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56

광해군일기[정초본]134권, 광해 10년 1618년 11월

11월 1일 병술합사하여 비밀리에 연계하고, 홍문관이 잇따라 차자를 올려 서궁(西宮)을 폄손하는 절목을 빨리 내려 폐출의 형전을 마무리 지으라고 청하고, 역적 이광(李珖)에게 율을 적용할 것을 청했는데, 따르지 않았다. 치우기(蚩尤旗)가 형체가 소멸된 듯하였으나, 은하에 섞여 있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4경에 혜성의 빛이 북두성의 첫째 별을 관통했는데, 빛이 점점 엷고 희미해졌으며 길이는 8, 9장이고 너비는 수 척이었다. 11월 2일 정해합사로 비밀리에 연계하고, 홍문관이 잇따라 차자를 올려, 서궁(西宮)을 폄손하는 절목을 빨리 내려 폐출의 형전을 마무리 짓고 역적 이광에게 율을 적용하라고 청했는데, 답하기를, "이미 다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이미 다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광해군일기[정초본]121권, 광해 9년 1617년 11월

11월 1일 임술왕이 정전(正殿)에 나아가 상수연(上壽宴)을 받았다. 전교하였다. "박승종을 불러들여 연회에 참석하게 하라.""박승종을 불러들여 연회에 참석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수연을 전날에 하던 것처럼 하지 말고 정전에 나와 앉은 후에 응당 거행해야 할 절목을 차례대로 자세히 살펴 제때에 거행하도록 하되, 정전 안이 비좁으니 정재(呈才)와 의장(儀仗)은 들어오지 말게 하라. 이를 살펴서 거행하라.""수연을 전날에 하던 것처럼 하지 말고 정전에 나와 앉은 후에 응당 거행해야 할 절목을 차례대로 자세히 살펴 제때에 거행하도록 하되, 정전 안이 비좁으니 정재(呈才)와 의장(儀仗)은 들어오지 말게 하라. 이를 살펴서 거행하라." 전교하였다. "선대 임금의 영정(影幀)이 전주(全州)에서 출발하는..

광해군일기[정초본]109권, 광해 8년 1616년 11월

11월 2일 기사【문신(文臣) 중시(重試)에서 이대엽(李大燁) 등 7명을 뽑았다. 【그 다음은 박정길(朴鼎吉), 유여각(柳汝恪), 최호(崔濩), 유윤(柳淪), 유혁(柳㴒), 양경우(梁慶遇)였는데, 모두 이이첨(李爾瞻)의 문객(門客)들이었다. 이대엽은 직제학으로서 당상으로 승진하였는데, 그의 표사(表詞)는 이재영(李再榮)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다. 인조반정 뒤에 소급하여 과방(科榜)에서 이름을 삭제하였다.】 】 11월 3일 경오전교하였다. "최유함(崔有涵)을 보방(保放)하도록 하라.""최유함(崔有涵)을 보방(保放)하도록 하라." 양사가 합계하였는데, 유성(柳惺)을 법률대로 처단하고 최천건(崔天健)과 허욱(許頊)과 성영(成泳)을 위리 안치시키고 서성(徐渻)과 박동량(朴東亮)과 신흠(申欽)과 한준겸(韓浚謙)을 ..

광해군일기[정초본]97권, 광해 7년 1615년 11월

11월 1일 계유전교하였다. "침의(針醫) 남영(南嶸)을 수령으로 자리가 비기를 기다려 속히 제수하라.""침의(針醫) 남영(南嶸)을 수령으로 자리가 비기를 기다려 속히 제수하라." 전교하였다. "시문룡(施文龍)이 이미 올라왔으니, 도감에서 양식과 반찬을 지급하라. 그리고 먼저 창경궁 전각을 보인 후, 일이 없는 날에 도감 제조 이하 및 중사(中使)가 그와 같이 경복궁의 내전과 외전의 향배도 둘러보고 자세히 물어 아뢰라.""시문룡(施文龍)이 이미 올라왔으니, 도감에서 양식과 반찬을 지급하라. 그리고 먼저 창경궁 전각을 보인 후, 일이 없는 날에 도감 제조 이하 및 중사(中使)가 그와 같이 경복궁의 내전과 외전의 향배도 둘러보고 자세히 물어 아뢰라." 양사가 합계하기를, "운상(雲祥)은 엄청난 죄명(罪名)을..

광해군일기[정초본]84권, 광해 6년 1614년 11월

11월 1일 기유김제 군수(金堤郡守) 신설(申渫) 등을 잡아왔다. 이에 앞서 전라 감사가 김제 군수의 고변으로 인해 치계하여 보고하자 체포된 사람이 잇따랐는데, 모두 신설이 거짓으로 꾸민 것에 연유한 것이었다. 이날 김제 죄인 소충한(蘇忠漢) 등을 정국(庭鞫)하였다. 충한이 공초하기를, "고을 사람 송여인(宋汝仁)이 예양(禮陽)을 잡아서 본군에 바치자, 군수가 공초를 받아 감사에게 보고한 뒤에 곧 신을 불러 몰래 말하기를 ‘박치의(朴致毅)가 간 곳을 적녀(賊女)가 반드시 알 것이니 네가 몰래 사주하라.’ 하였습니다. 또 아노(衙奴)로 하여금 옥문을 열고 신을 따라 함께 가서 사주하도록 한 것이 두 번입니다. 만일 관원의 지시가 아니라면 어떻게 감히 이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하였다. 예양이 공초하기를, ..

광해군일기[정초본]72권, 광해 5년 1613년 11월

11월 1일 을묘예문관이 아뢰기를, "사국(史局)이 오래 빈 것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전고에 없었던 변입니다. 그런데 사관들이 모두 체직되었고 또 전날에 천거를 받았던 자도 없으니, 본관으로서는 처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우상에게 물어서 처리하라." 하였다."사국(史局)이 오래 빈 것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전고에 없었던 변입니다. 그런데 사관들이 모두 체직되었고 또 전날에 천거를 받았던 자도 없으니, 본관으로서는 처리를 할 수가 없습니다."하니, 전교하기를,"우상에게 물어서 처리하라."하였다. 전교하였다. "양사가 아뢸 것이 있으면 일찍 하는 것이 옳다. 하물며 지금 같은 시각에 이 때문에 문을 열어두는 것은 매우 부당하다. 군국(軍國)에 관한 긴급한 일이 아니라면,..

광해군일기[정초본]59권, 광해 4년 1612년 11월

11월 1일 신묘태백이 낮에 나타났다. 왕이 서청에서 정인홍을 인견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요즘 경을 보고 싶었으나 마침 연이어 일이 있었기 때문에 진작 인견하지 못하였다. 매우 미안하다. 나라가 불행하여 역모의 옥사가 다시 일어나니, 나는 매우 걱정되고 민망스럽다." 하니, 인홍이 아뢰기를, "잔당(殘黨)들은 곧 소멸될 것이니 이런 정도의 도적들은 걱정거리가 아닙니다만 간흉한 무리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 나라의 불행인 것입니다. 이 뒤로는 난리를 없애는 계책에 진념하셔야 합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멀리 떠나려는 마음은 비록 변경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나를 함께 일할 수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것인가. 어떻게 하면 오래 머물 수 있겠는가. 잠깐만이라도 머물도록 하라." 하니, 인홍이 아뢰기를,..

광해군일기[정초본]47권, 광해 3년 1611년 11월

11월 5일 경자사헌부가 아뢰기를, "국가가 경악(經幄)에서 논사(論思)하는 관원을 두어 한 시대의 공의(公議)를 부여하였으니, 그들을 우대하고 중히 여기는 것은 실로 깊은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근년 이후로 세도(世道)가 날로 낮아지고 인심(人心)도 예전 같지 못하여, 사소한 이해가 있기라도 하면 제 몸을 살릴 구차한 계획을 세워 일에 임하여 도피하는 풍조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므로, 식자들이 한심스럽게 여긴 지 오래입니다. 어제 양사(兩司)를 처치할 때에 옥당(玉堂)에 현임 관원이 많았는데도 거의 다 병을 칭탁하여 결국 성원을 이루지 못하였으니, 일의 체모로 따져 보건대 매우 매몰스럽습니다. 그중에 상피(相避)나 추고받는 상황에 있어서 나아가 참여할 형편이 못 되었던 자들은 그만이거니와, 무고하게 병..

광해군일기[정초본]35권, 광해 2년 1610년 11월

11월 2일 계묘예조가 아뢰기를, 【새로 지은 궁궐로 이어(移御)할 때 고묘(告廟)하는 일과 응당 행해야 할 전례(典禮)에 관해 상고해 들이라는 명이 있었으므로 이렇게 아뢴 것이다.】 "난리를 겪고 나서 새로 궁궐을 지어 상께서 이어하시게 되었으니 실로 이보다 더 큰 경사가 없습니다.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는 으레 고묘하는 일이 있곤 하였는데, 다만 의거할 만한 전례가 없으니 대신에게 의논하여 시행케 하소서. 그리고 이어하실 때의 전례는, 각종 의범(儀範)이 모두 없어져 남아 있는 것이 없는데 한때의 의견을 가지고 일에 따라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는 일이니, 유신(儒臣)으로 하여금 의거할 만한 옛날의 예(禮)를 널리 상고해서 끄집어 낸 뒤 품지(稟旨)하게 하여 시행토록 하소서. 조종조에서 궁궐을 영선..

광해군일기[정초본]22권, 광해 1년 1609년 11월

11월 2일 기묘사간원이 아뢰기를, "어진 이의 후예를 녹용하는 것은 덕을 높이고 어진 이를 본받는 의미입니다. 선정신(先正臣) 조광조(趙光祖)의 조의현(趙義賢)은 선공감 감역관으로 여러 해 종사하였는데, 논상(論賞)을 인해서 군직 6품으로 천전(遷轉)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뒤 해조가 그의 녹봉을 주지 않아 까닭없이 도태시키는 것처럼 하여, 어진 이의 후예로 하여금 굶주림을 모면하지 못하게 하니, 국가가 포숭(褒崇)하고 녹용한다는 의미가 너무 없습니다. 해조에 명을 내려 우선적으로 부직(付職)하게 하여 그로 하여금 녹봉을 잃지 않도록 하소서. 그리고 기타 뛰어난 선현의 후예 또한 일일이 방문하고 녹용하게 하여 풍성(風聲)을 수립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정족산사고본】 5책 22권 1장..

광해군일기[정초본]10권, 광해 즉위년 1608년 11월

11월 1일 갑신전교하였다. "날씨가 매우 차다. 여러 곳에서 수직하는 군사들과 죄수들에게 해조로 하여금 빈 가마니를 주게 하여 얼어 죽는 걱정이 없게 하라."【정족산사고본】 3책 10권 1장 A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1책 364면【분류】과학-천기(天氣) / 왕실-사급(賜給) / ⓒ 한국고전번역원"날씨가 매우 차다. 여러 곳에서 수직하는 군사들과 죄수들에게 해조로 하여금 빈 가마니를 주게 하여 얼어 죽는 걱정이 없게 하라." 병조가 청하기를, "봉명(奉命)한 각 품관(品官)의 말 마릿수를 감하여 역로(驛路)의 폐단을 조금이나마 줄이도록 하소서." 하니, 따랐다.【정족산사고본】 3책 10권 1장 A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1책 364면【분류】교통-마정(馬政)ⓒ 한국고전번역원"봉명(奉命)한 각 품관(品..

인조실록49권, 인조 26년 1648년 11월

11월 1일 신유대사헌 조경이 식년 회시의 고관으로서 책문(策問)의 출제를 《춘추》에서 냈는데, 당시의 시사가 많이 언급되었었다. 상이 정원에 하교하기를,"이 출제가 합당한가? 승지는 살펴서 아뢰라."하였다. 회계하기를,"무릇 시취할 때 성경 현전 가운데의 문자로 출제하는 것이 본디 장옥(場屋)의 예사입니다만, 이 출제의 ‘방금(方今)’이라고 한 이하의 조어(措語)는 과연 살피지 않은 것인 듯합니다."하니, 답하기를,"해당 시관을 추고하라."하였다. 11월 2일 임술식년 전시(式年殿試)에서 문과에 조정(曺烶) 등 33인과 무과에 유성길(劉成吉) 등 28인을 뽑았다. 11월 3일 계해대사헌 조경이 아뢰기를,"시원(試院)에서 출제함에 있어 《춘추》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살피지 않고 경솔하게 두찬했습니다. ..

인조실록48권, 인조 25년 1647년 11월

11월 4일 경자상이 번침(燔鍼)을 맞았다. 비밀리에 정명수에게 주는 은 2천 3백 냥을 만상(灣上)에 수송하였다. 11월 5일 신축유성이 묘성(昴星) 아래에서 나와 벽성(壁星) 위로 들어갔다. 군기시 정 심택(沈澤), 예빈시 정 조빈(趙贇), 정랑 유경창(柳慶昌), 교리 성이성(成以性)·민광훈(閔光勳), 좌랑 이해창(李海昌), 수찬 이행원(李行源)·김중일(金重鎰)·이정영(李正英)에게 명하여 암행 어사로 나갈 채비를 하게 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궁이 낙성되면 축하하는 것은 옛날에도 그런 예가 있었습니다. 이제 흉악하고 더러운 것을 말끔히 없애버려 성상의 옥체도 편안하시고 법궁(法宮)을 중수하여 길일을 택해 이어하시게 되니, 중외의 신민들치고 기뻐서 경하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진하하는 거조를 그만둘..

인조실록47권, 인조 24년 1646년 11월

11월 4일 병오유동수(柳東秀)에게 장형(杖刑)을 집행하여 경성(鏡城)으로 유배시켰다. 당초 윤형각(尹衡覺)이 평소에 유동수와 공을 다투며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었는데, 유동수가 이보다 앞서 대옥(對獄)하면서 윤형각의 실수를 많이 지적하였으므로 윤형각이 더욱 불평을 하다가 마침내 사유를 갖추어 상소하였다. 그런데 윤형각이 바야흐로 파주 목사로 임명되어 미처 출사(出謝)하기도 전에 남을 시켜 정원에 정소(呈疏)하자, 정원이 전례에 의거하여 받지 않고 돌려보냈다. 윤형각이 얼마 후에 뉘우치고 드디어 그 상소를 정지하였었다. 사간 김원립(金元立)이 그 사실을 듣고 이에 아뢰기를,"윤형각의 상소가 상달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정원에 올렸고 사람들의 입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유동수가 고변을 금지시키고 억제시킨 ..

인조실록46권, 인조 23년 1645년 11월

11월 1일 기유지진이 있었다. 큰 별이 천가성(天街星) 아래에서 나와 서쪽으로 떨어졌는데, 그 빛이 땅을 비추었으며,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황해도 관찰사 정유성(鄭維城)이 치계하였다."도내의 진결(陳結)과 재결(災結)을 다시 살펴보니, 올해 조세를 내야 할 전지는 밭이 3만 7백 84결이고, 논이 5천 6백 20결입니다." 11월 2일 경술중전이 경덕궁으로 옮겨갔다. 세자가 돈화문 밖에서 전송하고, 질병으로 인해서 따라가지 못하였다. 이때 예조가 의정한 이어 절목(移御節目)에는 세자가 궐문에서 전송하고 이어서 배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상이 하교하기를,"내전의 거둥에 세자가 배행하는 것이 전례가 있는가?"하자, 회계하기를,"내전이 거처를 옮기는 일은 전일에 없었던 일로, 세자가 배행하는 절목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