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59

광해군일기[정초본]135권, 광해 10년 1618년 12월

12월 1일 병진시약청(侍藥廳)이 아뢰기를, "중전의 증상이 이렇게 차도가 없어 신하된 자로서 답답한 심정을 견딜 수 없었는데, 상께서 특별히 근심하는 마음으로 약을 의논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면하라는 교지를 크게 반포하셨으니, 내전을 위해 은혜를 베풀어 복을 맞이하려는 뜻이 지극합니다. 무릇 보고 듣는 사람으로서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이번 대사면의 성대한 은전은 실로 비상한 조치이니, 신들은 진실로 성상의 의도하는 바를 알겠습니다. 그러나 죽을 죄를 지어 일반적인 사면으로 용서받지 못할 자들에 대해서도 모두 용서해 주어서 잘 분별하여 처리하여야만 덕을 베푸는 뜻에 맞는 동시에 많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청(鞫廳)이 죄수들까지도 용서할 것인가 말 것인가..

광해군일기[정초본]122권, 광해 9년 1617년 12월

12월 1일 임진양사가 합사(合司)하여 기자헌을 위리 안치할 것을 연계(連啓)하고, 옥당이 연차(連箚)하여 공론을 흔쾌히 따를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나는 이 계사에 대해서 듣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만, 여러 날 번거롭게 고집하니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의 일을 놓고 보더라도 전후의 말을 다르게 하고 반복하여 핑계만 대면서 일을 담당하려 하지는 않고 오직 아름다운 이름만 차지하려는 자가 어찌 기자헌뿐이겠는가. 대신을 고향으로 추방한 것도 가벼운 율이 아니다. 위리 안치까지 하는 것은 너무 과중한 벌이니 번거롭게 하지 말도록 하라." 하였다."나는 이 계사에 대해서 듣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만, 여러 날 번거롭게 고집하니 한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의 일을 놓고 보더..

광해군일기[정초본]110권, 광해 8년 1616년 12월

12월 1일 정유대사간 정조(鄭造)가 아뢰기를, "신들이 그저께 삼가 원이곤(元以坤)의 상소를 보았더니, 대개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며 대간이 자기 당파를 비호한다.’고 하였으며, 또 형효갑(邢孝甲)에 대해 논계하는 일을 가지고 시세를 타서 교묘히 임금의 뜻에 맞추는 계책을 삼았습니다. 게다가 ‘의심하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 참소꾼들의 말을 불러오게 된다.’는 등의 말을 집어내어 신들의 죄안(罪案)을 삼았습니다. 사람의 괴이하기가 이와 같을 수 있단 말입니까. 신들이 지난번에 성상의 비답을 보았더니, ‘근래에 과거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을 나도 들었다.’라는 전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와 같이 사람들의 의논이 여러 갈래이고 조정이 대립하고 있는 때에, 반드시 이러한 망극한 참소꾼이 있어서 교묘히 참소하는..

광해군일기[정초본]98권, 광해 7년 1615년 12월

12월 1일 계묘의정부 좌의정 정인홍(鄭仁弘)이 차자를 올렸다. "신이 지난번 입시하였다가 물러나려 할 적에 ‘오늘 미처 하지 못한 말은 물러나서 다시 글로 진달하여도 좋다.’는 성상의 분부를 받들었습니다. 신이 명을 듣고 감격하여,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이시는 성상의 성대한 뜻에 장차 어떻게 부응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신은 듣건대 《서경》에 이르기를 ‘신하는 를 위해서는 덕(德)을 위하고 아래를 위해서는 백성을 위한다.’ 하였으니, 를 위한다는 것은 임금의 덕을 도와 이루는 것이고 아래를 위한다는 것은 민생을 위하는 것입니다. 신하의 도리는 이 두 가지에 불과합니다. 신이 지난날 아뢴 바, 유신들을 자주 접하여 치도를 강론하고, 부역을 덜어주어 굶주린 백성을 구하고, 좋고 싫음을 밝히고 취하고 버릴..

광해군일기[정초본]85권, 광해 6년 1614년 12월

12월 1일 기묘양사가 아뢰어 이의신(李懿信)을 의법 조치할 것과, 무고한 자인 김덕룡·김언춘·윤삼빙에 대해 빨리 보방(保放)시키거나 정배하라는 명을 거두고 엄히 국문하여 실정을 캐낸 다음 의법 처벌할 것과, 신설(申渫)을 다시 나국할 것을 청하였으나, 모두 따르지 않았다. 12월 2일 경진사헌부가 아뢰기를, "엄인(閹人)은 다만 금중에 시위하여 명령을 전달하고 청소나 맡을 뿐입니다. 혹시 공무를 띠고 외방으로 나간다 하더라도 결코 대부(大夫)가 외방으로 나가는 것에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지난날 경기전 영정(慶基殿影幀)을 배종한 내관(內官) 최언순(崔彦恂)이 감히 지나던 일로(一路) 인민의 정장(呈狀)을 가지고 와서 성상의 귀를 어지럽게 하였습니다. 그중 감사·병사와 수령의 선정에 대한 포상의 일은 비..

광해군일기[정초본]73권, 광해 5년 1613년 12월

12월 1일 갑신승정원이 영창 대군 이의(李㼁)를 법으로 다스려 쾌히 공론을 따르라고 청하니, 전교하기를, "정원이 어찌 나의 뜻을 모르는가.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정원이 어찌 나의 뜻을 모르는가. 이런 말은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하였다. 양사가 이의를 법으로 다스리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해도(海島)에 안치(安置)한 것만도 은정(恩情)을 해친 것이 많다. 내 심정을 헤아려 억지로 다투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해도(海島)에 안치(安置)한 것만도 은정(恩情)을 해친 것이 많다. 내 심정을 헤아려 억지로 다투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하였다. 홍문관이 잇따라 차자를 올렸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대신이 백관을 거느리고 의를 법으로 다스리라 명하여 여론의 뜻을 통쾌하게..

광해군일기[정초본]61권, 광해 4년 1612년 12월

12월 1일 경인지평 배대유(裵大維)·조존도(趙存道)가 아뢰기를, "어제 모인 자리에서 대사헌 최유원(崔有源)이 영원군(靈原君) 박건(朴楗)의 계사에 대해 대신들과 의논하라고 한 일에 대해 논하려고 하였습니다. 신들의 뜻에는 ‘녹훈은 중요한 일이니 참으로 지나치게 많이 해서도 안 되고 빠뜨려서도 안 된다. 만일 박건의 계사에서 한 말과 같다면 비록 대신들과 다시 의논하더라도 무방할 것 같다.’고 여겨졌으므로 재삼 머뭇거리며 어렵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원이 시종 완강하게 거부하고 심지어는 일어나 피혐하려고까지 하였으므로 신들이 비로소 따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의 의논을 들으니 ‘전에 유원이 전한(典翰)으로 있을 적에 역신(逆臣) 유영경(柳永慶)이 곤룡포를 짠다는 핑계를 대고 즉위하는 대례..

광해군일기[정초본]48권, 광해 3년 1611년 12월

12월 1일 병인호패청(號牌廳)이 아뢰기를, "‘호패를 차고 다니는 일을 대신에게 의논하여 기한을 멀리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도성의 사대부는 12월 1일부터 우선 차고 다니게 하고, 외방의 감사·병사·수사·수령·변장과 기타 시산관(時散官)은 임자년 1월 1일부터 우선 차고 다니게 하며, 경외의 사서인(士庶人) 이하 역(役)이 있거나 없는 군민(軍民) 등은 2월 1일부터 차고 다니게 함이 마땅하겠습니다. 대신의 뜻 역시 이와 같으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호패를 차고 다니는 기한을 멀리 잡아야 한다는 뜻을 전일 영상이 탑전에서 아뢰었다. 이제 백관은 내년 1월 1일부터 차고 다니게 하되, 외방 역시 차차 물려서 정해야 할 것이다." 하였다.【정족산사고본】 11책 48권 1장 A면【국편영..

광해군일기[정초본]36권, 광해 2년 1610년 12월

12월 1일 임신조강(朝講)에 납시었다. 【정족산사고본】 8책 36권 1장 A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1책 586면【분류】왕실-경연(經筵)ⓒ 한국고전번역원 정언 김광욱(金光煜)이 아뢰기를, "대독관(對讀官) 허균(許筠)이 부정으로 합격시킨 응시자 5명이 이미 여론에 의해 들추어졌습니다. 그중에 비록 친소(親疎)와 경중(輕重)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나라 사람들이 모두 ‘자제(子弟)와 질서(姪壻)의 방(榜)이다.’고 말들을 하니, 신 혼자만의 견해로는 진실로 가벼이 취사를 결정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아가 사은(謝恩)하던 날에 이 5명을 들어 논열하는 가운데에 서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돈·문정(査頓門庭)이라는 말은 애당초 논계하는 말에는 들어 있지 않았었는데 피혐하는 말에 범범히 나온 것..

광해군일기[정초본]23권, 광해 1년 1609년 12월

12월 1일 무신사간원이 허준을 석방하도록 한 성명을 도로 거둘 것을 연계하니, 답하기를, "왕법(王法)으로 사람을 다스림에 있어 정상을 참작하여 죄를 정하지 않을 수 없다. 허준을 귀양보낸 것은 정상을 참작한 데서 나온 일이었으니, 해가 지나 석방시키는 것은 결단코 형벌을 잘못 적용한 것이 아니다. 나도 또한 참작하였으니, 번거롭게 고집하지 말라." 하였다.【정족산사고본】 5책 23권 1장 A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1책 473면【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행형(行刑)ⓒ 한국고전번역원"왕법(王法)으로 사람을 다스림에 있어 정상을 참작하여 죄를 정하지 않을 수 없다. 허준을 귀양보낸 것은 정상을 참작한 데서 나온 일이었으니, 해가 지나 석방시키는 것은 결단코 형벌을 잘못 적용한 것이 아니다. 나도..

광해군일기[정초본]11권, 광해 즉위년 1608년 12월

12월 1일 갑인전교하기를, "조종조의 실록 등본(謄本)에, 삼년상 안에 열성(列聖)들이 대비전에 옷감 한 벌을 올리는 전례가 있었다. 그런데 탄일(誕日)과 동지에 위에서 옷감 한 벌을 올리는 한 절차에 대해 유사가 자세히 살펴 재가를 청하지 않았으니, 매우 온당치 않은 일이다. 정조(正朝)부터 자전(慈殿)에게 봉진해야 하겠으니, 이 뜻을 예관(禮官)에게 일러 그로 하여금 의논해 정하여 거행할 수 있게 하라."【정족산사고본】 3책 11권 1장 A면【국편영인본】 광해군일기31책 375면【분류】역사-편사(編史) / 왕실-비빈(妃嬪)ⓒ 한국고전번역원"조종조의 실록 등본(謄本)에, 삼년상 안에 열성(列聖)들이 대비전에 옷감 한 벌을 올리는 전례가 있었다. 그런데 탄일(誕日)과 동지에 위에서 옷감 한 벌을 올리는..

인조실록49권, 인조 26년 1648년 12월

12월 2일 임진가례청(嘉禮廳)이 아뢰기를,"숭선군(崇善君)의 납폐(納幣) 때 선온하는 절차에 대해 결정하라는 일이 있었는데도 아직 분부가 없습니다. 기일이 박두했으므로 감히 우러러 여쭙니다."하니, 답하기를,"대군·왕자·대신이 나아가 참여하는 곳에는 승지가 나아가고 이들이 참여하지 않는 곳에는 본시(本寺)의 정(正)에게 나아가게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지금부터 밖에 선온하는 예는 이것으로 법식을 삼아 거행하게 하소서. 그러나 내자시 정은 줄인 지가 이미 오래이고 차관은 주부(主簿)이니 해조로 하여금 품처하게 하소서."하니, 답하기를,"다시 설치할 동안은 주부로 하여금 행하게 하라."하였다. 12월 4일 갑오부산(釜山)의 관수(館守) 왜인들이 담장을 물려 쌓는 것을 허락하지..

인조실록48권, 인조 25년 1647년 12월

12월 1일 정묘상이 번침을 맞았다. 약방 제조 조경(趙絅)이 입시하여 나아가 아뢰기를,"때 아닌 우레의 변고는 필시 형벌이 중도를 잃어서일 것입니다. 그리고 신이 듣건대, 하루 온종일 우레가 치는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저번에 강씨(姜氏)의 옥사로 인하여 네 신하를 내친 지 이제 이미 오래 되었으니, 마땅히 그들을 석방하여 하늘의 벌에 답하소서. 세 아이에 있어서도 그들은 어려서 그 어미가 한 짓을 몰랐기 때문에 뚝 떨어진 섬에 안치하여 왕법을 시행하였으니, 이제 만약 석방하신다면 자애로움을 보이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하니, 상이 이르기를,"경의 말은 오활하도다."하였다. 조경이 아뢰기를,"신의 말이 죄줄 만하면 죄주시고 쓸 만하면 쓰소서. 원컨대 전하께서는 옛 제왕이 재해를 만나면 몸을 닦고 마음을..

인조실록47권, 인조 24년 1646년 12월

12월 1일 계유개기 일식이 있었다. 정초군(精抄軍)으로 양궁(兩宮)을 숙위하도록 명하였다. 이보다 먼저 상번 군사 가운데 날래고 건장한 자를 뽑아내어 정초군이라 이름을 짓고 그들에게 잡역을 면제시켜 재능과 기술을 연습하게 하여 급박할 때 활용하도록 하였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정초군 가운데 또 1백 수십 인을 뽑아 절반은 대전(大殿)의 차비문을 지키게 하고 절반은 세자궁(世子宮)의 문 밖을 지키게 하면서 중사(中使)를 시켜 관장하도록 하였으며, 날마다 좌작(坐作)하고 격자(擊刺)하는 법을 가르치게 하고 잘하는 자는 주식(酒食)으로 상을 주었다. 12월 2일 갑술강백년(姜栢年)을 동부승지로 삼았다. 12월 3일 을해정언 이무가 인혐하면서, 의심하고 멀리하는 폐단을 대략 진달하고 이어 아뢰는 좌석에 빠진 것..

인조실록46권, 인조 23년 1645년 12월

12월 1일 기묘일식이 있었다. 김광욱(金光煜)을 도승지로, 김세렴을 호조 판서로 삼았다. 상이 종2품의 사람을 호조 판서에 더 의망하라고 명하므로 비국이 세렴을 의망한 바 드디어 발탁하여 제수한 것이다. 12월 3일 신사풍천(豊川) 업청강(業淸江) 가에 어떤 돌이 저절로 옮겨졌다고 관찰사가 계문하였다. 부호군 김집(金集)이 소를 올려 다시 소명을 사양하였는데, 답하였다."굳이 사양하지 말고 따뜻한 봄날을 기다려 올라와서 나의 뜻에 부응하라." 전 청단 찰방(靑丹察訪) 이중형(李重馨)이 전지에 응하여 상소하면서 영의정 김류의 죄상을 들었는데, 그 대략에,"김류는 성품이 본시 탐욕스럽고 강퍅하여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반정 이후부터는 공을 믿고 교만해져서 망령되이 잘난 체하며 제 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