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실록부록8권, 순종10년 1917년 11월
11월 1일 양력
【음력 정사년(丁巳年) 9월 17일】 본 직원을 파견하여 지릉(智陵)에 부속된 삼림 벌채 예정지의 나무와 영흥(永興) 본궁(本宮)의 준원전(濬源殿)에 부속된 삼림의 경계를 조사하도록 명하였다. 이어 조림할 장소를 실측하였다.
【원본】 7책 8권 9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00면
【분류】왕실-종사(宗社) / 농업-임업(林業)
본 직원을 파견하여 지릉(智陵)에 부속된 삼림 벌채 예정지의 나무와 영흥(永興) 본궁(本宮)의 준원전(濬源殿)에 부속된 삼림의 경계를 조사하도록 명하였다. 이어 조림할 장소를 실측하였다.
11월 2일 양력
왕세자가 근위사단 기동 연습 때문에 사이타마〔埼玉〕, 군마(郡馬), 이바라키현〔茨城縣〕 아래에 행계(行啓)하였다.
총독(總督) 백작(伯爵)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가 양궁(兩宮)에 알현하였다. 토쿄〔東京〕에서 올라왔기 때문이다.
11월 3일 양력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자작(子爵) 민병석(閔丙奭)에게 500원을 가봉(加俸)하도록 명령하고, 찬시(贊侍) 자작(子爵) 윤덕영(尹德榮)에는 300원을 가봉하도록 명하였다. 연공(年功)은 궁내관 관등(宮內官官等) 봉급령 제8조에 의거한 것이다.
11월 4일 양력
사무관(事務官) 현백운(玄百運)을 남대문역에 보내고, 덕수궁(德壽宮)에서도 사무관(事務官) 한상학(韓相鶴)을 보내어 총독(總督) 백작(伯爵)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가 토쿄〔東京〕에 가는 것을 전송하였다.
11월 8일 양력
전 총독부 참사관(總督府參事官) 아키야마 마사노스케〔秋山雅之介〕의 처 사다코〔貞子〕에게 돈 600원을 하사하였다. 사다코는 일본어 강사로서 내전(內殿)에 출입하여 수고하였기 때문이다.
11월 9일 양력
덕수궁(德壽宮)에 나아가 근알(覲謁)하였다.
11월 10일 양력
대조전(大造殿)에서 오후 5시에 불이 났다. 불은 대조전 서온돌(西溫突)에 연접한 나인〔內人〕들의 갱의실(更衣實)에서 일어나 내전(內殿)의 전부를 태워버렸다. 【대조전(大造殿), 흥복헌(興福軒), 통명문(通明門), 양심합(養心閤), 장순문(莊順門), 희정당(熙政堂), 찬시실(贊侍室), 내전(內殿), 창고(倉庫), 경훈각(景薰閣), 징광루(澄光樓), 옥화당(玉華堂), 정묵당(靜默堂), 요화당(曜華堂), 요휘문(曜暉門), 함광문(含光門)이다.】 불은 오후 8시에 비로소 진화(鎭火)되었다. 이날 밤 두 전하는 잠시 연경당(演慶堂)으로 피신하고, 진화 후에 인정전 동행각(仁政殿東行閣)에 옮겨 가서 임시 침소를 성정각(誠正閣)으로 정하였다. 내전에 소장되어 있던 귀중 물품 및 훈기(勳記), 훈장(勳章), 휘장(徽章), 기념장(記念章) 등이 모두 함께 소실(燒失)되었다.
정무 총감(政務總監)의 통첩(通牒) 때문에 기본 재산 가운데 1만원으로 조선(朝鮮) 사업비(事業費) 국고채권(國庫債券)의 모집에 응하였다.
11월 11일 양력
총독부 총무 국장(總督府總務局長) 오기타 에쓰조〔荻田悅造〕를 접견하였다. 천황과 황후, 두 폐하가 화재 발생에 대한 위문의 뜻을 전하는 일로 방문하였기 때문이다. 이어 두 폐하가 청주(淸酒) 1두루미와 요리 100인분을 하사한 것을 받았다.
후시미노미야〔伏見宮〕 이하 각궁(各宮)에서 전보로 화재를 위문하여 왔다.
11월 12일 양력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민병석(閔丙奭)을 총독부(總督府)에 보내어 위문에 대한 사례의 뜻을 전해 주기를 당부하였다.
태왕 전하가 사무관(事務官) 한상학(韓相鶴)에게 유릉(裕陵)에 나아가 봉심(奉審)하고 감제(監祭)할 것을 명하였다. 순명 황후(純明皇后)의 기신제(忌辰祭)였기 때문이다.
찬시(贊侍) 엄주일(嚴柱日)의 일금 100원을 특별히 하사하였다. 그 모친의 상(喪) 때문이었다.
11월 14일 양력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자작(子爵) 민병석(閔丙奭) 이하 고등관(高等官)이 화재 이후의 처리 방법에 대하여 회의를 하였다. 임시 궁전 【낙선재(樂善齋)이다.】 을 사용하였다. 응급 수리하는 비용 6만 5,000원을 예비금 가운데서 지출하기로 하였다. 신전(新殿)은 조선식으로 건축하기로 하고, 그 외에는 서양식을 참조하기로 하였다. 건평은 약 700평으로 하고 건축 및 설비, 잡비 등을 개략하여 54만 6,300원이 되었다. 금년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대정(大正) 8년까지 준공하기로 결정하였다.
직원을 영휘원(永徽園)에 파견하여 홍살문〔紅箭門〕을 개건하도록 명하였다.
11월 16일 양력
직원을 파견하여 건원릉(健元陵), 정릉(貞陵), 현릉(顯陵), 사릉(思陵), 태릉(泰陵), 강릉(康陵), 목릉(穆陵), 휘릉(徽陵), 숭릉(崇陵), 의릉(懿陵), 혜릉(惠陵), 원릉(元陵), 수릉(綏陵), 경릉(景陵) 등의 각 소를 수리하고 고쳐 준공한 것을 검사하도록 명하였다.
11월 22일 양력
전 총독부 참사관(總督府參事官) 아키야마 마사노스케〔秋山雅之介〕에게 청동오왕정화로(靑銅吳王鼎火爐)와 은제다관(銀製茶罐) 각 1개를, 그의 아내 사다코〔貞子〕에게는 팔목금시계 1개를 특별히 하사하였다. 전임(轉任) 기념이다.
총독부(總督府) 통역원(通譯員) 후지나미 요시쓰라〔藤波義貫〕에게 일금 100원을 특별히 하사하였다. 그의 부친 상(喪) 때문이었다.
이왕직(李王職)에서 고용하는 용원(傭員)들의 복제(服制) 규정을 개정하였다.
11월 26일 양력
왕세자부 사무관(王世子附事務官) 고희경(高羲敬)이 양궁(兩宮)에 알현하고 왕세자가 내전(內殿)에 불이 난 후의 안부 여쭙는 것을 전달하였다. 이어 진헌 물품을 봉정하였다.
11월 27일 양력
이왕직(李王職)에서 전각(殿閣)을 중건하는데, 경복궁(景福宮) 내의 여러 전각 【교태전(交泰殿), 강녕전(康寧殿), 동행각(東行閣), 서행각(西行閣), 연길당(延吉堂), 경성전(慶成殿), 연생전(延生殿), 응사당(膺社堂), 흠경각(欽敬閣), 함원전(含元殿), 만경전(萬慶殿), 흥복전(興福殿)이다.】 의 옛 재목을 옮겨 짓는 일을 총독부(總督府)와 의논하여 정한 후 보고를 올렸다.
양궁(兩宮)에서 사무관(事務官) 요비코 유이치로〔呼子友一郞〕에게 돈 100원을 특별히 하사하였다. 그가 병 치료를 위해 전지 요양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