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

대한민국 계엄의 역사

싸라리리 2025. 4. 8.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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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승만

 

1948년 10월 21일 ~ 1949년 2월 5일 

 - 여순사건에 대해서 이승만정부가 선포한 계엄령

 -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받은 여수 주둔 14연대 일부가 "동족을 학살할 수 없다"며 출동을 거부, 이에 이승만이 계엄을 선포함

 - 계엄 지역: 전라남도 여수, 순천, 광양, 보성 등 인근 지역

 - 언론 검열, 야간 통행 금지, 집회 금지, 즉결 처분 등 강력한 조치 시행

 - 공식 집계는 명확하지 않으나 민간인 포함 최소 2,000명 이상, 일부 기록은 5,000명 이상 추정

 

 


#2 이승만

 

1948년 11월 17일 ~ 1948년 12월 31일 

 - 4.3 사건이 장기화되고 있던 제주도에 대해서 이승만정부가 선포한 계엄령

 - 중산간 지역 초토화 작전: 계엄령 선포 이후, 정부군은 해안선에서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 마을을 적성 지역으로 간주하고 초토화 작전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마을이 불에 타고 주민들이 희생되었다.

 

 - 좌익 숙청 및 정권 안정화 수단으로 활용됨

 

 - 12월 1일 국가보안법 제정

 


#3 이승만

 

1960년 4월 19일 

 - 3.15 이승만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에 대해서 이승만정부가 계엄선포

 - 계엄 지역 서울시

 - 4월 11일 마산에서 김주열 열사의 시신발견으로 시위가 시작되고, 18일 고려대 중심으로 시위가 있었다. 19일 아침 서울의 각 대학생 수만명이 청와대 방면으로 시위 진행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군 투입

 - 시위대에 실탄 발포를 허용, 야간 통행 금지, 언론 검열, 집회 싯위 금지, 주요 정부 건물 및 방송국 군이 점거

 - 4월 19일 하루 동안 186명 사망 (정부 공식 발표는 125명, 실제는 더 많다는 평가) 1,000명 이상 부상

 - 4월 25일,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주요 대학 교수들이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에 동참했다.

 - 4월 26일 이승만 하야

 - 1960년 6월 15일 제 2공화국 헌법 제정

 


#4 박정희

 

1961년 5월 16일 

 -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비상계엄령 선포

 - 계엄지역 : 전국 

 - 인명피해는 거의 없음

 - 5월 16일 새벽, 수도 서울을 중심으로 계엄령과 함께 무장 군인이 방송국, 정부청사, 국회를 점령

 - 국회 해산,  정당 활동 금지, 헌법 일부 효력 정지, 언론 검열, 반혁명 세력 체포·처벌

 - 5월 20일 국가재건최고회의 구성하고 입법·행정·사법 장악

 - 6월 6일 헌정중단 선언 -> 2공화국이 1년도 안되어 무너짐

 - 계엄이 쿠데타의 목적으로 사용된 첫 사례

 - 1963년 군정을 종료하고 3공화국(박정희 정권) 출범

 


#5 박정희

 

1964년 6월 3일 ~ 1964년 7월 29일

 - 한일협정 반대투쟁을 진압하기 위해 박정희 정부가 계엄령 선포

 - 당시 한일 협정을 진행하면서 박정희가 일본 자민당에서 비공식적으로 돈을 받았다는 말이 있음.(2005년 공개된 미국 중앙정보국(CIA)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이 1961년부터 1965년까지 한국 민주공화당(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속한 정당) 예산의 상당 부분을 지원했으며, 그 금액이 총 6,60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 박정희 정권은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며 협정을 강행, 그러나 국민들은 과거사 청산 없이 일본과 수교하려는 정부 방침에 반대, 특히 1964년 봄, 전국 대학생과 시민 중심의 대규모 반대 시위가 확산

 - 6월 3일 학생 수천 명이 경찰 저지선 돌파하고 서울 도심 진출

 - 박정희가 서울시에 비상계엄령 선포

 - 집회·시위 금지, 언론 검열 실시, 야간통행금지, 주요 대학 휴교령 및 언론사에 군 배치, 학생 수백 명 연행, 교수·시민단체 인사 구금

 - 1965년 8월 26일 위수령 발동

 - 1965년 12월 한일협정 비준


#6 박정희

 

1972년 10월 17일(10월 유신) 

 - 박정희가 10월 17일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정지시키며 계엄령을 선포

 - 장기집권을 위해 비상계엄 선포.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하고 연임제한을 없앰. 10월 유신체제 시작

 - 긴급조치권 부여 : 국회의 의결 없이 대통령이 단독으로 입법, 사법, 행정을 장악

 -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김대중 후보와 간발의 차이로 승리 --> 이후 장기 집권을 위한 제도 마련 필요성 절감

 - 헌법 일부 조항 효력 정지: 헌법의 일부 조항 효력을 정지시켜 기본권을 제한하고 정부의 권한을 강화했다. --> 결과적으로 헌법을 무력화함

 - 국회 해산, 정치활동 중지, 언론검열, 헌법 개정 발의권 독점( 대통령이 개정안 단독 발의 가능)

 - 야당 탄압, 긴급조치 남발 (총 9차례, 8호까지 시행) --> 긴급 조치 위반으로 체포, 고문 등의 과정에서 의문사하는 등 여러 사람이 죽었다.

 -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여 8명을 사형선고하고 20시간만에 집행하는 사법살인이 있었다.

 - 장준하 선생 의문사

 

 

 


#7 박정희

 

1979년 10월 16일 

 -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위가 부산 지역에 발생(부마항쟁)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부산지역에 비상계엄 선포

 - 10월 16일 오전 10시경, 부산대학교 학생 약 500명이 도서관 앞에서 반정부 시위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유신정권 물러가라", "정치 탄압 중지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내 중심가로 행진했다.

 - 시위의 확산: 학생들의 시위는 시민들의 호응을 얻으며 더욱 확대되었다. 퇴근길의 회사원, 노동자, 상인, 심지어 고등학생까지 시위에 합류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수만 명으로 불어났다.

 - 격렬한 시위 양상: 시위대는 파출소, 경찰서, 공공기관 등을 공격하며 격렬한 저항을 이어갔다. 경찰차량이 불타고 파출소가 파괴되는 등 과격한 양상으로 번져나갔다.

 - 정부의 강경 진압 방침: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시위에 박정희 정부는 강경 진압 방침을 결정하고 계엄령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 시위가 번진 마산 창원지역에는 10월 20일 위수령을 발동함

 - 계엄군은 시위 참여자들을 대규모로 연행하고 구속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부산 지역에서 1,058명이 연행되었고, 66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 사망자: 정부 발표는 1명이나, 당시 목격자 증언과 병원 자료에 따르면 최소 4명 이상 부상자: 수백 명 연행자: 1천여 명 강제징집: 일부 학생은 시위 가담 이유로 즉시 군에 징집됨 (징집탄압)

 


#8 전두환

 

1979년 10월 27일 

 - 10월 26일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에 전두환이 최규하 국무총리를 시켜 서울지역에 비상계엄 선포

 - 다음날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으로 비상계엄 확대

 - 계엄령의 전국 확대는 "국가 혼란 방지"를 명분으로 한 조치였으나, 실제로는 군 내부 권력다툼(정승화 vs 전두환)의 무대를 만들어줌

 - 정치 활동 금지: 모든 정치 활동, 정치 목적의 집회 및 시위가 금지되었다. 언론 검열: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은 사전 검열을 받아야 했다. 대학 휴교령: 전국 대학(전문대 포함)에 휴교 조치가 내려졌다. 야간 통행 금지: 야간 통행 금지 시간이 연장되었다. 주요 인사 감시 및 연행: 정치인, 재야 인사, 학생 운동 관련자 등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고 일부는 연행되기도 했다.

 - 11월~12월 초 계엄하에서 정승화 중심으로 과도정부 구성 중

 - 12월 12일 전두환 등의 신군부, 쿠데타 감행 → 정승화 연행 → 군 장악(12.12 군사반란)

 -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발발 → 계엄령 하 시민 수백 명 사망


#9 전두환

 

1980년 5월 17일

 - 5월 16일 전두환의 신군부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17일 전국에 비상계엄령 선포

 -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계엄군을 투입하여 무력으로 진압

 - 5월 17일 비상계엄 선포

 - 5월 18일 전남대 시위 --> 공수부대 투입

 - 5월 27일 광주 최후 진압

 - 광주 진압하면서 수백명이 사망

 - 전국으로 계엄 확대 

 - 국회 해산, 대학교 휴교령, 언론 통제, 강제 폐간, 

 - 김대중, 김근태, 유인태, 문익환, 백기완 등 수백 명 연행

 - 군부에 의한 헌정 질서 중단.


#10 윤석열

 

2024년 12월 3일

 - 윤석열이 선포한 비상계엄

 - 시민의 저지로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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