고려 태사 장절공(高麗太師壯節公) 신숭겸(申崇謙) 등의 서원에 예관을 보내어 편액(扁額)을 내리고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11월 6일 정축

정언 김해일(金海一)이 패초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인피하여 면직되었다.

 

11월 8일 기묘

사헌부가 내관(內官)을 잡아다 문초할 것을 아뢰었는데, 이때에 와서야 따랐다.

 

11월 9일 경진

밤 2경에 유성이 나왔는데 빛이 땅을 비치었다.

 

목창명(睦昌明)을 검열로, 김익경(金益炅)을 대사간으로, 이당규(李堂揆)·이일정(李日井)을 정언으로, 김만중(金萬重)을 이조 정랑으로, 민유중(閔維重)을 판윤으로, 정재희(鄭載禧)를 헌납으로, 이세선(李世選)을 남병사(南兵使)로 삼았다.

 

11월 14일 을유

집의 조원기(趙遠期), 지평 성호징(成虎徵)이 법 적용을 잘못하였다는 이유로 인피하여 체차되었다.

 

11월 16일 정해

여성제(呂聖齊)를 승지로, 임규(任奎)를 집의로, 조원기(趙遠期)를 필선으로, 권해(權瑎)를 지평으로 삼았다.

 

11월 17일 무자

우의정 김수항(金壽恒)이 신병을 이유로 소를 올려 면직시켜 줄 것을 청하였는데 상이 너그럽게 답하고 허락하지 않았다.

 

11월 18일 기축

상이 양심합(養心閤)에 나아가 비국의 유사 당상 2명과 이조 판서 이경억(李慶億), 훈련 대장 유혁연(柳赫然)을 인견하였다. 여러 신료들이 온갖 말로 이단하를 구원하였으나, 상의 뜻이 굳게 결정되어 끝내 돌이키지 않았다.

 

금부가 아뢰기를,
"양제신(梁濟臣)과 윤완(尹完) 등이 범한 죄는 사형에 해당되니, 결안(結案)으로 심문하여 공초를 받아야겠습니다."
하니, 상이, 양제신은 정배시키고 윤완은 삭탈 관직하여 놓아 보내라고 명하였다.

 

11월 20일 신묘

강백년(姜栢年)을 도승지로, 김우석(金禹錫)을 좌승지로 삼고, 신정(申晸)을 특별히 제수하여 병조 참의로 삼았다. 또 민유중(閔維重)을 대사헌으로, 조원기(趙遠期)를 집의로, 이하진(李夏鎭)·우창적(禹昌績)을 장령으로, 성호징(成虎徵)을 지평으로, 이동직(李東稷)을 전라 감사로 삼았다.

 

상이 대신과 비국의 여러 신료들을 인견하였다. 우의정 김수항이, 충청 감사 남이성(南二星)의 장계 후록(後錄)에 조목별로 열거한 일을 여쭙고 결정하였다. 이 일이 끝난 뒤에 또 아뢰기를,
"들으니, 요전 평안 병사 민점(閔點)이 사직하기 위해 올린 소를 본도의 감사가 아뢰면서 올려 보냈는데 정원이 받아들이지 않고 되돌려 보냈다고 합니다. 비록 그 소의 내용이 어떠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외방의 장계나 소장에 간혹 격식을 어긴 일이 있더라도, 추고를 청하면서 입계(入啓)하거나 여쭈어본 뒤에 되돌려 보내는 것이 전례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정원에서는 까닭없이 되돌려 보냈으니 매우 놀라운 일이며 후일의 폐단에도 관계되니 이런 버릇을 기를 수는 없습니다. 해당 승지를 파직한 다음 추고해야겠습니다."
하니, 상이 따랐다. 이에 승지 이관징(李觀徵)이 해당 승지로 스스로 책임지고 나갔다. 김수항이, 또 온성(穩城)의 흉년은 북로에서 더욱 심하므로 수령을 교체시키면 폐단이 있겠으니 남병사 이세선(李世選)을 유임시켜야 한다고 진달하였는데 상이 따랐다. 그리고 이단하(李端夏)의 일에 대해 간절하게 구원하였으나 상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11월 21일 임진

민종도(閔宗道)를 우부승지로, 임규(任奎)를 필선으로, 민정중(閔鼎重)을 판윤으로 삼았다.

 

11월 22일 계사

상이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서울과 지방의 사형수를 다시 심리하였는데 대신과 원임 대신 및 모든 재신, 6승지, 삼사가 입시하였다. 형방 승지가 나아가 추안(推案)을 낭독하고 나면 상이 여러 신료들에게 두루 하문하기를 규례대로 하였다. 추안을 낭독한 것이 열여섯 번이었는데 날이 저물어서 잠시 정지하였다. 우의정 김수항이 아뢰기를,
"대간은 백관을 살펴 바로잡는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언관(言官)의 자리를 피하기를 마치 덫이나 함정을 피하듯이 합니다. 친히 나오셔서 다시 심리하는 이런 때에 대관 3명이 한꺼번에 사직서를 올렸으니 스스로의 처신을 이렇게 하면서 많은 관리들을 살펴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모두 체차하소서."
하니, 상이 체차한 다음 추고하라고 명하였다.

 

11월 23일 갑오

상이 여러 신료들과 함께 다시 심리하여 처분하기를 어제와 같이 하였다. 도승지 강백년(姜栢年)이 이단하를 매우 힘써 구원하였고, 판중추부사 정치화(鄭致和)도 이와 같이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단하의 평소 심사에 대해 내 비록 알 수 없으나 부마(駙馬)가 당론에 끼어든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만약 제문 중에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싶었다면 할말이 없는 게 걱정되지 않았을 것인데 감히 선왕의 뜻을 억측했단 말인가."
하였다. 양사도 함께 간쟁하고 옥당도 거듭 아뢰니, 상이 이르기를,
"이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이단하의 죄를 만약 《대명률(大明律)》의 ‘당파와 서로 내통한 자는 참(斬)한다.’는 조목을 적용했다면, 신료들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만, 한번 잡아 가둔 데 대해 이처럼 굳이 간하니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하였다. 수찬 최후상(崔後尙)이 아뢰기를,
"이단하가 선조(先朝)의 일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선조에서 이미 죄를 주었는데, 어찌 모르고 이런 말을 했겠는가. 너희들은 그를 곡진히 옹호한 죄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였다. 상이 이어 큰 소리로 이르기를.
"오늘날의 조정에는 전혀 당론이 없는가? 너희들은 명확하게 말하라."
하니, 이규령(李奎齡)이 아뢰기를,
"어찌 감히 당론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하고, 최후상(崔後尙)이 아뢰기를,
"조정에 어찌 당론이 없겠습니까마는, 이단하는 당론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11월 24일 을미

정언 이당규(李堂揆)가 양제신(梁濟臣)과 윤완(尹完)에 대해 법을 상고하여 처치할 것을 계청하였는데 상이 윤허하지 않았다.

 

11월 25일 병신

김만기(金萬基)를 동지의금으로, 이지익(李之翼)을 강원 감사로, 임규(任奎)를 집의로, 유연(柳㝚)·김수오(金粹五)를 장령으로, 안후태(安後泰)를 지평으로, 박세당(朴世堂)을 사간으로 삼았다.

 

11월 27일 무술

호조 판서 김수흥(金壽興)이 상소하기를,
"효종 대왕이 왕위에 10년 동안 계시면서 큰일을 하시려고 하였으나 조정에 있는 신하들이 임금의 마음에 든 자가 없었습니다. 이에 지극한 정성과 융숭한 예의로 유신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을 불러다 놓고, 빈사(賓師)로 대우하고 높은 직위에 있게 하여 온 나라의 일을 맡기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왕께서는 큰 왕업을 끝마치지 못한 채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게 되자 마침내 두 신하에게 명하여 우리의 성상에게 물려 주셨습니다. 불행히도 이번 송준길이 한 번 올린 소가 거듭 상의 위엄을 건드려 점점 격동된 바람에 기상이 꽉 막혔습니다. 지금 들으니, 준길의 병세가 위독하여 아침 저녁을 부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의 마음을 임금에게 아뢰지도 못하고 하루아침에 이슬처럼 사라진다면 영원히 떠난 혼백이 반드시 구천에서 눈을 감지 못할 것입니다. 이게 어찌 준길만의 여한이겠습니까. 그의 한가닥 숨이 끊어지기 전에 속히 좋은 말씀을 내리고 특별히 위로해 주신다면, 준길이 죽더라도 영광스러울 뿐만 아니라 어찌 성상의 덕에 빛이 더 나지 않겠습니까?"
하였는데, 상이 답하기를,
"차자 중의 일을 내가 어찌 모르겠는가. 다만 근일에 시기나 틈을 노리는 자들이 한두 사람뿐만이 아니므로 내가 매우 미워하는 것이다. 요전 정원의 계사와 문찬(文燦)의 상소는 매우 형편없었고 때를 틈타 엿보는 뜻이 매우 올바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내 몹시 미워하였다. 내 어찌 그의 죽음을 걱정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이튿날 상이 어의(御醫)를 보내 약물을 가지고 가서 구호하라고 명하였다.
○戊戌/戶判金壽興上疏曰:
孝宗大王臨御十年, 將大有爲, 而在朝諸臣, 莫有當聖心者。 乃以至誠優禮, 招致儒臣宋時烈、宋浚吉, 待以賓師, 處以〔鈞〕          衡, 將擧國而聽之。 先王大業未卒, 奄棄群臣, 遂命兩臣者, 以遺我聖上。 不幸今者, 浚吉一封疏章, 重觸天威, 輾轉激惱, 氣象否隔。 而今聞浚吉, 病勢危劇, 朝夕莫保, 其心事, 未白於君父, 而一朝溘先朝露, 則長逝者魂魄, 必不瞑目於九泉。 此豈但浚吉之遺恨也? 及其一息未絶之前, 亟下德音, 特賜存問, 則不惟浚吉, 雖死猶榮, 豈不有光於聖德也?            上答曰: "箚中事, 予豈不知? 但近日投間抵隙之輩, 非特一人而已, 此予之所以深惡也。 曩者政院之啓, 文燦之疏, 俱極無狀, 乘時窺覬, 意甚不正, 故予甚痛之。 予豈不恤其死生乎?" 翌日上命遣御醫, 持藥物往救之。

【태백산사고본】 20책 20권 57장 A면【국편영인본】 37책 29면
【분류】정론-정론(政論) / 왕실-국왕(國王) / 왕실-사급(賜給) /

 

11월 30일 신축

이경억(李慶億)을 우의정으로 삼고, 김수항(金壽恒)을 승진시켜 좌의정에 제수하고, 이홍연(李弘淵)을 대사간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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