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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업데이트 머신 입력 방지 ? 온라인 우표가 생각나는건 나뿐인가?

등록할때 캡차? 이게 머야!!!? 서비스플랫폼을 운영하는 것들은 잘 하다가 항상 헛발질을 잘 하는데이번 2026년 티스토리 머신입력 방지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본다. 현상글쓰기 버튼을 누르면 이미지로 특정 상호나 지명의 일부를 입력하게 하는 캡차를 띄운다.아마 이걸로 사람이 입력하는 것과 기계가 입력하는 것을 구분하고 싶은 것 같다. 문제점1.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 시작부터 문제가 생겨났다. 우선 이런 기능이 나오는 이유는 대부분 실제 문제의 정의를 하지 않고, 누군가 한 사람의 생각으로 진행된 업데이트로 보인다. 위에서 까라는대로 깠다는 말이다. 내가 예상하는 시나리오는 이거다. 머신입력은 블로그와 같은 컨텐츠 서비스 플랫폼의 고질적인 문제다. 디도스니 자동 댓글이니 모두 같은 부류의 문제이..

이야기 2026.01.15

광해군일기[정초본]135권, 광해 10년 1618년 12월

12월 1일 병진시약청(侍藥廳)이 아뢰기를, "중전의 증상이 이렇게 차도가 없어 신하된 자로서 답답한 심정을 견딜 수 없었는데, 상께서 특별히 근심하는 마음으로 약을 의논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면하라는 교지를 크게 반포하셨으니, 내전을 위해 은혜를 베풀어 복을 맞이하려는 뜻이 지극합니다. 무릇 보고 듣는 사람으로서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이번 대사면의 성대한 은전은 실로 비상한 조치이니, 신들은 진실로 성상의 의도하는 바를 알겠습니다. 그러나 죽을 죄를 지어 일반적인 사면으로 용서받지 못할 자들에 대해서도 모두 용서해 주어서 잘 분별하여 처리하여야만 덕을 베푸는 뜻에 맞는 동시에 많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청(鞫廳)이 죄수들까지도 용서할 것인가 말 것인가..

광해군일기[정초본]134권, 광해 10년 1618년 11월

11월 1일 병술합사하여 비밀리에 연계하고, 홍문관이 잇따라 차자를 올려 서궁(西宮)을 폄손하는 절목을 빨리 내려 폐출의 형전을 마무리 지으라고 청하고, 역적 이광(李珖)에게 율을 적용할 것을 청했는데, 따르지 않았다. 치우기(蚩尤旗)가 형체가 소멸된 듯하였으나, 은하에 섞여 있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4경에 혜성의 빛이 북두성의 첫째 별을 관통했는데, 빛이 점점 엷고 희미해졌으며 길이는 8, 9장이고 너비는 수 척이었다. 11월 2일 정해합사로 비밀리에 연계하고, 홍문관이 잇따라 차자를 올려, 서궁(西宮)을 폄손하는 절목을 빨리 내려 폐출의 형전을 마무리 짓고 역적 이광에게 율을 적용하라고 청했는데, 답하기를, "이미 다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이미 다 유시하였다. 번거롭게..

광해군일기[정초본]133권, 광해 10년 1618년 10월

10월 1일 병진정언 이원흥(李元興)이 아뢰기를, "신이 어제 상수연(上壽宴)에 끝나고 돌아갈 때 흰옷을 입은 어떤 자가 말을 타고 그냥 지나갔는데, 신의 하인이 그 마부를 붙잡아 관례에 따라 지가(知家)했습니다. 오늘 아침 어떤 사람이 심 사인(沈舍人)이 보낸 자라고 칭하면서 신에게 말을 전하기를, ‘내가 어제 저녁에 또한 공적인 일로 들어왔는데, 당신이 지가한 자는 바로 역졸이다. 이미 풀어주어 돌아가게 했는데, 허물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심씨 성의 사인이라곤 한 사람도 서로 아는 자가 없었기에 그가 사람을 보낸 것을 괴이하게 여겨 상세히 그 연유를 물었더니, 답하기를, ‘나는 바로 전에 사인이었던 심즙(沈諿)의 사령이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하리를 시켜 그 지가시켰던 사람에게 가서 물어..

광해군일기[정초본]132권, 광해 10년 1618년 9월

9월 1일 병술병술149) 정원이 아뢰기를, "근래에 직무를 맡은 관원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일을 회피하려고 청탁을 넣어 자리를 바꾸어 달라고 하는 것이 전후로 잇따랐으니, 이미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요즈음 경략(經略)이 우리 나라에서 보내 주는 전마(戰馬)를 밤낮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자문(咨文)을 수령해 가지고 갈 재자관(齎咨官)이 교체된 것이 무려 7명이나 되어 일에 차질이 생기고 지체되었으니, 그들이 필시 의아하게 여길 것입니다. 이 일은 무기를 들고 적진에 뛰어드는 일도 아닌데 이와 같이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으니, 오늘날의 나랏일이 참으로 한심합니다. 이조로 하여금 병에 걸린 향생(鄕生), 시종신(侍從臣), 병조 낭관을 제외한 그 밖의 사람들 가운데 합당한 자를 차출해서 오늘내일 안으로 출발시키..

광해군일기[정초본]131권, 광해 10년 1618년 8월

8월 1일 정사전교하였다. "소훈(昭訓)의 처녀 단자를 많은 수로 봉입할 것을 여러 번 하교하였는데, 단지 10여 명만으로 구차하게 충당시켜 봉입하여 책임을 메꾸려 하다니 매우 놀랍다. 한성부와 오부의 해당 관리를 추고하여 다시 더 봉입하도록 독촉하고, 처녀를 내놓지 않는 집의 가장은 조사하여 다스리라.""소훈(昭訓)의 처녀 단자를 많은 수로 봉입할 것을 여러 번 하교하였는데, 단지 10여 명만으로 구차하게 충당시켜 봉입하여 책임을 메꾸려 하다니 매우 놀랍다. 한성부와 오부의 해당 관리를 추고하여 다시 더 봉입하도록 독촉하고, 처녀를 내놓지 않는 집의 가장은 조사하여 다스리라." 주사청(舟師廳)이 아뢰었다. "이번 주사(舟師)의 일은 사람들마다 모두 그것이 커다란 폐단이 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각도..

광해군일기[정초본]130권, 광해 10년 1618년 7월

7월 1일 정해전교하였다. "비변사 당상 이경전(李慶全)이 의주로 내려갈 때 경유하는 일로에 마부와 말을 급급히 조발하여 정돈해 두고 즉각 교대하게 할 일을 삼도(三道)의 감사와 병사에게 하유하라. 또 선전관 한 사람을 같이 내려 보내서 이경전이 강을 건넌 뒤에 올라오게 할 일을 살펴 시행하라.""비변사 당상 이경전(李慶全)이 의주로 내려갈 때 경유하는 일로에 마부와 말을 급급히 조발하여 정돈해 두고 즉각 교대하게 할 일을 삼도(三道)의 감사와 병사에게 하유하라. 또 선전관 한 사람을 같이 내려 보내서 이경전이 강을 건넌 뒤에 올라오게 할 일을 살펴 시행하라." 전교하였다. "대장군전(大將軍箭)·진천뢰(震天雷)·독시(毒矢)·석류화전(石榴火箭)이 모두 전쟁에 쓰기에 합당한데 어찌하여 만들어 쓰지 않는가. ..

광해군일기[정초본]129권, 광해 10년 1618년 6월

6월 1일 무오비변사가 아뢰기를, "남방의 관방(關防)이 오늘날 정말 급하기만 한데 병력을 뽑아 올리라는 명령이 또 제도에 내려졌으니, 이러한 때 각도의 감사를 오래도록 비워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3도의 감사를 체차시킨 뒤 이미 천망(薦望)을 들였는데, 감사를 마중하러 온 하인들이 서울에 온 지 몇 달이 지나 도로에서 걸식을 하고 있으니 지극히 염려됩니다. 전라좌·우수사와 동래 부사(東萊府使)는 모두 비중이 큰 자리인데 오래도록 임명되지 않고 있으니 며칠 안으로 차출하여 급히 내려 보내도록 하소서. "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남방의 관방(關防)이 오늘날 정말 급하기만 한데 병력을 뽑아 올리라는 명령이 또 제도에 내려졌으니, 이러한 때 각도의 감사를 오래도록 비워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3..

광해군일기[정초본]128권, 광해 10년 1618년 5월

5월 1일 무자대사헌 남근(南瑾), 대사간 윤인(尹訒), 집의 임건(林健), 사간 신광업(辛光業), 장령 한영(韓詠)·강수(姜𢢝), 지평 이중계(李重繼)·신칙(申恜), 헌납 한희(韓暿), 정언 이원여(李元輿)·서국정(徐國楨)이 아뢰기를, "신들이 어제 윤유겸(尹惟謙)의 소를 보건대, 잠꼬대같은 소리를 허다하게 늘어놓아 따질 가치가 없을 뿐만이 아니었으므로 벌써 치지도외(置之度外)했는데, 차례로 거론하며 그 말을 깨뜨릴 겨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심지어는 관학(館學) 유생들이 올린 소에까지 ‘삼사(三司)가 이렇게 배척을 받았는 데도 즉시 물러나 피혐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있었으니, 신들이 물러나 피혐하는 일도 매우 구차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사체(事體)를 가지고 말한다면, 나라에 큰 일이 발생했..

광해군일기[정초본]127권, 광해 10년 1618년 윤4월

윤4월 1일 기미전교하였다. "경덕궁의 각전에 혹 낭청만 있거나 감역관만 있는 경우가 있어서 혼자 두 전(殿)이나 두 당(堂)의 공사를 겸해 살피기도 하기 때문에 미치지 못하는 곳이 꽤나 있다 한다. 융정전(隆政殿)·동궁(東宮)·별당(別堂)에는 근면하고 일을 잘 아는 사람을 우선 가려 뽑아 감독하게 하라.""경덕궁의 각전에 혹 낭청만 있거나 감역관만 있는 경우가 있어서 혼자 두 전(殿)이나 두 당(堂)의 공사를 겸해 살피기도 하기 때문에 미치지 못하는 곳이 꽤나 있다 한다. 융정전(隆政殿)·동궁(東宮)·별당(別堂)에는 근면하고 일을 잘 아는 사람을 우선 가려 뽑아 감독하게 하라." 유학 한보길(韓輔吉) 등이 상소하였는데, 대개 속히 서궁(西宮)의 죄악을 거론하여 대의로서 단죄함으로써 신인(神人)의 분노를..

광해군일기[정초본]126권, 광해 10년 1618년 4월

4월 1일 경인전교하였다. "인경궁(仁慶宮)의 동궁(東宮)의 침실을 여태 시공(施工)도 하지 않고 있는데 속히 시공하게 하라. ""인경궁(仁慶宮)의 동궁(東宮)의 침실을 여태 시공(施工)도 하지 않고 있는데 속히 시공하게 하라. " 4월 2일 신묘의금부가 아뢰기를, "본부의 초기(草記)에 대해 전교하시기를 ‘알았다. 이밖에 병든 죄인이 있는지 다시 자세히 살펴 아뢰라.’고 하셨습니다. 신들이 살리기 좋아하시는 성상의 덕에 깊이 감복된 나머지 즉시 치료하는 의관으로 하여금 자세히 살펴보게 하였더니 그 보고서가 이와 같았습니다. 신들이 감히 뽑아서 아뢸 성질이 못되기에 모두 서계(書啓)합니다. 삼가 성상께서 결재해 주시기를 기다립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본부의 초기(草記)에 대해 전교하시기를 ‘..

광해군일기[정초본]125권, 광해 10년 1618년 3월

3월 1일 경신우부승지 박정길(朴鼎吉)이 아뢰기를, "신이 삼가 영건 도감(營建都監)의 공사를 보건대, 바로 봉산(鳳山)에 거주하는 전 만호(萬戶) 김대회(金大淮)의 상소와 관련하여 회계한 일이었습니다. 김대회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그가 상소한 말 또한 하나하나 쓸 만한 것은 못되었습니다만, 그 가운데 ‘정군(正軍)에 충정(充定)되어야 할 자가 군역(軍役)을 모면할 목적으로 청탁하며 빠져 나가려고 꾀한다.’는 등의 말은 그야말로 오늘날의 폐단을 맞춘 것이기에 신이 이를 인하여 추론(推論)해 볼까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속임수가 많은 데다가 군적(軍籍)이 불분명한 탓으로 양민이 군역을 빠져 나가는 폐단이 난리를 치른 뒤로 극에 이르렀습니다. 우선 한두 가지 일을 거론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선대..

광해군일기[정초본]124권, 광해 10년 1618년 2월

2월 1일 신묘유학(幼學) 박시준(朴時俊)·이구(李榘)·황정필(黃廷弼)·김정량(金廷亮)·이국헌(李國獻)·박몽준(朴夢俊)·한보길(韓輔吉)·한천정(韓天挺)·설구인(薛求仁)·임욱(任頊) 등이 상소하였다. "삼가 아룁니다. 역적을 엄하게 토죄(討罪)하지 못한 탓으로 사람들이 두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궁(西宮)이 이미 낮춰진 뒤에도 사론(邪論)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어, 서(西)·남(南)·소북(小北)의 사람들 모두가 ‘천자가 봉(封)해 준 고명(誥命)과 관복(冠服)이 아직도 있는데 어떻게 멋대로 폐(廢)할 수 있는가.’ 하자, 온 나라 사람들이 그 주장에 붙좇고 있습니다. 어제 도당(都堂)에서 회의할 적에 재신(宰臣)이 15인만 와서 참석했을 뿐 나머지는 일을 핑계대고 오지 않았으며, 와서 참석한 ..

광해군일기[정초본]123권, 광해 10년 1618년 1월

1월 1일 신유유학(幼學) 최숙(崔淑)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에, "이병(李覮)은 이홍로(李弘老)의 심복으로서 그의 간악한 모의와 비밀스러운 계책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없었는 데도, 형(刑)으로 바루어지지 않은 채 연줄을 타고 현직(顯職)에 올랐으니, 그의 처지에서는 안면을 고치고 섬기는 바에 충성을 바쳤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대론(大論)을 담당한다고 거짓으로 일컫고는 급급하게 사흉(四兇)에 대한 논계를 정지시켰는가 하면, 끝내 폐출(廢黜)에 대한 의논을 꺼내지도 않았으니, 먼저 이병에게 주벌(誅罰)을 가하여 임금을 잊은 죄를 바로잡으소서. 그런 다음에 삼사(三司)가 폐출에 관한 논의를 발동하지 않은 죄를 다스리고, 곧장 서궁(西宮)을 폐출하여 천하에 사과토록 하소서." 하니, 의정부에 계하(..

광해군일기[정초본]122권, 광해 9년 1617년 12월

12월 1일 임진양사가 합사(合司)하여 기자헌을 위리 안치할 것을 연계(連啓)하고, 옥당이 연차(連箚)하여 공론을 흔쾌히 따를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나는 이 계사에 대해서 듣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만, 여러 날 번거롭게 고집하니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의 일을 놓고 보더라도 전후의 말을 다르게 하고 반복하여 핑계만 대면서 일을 담당하려 하지는 않고 오직 아름다운 이름만 차지하려는 자가 어찌 기자헌뿐이겠는가. 대신을 고향으로 추방한 것도 가벼운 율이 아니다. 위리 안치까지 하는 것은 너무 과중한 벌이니 번거롭게 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나는 이 계사에 대해서 듣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만, 여러 날 번거롭게 고집하니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의 일을 놓고 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