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순종실록부록3권, 순종5년 1912년 8월

싸라리리 2025. 2. 8. 11:13
반응형

8월 1일 양력

【음력 임자년(1912) 6월 19일】 각령(閣令) 제2호는 다음과 같다. 황실 상복 규정(皇室喪服規程)과 기타 별단의 규정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 대상(大喪) 중의 상장(喪章)을 다음과 같이 정한다. 화복(和服)은 의복의 왼쪽 가슴에 나비형 매듭의 흑포를 부착하고, 양복은 왼쪽 팔목에 흑포를 두른다. 궁내성(宮內省)의 통지가 있었다.


【원본】 6책 3권 6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72면
【분류】사법-법제(法制) / 의생활-예복(禮服)
각령(閣令) 제2호는 다음과 같다.
황실 상복 규정(皇室喪服規程)과 기타 별단의 규정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 대상(大喪) 중의 상장(喪章)을 다음과 같이 정한다. 화복(和服)은 의복의 왼쪽 가슴에 나비형 매듭의 흑포를 부착하고, 양복은 왼쪽 팔목에 흑포를 두른다. 궁내성(宮內省)의 통지가 있었다.

 

8월 6일 양력

태왕 전하(太王殿下)가 덕안궁(德安宮)에 나아가 주다례(晝茶禮)를 행하고 나서 상제(祥祭)를 행하였다.

 

왕세자(王世子)가, 덕안궁(德安宮)의 상제(祥祭)를 갑자기 당하여 슬퍼하고 추모하는 마음이 끝이 없고, 옛날을 생각하니 견디지 못하여 삼가 멀리서 절하면서 곡(哭)하였다는 뜻을 전보로 품달(稟達)하였다.

 

8월 7일 양력

태왕 전하(太王殿下)가 덕안궁(德安宮)에 나아가 주다례(晝茶禮)를 행하고, 이어 동경 별저에 있는 왕세자(王世子)에게 전보하기를,
"지난밤에 상제(祥祭)를 지냈는데 내가 초헌(初獻)을, 완순(完順)이 아헌(亞獻)을, 창산(昌山)이 종헌(終獻)을 행하였다. 너는 나라 밖 멀리 있으니 참석하지 못하는 서러움이 더욱 다시 새로울 듯하겠구나. 오직 슬픔을 절제하고 몸을 잘 보호하기를 바란다."
하였다.

 

대행 천황(大行天皇)의 대장의(大葬儀) 기일은 오는 9월 13, 14, 15일로 정하고, 능소(陵所)는 경도부(京都府) 기이군(紀伊郡) 굴내촌(堀內村) 대자굴내자(大字堀內字) 고성산(古城山)으로 정한다. 궁내성(宮內省)의 통지가 있었다.

 

8월 13일 양력

대행 천황(大行天皇)의 영구(靈柩)를 빈궁(殯宮)으로 옮겨 모시는 의식 때에 신(榊) 1대(對)와 함께 어과자(御菓子)를 진공(進供)하였다. 태왕 전하(太王殿下)와 왕세자(王世子)도 함께 진공하였다.

 

8월 16일 양력

왕세자(王世子)가 중앙 유년학교(中央幼年學校) 예과학생(豫科學生) 유영연습(游泳演習)을 위해 신내천현(神奈川縣) 하겸창(下鎌倉)에 행계(行啓)한 다음, 이어 스에마쓰〔末松〕 자작(子爵)의 집에 체류하였다.

 

8월 22일 양력

대행 천황 폐하(大行天皇陛下) 어사진(御寫眞) 1본(本), 그림엽서 3매(枚)를 【1매(枚)는 천황의 초상, 1매는 천황의 이름, 1매는 대연습(大演習) 때에 들판에 서있는 천황의 사진이다.】  사무실에서 바쳤다. 덕수궁(德壽宮)에서도 바쳤다.

 

8월 27일 양력

대행 천황(大行天皇)에게 명치 천황(明治天皇)이라는 이름을 추존한다고 궁내 대신(宮內大臣)과 내각 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이 연서(連署)하여 반포하였다.

 

8월 29일 양력

하겸창(下鎌倉)에 있던 왕세자(王世子)가 유영연습(游泳演習)을 마치고 오늘 별저로 돌아왔다.

 

8월 30일 양력

후작(侯爵) 이해창(李海昌)에게 명하여 선원전(璿源殿)에 나아가 별도로 봉심(奉審)하고 오라고 하였다. 헌종 성황제(憲宗成皇帝)의 탄신일이기 때문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