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일 무오주강(晝講)하였다. 홍기섭(洪耆燮)을 황해도 관찰사로 삼았으니, 특명으로 의망(擬望)에 넣은 것이었다. 이경재(李景在)를 형조 판서로 삼았다. 12월 2일 기미주강하였다. 12월 3일 경신조강(朝講)하였다. 석강(夕講)하였다. 12월 5일 임술약원(藥院)에서 희정당(熙政堂)에 입진(入診)하였다. 12월 6일 계해영의정 조인영(趙寅永)이 졸(卒)하였다. 하교(下敎)하기를,"정량(貞亮)047) 한 용자(容姿)와 신밀(愼密)한 규모(規模)로써 일에 임해서는 조심하며 두려워하고 집에 있어서는 검소하고 절약하였으며 나라를 걱정하고 집안 일을 잊음이 종시토록 간절하였으니, 내가 보고 듣는 바로는 이와 같은 대신이 있지 않았다. 더구나 문학의 유창(流暢)함과 재유(才猷)의 숙달(熟達)됨은 오늘날 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