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헌종실록3권 헌종2년 1836년 9월

싸라리리 2025. 5. 2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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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신사

임금이 친히 혼전(魂殿)에서 삭제(朔祭)와 주다례(晝茶禮)를 행하였다.

 

희정당(熙政堂)에서 소대(召對)하였다.

 

9월 2일 임오

희정당에서 소대하였다.

 

9월 3일 계미

희정당에서 소대하였다.

 

9월 4일 갑신

희정당에서 소대하였다.

 

9월 5일 을유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는데, 《대학(大學)》을 강(講)하였다.

 

임금이 희정당에 나아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引見)하였다. 대왕 대비가 이르기를, "금년 농사가 흉참(凶慘)하여 백성들의 의식(衣食)이 앞으로 함께 어렵게 될 터이니, 참으로 몹시 민망스럽다. 농사란 백성들의 근본인데, 농사가 이미 흉년이 들었으니, 백성들이 살 수 없게 되면 나아가 나라에서 그 해를 입게 될 것이다. 조용히 그 까닭을 생각해 보건대, 이는 내가 이 자리에 있으면서 꾀한 바가 없었기 때문에 하늘에서 재앙을 내려 경고하는 뜻을 보이는 것이다. 황송한 마음 외에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깊이 교차함을 느낀다."
하니, 좌의정                     홍석주(洪奭周)가 아뢰기를,
"현재 군신 상하가 부지런히 강구하여 실행할 바는 오직 백성들의 일을 급무로 삼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재력에서 나오는 비용을 만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일체 절감하는 것을 위주로 하여 힘써 견감(蠲減)하고 주휼(賙恤)하여 힘닿는 데까지 다하지 아니함이 없은 후에야 나라의 근본을 튼튼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대왕 대비가 양전(兩銓)에 하유(下諭)하기를,
"농사가 이러하니 백성들이 모두 사경(死境)에 이르게 될 터인데, 이런 가운데 수령을 각별히 가려서 차출(差出)하지 아니하면 이는 바로 내 손으로 모두를 죽이는 것이다. 매양 도정(都政) 때마다 비록 신칙하나, 오히려 예담(例談)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 주상께서는 나이 어리시고 부녀자는 정사를 알지 못하니, 하고픈 바를 마음껏 해보겠다고 여길 것이나, 조용한 때에 돌이켜 생각해 보면, 비록 자신이 한 일일지라도 응당 스스로도 부끄러울 것이며, 모르는 사이에 천지와 조종(祖宗)께 죄를 짓는 일인 것이다. 지금의 양전(兩銓)은 다른 사람들과는 자별(自別)한 사람들이니, 한 가지 정사라도 관계가 없다고 여겨 방심하거나 사정에 끌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 만일 죄를 지으면 후일 지하에서 선왕(先王)을 뵐 낯이 없을 뿐만 아니라, 경들의 선조인들 어떻게 대할 수 있겠는가?"
하였다.

 

정원용(鄭元容)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삼았다.

 

희정당에서 소대하였다.

 

9월 6일 병술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희정당에서 소대하였다.

 

9월 7일 정해

임금이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추도기(秋到記)016)                                             를 행하고, 강(講)에서 수위를 차지한 홍재중(洪在重)과, 제술(製述) 중 표(表)에서 수위를 차지한 이겸수(李謙洙)를 직부 전시(直赴殿試)하게 하였다.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희정당에서 소대하였다.

 

9월 8일 무자

희정당에서 입격한 유생들을 소견(召見)하였다.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9월 9일 기축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임금이 친히 혼전(魂殿)에서 주다례를 행하였다.

 

희정당에서 소대하였다.

 

9월 10일 경인

희정당에서 주강(晝講)하였다.

 

9월 11일 신묘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희정당에서 소대하였다.

 

9월 12일 임진

성균관에서 구일제(九日製)를 설행(設行)하였다.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희정당에서 소대하였다.

 

9월 13일 계사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희정당에서 입격(入格)한 유생(儒生)들을 소견하였다.

 

희정당에서 소대하였다.

 

박영원(朴永元)을 이조 참판으로, 조병귀(趙秉龜)를 성균관 대사성으로, 윤성대(尹聲大)를 경상도 관찰사로 삼았다.

 

9월 14일 갑오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희정당에서 소대하였다.

 

송치규(宋稚圭)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삼았다.

 

9월 15일 을미

월식(月蝕)이 있었다.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임금이 친히 혼전(魂殿)에서 주다례(晝茶禮)를 행하였다.

 

9월 16일 병신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9월 17일 정유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9월 18일 무술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9월 19일 기해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9월 20일 경자

희정당에서 조강(朝講)하였다.

 

9월 21일 신축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희정당에서 소대(召對)하였다.

 

9월 22일 임인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송면재(宋冕載)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삼았다.

 

희정당에서 소대하였다.

 

9월 23일 계묘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9월 24일 갑진

희정당에서 권강하였다.

 

9월 25일 을사

이광문(李光文)을 형조 판서로 삼았다.

 

9월 28일 무신

조병귀(趙秉龜)를 이조 참의로, 김이재(金履載)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홍희근(洪羲瑾)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이근중(李根中)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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