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실록부록4권, 순종6년 1913년 3월
3월 2일 양력
【음력 계축년(癸丑年) 1월 23일】 이왕직 사무관(李王職事務官) 현백운(玄百運)을 남대문역(南大門驛)에 보내고, 덕수궁(德壽宮)에서도 사무관(事務官) 박서양(朴敍陽)을 보내어 총독(總督) 백작(伯爵)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남선(南鮮)으로 순찰(巡察)가는 것을 전송(餞送)하게 하였다.
3월 4일 양력
영국인(英國人) 데이비슨〔Davidson, H. W.〕에게 주대정식 은제향로(周大鼎式銀製香爐) 1개(箇)와 금(金) 500원(圓)을 증여하였는데, 이는 덕수궁(德壽宮) 내의 석조전(石造殿) 건축의 감독으로 다년간 경영했으므로 기념품을 내린 것이다.
위인친왕(威仁親王)이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니 양궁(兩宮)께서 위문하는 전보를 발송하였다.
3월 7일 양력
양궁(兩宮)께서 특별히 찬시(贊侍) 김춘희(金春熙)에게 금(金) 200원(圓)을 내렸다. 그 처의 상(喪)을 위해서이다.
3월 8일 양력
군사령관(軍司令官) 안도 사다미〔安東貞美〕가 양궁(兩宮)에 알현하였다. 남선(南鮮)으로 출장가기 때문이다.
3월 11일 양력
특별히 후작(侯爵) 박영효(朴泳孝)에게 장수금(葬需金) 1,000원(圓)을 내렸다. 영혜 옹주(永惠翁主)의 면례(緬禮)때문이다. 이어 찬시(贊侍) 김영갑(金永甲)에게 위문하도록 명하였다.
3월 22일 양력
도서두 이학박사(圖書頭理學博士) 야마구치 에이노스케〔山口銳之助〕가 《황실약첩(皇室略牒)》을 진헌(進獻)하였다.
3월 25일 양력
종척(宗戚), 귀족(貴族) 및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이하 고등관(高等官)을 소견(召見)하고, 이어 인정전(仁政殿) 동행각(東行閣)에 사찬(賜饌)하였다. 전하(殿下)의 탄신일(誕辰)이었기 때문이다.
덕수궁(德壽宮)에 나아가 근알(覲謁)하였다. 왕비(王妃)도 따라 나아갔다. 이어 경효전(景孝殿)에 나아가 전알(展謁)하였다.
3월 26일 양력
양궁(兩宮)께서 특별히 후작(侯爵) 이해창(李海昌)에게 금(金) 200원(圓)을 내렸다.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 묘소의 수리비이다.
3월 31일 양력
특별히 이왕직 전 사무관(李王職前事務官) 하치카와 아라카네〔蜂川新金〕에게 금(金) 2,500원(圓)을 내렸다. 재직 중 근로(勤勞)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