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실록부록16권, 순종19년 1926년 3월
3월 2일 양력
【음력 병인년(丙寅年) 1월 18일】 특별히 전 판사(判事) 윤필(尹泌) 【순명 황후(純明皇后)의 내구(內舅)이다.】 에게 일금 100원을 하사하였다. 그의 아들이 결혼하기 때문이다.
【원본】 8책 17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34면
【분류】풍속-예속(禮俗) / 왕실-사급(賜給)
특별히 전 판사(判事) 윤필(尹泌) 【순명 황후(純明皇后)의 내구(內舅)이다.】 에게 일금 100원을 하사하였다. 그의 아들이 결혼하기 때문이다.
3월 3일 양력
왕세자(王世子)와 왕세자비(王世子妃)가 돌아와 뵙고, 장차 구주(歐洲)를 유람한다고 품달(稟達)하였다. 덕혜 옹주(德惠翁主)도 또한 와서 알현(謁見)하였다.
3월 4일 양력
특별히 왕세자(王世子) 부무관(附武官) 육군 중좌(陸軍中佐) 우에노 요시스케〔上野良丞〕에게 은으로 만든 기념품을 하사하였다. 원임(原任)을 하기 때문이다.
3월 5일 양력
나시모토노미야〔梨本宮〕에서 과자 한 상자와 흰무늬가 있는 깃 이중(二重) 1필(匹)과 수제(手提) 한 개를 양전(兩殿)에 증정하여 바쳤다.
조취현(鳥取縣) 사람인 고타니 싱이치로〔小谷新一郞〕가 환후(患候)가 있다는 것을 듣고 자신이 이미 체험한 바 있는 약방(藥房)을 바쳤다.
3월 6일 양력
왕세자(王世子)와 왕세자비(王世子妃)가 돌아와서 알현(謁見)할 때, 배종한 사무관(事務官) 고희경(高羲敬)이하 여러 인원에게 차등을 두어 상금을 하사하였다.
특별히 전 군 사령관(軍司令官) 육군 대장(陸軍大將) 스즈키 소로쿠〔鈴木莊六〕에게 기념품을 하사하였다. 원임(原任)하기 때문이다.
3월 8일 양력
특별히 군 사령부(軍司令部)에 일금 300원을 하사하였다. 육군 기념제(陸軍記念祭) 때문이었다.
3월 11일 양력
왕세자(王世子)와 왕세자비(王世子妃)가 토쿄〔東京〕 별저(別邸)로 행계(行啓)하였다. 덕혜 옹주(德惠翁主)도 따라 나아갔다.
3월 12일 양력
신임 참모 총장(參謀總長) 스즈키 소로쿠〔鈴木莊六〕를 인정전(仁政殿) 동행각(東行閣)에서 접견하였고, 이에 오찬을 내렸다.
본직(本職) 차관(次官) 시노다 지사쿠〔篠田治策〕에게 일금 600원(圓)을 특별히 내려주었다. 장차 왕세자(王世子)와 왕세자비(王世子妃)를 배종(陪從)하여 구주(歐洲)를 유람하기 때문이다.
3월 13일 양력
부무관(附武官) 어담(魚潭)을 용산역(龍山驛)에 보내 참모 총장(參謀總長) 스즈키 소로쿠〔鈴木莊六〕가 토쿄〔東京〕으로 가는 길을 전송(餞送)하였다.
3월 14일 양력
이왕직 차관(李王職次官) 시노다 지사쿠〔篠田治策〕로 하여금 토쿄〔東京〕에 출장을 가게 하였다.
3월 19일 양력
서향각(書香閣)에 모셨던 어진(御眞) 【지금 임금의 것이다.〔當宁〕】 을 낙선재(樂善齋)에 이봉(移奉)하였는데, 찬시(贊侍) 한창수(韓昌洙)에게 봉심(奉審)하라고 명하였다.
3월 21일 양력
기사 노인(耆社老人) 남작(男爵) 김종한(金宗漢)과 남작 김사철(金思轍), 남작 박용대(朴容大), 전 장례경(掌禮卿) 이우면(李愚冕), 자작(子爵) 민영휘(閔泳徽), 전 판돈녕(判敦寧) 윤용구(尹用求), 전 학부 대신(學部大臣) 이용직(李容稙), 전 정이품(前正二品) 조영희(趙英熙), 남작 조동희(趙同熙), 남작 박기양(朴箕陽), 전 판돈녕부사 홍순형(洪淳馨) 및 남작 이종건(李鍾健), 남작 이윤용(李允用), 전 참정(參政) 한규설(韓圭卨)을 희정당(熙政堂)에서 접견하였다. 【이종건(李鍾健)이하 3인은 일찍이 문과(文科)를 거치지 않았으나 특교(特敎)로 입참(入參)하였다.】 이어 오찬을 내려주었는데, 음력으로 탄신일을 축하하였기 때문이다.
3월 24일 양력
총독부(總督府) 법무국장(法務局長) 마쓰데라 다케오〔松寺竹雄〕가 이왕직(李王職)의 어용괘(御用掛)로 임명되었다.
3월 25일 양력
흥복헌(興福軒)에 나아갔다. 왕비(王妃)와 같이 나아가 종척(宗戚), 귀족(貴族)과 본직(本職) 장관(長官) 이하 고등관(高等官)들의 탄신일 축하인사를 받았다. 이어 오찬을 내려주었다.
이왕직(李王職)의 어용괘(御用掛) 마쓰데라 다케오〔松寺竹雄〕를 소견(召見)하였다. 새로 임용되었기 때문이다.
3월 27일 양력
특별히 이왕직(李王職)의 어용괘(御用掛) 마쓰데라 다케오〔松寺竹雄〕에게 일금 200원을 하사하였다. 그가 부친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왕세자(王世子) 부무관(附武官) 김응선(金應善)이 이왕직(李王職)의 어용괘(御用掛)로 임명되었다.
3월 30일 양력
방외(方外) 의생(醫生) 김홍식(金洪植)이 입진(入診)하였다.
3월 31일 양력
특별히 이왕직 사무관(李王職事務官) 오우라 쓰네조〔大浦常造〕에게 일금 3,000원을 하사하였다. 사직(辭職)을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