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 기해
병조가 아뢰기를, "본조의 계사에 대해서, ‘아뢴 대로 하라. 후원(後苑)의 일을 끝낸 뒤에 아뢴 대로 시행하라. 다만 도방군(到防軍)을 사역시키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들을 부릴 것인가? 미리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후원의 역사(役事)는 외처(外處)와는 같지 않아서 비록 당번군(當番軍)이라도 사역을 시킬 수가 있는 것인데 하물며 이런 무리들이겠습니까. 신들이 말한 것은 오로지 외처를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조종조의 옛 제도를 조사해 보았더니, 이른바 정병(正兵)이라는 것은 바로 기병(騎兵)입니다. 번을 드는 처음에 기마(騎馬)와 복마(卜馬)를 점검해 보고 또 궁시(弓矢)와 환도(環刀)를 검열하여 탈이 있으면 죄를 다스렸는데, 그 법이 매우 엄격하였습니다. 지난 계미년에 본조의 판서로 있던 이이(李珥)가 계청하여 복마를 혁파하자, 군사(軍士)들은 좋아하였으나 논하는 자들은 법을 변개시켰다는 이유로 이이를 공격하였었는데, 난리 후에는 기마까지 아울러 혁파하였습니다. 신들이 감히 다시 설치하자고 청하지 못하는 것은 군사들이 한결같이 가난하여 책임지워 준비하게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말한다면, 기마병으로서 궁전(弓箭)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사역을 시켜서는 안 될 듯합니다. 이른바 보병(步兵)이라는 것은 곧 역군(役軍)입니다. 삼가 들으니, 국초에는 몸소 자신이 번을 섰는데, 의논하는 자들이, ‘보병이 모두 상번(上番)을 해버리면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드디어 가포(價布)를 상납(上納)하는 규정을 만들어서, 사람을 모집하여 대신 번을 서게 하니, 백성들이 매우 편리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은 실로 송씨(宋氏)가 역군을 사서 쓰던 법입니다. 외부 각처의 수리는 마땅히 가포로 계산을 하여 고용한 일꾼을 나누어 주어 일을 시켜야 할 따름입니다. 근래에 선상 가포(選上價布)를 오래도록 다시 복구하지를 않아서 각처의 서리(書吏)와 서원(書員)들이 모두 보병의 가포를 침식하니, 이것은 참으로 국가의 재정이 풍족할 때에도 없었던 일입니다. 군수(軍需)가 어떻게 고갈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역군(役軍)이 이 때문에 아주 부족합니다. 그런데도 이른바 감역관(監役官)이라는 자들은 대개가 새로 진출한 사람들이라서 눈앞의 판출하는 일만 이롭게 여기고 백성들의 고통과 원망은 생각지를 않습니다. 매양 위군(衛軍)을 차출해주기를 청하는데, 위군이 한번 역소(役所)에 가게 되면,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구해오라고 독책을 하여, 군사들은 반드시 활과 화살을 저당잡혀 팔아서 목면을 사서 납부하게 됩니다. 이른바 도방군이 침탈을 당한다는 것이 바로 그 한 가지입니다. 숙위(宿衛)를 하는 군사들은, 비록 매우 미천한 자들이기는 하나, 대내(大內)에 수직을 하는 것은 맡은 일이 가볍지 않은데, 내몰아 고생스럽게 사역을 시켜 먼저 그들의 민심을 잃는 것은 군정(軍政)에 있어서 바람직한 일이 아닐 듯합니다. 어저께 무릅쓰고 어리석은 소견을 진달하였습니다만, 지금 분부를 받들었으므로 부득불 곡절을 갖추어 아룁니다. 말이 매우 지리하게 되어 황공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황공해 하지 말라. 그렇다면 외처의 역사는 어떤 사람들을 부릴 것인가? 잘 헤아려 처리하라." 하였다.
"본조의 계사에 대해서, ‘아뢴 대로 하라. 후원(後苑)의 일을 끝낸 뒤에 아뢴 대로 시행하라. 다만 도방군(到防軍)을 사역시키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들을 부릴 것인가? 미리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후원의 역사(役事)는 외처(外處)와는 같지 않아서 비록 당번군(當番軍)이라도 사역을 시킬 수가 있는 것인데 하물며 이런 무리들이겠습니까. 신들이 말한 것은 오로지 외처를 가지고 말한 것입니다.
조종조의 옛 제도를 조사해 보았더니, 이른바 정병(正兵)이라는 것은 바로 기병(騎兵)입니다. 번을 드는 처음에 기마(騎馬)와 복마(卜馬)를 점검해 보고 또 궁시(弓矢)와 환도(環刀)를 검열하여 탈이 있으면 죄를 다스렸는데, 그 법이 매우 엄격하였습니다. 지난 계미년에 본조의 판서로 있던 이이(李珥)가 계청하여 복마를 혁파하자, 군사(軍士)들은 좋아하였으나 논하는 자들은 법을 변개시켰다는 이유로 이이를 공격하였었는데, 난리 후에는 기마까지 아울러 혁파하였습니다. 신들이 감히 다시 설치하자고 청하지 못하는 것은 군사들이 한결같이 가난하여 책임지워 준비하게 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말한다면, 기마병으로서 궁전(弓箭)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사역을 시켜서는 안 될 듯합니다.
이른바 보병(步兵)이라는 것은 곧 역군(役軍)입니다. 삼가 들으니, 국초에는 몸소 자신이 번을 섰는데, 의논하는 자들이, ‘보병이 모두 상번(上番)을 해버리면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드디어 가포(價布)를 상납(上納)하는 규정을 만들어서, 사람을 모집하여 대신 번을 서게 하니, 백성들이 매우 편리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은 실로 송씨(宋氏)가 역군을 사서 쓰던 법입니다. 외부 각처의 수리는 마땅히 가포로 계산을 하여 고용한 일꾼을 나누어 주어 일을 시켜야 할 따름입니다.
근래에 선상 가포(選上價布)를 오래도록 다시 복구하지를 않아서 각처의 서리(書吏)와 서원(書員)들이 모두 보병의 가포를 침식하니, 이것은 참으로 국가의 재정이 풍족할 때에도 없었던 일입니다. 군수(軍需)가 어떻게 고갈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역군(役軍)이 이 때문에 아주 부족합니다. 그런데도 이른바 감역관(監役官)이라는 자들은 대개가 새로 진출한 사람들이라서 눈앞의 판출하는 일만 이롭게 여기고 백성들의 고통과 원망은 생각지를 않습니다. 매양 위군(衛軍)을 차출해주기를 청하는데, 위군이 한번 역소(役所)에 가게 되면,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구해오라고 독책을 하여, 군사들은 반드시 활과 화살을 저당잡혀 팔아서 목면을 사서 납부하게 됩니다. 이른바 도방군이 침탈을 당한다는 것이 바로 그 한 가지입니다.
숙위(宿衛)를 하는 군사들은, 비록 매우 미천한 자들이기는 하나, 대내(大內)에 수직을 하는 것은 맡은 일이 가볍지 않은데, 내몰아 고생스럽게 사역을 시켜 먼저 그들의 민심을 잃는 것은 군정(軍政)에 있어서 바람직한 일이 아닐 듯합니다. 어저께 무릅쓰고 어리석은 소견을 진달하였습니다만, 지금 분부를 받들었으므로 부득불 곡절을 갖추어 아룁니다. 말이 매우 지리하게 되어 황공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황공해 하지 말라. 그렇다면 외처의 역사는 어떤 사람들을 부릴 것인가? 잘 헤아려 처리하라."
하였다.
양사가 합사하여, 존호 올리는 일을 계청하였다.
양사가 합사하여, 이운상(李雲祥)의 일을 아뢰었다.
헌부가 윤영현(尹英賢)과 박엽(朴燁)의 일을 아뢰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백관이 존호 올리는 일을 계청하니, 답하기를, "불행한 변고를 처리하고 전례없는 존호를 받는 일을 나는 차마 못하겠다.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불행한 변고를 처리하고 전례없는 존호를 받는 일을 나는 차마 못하겠다. 번거롭게 아뢰지 말라."
하였다.
백관이 존호 올리는 일을 두 번째 아뢰니, 답하기를, "존호 올리는 일을 어찌 한 번 올리고 두 번 올리고 한단 말인가. 모두가 남들이 웃고 비난할 일이다. 더구나 역적을 다스린 하찮은 일로 헛된 명예를 과장하여 이토록 굳이 계청하니, 내가 참으로 민망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다. 나의 마음을 헤아려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존호 올리는 일을 어찌 한 번 올리고 두 번 올리고 한단 말인가. 모두가 남들이 웃고 비난할 일이다. 더구나 역적을 다스린 하찮은 일로 헛된 명예를 과장하여 이토록 굳이 계청하니, 내가 참으로 민망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다. 나의 마음을 헤아려 굳이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옥당이 차자를 올려 휘호 올리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은 이미 하유하였다." 하였다.
"나의 뜻은 이미 하유하였다."
하였다.
종실이 존호 올리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따를 수 없는 일이다. 번거롭게 계청하지 말라." 하였다.
"따를 수 없는 일이다. 번거롭게 계청하지 말라."
하였다.
시강원 보덕 배대유(裵大維) 등이 상소하여 존호 올리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나의 뜻은 대신들에게 이미 하유하였다." 하였다.
"나의 뜻은 대신들에게 이미 하유하였다."
하였다.
백관이 존호 올리기를 세 번째 아뢰니, 답하기를, "이는 꼭 올려야 하는 존호가 아니다. 그러나 여러 백관들이 직무를 폐기하고 날마다 모두 조정에 나오니, 이에 내가 뜻을 굽히고 힘써 따르도록 하겠다." 하였다.
"이는 꼭 올려야 하는 존호가 아니다. 그러나 여러 백관들이 직무를 폐기하고 날마다 모두 조정에 나오니, 이에 내가 뜻을 굽히고 힘써 따르도록 하겠다."
하였다.
종실이 존호 올리기를 두 번째 아뢰니, 답하기를,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못하여 이미 애써 따르기로 하였다." 하였다.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못하여 이미 애써 따르기로 하였다."
하였다.
양사가 합사하여 존호 올리기를 두 번째 아뢰니, 답하기를,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못하여 이미 애써 따르기로 하였다." 하였다.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못하여 이미 애써 따르기로 하였다."
하였다.
영의정 기자헌이 사직하는 차자를 올리니, 답하기를, "경이 올린 차자의 사연을 살펴보고 경의 간절한 마음을 모두 잘 알았다. 다만 국가가 불행하여 역적의 옥사가 누차 일어나 내가 기대어 의지하는 바는 대신인데, 경이 매양 역적의 옥사를 추국하는 일을 당하여 꺼리며 피하려는 일이 없지 않으니, 나는 매우 마음이 아프다. 옛사람도 또한 큰 의리로 친족의 인연을 끊은 자가 있었다. 경이 순경(順慶)에 대해서 무슨 피혐할 만한 일이 있는가. 다시는 사직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역적을 토벌하여 왕실을 안정시키고 나의 마음을 위로하라." 하였다.
"경이 올린 차자의 사연을 살펴보고 경의 간절한 마음을 모두 잘 알았다. 다만 국가가 불행하여 역적의 옥사가 누차 일어나 내가 기대어 의지하는 바는 대신인데, 경이 매양 역적의 옥사를 추국하는 일을 당하여 꺼리며 피하려는 일이 없지 않으니, 나는 매우 마음이 아프다. 옛사람도 또한 큰 의리로 친족의 인연을 끊은 자가 있었다. 경이 순경(順慶)에 대해서 무슨 피혐할 만한 일이 있는가. 다시는 사직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역적을 토벌하여 왕실을 안정시키고 나의 마음을 위로하라."
하였다.
8월 2일 경자
양사가 합사하여 이운상의 일을 아뢰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헌부가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전교하였다. "세조(世祖)께서는 정난(靖難)을 한 일로 몸소 남교(南郊)에 제사를 올린 뒤 존호를 받으셨다. 이미 조종조의 고사가 있으니, 《실록(實錄)》을 상고하여 한결같이 세조조의 고사대로 잘 살펴 거행할 일을 예관(禮官)에게 말하라."
"세조(世祖)께서는 정난(靖難)을 한 일로 몸소 남교(南郊)에 제사를 올린 뒤 존호를 받으셨다. 이미 조종조의 고사가 있으니, 《실록(實錄)》을 상고하여 한결같이 세조조의 고사대로 잘 살펴 거행할 일을 예관(禮官)에게 말하라."
8월 3일 신축
전교하기를, "내습의(內習儀)를 할 때에 각항의 하례(賀禮)의 습의(習儀)를 모두 상세히 익힐 일을 예조에 말하라." 하고, 또 이르기를, "궁궐을 수리하는 데에 드는 잡물 가운데 만화석(滿花席), 채화석(彩花席), 별문석(別紋席)이 부족하다고 한다. 오는 대례(大禮) 때에 삼궁(三宮)의 아무아무 전(殿)과 각(閣)을 수리하는 데에 사용할 지지(紙地)와 각종 돗자리들을 속히 준비하여 대기시키라고 해조에 말하라." 하였다.
"내습의(內習儀)를 할 때에 각항의 하례(賀禮)의 습의(習儀)를 모두 상세히 익힐 일을 예조에 말하라."
하고, 또 이르기를,
"궁궐을 수리하는 데에 드는 잡물 가운데 만화석(滿花席), 채화석(彩花席), 별문석(別紋席)이 부족하다고 한다. 오는 대례(大禮) 때에 삼궁(三宮)의 아무아무 전(殿)과 각(閣)을 수리하는 데에 사용할 지지(紙地)와 각종 돗자리들을 속히 준비하여 대기시키라고 해조에 말하라."
하였다.
호조가 아뢰기를, "평안도의 세미(稅米)와 운반해 올 미태(米太)는, 당초 본조가 상황이 매우 급하여 이 부득이한 거조가 있게 된 것인데, 해를 넘겨가며 독촉을 하였는데도 아직 올려보내지 않은 것이 1만여 석이나 됩니다. 지금 추등(秋等)의 녹봉은 겨우 나누어줄 수 있었습니다만, 세 창고에는 남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앞으로의 경비를 잇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훈련 도감의 계사에, ‘7월의 삼수군(三手軍) 삭료(朔料)를 호조로 하여금 조치하여 지급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온갖 생각을 다 해보아도 조치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평안도 관찰사 김신국(金藎國)이 또한 조정이 곤궁한 상황을 알고는 처음부터 자못 독촉하는 뜻이 있었는데도 지금까지 거의 절반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이는 필시 차사원 및 각관이 때맞춰 수송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며, 혹은 뱃사람이 배에 실은 뒤에 중간에서 지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니, 모두 참으로 가증스럽습니다. 당해 차사원과 발송하지 않은 각관을 모두 추고하소서. 더욱 심한 각관에 대해서는 본도로 하여금 계문하여 파출하게 하소서. 그리고 바람이 높아지기 전에 밤낮으로 운송하여 상납을 완료하라고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수리하는 일이 끝나가니, 관서(關西)의 미태(米太)는 이미 배에 실은 것 이외에는 운송해 올리지 말게 하고, 그 대신 다른 도의 미태를 운송해다가 쓰도록 하라." 하였다.
"평안도의 세미(稅米)와 운반해 올 미태(米太)는, 당초 본조가 상황이 매우 급하여 이 부득이한 거조가 있게 된 것인데, 해를 넘겨가며 독촉을 하였는데도 아직 올려보내지 않은 것이 1만여 석이나 됩니다. 지금 추등(秋等)의 녹봉은 겨우 나누어줄 수 있었습니다만, 세 창고에는 남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앞으로의 경비를 잇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훈련 도감의 계사에, ‘7월의 삼수군(三手軍) 삭료(朔料)를 호조로 하여금 조치하여 지급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온갖 생각을 다 해보아도 조치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평안도 관찰사 김신국(金藎國)이 또한 조정이 곤궁한 상황을 알고는 처음부터 자못 독촉하는 뜻이 있었는데도 지금까지 거의 절반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이는 필시 차사원 및 각관이 때맞춰 수송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며, 혹은 뱃사람이 배에 실은 뒤에 중간에서 지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니, 모두 참으로 가증스럽습니다. 당해 차사원과 발송하지 않은 각관을 모두 추고하소서. 더욱 심한 각관에 대해서는 본도로 하여금 계문하여 파출하게 하소서. 그리고 바람이 높아지기 전에 밤낮으로 운송하여 상납을 완료하라고 하유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수리하는 일이 끝나가니, 관서(關西)의 미태(米太)는 이미 배에 실은 것 이외에는 운송해 올리지 말게 하고, 그 대신 다른 도의 미태를 운송해다가 쓰도록 하라."
하였다.
양사가 합사하여 이운상의 일을 아뢰니,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을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을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헌부가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니,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을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을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8월 4일 임인
이비(吏批)가 아뢰기를, "신 유몽인(柳夢寅)이 이조 판서를 천망하는 일로 영의정 기자헌에게 다시 묻고 추천하여 아뢰게 하였더니, 아뢰기를, ‘신은 병든 몸으로 겨우겨우 직무를 보고 있는지라 정신이 아주 혼미하고, 더구나 다른 대신이 있으니, 신이 홀로 결정하여 천거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번에 신이 복상한 단자(單子), 좌상이 복상한 단자 및 그밖에 이미 이조 판서를 거친 자이거나 거치지 않은 자 가운데서 합당한 자를 가려 뽑을 일로 이미 진달하였습니다. 지금 혼자서 천거하기는 어렵습니다. 꼭 해야 한다면 좌상에게 물어서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다시 물어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신 유몽인(柳夢寅)이 이조 판서를 천망하는 일로 영의정 기자헌에게 다시 묻고 추천하여 아뢰게 하였더니, 아뢰기를, ‘신은 병든 몸으로 겨우겨우 직무를 보고 있는지라 정신이 아주 혼미하고, 더구나 다른 대신이 있으니, 신이 홀로 결정하여 천거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번에 신이 복상한 단자(單子), 좌상이 복상한 단자 및 그밖에 이미 이조 판서를 거친 자이거나 거치지 않은 자 가운데서 합당한 자를 가려 뽑을 일로 이미 진달하였습니다. 지금 혼자서 천거하기는 어렵습니다. 꼭 해야 한다면 좌상에게 물어서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다시 물어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각전(各殿)의 목제(木梯) 및 목두(木頭)를 당초에 다발로 묶어서 빙 둘러 들여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을 둘러 놓은 곳이 전정(殿庭)의 중앙에 있기도 하고 각 아문의 담장을 쌓는 곳에 있기도 해서 거두어 내고 깨끗이 청소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많은 목제들을 옮겨다 놓을 곳이 없습니다. 지금 만약 팔게 하여 수레값[車價]의 비용에 보태면 참으로 편리하고 합당하겠는데, 지난번에, 공역을 마친 뒤에 목제와 목단(木端)을 모두 기록하여 아뢰어야 한다는 뜻으로 계달하였기 때문에 경솔히 먼저 팔게 할 수가 없습니다.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목제와 목두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먼저 살펴 아뢴 뒤에 처리하라." 하였다.
"각전(各殿)의 목제(木梯) 및 목두(木頭)를 당초에 다발로 묶어서 빙 둘러 들여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들을 둘러 놓은 곳이 전정(殿庭)의 중앙에 있기도 하고 각 아문의 담장을 쌓는 곳에 있기도 해서 거두어 내고 깨끗이 청소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많은 목제들을 옮겨다 놓을 곳이 없습니다. 지금 만약 팔게 하여 수레값[車價]의 비용에 보태면 참으로 편리하고 합당하겠는데, 지난번에, 공역을 마친 뒤에 목제와 목단(木端)을 모두 기록하여 아뢰어야 한다는 뜻으로 계달하였기 때문에 경솔히 먼저 팔게 할 수가 없습니다.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목제와 목두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먼저 살펴 아뢴 뒤에 처리하라."
하였다.
병조가 아뢰기를, "본조가 아뢴 사연 안에 있는, 번을 서기 위해 올라온 기병(騎兵) 도방군(到防軍)을 정역(定役)하지 말 일에 대하여, 전지에, ‘황공하게 여기지 말라. 그렇다면 외처의 사역에 어떤 사람들을 부릴 것인가? 잘 헤아려 처리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각사의 수리하는 곳에는 가포(價布)를 제급(題給)하고, 도성 밖의 중대한 사역에는 혹 당번 수군(當番水軍)을 지급하거나 혹 연호군(烟戶軍)을 뽑아서 일을 시켜야 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본조가 아뢴 사연 안에 있는, 번을 서기 위해 올라온 기병(騎兵) 도방군(到防軍)을 정역(定役)하지 말 일에 대하여, 전지에, ‘황공하게 여기지 말라. 그렇다면 외처의 사역에 어떤 사람들을 부릴 것인가? 잘 헤아려 처리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각사의 수리하는 곳에는 가포(價布)를 제급(題給)하고, 도성 밖의 중대한 사역에는 혹 당번 수군(當番水軍)을 지급하거나 혹 연호군(烟戶軍)을 뽑아서 일을 시켜야 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영상의 요통이 아직 다 낫지 않은 듯한데, 10일 알성(謁聖)하는 예식에 들어와 참여할 수 있겠는가? 영상에게 물어서 날짜를 물리거나 할 일을 예조에 말하라."
"영상의 요통이 아직 다 낫지 않은 듯한데, 10일 알성(謁聖)하는 예식에 들어와 참여할 수 있겠는가? 영상에게 물어서 날짜를 물리거나 할 일을 예조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김제남(金悌男)과 역적 최기(崔沂) 등을 추형하는 일에 대해서, 사당에 고하고 교서를 반포하는 일을 전례에 의거하여 승전을 받들라. 다만, 역적 최기 등의 일은, 순경(順慶)과 유석(有石)이 적들의 입에서 거론되었으니, 그저 예사로운 일과는 다르다. 국문하여 처치하기를 다시 기다린 뒤에 사당에 고하는 등의 일을 차례대로 거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해조로 하여금 살펴 거행하게 하라."
"김제남(金悌男)과 역적 최기(崔沂) 등을 추형하는 일에 대해서, 사당에 고하고 교서를 반포하는 일을 전례에 의거하여 승전을 받들라. 다만, 역적 최기 등의 일은, 순경(順慶)과 유석(有石)이 적들의 입에서 거론되었으니, 그저 예사로운 일과는 다르다. 국문하여 처치하기를 다시 기다린 뒤에 사당에 고하는 등의 일을 차례대로 거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해조로 하여금 살펴 거행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동궁(東宮)의 문호(門號)를 경양(景陽)으로 하는 것은 좋지 않으니 다른 문호를 써서 아뢰고, 창경궁(昌慶宮)의 새로 지은 별당(別堂)의 당호(堂號) 및 문호를 아울러 써서 아뢰라고 대제학에게 말하라."
"동궁(東宮)의 문호(門號)를 경양(景陽)으로 하는 것은 좋지 않으니 다른 문호를 써서 아뢰고, 창경궁(昌慶宮)의 새로 지은 별당(別堂)의 당호(堂號) 및 문호를 아울러 써서 아뢰라고 대제학에게 말하라."
서적 교인 도감(書籍校印都監)이 아뢰기를, "예조의 계사에, ‘이번에 요동 도사(遼東都司)가 구청(求請)한 《통감(通鑑)》과 《사략(史略)》 각 한 질씩을 교서관으로 하여금 동지사가 들어가는 편에 부쳐보내도록 하소서.’라고 하였는데, 계하하셨습니다. 그런데 도감에는 난리를 겪은 뒤로부터 꼴이 말이 아니어서 평소 서적이 거의 없고, 《통감》과 《사기》 등의 책은 남아 있는 것이 한 권도 없으며, 달리 나올 곳도 없습니다. 어찌합니까? 황공하게도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통감》과 《사기》 등은 우리 나라의 서적이 아니다. 난리를 겪은 뒤로 남은 것이 없다는 뜻으로 사실대로 회답하도록 하되, 만약 보내지 않을 수 없다면 아무 관사에 저장해 둔 책을 요량하여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예조의 계사에, ‘이번에 요동 도사(遼東都司)가 구청(求請)한 《통감(通鑑)》과 《사략(史略)》 각 한 질씩을 교서관으로 하여금 동지사가 들어가는 편에 부쳐보내도록 하소서.’라고 하였는데, 계하하셨습니다. 그런데 도감에는 난리를 겪은 뒤로부터 꼴이 말이 아니어서 평소 서적이 거의 없고, 《통감》과 《사기》 등의 책은 남아 있는 것이 한 권도 없으며, 달리 나올 곳도 없습니다. 어찌합니까? 황공하게도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통감》과 《사기》 등은 우리 나라의 서적이 아니다. 난리를 겪은 뒤로 남은 것이 없다는 뜻으로 사실대로 회답하도록 하되, 만약 보내지 않을 수 없다면 아무 관사에 저장해 둔 책을 요량하여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이비가 아뢰기를, "다시 물어서 아뢸 일로 전교하셨습니다. 영의정 기자헌에게 물었더니, ‘신들의 두 번 아룀에서 이미 모두 진달드렸는데, 다시 하문을 받들었기에 신이 복상했던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아서 아룁니다. 좌상이 복상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혹 말을 전해듣기는 하였습니다만,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오직 상께서 참작하여 처리하시기에 달렸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판서를 뒷 정사에서 차출하도록 하라." 하고, 정사를 그대로 시행하였다.
"다시 물어서 아뢸 일로 전교하셨습니다. 영의정 기자헌에게 물었더니, ‘신들의 두 번 아룀에서 이미 모두 진달드렸는데, 다시 하문을 받들었기에 신이 복상했던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아서 아룁니다. 좌상이 복상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혹 말을 전해듣기는 하였습니다만,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오직 상께서 참작하여 처리하시기에 달렸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판서를 뒷 정사에서 차출하도록 하라."
하고, 정사를 그대로 시행하였다.
빈청이 모여 의논하여, 선종 대왕(宣宗大王)의 추상 존호를 계통 광헌 응도 융조(啓統光憲凝道隆祚)라고 하고, 묘호를 선조(宣祖)라 하고, 의인 왕후(懿仁王后) 추상 존호의 망(望)에 현숙(顯淑)과 장숙(莊淑)과 명덕(明德)이라 하고, 공성 왕후(恭聖王后) 추상 존호의 망에 현휘(顯徽)와 정순(貞順)과 명순(明順)이라고 하였다. 단자를 입계하였다.
양사가 합계로 이운상의 일을 아뢰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헌부가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8월 5일 계묘
양사가 합계로 이운상의 일을 아뢰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헌부가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영남(嶺南)에서 올라오는 주홍(朱紅)이 매우 적다고 한다. 대전(大殿)의 연(輦)은 형세상 개조(改造)하기가 어렵겠다. 거둥할 곳이 있다 하더라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연[時用輦]은 경솔하게 먼저 개조하지 말고 주홍이 올라오기를 기다려서 개조할 일로 도감에 말하라."
"영남(嶺南)에서 올라오는 주홍(朱紅)이 매우 적다고 한다. 대전(大殿)의 연(輦)은 형세상 개조(改造)하기가 어렵겠다. 거둥할 곳이 있다 하더라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연[時用輦]은 경솔하게 먼저 개조하지 말고 주홍이 올라오기를 기다려서 개조할 일로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추숭하는 일을 정해진 날짜에 시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하문한 지가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아직 회계를 하지 않았다. 당일 안으로 속히 자세히 살펴서 아뢸 일을 본도감에 말하라."
"추숭하는 일을 정해진 날짜에 시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하문한 지가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아직 회계를 하지 않았다. 당일 안으로 속히 자세히 살펴서 아뢸 일을 본도감에 말하라."
추숭 도감이 아뢰기를, "도감의 계사에 대한 전지에, ‘두석(豆錫)이 비록 아름답다고는 하나 이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양전(兩殿)의 책보(冊寶) 호갑(護匣)을 두석으로 만드는 것도 또한 안 될 일인데, 더구나 추숭을 하는 때에 어찌 두석을 쓸 수가 있겠는가. 옛 전례에 어긋나는 듯하다. 대련(大輦)은 일을 멈추고 속히 호갑에다 은실을 박되[入絲] 공역이 미치지 못한다면 날짜를 물린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다시 살펴서 아뢰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입사 장수(入絲匠手)는 한 사람밖에 없는데, 일이 번잡하게 많기는 이전에 아뢴 바와 같습니다. 신들이 갑진년과 임자년의 의궤(儀軌)를 가져다 고찰해 보았더니 호갑은 모두 두석 장식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단지 날짜에 미치지 못할까만 염려를 하고 옛 전례를 고치기가 어렵다는 것은 살피지 못한 채 경솔하게 계품하여, 성상으로 하여금 번거롭게 분부를 하시게까지 하였으니 대단히 죄송합니다. 추숭하는 책보의 호갑은 옛 전례에 의거하여 마땅히 입사 장식(入絲粧飾)을 사용해야 하겠고, 양전의 책보 호갑의 장식도 입사 장식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다만 입사 장인(入絲匠人)이 서울에는 전혀 없어서 외방의 장인들을 지금 바야흐로 수소문하여 데려오고 있습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양전의 호갑이 이 얼마나 서둘러야 할 일인가. 입사 장인을 많이 데려와서 추숭 호갑의 일을 속히 끝마치도록 하라." 하였다.
"도감의 계사에 대한 전지에, ‘두석(豆錫)이 비록 아름답다고는 하나 이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양전(兩殿)의 책보(冊寶) 호갑(護匣)을 두석으로 만드는 것도 또한 안 될 일인데, 더구나 추숭을 하는 때에 어찌 두석을 쓸 수가 있겠는가. 옛 전례에 어긋나는 듯하다. 대련(大輦)은 일을 멈추고 속히 호갑에다 은실을 박되[入絲] 공역이 미치지 못한다면 날짜를 물린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다시 살펴서 아뢰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입사 장수(入絲匠手)는 한 사람밖에 없는데, 일이 번잡하게 많기는 이전에 아뢴 바와 같습니다. 신들이 갑진년과 임자년의 의궤(儀軌)를 가져다 고찰해 보았더니 호갑은 모두 두석 장식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단지 날짜에 미치지 못할까만 염려를 하고 옛 전례를 고치기가 어렵다는 것은 살피지 못한 채 경솔하게 계품하여, 성상으로 하여금 번거롭게 분부를 하시게까지 하였으니 대단히 죄송합니다. 추숭하는 책보의 호갑은 옛 전례에 의거하여 마땅히 입사 장식(入絲粧飾)을 사용해야 하겠고, 양전의 책보 호갑의 장식도 입사 장식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다만 입사 장인(入絲匠人)이 서울에는 전혀 없어서 외방의 장인들을 지금 바야흐로 수소문하여 데려오고 있습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양전의 호갑이 이 얼마나 서둘러야 할 일인가. 입사 장인을 많이 데려와서 추숭 호갑의 일을 속히 끝마치도록 하라."
하였다.
호조가 아뢰기를, "비망기에, ‘원주(原州)에서 마련하여 올려보낸 재목(材木)과 장연목(長椽木)을 모두 팔았다고 하는데, 이렇게 영선(營繕)하는 일이 많은 때에 계품도 하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팔았으니, 매우 그르다. 색낭청은 추고하고, 나무를 판 곡절을 하나하나 살펴 아뢰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을묘년에 본조에서 소금 2백 16석을 내려 보내어 원주로 하여금 토목(吐木)을 무역해 바꾸어서 올려 보내게 하였습니다. 금년 7월 12일에 원주 목사가 첩보(牒報)하기를, ‘전에 내려보낸 소금 2백 석으로 연목(椽木) 1천 4백 50거리(巨里), 판자(板子) 6백 10엽(葉), 재목(材木) 24조(條)를 사서 색리(色吏)더러 뗏목을 띄워 올려보내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중에 판자 2백 55엽은 여주(驪州)에 있고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신들이 산원(算員)으로 하여금 가서 살피게 하였더니, 이른바 연목이라는 것이 휘어지고 가늘어서 공가(公家)의 용도에 합당하지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툇자를 놓아 보내어 다시 준비하게 하려 하였으나, 오고 가는 데에 폐단이 있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해당 관사 및 해당 도감에서는 임시 가옥이나 기타 잡다한 여러 처소를 수리하는 데에 가져다 쓰기를 다투어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들은, 해당 관사에 나누어 지급하여 헛되이 흩어 써버리기보다는 차라리 팔아서 값을 받아 큰 공사의 한 몫을 보충하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조금 품질이 좋은 판자 2백 엽 및 아직 올라오지 않은 판자 2백 50엽을 선공감(繕工監)에 지급하고, 그 나머지는 시목전(柴木前) 감고(監考)로 하여금 시장 가격대로 팔게 하여 목면(木綿) 3백 8필을 받았습니다. 공가의 용도에 합당하지가 않은데다가 사소한 물건들이라 계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황공하여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위에서도 그것이 하찮은 것인 줄은 알고 있다. 다만 궁궐을 중건할 때에 재목과 기와가 부족하지 않았는데, 대간의 논계로 인하여 즉시 영선을 정지하였다. 그 쓰고 남은 재목과 기와가 창경궁(昌慶宮) 외전(外殿)의 각 아문을 짓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그랬는데 이렇게 팔아서 헛되이 흩어 써버려서 지금에 와서 재목을 구해야 하는 폐단이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임금의 잘못일 뿐만이 아니다. 항상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 영선을 할 곳은 매우 많은데 나무 값도 또한 적으니 지금 이후로는 알아서 잘 처리하도록 하라." 하였다.
"비망기에, ‘원주(原州)에서 마련하여 올려보낸 재목(材木)과 장연목(長椽木)을 모두 팔았다고 하는데, 이렇게 영선(營繕)하는 일이 많은 때에 계품도 하지 아니하고 마음대로 팔았으니, 매우 그르다. 색낭청은 추고하고, 나무를 판 곡절을 하나하나 살펴 아뢰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을묘년에 본조에서 소금 2백 16석을 내려 보내어 원주로 하여금 토목(吐木)을 무역해 바꾸어서 올려 보내게 하였습니다. 금년 7월 12일에 원주 목사가 첩보(牒報)하기를, ‘전에 내려보낸 소금 2백 석으로 연목(椽木) 1천 4백 50거리(巨里), 판자(板子) 6백 10엽(葉), 재목(材木) 24조(條)를 사서 색리(色吏)더러 뗏목을 띄워 올려보내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중에 판자 2백 55엽은 여주(驪州)에 있고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신들이 산원(算員)으로 하여금 가서 살피게 하였더니, 이른바 연목이라는 것이 휘어지고 가늘어서 공가(公家)의 용도에 합당하지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툇자를 놓아 보내어 다시 준비하게 하려 하였으나, 오고 가는 데에 폐단이 있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해당 관사 및 해당 도감에서는 임시 가옥이나 기타 잡다한 여러 처소를 수리하는 데에 가져다 쓰기를 다투어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들은, 해당 관사에 나누어 지급하여 헛되이 흩어 써버리기보다는 차라리 팔아서 값을 받아 큰 공사의 한 몫을 보충하게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조금 품질이 좋은 판자 2백 엽 및 아직 올라오지 않은 판자 2백 50엽을 선공감(繕工監)에 지급하고, 그 나머지는 시목전(柴木前) 감고(監考)로 하여금 시장 가격대로 팔게 하여 목면(木綿) 3백 8필을 받았습니다. 공가의 용도에 합당하지가 않은데다가 사소한 물건들이라 계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황공하여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위에서도 그것이 하찮은 것인 줄은 알고 있다. 다만 궁궐을 중건할 때에 재목과 기와가 부족하지 않았는데, 대간의 논계로 인하여 즉시 영선을 정지하였다. 그 쓰고 남은 재목과 기와가 창경궁(昌慶宮) 외전(外殿)의 각 아문을 짓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그랬는데 이렇게 팔아서 헛되이 흩어 써버려서 지금에 와서 재목을 구해야 하는 폐단이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임금의 잘못일 뿐만이 아니다. 항상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 영선을 할 곳은 매우 많은데 나무 값도 또한 적으니 지금 이후로는 알아서 잘 처리하도록 하라."
하였다.
존숭 도감이 아뢰기를, "학관(學官) 양만세(楊萬世)는 재주가 많고 조각(雕刻)이나 입사(入絲) 등의 일을 매우 정교하게 합니다. 이라는 칭호를 주어 공장(工匠)들을 지도하게 하고, 흠경각의 전례를 따라 군직(軍職)에 붙여서 의관을 갖추고 항상 사진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종실 금계군(錦溪君) 이인수(李仁壽)는 여러 가지 기예가 아주 정밀하다고 하니, 또한 매일 도감에 사진하게 하여,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등의 일을 마음을 다해 지휘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학관(學官) 양만세(楊萬世)는 재주가 많고 조각(雕刻)이나 입사(入絲) 등의 일을 매우 정교하게 합니다. 이라는 칭호를 주어 공장(工匠)들을 지도하게 하고, 흠경각의 전례를 따라 군직(軍職)에 붙여서 의관을 갖추고 항상 사진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종실 금계군(錦溪君) 이인수(李仁壽)는 여러 가지 기예가 아주 정밀하다고 하니, 또한 매일 도감에 사진하게 하여,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 등의 일을 마음을 다해 지휘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8월 6일 갑진
예조가 아뢰기를, "비망기에, ‘세조께서 정난(靖亂)을 한 일로 몸소 남교(南郊)에 제사하고 존호를 받으셨다. 이미 조종조의 고사가 있으니, 《실록》을 상세히 상고하여 한결같이 세조 때의 고사대로 잘 살펴 거행할 일을 예관에게 말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실록》을 상고하는 일은 춘추관이 마땅히 거행해야 할 일인데, 길일(吉日)을 따져 보니 가까이는 길일이 없고 8일과 12일이 평길(平吉)이기 때문에 이 두 날짜 가운데 공고(公故)가 없는 날에 사고(史庫)를 열겠다고 합니다. 본조는 《실록》을 상고해 내기를 기다린 뒤에, 응당 시행할 절목을 회계할 것인데, 가까이는 길일이 없기 때문에 《실록》을 상고하는 일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이 일은 분부를 내린 지가 5, 6일이 되었는데 이제야 회계를 하니, 매우 늦은 것이다. 모든 예를 행한 처소 및 전교와 계사를 8일에 하나하나 자세히 상고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비망기에, ‘세조께서 정난(靖亂)을 한 일로 몸소 남교(南郊)에 제사하고 존호를 받으셨다. 이미 조종조의 고사가 있으니, 《실록》을 상세히 상고하여 한결같이 세조 때의 고사대로 잘 살펴 거행할 일을 예관에게 말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실록》을 상고하는 일은 춘추관이 마땅히 거행해야 할 일인데, 길일(吉日)을 따져 보니 가까이는 길일이 없고 8일과 12일이 평길(平吉)이기 때문에 이 두 날짜 가운데 공고(公故)가 없는 날에 사고(史庫)를 열겠다고 합니다. 본조는 《실록》을 상고해 내기를 기다린 뒤에, 응당 시행할 절목을 회계할 것인데, 가까이는 길일이 없기 때문에 《실록》을 상고하는 일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이 일은 분부를 내린 지가 5, 6일이 되었는데 이제야 회계를 하니, 매우 늦은 것이다. 모든 예를 행한 처소 및 전교와 계사를 8일에 하나하나 자세히 상고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양사가 합사하여 이운상의 일을 아뢰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헌부가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간원이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당초에 ‘심눌(沈訥)을 알성시에 응시하게 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라.’고 청한 양사의 합계에 대하여 상께서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비답을 내렸었는데, 지금 이 비망기에, ‘심눌을 알성시에 응시하게 하고 전시에 직부하지 말 일을 해조에 말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이 뜻을 아울러 성상소(城上所)에 말해야 할지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당초에 ‘심눌(沈訥)을 알성시에 응시하게 하라는 명을 도로 거두라.’고 청한 양사의 합계에 대하여 상께서 천천히 결정하겠다고 비답을 내렸었는데, 지금 이 비망기에, ‘심눌을 알성시에 응시하게 하고 전시에 직부하지 말 일을 해조에 말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이 뜻을 아울러 성상소(城上所)에 말해야 할지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8월 7일 을사
‘성천 부사(成川府使) 박안현(朴顔賢)이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를 살펴 아뢰라.’고 한 데에 따른 평안 감사의 서장을 가지고 전교하기를, "이 독(毒)을 친 비자(婢子)를 경옥(京獄)으로 잡아다가 엄하게 형신하여 실정을 알아내서 율문대로 죄를 정하라." 하였다.
"이 독(毒)을 친 비자(婢子)를 경옥(京獄)으로 잡아다가 엄하게 형신하여 실정을 알아내서 율문대로 죄를 정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알성을 할 때에 단지 임금이 탄 수레 주변을 나다니는 사람만 엄금하고 구경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금지하지 말고 좌우에 조용히 나누어 앉아서 돌아다니지 말고 구경하게 할 일을 병조와 한성부에 말하라."
"알성을 할 때에 단지 임금이 탄 수레 주변을 나다니는 사람만 엄금하고 구경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금지하지 말고 좌우에 조용히 나누어 앉아서 돌아다니지 말고 구경하게 할 일을 병조와 한성부에 말하라."
예조가 아뢰기를, "상께서 ‘영상의 요통이 아직 낫지 않은 듯한데, 10일 알성하는 예식에 들어와 참여할 수 있겠는지를 영상에게 물어서 날짜를 물리거나 할 일을 정하라고 예관에게 말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영의정 기자헌에게 물었더니, ‘신의 요통 증세가 아직 낫지 않아 민망함을 못하겠습니다만, 일관(日官)과 예관(禮官)이 말하기를, 「10일을 넘기게 되면 앞으로의 대례(大禮)와 거동 날짜를 부득이 점점 물려야 하므로 매우 안타깝다.」고 하니, 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나와서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상께서 ‘영상의 요통이 아직 낫지 않은 듯한데, 10일 알성하는 예식에 들어와 참여할 수 있겠는지를 영상에게 물어서 날짜를 물리거나 할 일을 정하라고 예관에게 말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영의정 기자헌에게 물었더니, ‘신의 요통 증세가 아직 낫지 않아 민망함을 못하겠습니다만, 일관(日官)과 예관(禮官)이 말하기를, 「10일을 넘기게 되면 앞으로의 대례(大禮)와 거동 날짜를 부득이 점점 물려야 하므로 매우 안타깝다.」고 하니, 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나와서 참여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승문원이 아뢰기를, "근래에는 표전(表箋)을 모두 평칙(平則)을 써서 짓습니다. 이번 동지(冬至)에 진하할 표문(表文) 두 번째 단구(短句)에 ‘범거유절 송균무강(凡居有截頌均無疆)’이라고 써서 계하를 받았는데,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송균(頌均)의 균(均) 자는 평성(平聲)을 잘못 사용한 것입니다. 함송무강(咸頌無彊)이라고 고쳐 부표하여 즉시 정본(正本)을 고쳐 쓰게 하소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이이첨은 변려문에 능한 것을 자랑으로 삼는 자였다. 표전에 평칙을 사용하는 것은 본래 관각(館閣)의 고례가 아니었는데, 이이첨이 일부러 이 논계를 하여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였다.
"근래에는 표전(表箋)을 모두 평칙(平則)을 써서 짓습니다. 이번 동지(冬至)에 진하할 표문(表文) 두 번째 단구(短句)에 ‘범거유절 송균무강(凡居有截頌均無疆)’이라고 써서 계하를 받았는데, 다시 자세히 살펴보니, 송균(頌均)의 균(均) 자는 평성(平聲)을 잘못 사용한 것입니다. 함송무강(咸頌無彊)이라고 고쳐 부표하여 즉시 정본(正本)을 고쳐 쓰게 하소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이이첨은 변려문에 능한 것을 자랑으로 삼는 자였다. 표전에 평칙을 사용하는 것은 본래 관각(館閣)의 고례가 아니었는데, 이이첨이 일부러 이 논계를 하여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였다.
전교하였다. "두 차례의 존호 올리는 일을 하루에 아울러 거행하면 구차할 뿐만 아니라 날이 짧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남교에 직접 제사한 뒤에 계축(癸丑)의 존호를 먼저 올리고 다음에 변무(辨誣)의 존호를 올리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해조로 하여금 의논하여 아뢰게 하라."
"두 차례의 존호 올리는 일을 하루에 아울러 거행하면 구차할 뿐만 아니라 날이 짧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남교에 직접 제사한 뒤에 계축(癸丑)의 존호를 먼저 올리고 다음에 변무(辨誣)의 존호를 올리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해조로 하여금 의논하여 아뢰게 하라."
전교하였다. "작헌례(酌獻禮) 때 단지 좌우 통례로 하여금 배흥(拜興)을 계청하게 하면, 필시 생소함이 있을 것이다. 정원은 잘 살펴 도와서 시행하도록 하라."
"작헌례(酌獻禮) 때 단지 좌우 통례로 하여금 배흥(拜興)을 계청하게 하면, 필시 생소함이 있을 것이다. 정원은 잘 살펴 도와서 시행하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해조에 저축되어 있는 은자(銀子)가 얼마나 남아 있는가? 살펴서 아뢰라."
"해조에 저축되어 있는 은자(銀子)가 얼마나 남아 있는가? 살펴서 아뢰라."
전교하였다. "누호(樓號)의 용(龍) 자 아래에 다른 좋은 글자를 더 써서 아뢸 일로 분부를 내린 지가 거의 열흘이 넘었는데, 아직도 회계를 하지 않고 있다. 속히 써서 아뢰라고 대제학에게 말하라."
"누호(樓號)의 용(龍) 자 아래에 다른 좋은 글자를 더 써서 아뢸 일로 분부를 내린 지가 거의 열흘이 넘었는데, 아직도 회계를 하지 않고 있다. 속히 써서 아뢰라고 대제학에게 말하라."
8월 8일 병오
전교하기를, "선왕(先王)과 선후(先后)의 옥책문(玉冊文)을 속히 지어서 올리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일이란 차례가 있는 법이다. 계축의 존호를 내 뜻을 굽히고 애써 따랐으면, 품정하여 처리해서 외방에 통지하는 일이 있어야 마땅할 듯한데, 거의 열흘이 다 되도록 품처하는 일이 없고, 게다가 계축의 존호를 먼저 올릴 일을 또한 하교했는데 아직 회계를 하지 않는다. 이것이 무슨 까닭인가? 속히 회계하게 하라." 하였다.
"선왕(先王)과 선후(先后)의 옥책문(玉冊文)을 속히 지어서 올리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일이란 차례가 있는 법이다. 계축의 존호를 내 뜻을 굽히고 애써 따랐으면, 품정하여 처리해서 외방에 통지하는 일이 있어야 마땅할 듯한데, 거의 열흘이 다 되도록 품처하는 일이 없고, 게다가 계축의 존호를 먼저 올릴 일을 또한 하교했는데 아직 회계를 하지 않는다. 이것이 무슨 까닭인가? 속히 회계하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오늘 실록을 상고해 낼 때에, 세조조에 존호를 올린 계사와 비답, 존호를 올리고 잔치를 연 날짜와 의식 절차 및 정희 왕후(貞熹王后)에게 존호를 올리면서 잔치를 열고 하례를 행한 처소를 하나하나 상세하게 고찰하여 아뢰라."
"오늘 실록을 상고해 낼 때에, 세조조에 존호를 올린 계사와 비답, 존호를 올리고 잔치를 연 날짜와 의식 절차 및 정희 왕후(貞熹王后)에게 존호를 올리면서 잔치를 열고 하례를 행한 처소를 하나하나 상세하게 고찰하여 아뢰라."
전교하였다. "전에 만든 어전(御前) 홍양산(紅陽繖)이 거칠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보기에 매몰스러웠다. 이번에는 상세하게 살펴서 십분 정밀하게 만들도록 하라. 그리고 각전(各殿) 여(輿)와 연(輦)의 바깥쪽 그림을 각별히 정밀하게 잘 그려서 거칠게 되지 않도록 신칙하여 시행하라. 이러한 뜻을 존숭 도감에 말하라."
"전에 만든 어전(御前) 홍양산(紅陽繖)이 거칠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보기에 매몰스러웠다. 이번에는 상세하게 살펴서 십분 정밀하게 만들도록 하라. 그리고 각전(各殿) 여(輿)와 연(輦)의 바깥쪽 그림을 각별히 정밀하게 잘 그려서 거칠게 되지 않도록 신칙하여 시행하라. 이러한 뜻을 존숭 도감에 말하라."
정원이 아뢰기를, "나례(儺禮)에 대해서 계하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해당 관사에서는 마땅히 즉시 헌가(軒架) 등을 점검하고 장인(匠人)이 없으면 속히 계청하여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의금부의 초기(草記)를 보니, 장인이 없어서 아직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삿일이 아닌 대례(大禮)의 일을 무심하게 내버려두었다가 날짜가 임박한 뒤에야 비로소, 일이 생길까 염려된다고 와서 아뢰었으니, 게으르기가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매우 온당치 못합니다. 나례청의 해당 낭청을 추고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매우 게으른 일이다. 금부 당상이 아울러 살피도록 하라." 하였다.
"나례(儺禮)에 대해서 계하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해당 관사에서는 마땅히 즉시 헌가(軒架) 등을 점검하고 장인(匠人)이 없으면 속히 계청하여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의금부의 초기(草記)를 보니, 장인이 없어서 아직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삿일이 아닌 대례(大禮)의 일을 무심하게 내버려두었다가 날짜가 임박한 뒤에야 비로소, 일이 생길까 염려된다고 와서 아뢰었으니, 게으르기가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매우 온당치 못합니다. 나례청의 해당 낭청을 추고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매우 게으른 일이다. 금부 당상이 아울러 살피도록 하라."
하였다.
사약(司鑰) 망단자(望單子)로 전교하기를, "배설 사약 김해생(金海生)과 빈궁 사약 이여계(李汝桂)를 서로 바꾸어라." 하였다. 이여계는 총애하는 궁녀의 오라비이다. 또 전교하기를, "별감 나종남(羅終男)을 대비전 사약에 제수하라." 하였다.
"배설 사약 김해생(金海生)과 빈궁 사약 이여계(李汝桂)를 서로 바꾸어라."
하였다. 이여계는 총애하는 궁녀의 오라비이다. 또 전교하기를,
"별감 나종남(羅終男)을 대비전 사약에 제수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알성을 하는 일은 대례이다. 임금이 몸소 태학(太學)에 나가면, 신하가 물러나 있어서는 안 된다. 분명하게 늙고 병이 든 자 이외에는 백관들이 빠짐없이 참여할 것을 신칙하여 시행하라."
"알성을 하는 일은 대례이다. 임금이 몸소 태학(太學)에 나가면, 신하가 물러나 있어서는 안 된다. 분명하게 늙고 병이 든 자 이외에는 백관들이 빠짐없이 참여할 것을 신칙하여 시행하라."
8월 9일 정미
전교하였다. "갑인년에 전주(全州)의 영정(影幀)을 봉안할 때에도 문무관을 뽑는 과거가 있었다. 이번 영숭전(永崇殿)에 봉안할 때에 한결같이 전례를 따라 살펴 시행하라고 해조에 말하라."
"갑인년에 전주(全州)의 영정(影幀)을 봉안할 때에도 문무관을 뽑는 과거가 있었다. 이번 영숭전(永崇殿)에 봉안할 때에 한결같이 전례를 따라 살펴 시행하라고 해조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갑인년에 영정이 서울을 지나갈 때에 인정전(仁政殿)에 봉안하자는 의논이 있었는데, 날짜가 급박하여 미처 봉안하지 못하였다. 지금 마땅히 미리 의논해서 결정하여 전도되는 일이 없게 하라고 해조에 말하라."
"갑인년에 영정이 서울을 지나갈 때에 인정전(仁政殿)에 봉안하자는 의논이 있었는데, 날짜가 급박하여 미처 봉안하지 못하였다. 지금 마땅히 미리 의논해서 결정하여 전도되는 일이 없게 하라고 해조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지난해 알성 때, 출제하기 전에 시관(試官)이 사배(四拜)를 할 때에 유생들 가운데 더러 절을 하지 않는 자가 있었다. 이번 알성시 출제 때에는 관관(館官)으로 하여금 미리 알려서 살펴 행할 것을 신칙하여 시행하라."
"지난해 알성 때, 출제하기 전에 시관(試官)이 사배(四拜)를 할 때에 유생들 가운데 더러 절을 하지 않는 자가 있었다. 이번 알성시 출제 때에는 관관(館官)으로 하여금 미리 알려서 살펴 행할 것을 신칙하여 시행하라."
전교하였다. "교제(郊祭) 때의 각항의 전례(典禮)를 한결같이 추숭의 전례를 따라 살펴 시행하라."
"교제(郊祭) 때의 각항의 전례(典禮)를 한결같이 추숭의 전례를 따라 살펴 시행하라."
정원이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예조의 공사를 보니, ‘변무의 존호는 날씨를 살펴서 날짜를 조정하되 만약에 날씨가 매우 추우면 내년 1월이나 2월로 물려 거행하라.’고 특별히 분부하셨습니다. 나라에 전에 없던 크나큰 경사가 있어 온 백성들이 성대한 예식을 애타게 기대하고 있는데, 국가에 일이 많아서 성대한 의식을 두번 세번 물렸습니다. 10월에 예를 행하는 것도 오히려 너무 늦은 것인데, 지금 만약 또 내년으로 물린다면, 로 조종의 영령을 위로하고 아래로 중외의 소망에 답하는 것이 아마 이래서는 안 될 듯합니다. 변무 존호를 올리는 일을 해조가 정한 날짜에 거행하시고 뒤로 물리지 마소서. 신들의 구구한 소원을 감히 진달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사연은 모두 잘 알았다. 다만 날씨가 추우면 예를 행하기가 아주 어렵다. 상황을 보아가며 하겠다." 하였다.
"신들이 삼가 예조의 공사를 보니, ‘변무의 존호는 날씨를 살펴서 날짜를 조정하되 만약에 날씨가 매우 추우면 내년 1월이나 2월로 물려 거행하라.’고 특별히 분부하셨습니다. 나라에 전에 없던 크나큰 경사가 있어 온 백성들이 성대한 예식을 애타게 기대하고 있는데, 국가에 일이 많아서 성대한 의식을 두번 세번 물렸습니다. 10월에 예를 행하는 것도 오히려 너무 늦은 것인데, 지금 만약 또 내년으로 물린다면, 로 조종의 영령을 위로하고 아래로 중외의 소망에 답하는 것이 아마 이래서는 안 될 듯합니다. 변무 존호를 올리는 일을 해조가 정한 날짜에 거행하시고 뒤로 물리지 마소서. 신들의 구구한 소원을 감히 진달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사연은 모두 잘 알았다. 다만 날씨가 추우면 예를 행하기가 아주 어렵다. 상황을 보아가며 하겠다."
하였다.
춘추관이 아뢰기를, "신들이 비망기로 말씀하신 절목 등의 일에 대하여 세조조의 《실록》을 가져다 상고하였더니, 권질이 많고 의주(儀註)가 매우 많아 하루 안에 모두 베껴낼 수가 없습니다. 부득이 알성을 한 뒤에 다시 사고(史庫)를 열고 옮겨 적어 입계하겠습니다. 이런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남교(南郊)의 교제(郊祭) 절목(節目)을 우선 상고하여 아뢰어야 하는데도 아직 아뢰지 않고 있다. 반드시 올해에 행하려면, 지금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염려스럽게 될 듯하다. 알성(謁聖)을 한 뒤에 겸춘추들을 모아서 서둘러 교제 절목을 우선적으로 상고하여 아뢰도록 하라. 존호를 올리는 등의 일에 대해서도 연일 상고하여 빠짐없이 써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신들이 비망기로 말씀하신 절목 등의 일에 대하여 세조조의 《실록》을 가져다 상고하였더니, 권질이 많고 의주(儀註)가 매우 많아 하루 안에 모두 베껴낼 수가 없습니다. 부득이 알성을 한 뒤에 다시 사고(史庫)를 열고 옮겨 적어 입계하겠습니다. 이런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남교(南郊)의 교제(郊祭) 절목(節目)을 우선 상고하여 아뢰어야 하는데도 아직 아뢰지 않고 있다. 반드시 올해에 행하려면, 지금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염려스럽게 될 듯하다. 알성(謁聖)을 한 뒤에 겸춘추들을 모아서 서둘러 교제 절목을 우선적으로 상고하여 아뢰도록 하라. 존호를 올리는 등의 일에 대해서도 연일 상고하여 빠짐없이 써서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승문원이 아뢰기를, "이번 동지(冬至) 문서 중에 자문(咨文)은 이달 초팔일(初八日)로 날짜를 적어넣어 이미 보(寶)를 찍었는데, 배표를 물려 거행하라고 계하하셨습니다. 표전(表箋)의 정본과 부본은 절일(節日)이라고 적어넣었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할 수가 있겠습니다만, 각 아문에 보내는 자문은 초팔일을 고쳐서 십오일(十五日)로 적어넣어야 하겠는데, 다만 문서에 이미 보를 찍었고 쓰고 남은 자문지(咨文紙)는 품질이 좋지 않으니, 초(初) 자만 뭉개고 십(十) 자로 고쳐서 그대로 쓰는 것이 무방할 듯합니다. 이전에도 이렇게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비록 초팔일이라고 적어넣었더라도 굳이 지우고 고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반드시 고쳐야 한다면 십분 정밀하게 고치도록 할 일을 살펴 시행하라." 하였다.
"이번 동지(冬至) 문서 중에 자문(咨文)은 이달 초팔일(初八日)로 날짜를 적어넣어 이미 보(寶)를 찍었는데, 배표를 물려 거행하라고 계하하셨습니다. 표전(表箋)의 정본과 부본은 절일(節日)이라고 적어넣었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할 수가 있겠습니다만, 각 아문에 보내는 자문은 초팔일을 고쳐서 십오일(十五日)로 적어넣어야 하겠는데, 다만 문서에 이미 보를 찍었고 쓰고 남은 자문지(咨文紙)는 품질이 좋지 않으니, 초(初) 자만 뭉개고 십(十) 자로 고쳐서 그대로 쓰는 것이 무방할 듯합니다. 이전에도 이렇게 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비록 초팔일이라고 적어넣었더라도 굳이 지우고 고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러나 반드시 고쳐야 한다면 십분 정밀하게 고치도록 할 일을 살펴 시행하라."
하였다.
비밀로 전교하였다. "세견선(歲遣船)이 오래도록 나오지 않고 덕천가강(德川家康)의 생사도 확실히 알지 못하여 왜국의 정세를 헤아릴 수가 없는데 방비하는 일은 엉망이 되어 한 가지 일도 믿을 만한 것이 없다. 그저 세월만 보내며 형식적인 일만 꾸미려 하고 있으니, 내가 한밤중에도 깊은 근심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서북쪽의 방비도 형편이 없다. 만약 변고라도 생기면 무슨 병력(兵力)으로 막아 지킬 것인가? 참으로 한심하다. 하삼도(下三道)의 도순찰사(都巡察使)를 대례(大禮)를 지낸 뒤에 즉시 내려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잘 계획하여 맡아 나누어 방비하게 하되 세 변방의 방비를 본사에서 다시 더욱 착실하게 계획하여 시행할 일을 비변사에 말하라."
"세견선(歲遣船)이 오래도록 나오지 않고 덕천가강(德川家康)의 생사도 확실히 알지 못하여 왜국의 정세를 헤아릴 수가 없는데 방비하는 일은 엉망이 되어 한 가지 일도 믿을 만한 것이 없다. 그저 세월만 보내며 형식적인 일만 꾸미려 하고 있으니, 내가 한밤중에도 깊은 근심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서북쪽의 방비도 형편이 없다. 만약 변고라도 생기면 무슨 병력(兵力)으로 막아 지킬 것인가? 참으로 한심하다. 하삼도(下三道)의 도순찰사(都巡察使)를 대례(大禮)를 지낸 뒤에 즉시 내려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잘 계획하여 맡아 나누어 방비하게 하되 세 변방의 방비를 본사에서 다시 더욱 착실하게 계획하여 시행할 일을 비변사에 말하라."
8월 10일 무신
왕이 알성하였다. 막차(幕次)로부터 명륜당(明倫堂) 전좌(殿坐)로 들어갔다. 전교하기를, "어서 출제하라." 하니, 대제학 이이첨이 아뢰기를, "소신이 문형(文衡)의 직임을 맡고 있으면서 더없이 중대한 과거 시험을 매양 혼자서 출제하니, 매우 미안합니다. 이번에는 제학과 대신들이 서로 의논하여 출제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편한 마음으로 같이 의논하여 출제하라." 하였다.
"어서 출제하라."
하니, 대제학 이이첨이 아뢰기를,
"소신이 문형(文衡)의 직임을 맡고 있으면서 더없이 중대한 과거 시험을 매양 혼자서 출제하니, 매우 미안합니다. 이번에는 제학과 대신들이 서로 의논하여 출제하게 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편한 마음으로 같이 의논하여 출제하라."
하였다.
왕이 재촉하여 출제하게 하고 명관(命官)으로 하여금 유생을 시험보이게 하였다. 왕이 하련대(下輦臺) 막차에서 무사들을 몸소 시험보였다.
탑전에서 대사헌 남근, 대사간 정조가 아뢰기를, "심눌을 비록 직부는 허락하지 않았으나 증광 초시(增廣初試)로 알성시에 응시하게 하는 것은 중대한 과거에 방해로움이 있습니다. 앞으로 또 증광시가 있을 것인데, 그 때에 응시하게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전시에 직부하는 것이 아니니, 지금 비록 알성시에 들어가게 하더라도 무슨 방해로움이 있겠는가. 번거롭게 논란하지 말라." 하였다.
"심눌을 비록 직부는 허락하지 않았으나 증광 초시(增廣初試)로 알성시에 응시하게 하는 것은 중대한 과거에 방해로움이 있습니다. 앞으로 또 증광시가 있을 것인데, 그 때에 응시하게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전시에 직부하는 것이 아니니, 지금 비록 알성시에 들어가게 하더라도 무슨 방해로움이 있겠는가. 번거롭게 논란하지 말라."
하였다.
육승지(六承旨)가 모두 탑전에 나아가 아뢰기를, "존호 올리는 일에 대해서, 어제 전교하시기를, ‘내년으로 물려서 거행하라.’고 하셨는데, 신들이 정원의 뜻으로 계사를 이미 진달하였습니다. 대개 존호를 올리는 일은,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일일 뿐 아니라, 나라의 온 백성들이 올리고자 하는 것이니, 그 정성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경사스러움을 축하하는 일은 때를 넘겨서는 안 되고 속히 거행해야 마땅합니다. 더구나 로 하늘에 계신 조종조의 영령을 위로하고 아래로 백성들 모두의 소망에 부응하는 일이니, 어찌 감히 소홀히 하겠습니까. 백성들이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이 어찌 아들이 부모를 모시는 마음과 다르겠습니까. 지금, ‘형세를 보아가며 시행하겠다.’고 분부를 내리셨는데, 신들은 민망하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예관으로 하여금 속히 거행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대례가 거듭 있어서 저절로 물려 거행하게 된 것이다. 날씨를 보아가며 시행하라." 하였다.
"존호 올리는 일에 대해서, 어제 전교하시기를, ‘내년으로 물려서 거행하라.’고 하셨는데, 신들이 정원의 뜻으로 계사를 이미 진달하였습니다. 대개 존호를 올리는 일은, 종묘 사직에 관계되는 일일 뿐 아니라, 나라의 온 백성들이 올리고자 하는 것이니, 그 정성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경사스러움을 축하하는 일은 때를 넘겨서는 안 되고 속히 거행해야 마땅합니다. 더구나 로 하늘에 계신 조종조의 영령을 위로하고 아래로 백성들 모두의 소망에 부응하는 일이니, 어찌 감히 소홀히 하겠습니까. 백성들이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이 어찌 아들이 부모를 모시는 마음과 다르겠습니까. 지금, ‘형세를 보아가며 시행하겠다.’고 분부를 내리셨는데, 신들은 민망하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예관으로 하여금 속히 거행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대례가 거듭 있어서 저절로 물려 거행하게 된 것이다. 날씨를 보아가며 시행하라."
하였다.
병조가 아뢰기를, "무예를 공부하는 자들이 해마다 점점 줄고 있으니, 참으로 나라를 수비하는 방책과 어긋납니다. 부묘를 축하하는 시험과 중시(重試)를 합친 시험은 큰 과거 시험이라고 하겠고 그 규정도 완화하였는데도, 입격한 사람이 액수에 차지 않았으니, 권장하여 흥기시키는 방책을 강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알성시 초시에 참방한 자들에게 모두 급제(及第)를 는 것은 참으로 세상에 드문 은전입니다. 이미 대신들에게 하문하여 결정을 내렸으니 다른 소리를 못하게 하되, 마침 지금 양사가 입시하였으니 모두 취할 뜻을 또한 하문하시면 대간을 중시하는 도리에 합당하겠습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여쭙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무예를 공부하는 자들이 해마다 점점 줄고 있으니, 참으로 나라를 수비하는 방책과 어긋납니다. 부묘를 축하하는 시험과 중시(重試)를 합친 시험은 큰 과거 시험이라고 하겠고 그 규정도 완화하였는데도, 입격한 사람이 액수에 차지 않았으니, 권장하여 흥기시키는 방책을 강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알성시 초시에 참방한 자들에게 모두 급제(及第)를 는 것은 참으로 세상에 드문 은전입니다. 이미 대신들에게 하문하여 결정을 내렸으니 다른 소리를 못하게 하되, 마침 지금 양사가 입시하였으니 모두 취할 뜻을 또한 하문하시면 대간을 중시하는 도리에 합당하겠습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여쭙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대사헌 남근, 대사간 정조가, ‘병조의 계사로 하문한 일’로 아뢰기를, "이러한 큰 경사를 맞아 많은 숫자를 취하지 않는다면 일이 매우 매몰스러울 것입니다. 그래서 초시를 가지고 그대로 좌차(坐次)를 매길 일로 대신이 이미 의논하여 결정하였습니다. 지금 이 병조의 계사가 지극히 옳은 말입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이러한 큰 경사를 맞아 많은 숫자를 취하지 않는다면 일이 매우 매몰스러울 것입니다. 그래서 초시를 가지고 그대로 좌차(坐次)를 매길 일로 대신이 이미 의논하여 결정하였습니다. 지금 이 병조의 계사가 지극히 옳은 말입니다."
하니, 알았다고 답하였다.
오시에 왕이 막차로 들어갔다. 시위한 여러 신료들과 시관들에게 술잔치를 내렸다.
양사가 합사하여 이운상의 일을 아뢰었다.
헌부가 윤영현, 박엽의 일과 신전(辛筌)의 일을 아뢰었다.
합사하여 아뢴 이운상의 일과, 헌부가 아뢴 윤영현 등의 일에 대하여,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간원이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니,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고 답하였다.
명관(命官) 영의정 기자헌 이하가 문과에서 기준격(奇俊格) 등 10명을 뽑았다. 왕이 몸소 시험보여 무과에서 심계(沈溪) 등 24명을 뽑았다. 모두 급제와 출신을 하사하였다. 왕이 친림하여 방방하였다. 예를 마치고, 각각 청포(靑袍)와 홀(笏)과 안구마(鞍具馬)를 하사하여 유가(遊街)하게 하였다. 당시에 흉악한 무리들로서 과거에 급제한 자들의 글은 그 전날 밤에 지어간 것이 아니면 시험장 밖에서 지어서 바친 것이었는데, 이번 시험에서는 더욱 심하였다. 준격(俊格) 및 그 조카 기수발(奇秀發)의 글은 모두 허균(許筠)과 재영(再榮)이 지은 것이었다. 당시에 인구에 회자되었다.
8월 11일 기유
김제남, 최기, 김기, 박계운에 대한 금부의 추형 단자(追刑單子)로 한찬남에게 전교하기를, "추형은 17일이 지난 뒤에 시행하라." 하였다.
"추형은 17일이 지난 뒤에 시행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예로부터 반역을 하는 변고가 일어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추국을 하였기 때문에 죄가 있는 자는 실상이 밝혀져 정형(正刑)에 처해졌고 죄가 없는 자도 억울하게 옥에 오래 갇혀 있는 일이 없었다. 근래에는 역적의 옥사가 잇달아 일어나므로 단지 낮에만 추국을 하는데 추국을 정지하는 날도 많다. 그래서 그 실정을 밝혀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레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자도 숱하게 많다. 매우 염려스럽다. 비록 큰 경사를 인하여 부득이 과거를 시행해야 하기는 하나 과거가 너무 잦은 것이 도리어 오늘날의 큰 폐단이 되고 있다. 긴급하지 않은 듯한, 변무의 증광 별시 초시는 내년 봄으로 날을 다시 잡아 시행할 일을 해조에 말하라."
"예로부터 반역을 하는 변고가 일어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추국을 하였기 때문에 죄가 있는 자는 실상이 밝혀져 정형(正刑)에 처해졌고 죄가 없는 자도 억울하게 옥에 오래 갇혀 있는 일이 없었다. 근래에는 역적의 옥사가 잇달아 일어나므로 단지 낮에만 추국을 하는데 추국을 정지하는 날도 많다. 그래서 그 실정을 밝혀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레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자도 숱하게 많다. 매우 염려스럽다. 비록 큰 경사를 인하여 부득이 과거를 시행해야 하기는 하나 과거가 너무 잦은 것이 도리어 오늘날의 큰 폐단이 되고 있다. 긴급하지 않은 듯한, 변무의 증광 별시 초시는 내년 봄으로 날을 다시 잡아 시행할 일을 해조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지난번에 만든 각전의 의장(儀仗)은 정밀하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양산(陽繖)과 일산(日傘)을 주토(朱土)로 칠을 하기도 하여 보기에 놀라웠다. 도감이 국(局)을 설치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 지금 이후로는 각전의 의장을 각별히 마음을 써서 정밀하게 만들어, 거칠게 만들었던 지난번처럼 되지 않게 할 일을 다시 더욱 잘 살펴 시행하라. 이러한 뜻을 존숭 도감에 말하라."
"지난번에 만든 각전의 의장(儀仗)은 정밀하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양산(陽繖)과 일산(日傘)을 주토(朱土)로 칠을 하기도 하여 보기에 놀라웠다. 도감이 국(局)을 설치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 지금 이후로는 각전의 의장을 각별히 마음을 써서 정밀하게 만들어, 거칠게 만들었던 지난번처럼 되지 않게 할 일을 다시 더욱 잘 살펴 시행하라. 이러한 뜻을 존숭 도감에 말하라."
양사가 합사하여 이운상의 일을 아뢰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헌부가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간원이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8월 12일 경술
흠경각(欽敬閣)이 아뢰기를, "흠경각의 교정(校正)이 여름부터 가을까지 한 치도 틀림이 없이 되어 조금도 결함이 없습니다. 이제 추분(秋分)도 이미 지났고, 이것은 늘 물을 담아두는 기구가 아니니, 지금 이후로는 교정을 정파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신들의 생각만 이러한 것이 아니라 장인(匠人)들의 말도 또한 그렇습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9월까지 그대로 교정하게 하라." 하였다.
"흠경각의 교정(校正)이 여름부터 가을까지 한 치도 틀림이 없이 되어 조금도 결함이 없습니다. 이제 추분(秋分)도 이미 지났고, 이것은 늘 물을 담아두는 기구가 아니니, 지금 이후로는 교정을 정파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신들의 생각만 이러한 것이 아니라 장인(匠人)들의 말도 또한 그렇습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9월까지 그대로 교정하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홍문관에 저장되어 있는 소수 서원(紹修書院)에 하사한 《강목(綱目)》은 자판(字板)이 매우 좋은데, 주조한 활자로 찍어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지금도 찍어낼 수 있는가? 교인 도감(校印都監)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홍문관에 저장되어 있는 소수 서원(紹修書院)에 하사한 《강목(綱目)》은 자판(字板)이 매우 좋은데, 주조한 활자로 찍어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지금도 찍어낼 수 있는가? 교인 도감(校印都監)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양사가 합사하여 이운상의 일을 아뢰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헌부가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간원이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비밀로 전교하였다. "공성 왕후(恭聖王后)의 관복(冠服)에 대해서, 주청사를 미리 차출해놓고 성절사와 천추사의 뒤에 오는 서장관(書狀官)을 기다렸다가 즉시 발송할 일을 해조에 말하라."
"공성 왕후(恭聖王后)의 관복(冠服)에 대해서, 주청사를 미리 차출해놓고 성절사와 천추사의 뒤에 오는 서장관(書狀官)을 기다렸다가 즉시 발송할 일을 해조에 말하라."
8월 13일 신해
전교하기를, "대전(大殿)에 세자빈(世子嬪)이 진하하고 내전(內殿)에 세자(世子)가 진하할 때에 누구를 시켜 음악을 담당하게 할 것인가?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정하게 하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10월 10일에 계축의 존호를 올릴 것이라면, 존호를 의논하고 전(箋)을 올리고 하는 일을 기일을 앞당겨 정할 것에 대해 예관으로 하여금 속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하였다.
"대전(大殿)에 세자빈(世子嬪)이 진하하고 내전(內殿)에 세자(世子)가 진하할 때에 누구를 시켜 음악을 담당하게 할 것인가?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정하게 하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10월 10일에 계축의 존호를 올릴 것이라면, 존호를 의논하고 전(箋)을 올리고 하는 일을 기일을 앞당겨 정할 것에 대해 예관으로 하여금 속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기를, "삭녕 군수(朔寧郡守)에 역적을 체포한 송희업(宋熙業)을 제수하도록 하라." 하고, 이어서 전교하기를, "내일은 사기(私忌)이다. 단지 수령을 내는 일만 하되 신은(新恩)으로 제수하라. 또 해운 판관(海運判官) 정호서(丁好恕)는 조도(調度)를 겸하여 관장하여 전말을 자세히 알고 있으니, 올해까지는 잉임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삭녕 군수(朔寧郡守)에 역적을 체포한 송희업(宋熙業)을 제수하도록 하라."
하고, 이어서 전교하기를,
"내일은 사기(私忌)이다. 단지 수령을 내는 일만 하되 신은(新恩)으로 제수하라. 또 해운 판관(海運判官) 정호서(丁好恕)는 조도(調度)를 겸하여 관장하여 전말을 자세히 알고 있으니, 올해까지는 잉임시키도록 하라."
하였다.
비밀로 전교하였다. "세견선이 잇달아 나오는데, 이러한 때에 부산 첨사가 논핵을 당하여, 단지 대장(代將)이 임무를 살피고 있으니, 매우 허술하다. 무릇 몰래 장사를 하는 잡인들 및 도망중인 역적을 십분 엄금하여 기찰할 일을 경상 감사에게 서둘러 하유하라."
"세견선이 잇달아 나오는데, 이러한 때에 부산 첨사가 논핵을 당하여, 단지 대장(代將)이 임무를 살피고 있으니, 매우 허술하다. 무릇 몰래 장사를 하는 잡인들 및 도망중인 역적을 십분 엄금하여 기찰할 일을 경상 감사에게 서둘러 하유하라."
윤인(尹訒)을 홍문관 수찬으로, 유여항(柳汝恒)을 홍문관 부수찬으로, 한영(韓泳)을 홍문관 부수찬으로 삼았다.
8월 14일 임자
수선 도감(修繕都監)이 아뢰기를, "이번 수선하는 역사는 상께서 백성들을 번거롭히지 않으려고 하셨기 때문에 신들이 성상의 뜻을 깊이 유념해 받들어, 무릇 필요한 잡물들을 복정(卜定)할 때에 간략하게 하기를 힘썼습니다. 박석(薄石)과 돌석(堗石) 같은 물품들은 벌취(伐取)하여 수송해 올 때에 백성들의 고생이 매우 큰 것이므로 십분 간략하게 마련하여, 이에 두 가지를 아울러 4천 장(張)을 경기와 황해 두 도에 나누어 배정하였습니다. 문정전(文政殿)의 마당은 전에 깔아놓은 박석이 하나도 없어서 모두 새로운 돌로 깔아야 하기 때문에 그 숫자가 2천 40여 장이나 필요하고, 명정전(明政殿)은 비록 전에 깔아놓은 것이 7분의 1 정도가 있기는 하나 나무와 돌을 끌어 운반할 때에 조각조각 다 깨어져서 그대로 쓸 만한 것이 아주 적습니다. 이것으로 계산해 보면, 돌석은 겨우 부족하지 않을 만큼 있습니다만 박석은 태반이 부족합니다. 형세로 보아 부득이 경기와 황해 두 도에 더 배정해야 하겠습니다. 다만 벌취하여 수송해 오자면 공력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열흘이나 한 달 정도 안에는 서울까지 운송해 오기가 어려운 형세입니다. 공사가 거의 끝나가는데 단지 박석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작은 염려가 아닙니다. 경복궁(景福宮) 뜰에 깔아놓은 박석을 이전에 궁궐을 짓던 때의 전례대로 우선 가져다가 사용하고 양도의 박석을 운송해 오는 즉시 그것을 충당하게 하소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경복궁도 중건을 해야 하니, 깔아놓은 돌을 모두 가져다 쓰지는 말고, 응당 들여올 숫자를 일일이 서계한 뒤에 갖다가 쓰도록 하여 허술해지고 유실되는 폐단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이번 수선하는 역사는 상께서 백성들을 번거롭히지 않으려고 하셨기 때문에 신들이 성상의 뜻을 깊이 유념해 받들어, 무릇 필요한 잡물들을 복정(卜定)할 때에 간략하게 하기를 힘썼습니다. 박석(薄石)과 돌석(堗石) 같은 물품들은 벌취(伐取)하여 수송해 올 때에 백성들의 고생이 매우 큰 것이므로 십분 간략하게 마련하여, 이에 두 가지를 아울러 4천 장(張)을 경기와 황해 두 도에 나누어 배정하였습니다. 문정전(文政殿)의 마당은 전에 깔아놓은 박석이 하나도 없어서 모두 새로운 돌로 깔아야 하기 때문에 그 숫자가 2천 40여 장이나 필요하고, 명정전(明政殿)은 비록 전에 깔아놓은 것이 7분의 1 정도가 있기는 하나 나무와 돌을 끌어 운반할 때에 조각조각 다 깨어져서 그대로 쓸 만한 것이 아주 적습니다. 이것으로 계산해 보면, 돌석은 겨우 부족하지 않을 만큼 있습니다만 박석은 태반이 부족합니다. 형세로 보아 부득이 경기와 황해 두 도에 더 배정해야 하겠습니다. 다만 벌취하여 수송해 오자면 공력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열흘이나 한 달 정도 안에는 서울까지 운송해 오기가 어려운 형세입니다. 공사가 거의 끝나가는데 단지 박석이 도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작은 염려가 아닙니다. 경복궁(景福宮) 뜰에 깔아놓은 박석을 이전에 궁궐을 짓던 때의 전례대로 우선 가져다가 사용하고 양도의 박석을 운송해 오는 즉시 그것을 충당하게 하소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경복궁도 중건을 해야 하니, 깔아놓은 돌을 모두 가져다 쓰지는 말고, 응당 들여올 숫자를 일일이 서계한 뒤에 갖다가 쓰도록 하여 허술해지고 유실되는 폐단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열흘 안에 두 번씩이나 과거를 보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문무과 전시와 문무과 중시를 차례차례 물려 거행하라."
"열흘 안에 두 번씩이나 과거를 보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문무과 전시와 문무과 중시를 차례차례 물려 거행하라."
전교하였다. "이번 동지사의 행차에 근래의 전례대로 값을 지급해 보내어 어승(御乘)에 합당한 당마(唐馬)를 무역해 올 일을 사복시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이번 동지사의 행차에 근래의 전례대로 값을 지급해 보내어 어승(御乘)에 합당한 당마(唐馬)를 무역해 올 일을 사복시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의금부가 아뢰기를, "‘역적 정충민(丁忠敏)에게 이미 정형(正刑)을 시행하였으니, 그가 살던 음성(陰城) 고을에 대해서 읍호(邑號)를 강등하고 수령을 파직하고 집을 헐어내고 못을 만드는 등의 일을 율문대로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아뢰었더니, 답하기를, ‘그가 비록 무고(誣告)이기는 하나 읍호를 강등하고 관아를 혁파하기까지 하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다시 대신에게 의논하여 아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신에게 의논하였더니, 영의정 기자헌이, ‘비록 무고(誣告)이기는 하나 그 말이 반역에 관계되는 것이니 읍호를 강등하고 관아를 혁파하는 일은 그만 둘 수 없을 듯합니다. 다시 금부로 하여금 율문을 상고하여 처리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상께서 헤아려 처리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의논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초에 읍호를 강등하고 관아를 혁파하는 등의 일은 한결같이 율문에 의거하여 계품하였습니다. 본부에는 다시 상고할 만한 율문이 없습니다. 이전의 계사에 의거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역적 정충민(丁忠敏)에게 이미 정형(正刑)을 시행하였으니, 그가 살던 음성(陰城) 고을에 대해서 읍호(邑號)를 강등하고 수령을 파직하고 집을 헐어내고 못을 만드는 등의 일을 율문대로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아뢰었더니, 답하기를, ‘그가 비록 무고(誣告)이기는 하나 읍호를 강등하고 관아를 혁파하기까지 하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다시 대신에게 의논하여 아뢰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신에게 의논하였더니, 영의정 기자헌이, ‘비록 무고(誣告)이기는 하나 그 말이 반역에 관계되는 것이니 읍호를 강등하고 관아를 혁파하는 일은 그만 둘 수 없을 듯합니다. 다시 금부로 하여금 율문을 상고하여 처리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상께서 헤아려 처리하소서.’ 하였는데, 답하기를, ‘의논대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초에 읍호를 강등하고 관아를 혁파하는 등의 일은 한결같이 율문에 의거하여 계품하였습니다. 본부에는 다시 상고할 만한 율문이 없습니다. 이전의 계사에 의거하여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 "비망기에, ‘대전에 세자빈이 진하하고 내전에 세자가 진하할 때에 누구에게 음악을 담당하게 할 것인지를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정하게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예문을 상고하였더니, 내연(內宴) 및 내전에 명부(命婦)가 진하할 때에는 여령(女伶)이 음악을 진설한다고 하였습니다. 장악원에 물어보았더니, ‘무릇 내전의 거동 때에는 여령이 음악을 진설하는데, 여기(女妓)와 관현 맹인(管絃盲人)이 음악을 담당한다고 《악학궤범》의 옛 규례에 실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 대전에 세자빈이 진하하고 내전에 세자가 진하할 때에 이에 의거하여 시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비망기에, ‘대전에 세자빈이 진하하고 내전에 세자가 진하할 때에 누구에게 음악을 담당하게 할 것인지를 예관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정하게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예문을 상고하였더니, 내연(內宴) 및 내전에 명부(命婦)가 진하할 때에는 여령(女伶)이 음악을 진설한다고 하였습니다. 장악원에 물어보았더니, ‘무릇 내전의 거동 때에는 여령이 음악을 진설하는데, 여기(女妓)와 관현 맹인(管絃盲人)이 음악을 담당한다고 《악학궤범》의 옛 규례에 실려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번에 대전에 세자빈이 진하하고 내전에 세자가 진하할 때에 이에 의거하여 시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8월 15일 계축
동지 상사(冬至上使) 권경우(權慶祐), 부사(副使) 목대흠(睦大欽), 서장관 정홍원(鄭弘遠) 등이 표문을 받들고 북경에 갔다.
도승지가 아뢰기를, "동지사가 오늘 길을 떠납니다. 도망 중인 역적의 얼굴 모양과 나이를 전례대로 써서 지급하소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동지사가 오늘 길을 떠납니다. 도망 중인 역적의 얼굴 모양과 나이를 전례대로 써서 지급하소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승지가 아뢰기를, "전일 하교하신 ‘예부(禮部)의 복제(覆題)를 잘 주선해서 때맞춰 처리하는 일’ 및 ‘사신과 함께 가는 원역들을 계칙하여 우리 나라에 관계되는 일을 많이 누설하지 못하게 할 일’ 등, 이 두 가지를 동지사가 있는 곳에 말을 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일 하교하신 ‘예부(禮部)의 복제(覆題)를 잘 주선해서 때맞춰 처리하는 일’ 및 ‘사신과 함께 가는 원역들을 계칙하여 우리 나라에 관계되는 일을 많이 누설하지 못하게 할 일’ 등, 이 두 가지를 동지사가 있는 곳에 말을 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대례 때에 사용할 보계(補階)를 미리 선수 도감 낭청으로 하여금 준비하게 하라고 전교하였는데, 아직도 준비하지 않았다고 하니, 매우 그르다. 본 도감에 신칙하여 이달 안으로 십분 충분한 숫자를 준비하여 대기하게 하라. 그리고 창덕궁과 창경궁의 수리 감역관은, 근실하고 능력있는 자를 아주 정밀하게 가려 차출하여 힘을 합하여 함께 일을 처리하게 하라. 이번 배설(排設)하는 일도 또한 항상 옛 전례대로 각별히 검찰하여 수시로 태만한 담당 관원의 추고를 청하여 일이 잘못될 근심이 없게 하라."
"대례 때에 사용할 보계(補階)를 미리 선수 도감 낭청으로 하여금 준비하게 하라고 전교하였는데, 아직도 준비하지 않았다고 하니, 매우 그르다. 본 도감에 신칙하여 이달 안으로 십분 충분한 숫자를 준비하여 대기하게 하라. 그리고 창덕궁과 창경궁의 수리 감역관은, 근실하고 능력있는 자를 아주 정밀하게 가려 차출하여 힘을 합하여 함께 일을 처리하게 하라. 이번 배설(排設)하는 일도 또한 항상 옛 전례대로 각별히 검찰하여 수시로 태만한 담당 관원의 추고를 청하여 일이 잘못될 근심이 없게 하라."
양사가 이운상의 일을 합계하니, 이미 하유하였다고 답하였다.
헌부가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니, 이미 하유하였다고 답하였다.
간원이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었다.
양사가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고 답하였다.
춘추관이 아뢰기를, "세조(世祖)께서 몸소 제사지낸 일에 대해서, 신들이 연일 실록을 가져다가 상고하였더니 절목이 아주 많아 사관(史官)과 겸춘추(兼春秋)들이 이제야 비로소 난초(亂草)로 베껴냈습니다. 모두 정서(正書)를 하려면 하루 이틀 만에 베껴낼 수 있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그 대강만을 적어서 올립니다. 그 나머지 의절 등에 대한 일은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들어서 해조에 부쳐 의주(儀註)를 마련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희왕후가 진하를 받은 처소는 근정전(勤政殿)인데 존호를 올린 데에 대한 계사와 비답은 모두 나오는 곳이 없습니다. 존호를 올리고 수연(壽宴)을 연 날짜는 서계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베껴낸 초본을 먼저 봉입하고 내가 보고 내린 뒤에 모두 정서하여 들이도록 하라." 하였다.
"세조(世祖)께서 몸소 제사지낸 일에 대해서, 신들이 연일 실록을 가져다가 상고하였더니 절목이 아주 많아 사관(史官)과 겸춘추(兼春秋)들이 이제야 비로소 난초(亂草)로 베껴냈습니다. 모두 정서(正書)를 하려면 하루 이틀 만에 베껴낼 수 있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그 대강만을 적어서 올립니다. 그 나머지 의절 등에 대한 일은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들어서 해조에 부쳐 의주(儀註)를 마련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희왕후가 진하를 받은 처소는 근정전(勤政殿)인데 존호를 올린 데에 대한 계사와 비답은 모두 나오는 곳이 없습니다. 존호를 올리고 수연(壽宴)을 연 날짜는 서계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베껴낸 초본을 먼저 봉입하고 내가 보고 내린 뒤에 모두 정서하여 들이도록 하라."
하였다.
사복시가 아뢰기를, "비망기에, ‘이번 동지사의 행차에 근래의 전례대로 값을 지급해서 어승(御乘)에 합당한 당마(唐馬)를 무역해 올 일을 사복시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어승에 합당한 말이 근래에는 아주 부족하나, 역관(譯官)들이 무역해 오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본가(本價)까지도 반납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올해의 두 번의 명절 사행에는 말을 무역해 오는 일을 우선 정지시켰는데, 삼가 성상의 분부를 받들고 보니 매우 합당합니다. 즉시 가벼운 쪽으로 값을 지급하여, 만약 합당한 말을 무역해 오는 자가 있으면 논상을 계품하고, 여전히 무역해 오려고 하지 않는 자는 본가의 갑절로 도로 징수하고 다 받아들이기 전에는 북경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말 것이며, 본시의 담당 관원도 해유(解由)를 할 때에 빙고할 일을 승전을 받들어 거듭 밝히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비망기에, ‘이번 동지사의 행차에 근래의 전례대로 값을 지급해서 어승(御乘)에 합당한 당마(唐馬)를 무역해 올 일을 사복시로 하여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어승에 합당한 말이 근래에는 아주 부족하나, 역관(譯官)들이 무역해 오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본가(本價)까지도 반납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올해의 두 번의 명절 사행에는 말을 무역해 오는 일을 우선 정지시켰는데, 삼가 성상의 분부를 받들고 보니 매우 합당합니다. 즉시 가벼운 쪽으로 값을 지급하여, 만약 합당한 말을 무역해 오는 자가 있으면 논상을 계품하고, 여전히 무역해 오려고 하지 않는 자는 본가의 갑절로 도로 징수하고 다 받아들이기 전에는 북경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말 것이며, 본시의 담당 관원도 해유(解由)를 할 때에 빙고할 일을 승전을 받들어 거듭 밝히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8월 16일 갑인
양사가 이운상의 일을 합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참작하여 그 죄를 정하였으니, 굳이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참작하여 그 죄를 정하였으니, 굳이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간원이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룄다.
헌부가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룄다.
양사에 답하기를, "너무 심하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너무 심하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8월 17일 을묘
정원이 아뢰기를, "해평 부원군(海平府院君) 윤근수(尹根壽)가 며칠 만에 병세가 매우 위중해졌다고 합니다. 훈구 중신이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내의(內醫)를 보내어 간병(看病)하게 하라." 하였다.
"해평 부원군(海平府院君) 윤근수(尹根壽)가 며칠 만에 병세가 매우 위중해졌다고 합니다. 훈구 중신이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내의(內醫)를 보내어 간병(看病)하게 하라."
하였다.
해평 부원군 윤근수가 세상을 떠났다.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의 동생이다. 사람됨이 청백(淸白) 간솔(簡率)하고 문장이 고아(古雅)하였으며 필법이 굳세고 힘찼다. 추대되어 예원(藝苑)의 종장(宗匠)이 되었으며 평생을 선비들과 지내며 선행을 좋아하였고 후진들을 도와주기를 좋아하였다. 중국 사신을 맞아 일을 잘 처리하여 명예로운 명성이 매우 드러났다. 젊을 적부터 청고한 의논을 견지하여 청현직을 두루 거쳤으며 만년에는 문사(文史)로 혼자서 즐기면서 교유(交遊)에 뜻을 끊고 지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비록 촌 구석이라도 반드시 찾아보았다. 광국(光國)과 호성(扈聖) 두 공신에 책록되었다. 나라의 중요한 지위에 있은 지가 30년이었는데도 집안이 청빈하고 깨끗하여 마치 한미한 선비처럼 생활하였다. 나이 80에 세상을 떠났는데, 왕이 의원을 보내어 병환을 묻고, 장례를 예에 의거하여 치르게 하였다. 인조 반정 후에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각소의 비목(榌木)을 매매하는 일에 대한 도감의 계사에 대해서, ‘목제(木梯)와 목두(木頭)의 숫자가 얼마인지를 먼저 살펴서 아뢴 뒤에 처리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각소의 비목과 목두를 별단으로 서계합니다. 그 가운데에 환경전(歡慶殿)의 비목은 아교(阿膠)와 명유(明油)를 끓이는 일 및 온돌을 건조시키는 등의 일에 사용하였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이전의 계사대로 시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각소의 비목(榌木)을 매매하는 일에 대한 도감의 계사에 대해서, ‘목제(木梯)와 목두(木頭)의 숫자가 얼마인지를 먼저 살펴서 아뢴 뒤에 처리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각소의 비목과 목두를 별단으로 서계합니다. 그 가운데에 환경전(歡慶殿)의 비목은 아교(阿膠)와 명유(明油)를 끓이는 일 및 온돌을 건조시키는 등의 일에 사용하였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이전의 계사대로 시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선수에 쓰고 남은 재목과 기와를 쌓아둘 곳을 본도감으로 하여금 속히 요리하게 하라. 인왕산(仁王山) 아래의 모처에 가가(假家)를 잘 지어서 두껍게 덮어 보관해 두었다가 뒷날의 용도에 쓰게 할 일을 속히 잘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선수에 쓰고 남은 재목과 기와를 쌓아둘 곳을 본도감으로 하여금 속히 요리하게 하라. 인왕산(仁王山) 아래의 모처에 가가(假家)를 잘 지어서 두껍게 덮어 보관해 두었다가 뒷날의 용도에 쓰게 할 일을 속히 잘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무과 별시 초시의 입격자를 모두 직부시킬 일을 대신에게 의논하여 아뢰라."
"무과 별시 초시의 입격자를 모두 직부시킬 일을 대신에게 의논하여 아뢰라."
전교하였다. "세조조에 정월 15일에 교사(郊祀)를 친행하였으니, 다음달 15일에 친히 제사를 행하는 것이 무방하겠는가? 예관으로 하여금 다시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세조조에 정월 15일에 교사(郊祀)를 친행하였으니, 다음달 15일에 친히 제사를 행하는 것이 무방하겠는가? 예관으로 하여금 다시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원구(圜丘)에 전(殿)을 짓는 일은 아무쪼록 옛 전례에 의거하여 참작하여 잘 짓도록 하라. 대개 교사(郊祀)를 지낼 날짜가 촉박하니, 모든 의절을 서둘러 의논하여 정하라고 예관에게 말하라."
"원구(圜丘)에 전(殿)을 짓는 일은 아무쪼록 옛 전례에 의거하여 참작하여 잘 짓도록 하라. 대개 교사(郊祀)를 지낼 날짜가 촉박하니, 모든 의절을 서둘러 의논하여 정하라고 예관에게 말하라."
헌부가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룄다.
간원이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룄다.
양사에게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하였다.
합계로 이운상의 일을 아뢰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전교하였다. "흠경각 야루(夜漏)에 막힌 곳이 있는 듯하다. 급수군(汲水軍) 5명을 병조로 하여금 서둘러 배정해 보내게 하여 상세히 교정하게 하라고 관상감에 말하라."
"흠경각 야루(夜漏)에 막힌 곳이 있는 듯하다. 급수군(汲水軍) 5명을 병조로 하여금 서둘러 배정해 보내게 하여 상세히 교정하게 하라고 관상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세조조의 교사 때에 이미 옥폐(玉幣)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무슨 옥폐인가? 속히 의논하여 처리하라. 그리고 원구단을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 원구단을 속히 옛 전례에 의거하여 수치(修治)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모두 서둘러 상세히 의논하여 처리하라."
"세조조의 교사 때에 이미 옥폐(玉幣)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무슨 옥폐인가? 속히 의논하여 처리하라. 그리고 원구단을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 원구단을 속히 옛 전례에 의거하여 수치(修治)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모두 서둘러 상세히 의논하여 처리하라."
전교하였다. "제주(題主)를 고칠 때에 서는가, 꿇어앉는가? 근래의 전례를 상고하여 명백하게 서계하라."
"제주(題主)를 고칠 때에 서는가, 꿇어앉는가? 근래의 전례를 상고하여 명백하게 서계하라."
전교하였다. "《실록》의 등본을 가지고 보면, 교제(郊祭)의 절목이 매우 많아서 정한 날짜에 미치지 못할 듯하다. 예관으로 하여금 속히 잘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실록》의 등본을 가지고 보면, 교제(郊祭)의 절목이 매우 많아서 정한 날짜에 미치지 못할 듯하다. 예관으로 하여금 속히 잘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
8월 18일 병진
전교하였다. "교단(郊壇)을 수치(修治)할 군사는 옛 전례에 의거하여 충정해 쓰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다만 들어갈 군사의 숫자를 다시 더욱 상세히 살펴 참작하여 충정하라고 예조에 말하라."
"교단(郊壇)을 수치(修治)할 군사는 옛 전례에 의거하여 충정해 쓰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 다만 들어갈 군사의 숫자를 다시 더욱 상세히 살펴 참작하여 충정하라고 예조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지난해의 내사(內司)의 북도 노비 신공을 작미(作米)하여 주창(州倉)으로 들여놓고 그 대신 병조의 가포(價布) 및 창미(倉米)를 상세히 살펴 속히 진배하라고 해조에 말하라."
"지난해의 내사(內司)의 북도 노비 신공을 작미(作米)하여 주창(州倉)으로 들여놓고 그 대신 병조의 가포(價布) 및 창미(倉米)를 상세히 살펴 속히 진배하라고 해조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세조조에 원구서(圜丘署) 녹사(錄事) 2명을 차출하였는데, 이는 무슨 관원이었는가? 지금도 차출할 수가 있는가? 또 각도의 방백들에게 크게 술잔치를 명하였다고 하니 잔치를 하사한 거조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시행할 수 있는가? 상세히 의논하여 아뢰라고 예관에게 말하라."
"세조조에 원구서(圜丘署) 녹사(錄事) 2명을 차출하였는데, 이는 무슨 관원이었는가? 지금도 차출할 수가 있는가? 또 각도의 방백들에게 크게 술잔치를 명하였다고 하니 잔치를 하사한 거조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시행할 수 있는가? 상세히 의논하여 아뢰라고 예관에게 말하라."
전교하였다. "세조조에 교사를 지낸 뒤 연회를 행할 때에 악장(樂章)이 있었다. 이번에도 옛 전례를 모방하여 상세히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예관에게 말하라."
"세조조에 교사를 지낸 뒤 연회를 행할 때에 악장(樂章)이 있었다. 이번에도 옛 전례를 모방하여 상세히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예관에게 말하라."
전교하였다. "세조조에 존호를 올린 뒤 내연(內宴)을 할 때에 공신의 어머니와 아내들이 모두 참여하였다. 이번에도 옛 전례를 따라 공신의 어머니와 아내들을 모두 참여시킬 일을 예관으로 하여금 미리 통지해 알려서 살펴 시행하게 하라."
"세조조에 존호를 올린 뒤 내연(內宴)을 할 때에 공신의 어머니와 아내들이 모두 참여하였다. 이번에도 옛 전례를 따라 공신의 어머니와 아내들을 모두 참여시킬 일을 예관으로 하여금 미리 통지해 알려서 살펴 시행하게 하라."
정원이 아뢰기를, "지난 5월 종묘 친제 후 음복연(飮福宴) 때에 시연관(侍宴官)에게 진설한 음식상이 매우 누추하여 상께서 친림하는 잔치를 보기에 매몰스럽게 하였으니, 매우 경악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있을 음복연과 상수연(上壽宴) 등의 각항의 연회 때에 만약 여전히 태만하고 소홀하게 하여 삼가 마음을 다하지 않는 자가 있을 경우에 예사롭게 추고해서는 결코 징계시키기가 어렵습니다. 각사의 담당 관원은 파직하고 담당 아전은 잡아가두어 무겁게 다스릴 일을 승전을 받들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지난 5월 종묘 친제 후 음복연(飮福宴) 때에 시연관(侍宴官)에게 진설한 음식상이 매우 누추하여 상께서 친림하는 잔치를 보기에 매몰스럽게 하였으니, 매우 경악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있을 음복연과 상수연(上壽宴) 등의 각항의 연회 때에 만약 여전히 태만하고 소홀하게 하여 삼가 마음을 다하지 않는 자가 있을 경우에 예사롭게 추고해서는 결코 징계시키기가 어렵습니다. 각사의 담당 관원은 파직하고 담당 아전은 잡아가두어 무겁게 다스릴 일을 승전을 받들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무과 별시 초시의 입격자를 모두 직부시킬 일을 대신에게 의논하여 아뢰라고 하교하셨습니다. 국가에서 과거를 시행하는 법은 매우 엄중한 것인데, 난리를 겪은 뒤로 무과의 외람스러움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전일 병조의 계사 안에, ‘무예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점점 줄어든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니, 참으로 작은 염려가 아닙니다. 지난번에 알성시의 무과 초시 입격자에게 모두 급제를 허락한 것은 그때의 규구가 가볍지 않아서 입격자의 숫자가 적었기 때문이었으니, 이것은 본디 한때의 은명에서 나온 것으로서 매양 이 일을 끌어다가 전례를 삼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번의 별시 초시는 규구가 자못 느슨하여 실로 알성시에 견줄 바가 아니고 입격자가 비록 액수에는 차지 않으나 양소에서 참방한 자들이 2백 80여 명이나 되는데, 전시(殿試)를 시행하지 않고 빠짐없이 모두 취하는 것은 매우 황당한 일로서 더없이 온당치 못한 일입니다. 더구나 이 일로 양사의 장관이 일찍이 알성을 하는 날에 이미 탑전에서 계달하였는데, 열흘도 지나지 않아서 이런 하교를 내리시니, 중대한 과거가 이로부터 폐추될 뿐만이 아니라 무예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요행을 바라고 날로 더욱 게을러져서 장차 권장하여 흥기시킬 방도가 없을 것이며, 언관을 대우하는 도리에 비추어 보더라도 또한 아주 온당치 못한 것입니다. 신들이 근밀의 직임을 맡고 있기 때문에 구구한 심정을 일에 따라 진달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양사 장관의 계사를 상세히 고찰하여 서계하라." 하였다.
"무과 별시 초시의 입격자를 모두 직부시킬 일을 대신에게 의논하여 아뢰라고 하교하셨습니다. 국가에서 과거를 시행하는 법은 매우 엄중한 것인데, 난리를 겪은 뒤로 무과의 외람스러움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전일 병조의 계사 안에, ‘무예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점점 줄어든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니, 참으로 작은 염려가 아닙니다. 지난번에 알성시의 무과 초시 입격자에게 모두 급제를 허락한 것은 그때의 규구가 가볍지 않아서 입격자의 숫자가 적었기 때문이었으니, 이것은 본디 한때의 은명에서 나온 것으로서 매양 이 일을 끌어다가 전례를 삼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번의 별시 초시는 규구가 자못 느슨하여 실로 알성시에 견줄 바가 아니고 입격자가 비록 액수에는 차지 않으나 양소에서 참방한 자들이 2백 80여 명이나 되는데, 전시(殿試)를 시행하지 않고 빠짐없이 모두 취하는 것은 매우 황당한 일로서 더없이 온당치 못한 일입니다. 더구나 이 일로 양사의 장관이 일찍이 알성을 하는 날에 이미 탑전에서 계달하였는데, 열흘도 지나지 않아서 이런 하교를 내리시니, 중대한 과거가 이로부터 폐추될 뿐만이 아니라 무예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요행을 바라고 날로 더욱 게을러져서 장차 권장하여 흥기시킬 방도가 없을 것이며, 언관을 대우하는 도리에 비추어 보더라도 또한 아주 온당치 못한 것입니다. 신들이 근밀의 직임을 맡고 있기 때문에 구구한 심정을 일에 따라 진달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양사 장관의 계사를 상세히 고찰하여 서계하라."
하였다.
이운상의 일을 합계하니, 윤허하지 않는다고 답하였다.
헌부가 박엽과 윤영현의 일을 아룄다.
간원이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룄다.
양사에게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김제남, 최기, 박계운, 김기의 추형 단자를 입계하니, 한찬남에게 전교하기를, "추형은 20일 이후에 시행하라." 하였다.
"추형은 20일 이후에 시행하라."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대역부도의 역적을 때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참수하는 것은 참으로 왕법은 지극히 엄하고 역적 토벌은 시급한 일이어서 잠시도 지체시켜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4명의 역적을 문 밖에다 시체를 내다 놓은 지가 이미 수십일이 지나도록 아직도 정형을 시행하지 아니하였는데 지금 또 날짜를 물리어, 역적 토벌이 점점 완만해지고 왕법이 않으니, 신들은 삼가 애통하게 여깁니다. 즉시 추형을 하여 역적 토벌하는 법을 엄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김제남(金悌男)은 종묘에 고하고 교서를 반포할 날짜를 계하한 뒤에 추형하라." 하였다.
"대역부도의 역적을 때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참수하는 것은 참으로 왕법은 지극히 엄하고 역적 토벌은 시급한 일이어서 잠시도 지체시켜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4명의 역적을 문 밖에다 시체를 내다 놓은 지가 이미 수십일이 지나도록 아직도 정형을 시행하지 아니하였는데 지금 또 날짜를 물리어, 역적 토벌이 점점 완만해지고 왕법이 않으니, 신들은 삼가 애통하게 여깁니다. 즉시 추형을 하여 역적 토벌하는 법을 엄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김제남(金悌男)은 종묘에 고하고 교서를 반포할 날짜를 계하한 뒤에 추형하라."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김제남은 종묘에 고하고 교서를 반포할 날짜를 계하한 뒤에 추형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김제남을, 종묘에 고하고 교서를 반포할 날짜를 계하한 뒤에 추형한다면, 최기 등을 추형하는 일은 어떻게 합니까? 종묘에 고하고 교서를 반포할 날짜를 예관으로 하여금 즉시 잡게 할까요?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종묘에 고하고 교서를 반포할 날짜를 잡아 계하한 뒤에 모두 함께 추형하라." 하였다.
"김제남은 종묘에 고하고 교서를 반포할 날짜를 계하한 뒤에 추형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김제남을, 종묘에 고하고 교서를 반포할 날짜를 계하한 뒤에 추형한다면, 최기 등을 추형하는 일은 어떻게 합니까? 종묘에 고하고 교서를 반포할 날짜를 예관으로 하여금 즉시 잡게 할까요?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종묘에 고하고 교서를 반포할 날짜를 잡아 계하한 뒤에 모두 함께 추형하라."
하였다.
존숭 도감이 아뢰기를, "비망기에, ‘시용련(時用輦)을 9월 15일을 지난 뒤에 수리하여 고칠 일을 존숭 도감에게 말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시용련은 알성을 지난 뒤에 수리하여 고칠 일로 일찍이 계하하셨기 때문에 그 뒤에 이미 화공(畫工)을 불러 일을 시작하였으므로 지금 중지하기는 어렵습니다. 9월 3일 이전에 또한 일을 마칠 수 있으니, 그대로 보수하게 하소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시용련은 마땅히 거동을 지난 뒤에 수리해 두었어야 하는데, 칠이 벗겨진 곳을 다시 칠하지 아니하고 두었다가 갑자기 수리한다는 것은 매우 온당치 못한 일이다. 존호를 올리기 전에는 대련(大輦)을 사용할 수가 없으니, 시용련을 속히 보수하여 다시 칠을 하여 사용하도록 하라." 하였다.
"비망기에, ‘시용련(時用輦)을 9월 15일을 지난 뒤에 수리하여 고칠 일을 존숭 도감에게 말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시용련은 알성을 지난 뒤에 수리하여 고칠 일로 일찍이 계하하셨기 때문에 그 뒤에 이미 화공(畫工)을 불러 일을 시작하였으므로 지금 중지하기는 어렵습니다. 9월 3일 이전에 또한 일을 마칠 수 있으니, 그대로 보수하게 하소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시용련은 마땅히 거동을 지난 뒤에 수리해 두었어야 하는데, 칠이 벗겨진 곳을 다시 칠하지 아니하고 두었다가 갑자기 수리한다는 것은 매우 온당치 못한 일이다. 존호를 올리기 전에는 대련(大輦)을 사용할 수가 없으니, 시용련을 속히 보수하여 다시 칠을 하여 사용하도록 하라."
하였다.
8월 19일 정사
전교하였다. "책문(冊文) 안에 선왕과 공성 왕후(恭聖王后)는 단지 ‘삼가 책보를 받들어 존호를 더 올립니다.[謹奉冊寶加上尊號] 운운’이라고 하였는데, 의인 왕후(懿仁王后)의 책문 안에는 ‘삼가 백관을 거느리고[謹率百官] 운운’이라고 하였다. 같은 형식으로 해야 마땅할 듯하니, 대신과 대제학으로 하여금 감정(勘定)하여 사용하도록 하라."
"책문(冊文) 안에 선왕과 공성 왕후(恭聖王后)는 단지 ‘삼가 책보를 받들어 존호를 더 올립니다.[謹奉冊寶加上尊號] 운운’이라고 하였는데, 의인 왕후(懿仁王后)의 책문 안에는 ‘삼가 백관을 거느리고[謹率百官] 운운’이라고 하였다. 같은 형식으로 해야 마땅할 듯하니, 대신과 대제학으로 하여금 감정(勘定)하여 사용하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나라의 중대한 일은 제사와 전쟁인데, 지난 5월 친제 때에 제사에 참여한 종실과 문무 백관들의 숫자가 매우 적어서 보기에 매몰스러웠다. 이번 추숭(追崇) 때에는 미리 통지해 알려서, 분명하게 늙고 병들었거나 유고하여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알고 있는 자 이외에는, 참여하지 않는 자를 모두 파직할 일을 각별히 승전을 받들어서 시행하고, 아울러 헌부에 말하여 규핵을 하도록 하라."
"나라의 중대한 일은 제사와 전쟁인데, 지난 5월 친제 때에 제사에 참여한 종실과 문무 백관들의 숫자가 매우 적어서 보기에 매몰스러웠다. 이번 추숭(追崇) 때에는 미리 통지해 알려서, 분명하게 늙고 병들었거나 유고하여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알고 있는 자 이외에는, 참여하지 않는 자를 모두 파직할 일을 각별히 승전을 받들어서 시행하고, 아울러 헌부에 말하여 규핵을 하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이달 15일 선수 도감 거마소(車馬所)에 불을 낸 관원을 추고하고 하인은 잡아가두고 무겁게 다스리도록 하라. 지금 이후로는 불을 금지하는 등의 일을 각별히 신칙하여 경계하고 삼가라고 본도감에 말하라."
"이달 15일 선수 도감 거마소(車馬所)에 불을 낸 관원을 추고하고 하인은 잡아가두고 무겁게 다스리도록 하라. 지금 이후로는 불을 금지하는 등의 일을 각별히 신칙하여 경계하고 삼가라고 본도감에 말하라."
예조가 아뢰기를, "공성 왕후의 존호를 명순(明順)으로 계하하셨습니다. 오늘 종묘에 올린 등록을 다시 상고하였더니, 정희 왕후의 존호를 처음에 명숙(明淑)을 썼다가 뒤에 명순(明順)으로 글자를 고쳤습니다. 이 두 글자가 비록 시호는 아니더라도 지금 다시 사용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기 때문에 오늘 도감이 모두 모였을 때에 대신에게 물어 결정하여 명(明) 자 아래에 고쳐 부표하여 들일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공성 왕후의 존호를 명순(明順)으로 계하하셨습니다. 오늘 종묘에 올린 등록을 다시 상고하였더니, 정희 왕후의 존호를 처음에 명숙(明淑)을 썼다가 뒤에 명순(明順)으로 글자를 고쳤습니다. 이 두 글자가 비록 시호는 아니더라도 지금 다시 사용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기 때문에 오늘 도감이 모두 모였을 때에 대신에게 물어 결정하여 명(明) 자 아래에 고쳐 부표하여 들일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예조가 아뢰기를, "지난해에 공성왕후를 추숭한 옥보(玉寶)를 전각(篆刻)할 때에 자숙 단인 경렬 공성(慈淑端仁敬烈恭聖)이라고 새겼습니다. 대개 자숙단인은 휘호이고 경렬은 존호이고 공성은 시호입니다. 그래서 휘호를 먼저 쓰고 존호를 다음에 쓰고 시호를 마지막에 써서 단지 그 앞뒤의 차례를 취한 것입니다. 지금 선종 대왕(宣宗大王)의 옥보 전각을 마땅히 ‘선조 소경 정륜 입극 성덕 홍렬 지성 대의 격천 희운 계통 광헌 응도 융조 현문 의무 성예 달효 대왕(宣祖昭敬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義格天熙運啓統光憲凝道隆祚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이라고 옥보에 쓴다면 존호가 에 있고 휘호가 아래에 있어서 전일 공성 왕후의 옥보에 전각을 했던 바와 다릅니다. 이번에는 선종 대왕의 옥보에 전각을 했던 바대로 경렬 명순 자숙 단인 공성 왕후라고 옥보에 써야 하겠고 제주(題主)도 차례에 따라 쓰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대신 및 도감의 여러 당상들의 뜻도 이러하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선조(宣祖)의 옥보가 글자 수가 매우 많은데 어떤 전자(篆字)로 써서 새길 것인가? 자체(字體)를 상세히 써서 들이라." 하였다.
"지난해에 공성왕후를 추숭한 옥보(玉寶)를 전각(篆刻)할 때에 자숙 단인 경렬 공성(慈淑端仁敬烈恭聖)이라고 새겼습니다. 대개 자숙단인은 휘호이고 경렬은 존호이고 공성은 시호입니다. 그래서 휘호를 먼저 쓰고 존호를 다음에 쓰고 시호를 마지막에 써서 단지 그 앞뒤의 차례를 취한 것입니다. 지금 선종 대왕(宣宗大王)의 옥보 전각을 마땅히 ‘선조 소경 정륜 입극 성덕 홍렬 지성 대의 격천 희운 계통 광헌 응도 융조 현문 의무 성예 달효 대왕(宣祖昭敬正倫立極盛德洪烈至誠大義格天熙運啓統光憲凝道隆祚顯文毅武聖睿達孝大王)’이라고 옥보에 쓴다면 존호가 에 있고 휘호가 아래에 있어서 전일 공성 왕후의 옥보에 전각을 했던 바와 다릅니다. 이번에는 선종 대왕의 옥보에 전각을 했던 바대로 경렬 명순 자숙 단인 공성 왕후라고 옥보에 써야 하겠고 제주(題主)도 차례에 따라 쓰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대신 및 도감의 여러 당상들의 뜻도 이러하므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선조(宣祖)의 옥보가 글자 수가 매우 많은데 어떤 전자(篆字)로 써서 새길 것인가? 자체(字體)를 상세히 써서 들이라."
하였다.
존숭 도감이 아뢰기를, "존숭을 할 때의 양전의 호갑의 장식을 이미 입사(入絲)로 하였습니다. 보통(寶筒)도 은(銀)으로 만들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두 존호를 모두 은통(銀筒)으로 하는 것은 폐단이 있게 될 듯하다. 한 번은 은통으로 하고 한 번은 두석통(豆錫筒)으로 하는 것이 일이 또한 온편하고 쉽겠으니, 다시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존숭을 할 때의 양전의 호갑의 장식을 이미 입사(入絲)로 하였습니다. 보통(寶筒)도 은(銀)으로 만들 뜻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두 존호를 모두 은통(銀筒)으로 하는 것은 폐단이 있게 될 듯하다. 한 번은 은통으로 하고 한 번은 두석통(豆錫筒)으로 하는 것이 일이 또한 온편하고 쉽겠으니, 다시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양사가 이운상의 일을 합계하고, 아뢰기를, "교(郊)는 하늘을 제사하는 것으로서 오직 천자만이 시행할 수가 있는 것이요 제후가 제사지낼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지금 남교(南郊)의 친제를 날을 정하여 시행하려는 참이어서 백관과 유사들이 모두들 분주히 이바지하기에 겨를이 없으니, 매우 성대한 거조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이 거조는 비례(非禮)에 가깝고 오늘날 반드시 거행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 세조조에서 우연히 한 번 거행하기는 하였으나 그 이전에 전례가 없었고 이후에도 계속한 바가 없었습니다. 이는 한때의 독단에 불과한 것으로서 참으로 후손이 따라 행할 바가 아닙니다. 그 당시에 정난(靖難)의 거조가 있었으나 오늘날의 난을 평정한 일에 견주어 보면, 명위(名位)의 명정(明正)함이 다르고 때와 형세의 차이가 있어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어찌 이것을 끌어다 전례를 삼아서 반드시 남교에 제사를 지낸 뒤에 휘호를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중국에서는 우리 나라를 내복(內服)과 같이 보고 성상께서 상국을 섬기는 것도 정성과 예절이 모두 극진하니, 천자를 핍박하는 참람한 예를 행하여 천자에 견주려고 했다는 비방을 불러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중국에 어찌 정응태(丁應泰)가 없겠으며 우리 나라에 어찌 이운상(李雲祥)이 없겠습니까. 한 번 예의에 실수를 하면 온갖 해가 뒤따르게 될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현재의 물력이 탕갈된 것은 논할 겨를도 없습니다. 남교 친제의 명을 속히 정지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 교사(郊祀)에 대한 일은 이미 조종조의 고사가 있으니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교(郊)는 하늘을 제사하는 것으로서 오직 천자만이 시행할 수가 있는 것이요 제후가 제사지낼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지금 남교(南郊)의 친제를 날을 정하여 시행하려는 참이어서 백관과 유사들이 모두들 분주히 이바지하기에 겨를이 없으니, 매우 성대한 거조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이 거조는 비례(非禮)에 가깝고 오늘날 반드시 거행해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예전에 세조조에서 우연히 한 번 거행하기는 하였으나 그 이전에 전례가 없었고 이후에도 계속한 바가 없었습니다. 이는 한때의 독단에 불과한 것으로서 참으로 후손이 따라 행할 바가 아닙니다. 그 당시에 정난(靖難)의 거조가 있었으나 오늘날의 난을 평정한 일에 견주어 보면, 명위(名位)의 명정(明正)함이 다르고 때와 형세의 차이가 있어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어찌 이것을 끌어다 전례를 삼아서 반드시 남교에 제사를 지낸 뒤에 휘호를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중국에서는 우리 나라를 내복(內服)과 같이 보고 성상께서 상국을 섬기는 것도 정성과 예절이 모두 극진하니, 천자를 핍박하는 참람한 예를 행하여 천자에 견주려고 했다는 비방을 불러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중국에 어찌 정응태(丁應泰)가 없겠으며 우리 나라에 어찌 이운상(李雲祥)이 없겠습니까. 한 번 예의에 실수를 하면 온갖 해가 뒤따르게 될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현재의 물력이 탕갈된 것은 논할 겨를도 없습니다. 남교 친제의 명을 속히 정지시키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 교사(郊祀)에 대한 일은 이미 조종조의 고사가 있으니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헌부가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고, 또 아뢰기를, "근래에 과거가 날로 점점 가벼워지는데 무과가 더욱 심합니다. 겨우 초시에 참방하고는 직부되기를 희망하니, 이것이 어찌 알성시 때에 특명을 내렸던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상의 명에서 나온 것도 옳지 못한 일인데 심지어 아래에서 직부를 계청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공변되게 법을 만들어도 그 폐단이 오히려 사사롭게 되는 것인데 사심을 가지고 법을 만든다면 폐단을 장차 어떻게 구제하겠습니까. 급제한 무인이 무려 1만여 명이나 되는데 만약 또 많은 숫자를 더 취한다면 군액(軍額)은 날로 줄어들고 한가하게 노는 자들만 점점 더 많아질 것입니다. 설사 위급한 일이 일어나 군역에 내보내야 할 일이 있더라도 시수(矢數)를 녹명(錄名)하여 뽑아보내는 규정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굳이 명칭을 출신(出身)이라고 하여 전장에 내보내야 하겠습니까. 구구한 작은 은혜로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계속하기 어려운 폐단을 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해조로 하여금 중시와 별시를 모두 취하는 공사를 거행하지 못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일은 마땅히 헤아려 처리하겠다." 하였다.
"근래에 과거가 날로 점점 가벼워지는데 무과가 더욱 심합니다. 겨우 초시에 참방하고는 직부되기를 희망하니, 이것이 어찌 알성시 때에 특명을 내렸던 데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상의 명에서 나온 것도 옳지 못한 일인데 심지어 아래에서 직부를 계청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공변되게 법을 만들어도 그 폐단이 오히려 사사롭게 되는 것인데 사심을 가지고 법을 만든다면 폐단을 장차 어떻게 구제하겠습니까. 급제한 무인이 무려 1만여 명이나 되는데 만약 또 많은 숫자를 더 취한다면 군액(軍額)은 날로 줄어들고 한가하게 노는 자들만 점점 더 많아질 것입니다. 설사 위급한 일이 일어나 군역에 내보내야 할 일이 있더라도 시수(矢數)를 녹명(錄名)하여 뽑아보내는 규정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굳이 명칭을 출신(出身)이라고 하여 전장에 내보내야 하겠습니까. 구구한 작은 은혜로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계속하기 어려운 폐단을 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해조로 하여금 중시와 별시를 모두 취하는 공사를 거행하지 못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일은 마땅히 헤아려 처리하겠다."
하였다.
간원이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고, 또 아뢰기를, "난리 이후의 무과의 폐단을 어찌 차마 말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혹 나라에 위급한 일이 있다고 하여 수천 명씩이나 취하기도 하였고 혹 노고를 보답한다고 하여 또한 수백 명을 취하기도 하였습니다. 기타 종종 사람을 취한 것이 그 숫자를 알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인재는 나오지 않고 군액은 날로 줄어서 그 폐단이 이미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더구나 관작은 한도가 있는 것인데 출신은 수없이 많아 조발하여 쓰지를 못하니 원망하는 사람이 또한 많습니다. 그래서 식견있는 사람들이 한심하게 여긴 지가 오래입니다. 그런데 지금 또 3백 명의 초시 입격자들에게 모두 직부를 허락한다면, 그 초시에 참방한 자들이야 참으로 원하는 바이겠습니다만, 이것이 어찌 국가가 재능으로 인재를 취하는 뜻이겠습니까. 해조의 아울러 취하는 공사를 거행하지 말게 하고, 법대로 복시를 시행하여 과거의 법규를 중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일은 헤아려 처리하겠다." 하였다.
"난리 이후의 무과의 폐단을 어찌 차마 말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혹 나라에 위급한 일이 있다고 하여 수천 명씩이나 취하기도 하였고 혹 노고를 보답한다고 하여 또한 수백 명을 취하기도 하였습니다. 기타 종종 사람을 취한 것이 그 숫자를 알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인재는 나오지 않고 군액은 날로 줄어서 그 폐단이 이미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더구나 관작은 한도가 있는 것인데 출신은 수없이 많아 조발하여 쓰지를 못하니 원망하는 사람이 또한 많습니다. 그래서 식견있는 사람들이 한심하게 여긴 지가 오래입니다.
그런데 지금 또 3백 명의 초시 입격자들에게 모두 직부를 허락한다면, 그 초시에 참방한 자들이야 참으로 원하는 바이겠습니다만, 이것이 어찌 국가가 재능으로 인재를 취하는 뜻이겠습니까. 해조의 아울러 취하는 공사를 거행하지 말게 하고, 법대로 복시를 시행하여 과거의 법규를 중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일은 헤아려 처리하겠다."
하였다.
이창후(李昌後)를 사헌부 집의로, 윤인(尹訒)을 사간원 사간으로, 김질간(金質幹)을 시강원 보덕으로, 황익중(黃益中)을 사헌부 장령으로, 오여벌(吳汝橃)을 시강원 문학으로, 홍요검(洪堯儉)을 사간원 정언으로, 김세렴(金世濂)을 시강원 사서로 삼았다.
황해 병사 정항(鄭沆)이 사조(辭朝)하니, 왕이 인견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본도는 인심을 헤아리기가 어렵고 역적의 변고가 누차 일어났는데 어떻게 진압하여 안정시킬 것인가?" 하니, 정항이 아뢰기를, "본도는 인심이 이와 같아서 선량한 백성이 있더라도 편안히 살 수가 없습니다. 신이 마땅히 깨우쳐 타일러서 진정되도록 하겠습니다." 하였다. 입시한 승지 임취정(任就正)이 아뢰기를, "승지 유대건(兪大建)의 친척이 해서(海西)에 있는데 지금 대건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 지역에서 무과 출신자들이 단결하여 도적질을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출신의 신분으로서 도적질을 하는 자는 필시 예사로운 도적이 아닐 것입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유대건의 친척이 어느 고을에 있으며 어떠한 사람인가?" 하였는데, 임취정이 아뢰기를, "이름은 모르겠습니다만, 신천(信川)에 산다고 합니다." 하였다. 정항이 아뢰기를, "신도 들었습니다. 이것이 비록 사서(私書) 가운데에 있는 말이기는 하나 작은 도적이 아닌 듯합니다. 별성(別星)이라고 칭탁하기도 하고 사행(使行)이라고 칭탁하기도 하며 여염에 횡행하고 있는데 두 도적이 이미 체포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신이 징계하여 다스려서 조금도 늦추어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하였다. 임취정이 아뢰기를, "해서 사람들이 성 쌓는 일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이런 일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한 도를 기찰하여 역적을 체포하는 일을 모름지기 마음을 다해 거행해야 한다." 하니, 정항이 아뢰기를, "신은 역변이 일어나던 처음에 포도 대장이 되었는데 지금 또 대장으로서 병사가 되었으니, 도망다니며 숨어지내는 이러한 역적들을 감히 마음을 다하여 체포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정항은 일찍이 강화 부사로 있을 때에 영창 대군을 쳐죽인 자이다.】
"본도는 인심을 헤아리기가 어렵고 역적의 변고가 누차 일어났는데 어떻게 진압하여 안정시킬 것인가?"
하니, 정항이 아뢰기를,
"본도는 인심이 이와 같아서 선량한 백성이 있더라도 편안히 살 수가 없습니다. 신이 마땅히 깨우쳐 타일러서 진정되도록 하겠습니다."
하였다. 입시한 승지 임취정(任就正)이 아뢰기를,
"승지 유대건(兪大建)의 친척이 해서(海西)에 있는데 지금 대건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 지역에서 무과 출신자들이 단결하여 도적질을 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출신의 신분으로서 도적질을 하는 자는 필시 예사로운 도적이 아닐 것입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유대건의 친척이 어느 고을에 있으며 어떠한 사람인가?"
하였는데, 임취정이 아뢰기를,
"이름은 모르겠습니다만, 신천(信川)에 산다고 합니다."
하였다. 정항이 아뢰기를,
"신도 들었습니다. 이것이 비록 사서(私書) 가운데에 있는 말이기는 하나 작은 도적이 아닌 듯합니다. 별성(別星)이라고 칭탁하기도 하고 사행(使行)이라고 칭탁하기도 하며 여염에 횡행하고 있는데 두 도적이 이미 체포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신이 징계하여 다스려서 조금도 늦추어지지 않게 하겠습니다."
하였다. 임취정이 아뢰기를,
"해서 사람들이 성 쌓는 일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이런 일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한 도를 기찰하여 역적을 체포하는 일을 모름지기 마음을 다해 거행해야 한다."
하니, 정항이 아뢰기를,
"신은 역변이 일어나던 처음에 포도 대장이 되었는데 지금 또 대장으로서 병사가 되었으니, 도망다니며 숨어지내는 이러한 역적들을 감히 마음을 다하여 체포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정항은 일찍이 강화 부사로 있을 때에 영창 대군을 쳐죽인 자이다.】
8월 20일 무오
승지가 아뢰기를, "금부의 초기(草記)를 삼가 보건대, 각도의 희자(戲子)들이 네 번이나 행회(行會)를 하도록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의 습의(習儀)가 단지 7일밖에 안 남았는데 나태하기가 이러하니 각도의 감사를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금부의 초기(草記)를 삼가 보건대, 각도의 희자(戲子)들이 네 번이나 행회(行會)를 하도록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세 번째의 습의(習儀)가 단지 7일밖에 안 남았는데 나태하기가 이러하니 각도의 감사를 추고하소서."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근래에 양사가 정사(呈辭)하기를 서로 뒤질세라 다투어 하니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황급하게 날마다 어지러이 정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마음을 다하여 나라에 봉사한다는 뜻이 전혀 없다. 이러한 뜻을 정원은 알라."
"근래에 양사가 정사(呈辭)하기를 서로 뒤질세라 다투어 하니 무슨 까닭으로 이렇게 황급하게 날마다 어지러이 정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마음을 다하여 나라에 봉사한다는 뜻이 전혀 없다. 이러한 뜻을 정원은 알라."
병조가 아뢰기를, "비망기에, ‘무과 별시 초시 입격자를 모두 직부시킬 일을 대신에게 의논하여 아뢰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대신에게 의논하였더니, 영의정 기자헌은, ‘낙상을 한 뒤로 허리의 통증이 매우 심하여, 알성을 하던 날에, 출입하기가 매우 민망하다는 뜻으로 정원에 통지하여 입계하게 하였더니, 「대신은 참여하지 않아서는 안 되니 병을 참고 힘써 참여하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이 죽음을 참고 들어와 참여하였습니다. 뜰에 들어갈 때와 내려올 때에 별감(別監) 두 사람이 와서 부축을 하였고 당에 오르고 내릴 때에는 내시 두 사람이 나와 부축을 하였습니다. 성상의 은혜가 이토록 지극하시니 감격하고 황공하여 몸둘 곳을 몰랐습니다. 시험은 지난해의 전례에 의거하여 시관 30명을 3명씩 1운(運)을 삼아 10운으로 나누어서 나누어 고시하게 하고, 신은 오래 앉아 있으려니 통증을 견디기 어려워서 밖에 나가서 쉬었습니다. 독권관(讀券宦)들이 거듭 말을 전해오기에 신이 부득불 들어갔는데, 병중인지라 정신이 매우 흐릿하여 한 장(張)도 입격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여러 시관들이 각각 그 가운데에서 취할 만한 글 약간 장을 가지고 합고(合考)를 하였는데 합고할 때에 일체를 시관들의 취사에 맡겼습니다. 모두들 ‘불가’라고 하면 신도 ‘불가’라고 하였고 모두가 ‘가’라 하면 신도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신의 아들과 조카의 작품이 요행히 모두 참방하여 1등과 2등을 차지하기까지 하였으니, 신은 놀라움을 못하였습니다. 그날 바로 진계하자니 불가한 일이었고, 대죄하자니 마치 신으로 인하여 그 글을 선출하여 칭찬을 해서 1,2등을 하게 한 것처럼 되기 때문에 이 또한 사실이 아니어서 말도 못하고 날만 보냈습니다. 많은 시관들이 신의 힘이 조금도 작용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겠으나 신의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이번 수의하는 일은, 신의 아들이 마침 무과 초시에 참방을 하였고 신은 알성할 때에 독권관으로 있다가 불행을 당하였으므로, 말하기가 혐의스러워서 감히 의논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다른 대신에게 하문하여 처리하시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성상께서 알아서 처리하소서.’ 하였습니다. 대신의 뜻은 이와 같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대신의 뜻이 이와 같으니 전례대로 전시(殿試)를 보이도록 하라." 하였다.
"비망기에, ‘무과 별시 초시 입격자를 모두 직부시킬 일을 대신에게 의논하여 아뢰라.’고 전교하셨습니다. 대신에게 의논하였더니, 영의정 기자헌은, ‘낙상을 한 뒤로 허리의 통증이 매우 심하여, 알성을 하던 날에, 출입하기가 매우 민망하다는 뜻으로 정원에 통지하여 입계하게 하였더니, 「대신은 참여하지 않아서는 안 되니 병을 참고 힘써 참여하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이 죽음을 참고 들어와 참여하였습니다. 뜰에 들어갈 때와 내려올 때에 별감(別監) 두 사람이 와서 부축을 하였고 당에 오르고 내릴 때에는 내시 두 사람이 나와 부축을 하였습니다. 성상의 은혜가 이토록 지극하시니 감격하고 황공하여 몸둘 곳을 몰랐습니다. 시험은 지난해의 전례에 의거하여 시관 30명을 3명씩 1운(運)을 삼아 10운으로 나누어서 나누어 고시하게 하고, 신은 오래 앉아 있으려니 통증을 견디기 어려워서 밖에 나가서 쉬었습니다. 독권관(讀券宦)들이 거듭 말을 전해오기에 신이 부득불 들어갔는데, 병중인지라 정신이 매우 흐릿하여 한 장(張)도 입격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여러 시관들이 각각 그 가운데에서 취할 만한 글 약간 장을 가지고 합고(合考)를 하였는데 합고할 때에 일체를 시관들의 취사에 맡겼습니다. 모두들 ‘불가’라고 하면 신도 ‘불가’라고 하였고 모두가 ‘가’라 하면 신도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신의 아들과 조카의 작품이 요행히 모두 참방하여 1등과 2등을 차지하기까지 하였으니, 신은 놀라움을 못하였습니다. 그날 바로 진계하자니 불가한 일이었고, 대죄하자니 마치 신으로 인하여 그 글을 선출하여 칭찬을 해서 1,2등을 하게 한 것처럼 되기 때문에 이 또한 사실이 아니어서 말도 못하고 날만 보냈습니다. 많은 시관들이 신의 힘이 조금도 작용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겠으나 신의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이번 수의하는 일은, 신의 아들이 마침 무과 초시에 참방을 하였고 신은 알성할 때에 독권관으로 있다가 불행을 당하였으므로, 말하기가 혐의스러워서 감히 의논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다른 대신에게 하문하여 처리하시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성상께서 알아서 처리하소서.’ 하였습니다. 대신의 뜻은 이와 같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대신의 뜻이 이와 같으니 전례대로 전시(殿試)를 보이도록 하라."
하였다.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비망기에, ‘수리를 하는 데에 사용하고 남은 재목과 기와를 보관해 둘 곳을 속히 마련하되, 인왕산 아래와 경복궁 모처 중에서 선택하여 임시 가옥을 잘 지어 두껍게 지붕을 이어서 저장해 두었다가 뒷날의 용도에 사용하게 할 일을 속히 잘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처음부터 기와를 굽는 일은 신 이충(李沖)이 담당하였습니다. 사전(四殿) 및 각 아문은 이미 모두 덮었고 지금 비록 덮지 못한 곳이 약간 있기는 하나 20여 눌(訥)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까지 계산해서 제하고 나면, 남은 것들의 숫자는 대아련(大牙鍊)이 거의 70여 눌이고 중아련(中牙鍊)도 그 정도이며 상와(常瓦)도 60여 눌이나 됩니다. 모두 합해서 계산하면 2백여 눌이 넘습니다. 방전(方磚)이 20여 눌이며 반전(半磚)이 15, 16눌이며 방초(防草)가 4눌입니다. 혈전(穴磚)이 1백여 장(張)이며 용두(龍頭), 토수(土首), 연가(烟家), 잡상(雜像) 등의 물품이 또한 많이 남았습니다. 이것들은 다 아주 긴요하게 쓰이는 물품이니 모두 함께 모아 저장해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해와 올해에 성안의 방민(坊民)과 경강(京江)의 부(馬夫)들이 운송을 하느라 지쳐 곳곳에서 원망을 하고 있으니 지금 또 이들에게 책임을 맡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위의 각종 기와 및 잡상 등의 물품들은, 마태(馬駄)로 맞추어 계산해 보면 9천 5백여 바리가 되고 수레로 맞추어 계산해 보면 1천 9백여 부(部)가 되는데 그 운송비도 쌀로 계산하면 4백여 석이고 목면으로 계산하면 25동쯤 됩니다. 도감에 쓰고 남은 쌀과 포목이 넉넉하게 있으니 쌀과 목면으로 이렇게 계산하여 운송비용을 지급하고 실어다 수성동(壽城洞) 공가(空家)로 들여다가 수직(守直)하게 하면 허술하게 될 걱정도 없을 듯하고 내외의 도성 백성들도 작으나마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 일은 도감이 파국(罷局)한 뒤에는 때맞춰 수송해 들이지 못할 것이니 이달 안으로 서둘러 거행하고, 수직 내관으로 하여금 적당한 숫자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엄하게 지키게 하라. 금군(禁軍) 두세 명을 아울러 차정해 보내서 십분 착실하게 지키도록 하라." 하였다.
"비망기에, ‘수리를 하는 데에 사용하고 남은 재목과 기와를 보관해 둘 곳을 속히 마련하되, 인왕산 아래와 경복궁 모처 중에서 선택하여 임시 가옥을 잘 지어 두껍게 지붕을 이어서 저장해 두었다가 뒷날의 용도에 사용하게 할 일을 속히 잘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처음부터 기와를 굽는 일은 신 이충(李沖)이 담당하였습니다. 사전(四殿) 및 각 아문은 이미 모두 덮었고 지금 비록 덮지 못한 곳이 약간 있기는 하나 20여 눌(訥)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까지 계산해서 제하고 나면, 남은 것들의 숫자는 대아련(大牙鍊)이 거의 70여 눌이고 중아련(中牙鍊)도 그 정도이며 상와(常瓦)도 60여 눌이나 됩니다. 모두 합해서 계산하면 2백여 눌이 넘습니다. 방전(方磚)이 20여 눌이며 반전(半磚)이 15, 16눌이며 방초(防草)가 4눌입니다. 혈전(穴磚)이 1백여 장(張)이며 용두(龍頭), 토수(土首), 연가(烟家), 잡상(雜像) 등의 물품이 또한 많이 남았습니다. 이것들은 다 아주 긴요하게 쓰이는 물품이니 모두 함께 모아 저장해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지난해와 올해에 성안의 방민(坊民)과 경강(京江)의 부(馬夫)들이 운송을 하느라 지쳐 곳곳에서 원망을 하고 있으니 지금 또 이들에게 책임을 맡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위의 각종 기와 및 잡상 등의 물품들은, 마태(馬駄)로 맞추어 계산해 보면 9천 5백여 바리가 되고 수레로 맞추어 계산해 보면 1천 9백여 부(部)가 되는데 그 운송비도 쌀로 계산하면 4백여 석이고 목면으로 계산하면 25동쯤 됩니다. 도감에 쓰고 남은 쌀과 포목이 넉넉하게 있으니 쌀과 목면으로 이렇게 계산하여 운송비용을 지급하고 실어다 수성동(壽城洞) 공가(空家)로 들여다가 수직(守直)하게 하면 허술하게 될 걱정도 없을 듯하고 내외의 도성 백성들도 작으나마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이 일은 도감이 파국(罷局)한 뒤에는 때맞춰 수송해 들이지 못할 것이니 이달 안으로 서둘러 거행하고, 수직 내관으로 하여금 적당한 숫자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엄하게 지키게 하라. 금군(禁軍) 두세 명을 아울러 차정해 보내서 십분 착실하게 지키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근래 배설 사약(排設司鑰)들이 근실하지 못하고 나태하여 어용(御用) 장막(帳幕)을 외처(外處)에 사사로이 사용했다는 말이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매우 해괴한 일이다. 지난해 부묘할 때에 사용했던 차일(遮日) 장막을 다른 곳에 사용하여 모두 더럽게 되었다고 한다. 속히 세척해서 사용하되 보기에 누추하면 서둘러 다시 만들어 쓰라고 해조에 말하라. 해당 배설 사약 이덕두(李德斗)는 각별히 추고하여 다른 사람들을 경계시키도록 하라."
"근래 배설 사약(排設司鑰)들이 근실하지 못하고 나태하여 어용(御用) 장막(帳幕)을 외처(外處)에 사사로이 사용했다는 말이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매우 해괴한 일이다. 지난해 부묘할 때에 사용했던 차일(遮日) 장막을 다른 곳에 사용하여 모두 더럽게 되었다고 한다. 속히 세척해서 사용하되 보기에 누추하면 서둘러 다시 만들어 쓰라고 해조에 말하라. 해당 배설 사약 이덕두(李德斗)는 각별히 추고하여 다른 사람들을 경계시키도록 하라."
호조가 아뢰기를, "장악 도감의 감결(甘結) 안에, ‘침향산(沈香山)의 청학(靑鶴)과 백학(白鶴)에 쓰일 백우(白羽)와 흑우(黑羽)를 평시서로 하여금 무역해서 진배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백아우(白鵝羽)는 시중에서 지금 구했습니다만 오우(烏羽)는 시중에서 사들일 수 있는 물품이 아니어서 구할 길이 없습니다. 지난해의 전례대로 훈련 도감의 포수(砲手)로 하여금 잡아다가 사용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장악 도감의 감결(甘結) 안에, ‘침향산(沈香山)의 청학(靑鶴)과 백학(白鶴)에 쓰일 백우(白羽)와 흑우(黑羽)를 평시서로 하여금 무역해서 진배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백아우(白鵝羽)는 시중에서 지금 구했습니다만 오우(烏羽)는 시중에서 사들일 수 있는 물품이 아니어서 구할 길이 없습니다. 지난해의 전례대로 훈련 도감의 포수(砲手)로 하여금 잡아다가 사용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호조가 아뢰기를, "나례청(儺禮廳)의 잡상(雜像)인 주지 광대(注之廣大) 등의 물품을, 우변 나례청은 이미 이전에 쓰던 것으로 수리해 만들었는데 좌변 나례청은 본조로 하여금 판출하도록 하였습니다. 본청이 바야흐로 헌가(軒架)와 잡상을 수리하는 일로 공장(工匠)들을 불러 모았는데, 이른바 주지광대 등의 물품은 모두 지난해에 새로 만든 것들로서 지금 수리해 고치더라도 공역(工役)이 많이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본조에서 목면 60필을 준비해 보내서 나례청의 공장들로 하여금 수리할 것은 수리하고 다시 만들 것은 다시 만들게 해서 본청에서 품질을 심사하여 사용하는 것이 매우 온편하고 타당할 듯합니다. 그런데 본조에 책임을 떠맡겨 판출하게 하니 그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이미 나례청을 설치했고 보면 어찌 주지광대를 위하여 본조에 별도의 국(局)을 설치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난해의 전례대로 나례청의 공장들로 하여금 같은 양식으로 수리해 만들게 하고 다시 다른 곳에 미루어 떠넘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나례청(儺禮廳)의 잡상(雜像)인 주지 광대(注之廣大) 등의 물품을, 우변 나례청은 이미 이전에 쓰던 것으로 수리해 만들었는데 좌변 나례청은 본조로 하여금 판출하도록 하였습니다. 본청이 바야흐로 헌가(軒架)와 잡상을 수리하는 일로 공장(工匠)들을 불러 모았는데, 이른바 주지광대 등의 물품은 모두 지난해에 새로 만든 것들로서 지금 수리해 고치더라도 공역(工役)이 많이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본조에서 목면 60필을 준비해 보내서 나례청의 공장들로 하여금 수리할 것은 수리하고 다시 만들 것은 다시 만들게 해서 본청에서 품질을 심사하여 사용하는 것이 매우 온편하고 타당할 듯합니다. 그런데 본조에 책임을 떠맡겨 판출하게 하니 그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이미 나례청을 설치했고 보면 어찌 주지광대를 위하여 본조에 별도의 국(局)을 설치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난해의 전례대로 나례청의 공장들로 하여금 같은 양식으로 수리해 만들게 하고 다시 다른 곳에 미루어 떠넘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훈련 도감이 아뢰기를, "도감의 초군(哨軍)들이 궁성을 호위하여 4월 4일부터 밤낮을 떠나지 않고 나누어 지켜온 지가 이미 5개월이 되었습니다. 지금 가을 절기가 일찍 올 듯하고 밤 기운이 매우 추운데 군졸들이 들어가 지낼 임시 가옥이 비바람에 무너지고 부서져 모양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각처의 임시 가옥을 해조로 하여금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수리하여 지붕을 두껍게 이게 하소서. 그리고 대장 이하 여러 장관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직숙하며 군병을 조련하는 등의 일은 완전히 폐기한 지가 이미 오래입니다. 당초의 전교대로 임자년의 전례를 준행하여 대장(大將)과 중군(中軍)과 천총(千摠)이 날마다 교대로 직숙하며 한편으로는 조련을 하게 하는 것이 군사를 양성하는 방법으로 합당할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도감의 초군(哨軍)들이 궁성을 호위하여 4월 4일부터 밤낮을 떠나지 않고 나누어 지켜온 지가 이미 5개월이 되었습니다. 지금 가을 절기가 일찍 올 듯하고 밤 기운이 매우 추운데 군졸들이 들어가 지낼 임시 가옥이 비바람에 무너지고 부서져 모양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각처의 임시 가옥을 해조로 하여금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수리하여 지붕을 두껍게 이게 하소서.
그리고 대장 이하 여러 장관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직숙하며 군병을 조련하는 등의 일은 완전히 폐기한 지가 이미 오래입니다. 당초의 전교대로 임자년의 전례를 준행하여 대장(大將)과 중군(中軍)과 천총(千摠)이 날마다 교대로 직숙하며 한편으로는 조련을 하게 하는 것이 군사를 양성하는 방법으로 합당할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양사가, 이운상의 일을 합계하고 남교에 친제를 지내는 데에 대한 명을 속히 정지시킬 것을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헌부가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룄다.
간원이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룄다.
양사에게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홍문관이 차자를 올리기를, "예(禮)라는 것은 그것으로 위와 아래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위가 아래를 침해하지 못하고 아래가 를 침범하지 못하여 위와 아래가 분명한 구분이 있어서 감히 넘을 수가 없는 뒤라야 그것을 예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제(郊祭)는 예 가운데에서도 큰 것입니다. 오직 천자라야 행할 수가 있기 때문에 노(魯)나라의 교체(郊禘)를 공자가 비난하였습니다. 성인의 가르침은 지극히 엄한 것입니다. 이번에 남교에 친히 제사를 지내려는 것은 이미 제후가 행할 수 있는 예가 아닌데, 원구단을 쌓으려 하고 날을 이미 잡았으니 신들은 이에 의혹스러움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조종조의 고사가 있기는 하나 이는 어쩌다 한번 시행했던 거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고 그 이후에도 그것을 본받아 시행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끌어다가 전례를 삼는다면 어찌 아주 미안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우리 전하께서는 로 천자의 어루만져 주시는 명을 받들었고 안으로 선왕의 중대한 부탁을 받았습니다. 동궁으로 있을 때부터 훌륭한 덕이 있어 이에 왕업을 이어받았습니다. 전후의 역적들과 안팎의 흉도들이 훌륭한 전하의 위엄 아래에서 빠짐없이 모두 자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국난을 다스린 공을 선조에 난리를 평정한 일에 견주어, 반드시 본받아 행하고자 하시어 비례(非禮)인 남교의 제사를 지내시니, 신들은 성상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실로 알지 못하겠습니다. 더구나 지금 천자께서 우리 나라를 대우하시는 것이 중국 국내와 같게 하시고 성상께서 천자를 섬기는 것도 끊임없는 지극한 정성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후의 법도를 정성껏 봉행하여 예식에 허물이 없습니다. 작은 예도 감히 법도를 넘어서는 안 되는데 중대한 예를 어찌 천자를 핍박하면서 시행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로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해로움만 있을 것입니다. 정응태 같은 무리들이 해칠 기회를 노리고 있은 지가 오래입니다. 이 일이 한번 누설되어 상국에서 알게 되면 지난날과 같은 모함하는 참소가 꼭 없으리라고 어찌 보장하겠습니까. 성상의 지극한 어짊과 덕으로 공업이 조종을 빛내었고 은택이 백성들에게 흡족하여 하늘과 땅의 신령들이 참으로 저 세상에서 말없이 도와주셨으니, 나라의 크나큰 경사가 어찌 구구하게 제사를 지내야 더해지는 바가 있겠습니까. 예에 어긋나는 제사는 큰 경사에 이로움이 없고 외람되이 천자의 일을 하는 것은 장래에 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흔쾌히 공론을 따르시어 남교에 친히 제사를 지내겠다는 명을 속히 중지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나의 생각은 이미 양사에 하유하였다." 하였다.
"예(禮)라는 것은 그것으로 위와 아래를 분별하는 것입니다. 위가 아래를 침해하지 못하고 아래가 를 침범하지 못하여 위와 아래가 분명한 구분이 있어서 감히 넘을 수가 없는 뒤라야 그것을 예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제(郊祭)는 예 가운데에서도 큰 것입니다. 오직 천자라야 행할 수가 있기 때문에 노(魯)나라의 교체(郊禘)를 공자가 비난하였습니다. 성인의 가르침은 지극히 엄한 것입니다. 이번에 남교에 친히 제사를 지내려는 것은 이미 제후가 행할 수 있는 예가 아닌데, 원구단을 쌓으려 하고 날을 이미 잡았으니 신들은 이에 의혹스러움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조종조의 고사가 있기는 하나 이는 어쩌다 한번 시행했던 거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고 그 이후에도 그것을 본받아 시행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끌어다가 전례를 삼는다면 어찌 아주 미안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우리 전하께서는 로 천자의 어루만져 주시는 명을 받들었고 안으로 선왕의 중대한 부탁을 받았습니다. 동궁으로 있을 때부터 훌륭한 덕이 있어 이에 왕업을 이어받았습니다.
전후의 역적들과 안팎의 흉도들이 훌륭한 전하의 위엄 아래에서 빠짐없이 모두 자복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국난을 다스린 공을 선조에 난리를 평정한 일에 견주어, 반드시 본받아 행하고자 하시어 비례(非禮)인 남교의 제사를 지내시니, 신들은 성상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실로 알지 못하겠습니다. 더구나 지금 천자께서 우리 나라를 대우하시는 것이 중국 국내와 같게 하시고 성상께서 천자를 섬기는 것도 끊임없는 지극한 정성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후의 법도를 정성껏 봉행하여 예식에 허물이 없습니다. 작은 예도 감히 법도를 넘어서는 안 되는데 중대한 예를 어찌 천자를 핍박하면서 시행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로움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해로움만 있을 것입니다.
정응태 같은 무리들이 해칠 기회를 노리고 있은 지가 오래입니다. 이 일이 한번 누설되어 상국에서 알게 되면 지난날과 같은 모함하는 참소가 꼭 없으리라고 어찌 보장하겠습니까.
성상의 지극한 어짊과 덕으로 공업이 조종을 빛내었고 은택이 백성들에게 흡족하여 하늘과 땅의 신령들이 참으로 저 세상에서 말없이 도와주셨으니, 나라의 크나큰 경사가 어찌 구구하게 제사를 지내야 더해지는 바가 있겠습니까. 예에 어긋나는 제사는 큰 경사에 이로움이 없고 외람되이 천자의 일을 하는 것은 장래에 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흔쾌히 공론을 따르시어 남교에 친히 제사를 지내겠다는 명을 속히 중지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나의 생각은 이미 양사에 하유하였다."
하였다.
영의정 기자헌이 차자를 올리기를, "이번 9월 15일에 지낼 제사는 비록 하늘에 고하는 제사이기는 하나 대단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다만 오늘날의 일은 광묘(光廟) 때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춘궁에서 덕을 기르신 것이 거의 20년이나 되었으니 왕위를 물려받은 것이 본디 광묘와는 다릅니다. 전후의 사적이 본디 전혀 다른데 어찌하여 굳이 이 전례를 끌어다가 이렇게 꼭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신단 말입니까. 예는 마땅히 본받아 따라야 할 것이 있고 또한 절제하여 줄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직 시기에 적절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러한 크나큰 예전(禮典)은 절목(節目)과 조관(條貫)이 매우 번다하여, 지금 비록 실록을 모방하여 시행하더라도 옛날의 성대했던 의절에 맞지 않는 것이 필시 많을 것입니다. 중지하여 행하지 않더라도 실로 중흥을 하신 아름다운 공렬에 미진한 바가 없으며 왕위를 바르게 하여 법도를 세우는 도에 또한 크게 빛남이 있을 것입니다. 신은 참으로 어리석어서 예(禮)를 의논하는 자리에 참여하기에 부족합니다만, 신의 하찮은 생각이나마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행하는 날은 상께서 기일에 앞서 원구단 아래에서 재숙(齋宿)을 해야 합니다. 옥체를 수고롭게 하고 밤을 지새며 서리와 눈을 맞고 지내야 합니다. 이것이 신이 더더욱 답답해 하며 염려하는 바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잘 헤아려 처리하소서. 그러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지금 감히 세조 때의 일에 견주어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공을 이룬 것을 고하고자 하는 것일 따름이다. 재숙을 하는 일은 굳이 밤 기운을 무릅쓰고 도성을 나갈 필요는 없다. 예관으로 하여금 별도로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겠다." 하였다.
"이번 9월 15일에 지낼 제사는 비록 하늘에 고하는 제사이기는 하나 대단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다만 오늘날의 일은 광묘(光廟) 때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춘궁에서 덕을 기르신 것이 거의 20년이나 되었으니 왕위를 물려받은 것이 본디 광묘와는 다릅니다. 전후의 사적이 본디 전혀 다른데 어찌하여 굳이 이 전례를 끌어다가 이렇게 꼭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신단 말입니까. 예는 마땅히 본받아 따라야 할 것이 있고 또한 절제하여 줄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직 시기에 적절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러한 크나큰 예전(禮典)은 절목(節目)과 조관(條貫)이 매우 번다하여, 지금 비록 실록을 모방하여 시행하더라도 옛날의 성대했던 의절에 맞지 않는 것이 필시 많을 것입니다. 중지하여 행하지 않더라도 실로 중흥을 하신 아름다운 공렬에 미진한 바가 없으며 왕위를 바르게 하여 법도를 세우는 도에 또한 크게 빛남이 있을 것입니다. 신은 참으로 어리석어서 예(禮)를 의논하는 자리에 참여하기에 부족합니다만, 신의 하찮은 생각이나마 감히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행하는 날은 상께서 기일에 앞서 원구단 아래에서 재숙(齋宿)을 해야 합니다. 옥체를 수고롭게 하고 밤을 지새며 서리와 눈을 맞고 지내야 합니다. 이것이 신이 더더욱 답답해 하며 염려하는 바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잘 헤아려 처리하소서. 그러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니, 답하기를,
"차자를 살펴 보고 모두 잘 알았다. 지금 감히 세조 때의 일에 견주어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공을 이룬 것을 고하고자 하는 것일 따름이다. 재숙을 하는 일은 굳이 밤 기운을 무릅쓰고 도성을 나갈 필요는 없다. 예관으로 하여금 별도로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겠다."
하였다.
흠경각 교정청이 아뢰기를, "흠경각의 야루(夜漏)에 막힌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놀라움을 못하여 이달 16일부터 지금까지 나흘 밤을 착실히 교정을 하였더니 조금도 잘못된 곳이 없어 부절처럼 딱 맞았습니다. 지난번에 막혔던 것은 탁수의 찌꺼기가 끝부분의 구멍을 막아서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시각이 금루(禁漏)와 차이가 나는 것은, 금루가 옳고 흠경각 안의 것이 잘못되어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난리 이후에 금루의 경점(更點)에 대해서 모두들 맞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흠경각 안의 것은 전주(箭籌)에 맞추어 보건대 조금도 차이가 없이 딱 맞았으니 흠경각의 시각이 옳다고 하는 것은 또한 억측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누주통의(漏籌通義)》에 ‘추분 이후에는 인정(人定)은 술초(戌初) 1각(刻)에 하고 파루(罷漏)는 인정(寅正) 초각(初刻)에 한다.’고 하였는데, 흠경각에서 시각을 알리는 것이 이들 시각과 서로 일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루(晝漏)는 묘시에서 유시까지 교정에 오차가 없었습니다. 낮과 밤의 길이를 계절에 따라 고르게 나누었으니 야루에 혹 오차가 있다면 주루에 오차가 없을 리는 만무합니다. 지금 이후로는 미진하게 될 염려가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오래되면 혹 잘못이 생길까 염려되므로 이전의 계사대로 이달 말까지는 밤마다 교정을 할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흠경각의 야루(夜漏)에 막힌 곳이 있다는 말을 듣고 놀라움을 못하여 이달 16일부터 지금까지 나흘 밤을 착실히 교정을 하였더니 조금도 잘못된 곳이 없어 부절처럼 딱 맞았습니다. 지난번에 막혔던 것은 탁수의 찌꺼기가 끝부분의 구멍을 막아서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시각이 금루(禁漏)와 차이가 나는 것은, 금루가 옳고 흠경각 안의 것이 잘못되어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난리 이후에 금루의 경점(更點)에 대해서 모두들 맞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흠경각 안의 것은 전주(箭籌)에 맞추어 보건대 조금도 차이가 없이 딱 맞았으니 흠경각의 시각이 옳다고 하는 것은 또한 억측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누주통의(漏籌通義)》에 ‘추분 이후에는 인정(人定)은 술초(戌初) 1각(刻)에 하고 파루(罷漏)는 인정(寅正) 초각(初刻)에 한다.’고 하였는데, 흠경각에서 시각을 알리는 것이 이들 시각과 서로 일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루(晝漏)는 묘시에서 유시까지 교정에 오차가 없었습니다. 낮과 밤의 길이를 계절에 따라 고르게 나누었으니 야루에 혹 오차가 있다면 주루에 오차가 없을 리는 만무합니다. 지금 이후로는 미진하게 될 염려가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오래되면 혹 잘못이 생길까 염려되므로 이전의 계사대로 이달 말까지는 밤마다 교정을 할 뜻으로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의금부가 아뢰기를, "헌가(軒架)와 잡상(雜像)을 들여놓을 임시 가옥을 공작 감역관(工作監役官)이 마땅히 지어야 하는데, 국(局)을 설치한 뒤로 날마다 독촉을 했는데도 아직도 형체가 없습니다. 해당 감역관을 추고하고, 기일까지 짓게 하여 들여놓을 장소를 만들게 하소서. 세 번째 습의(習儀)를 이달 28일로 앞당겨 정하였는데, 각도의 희자(戲子)들이, 공문을 보내어 재촉하기를 네 차례나 하였는데도, 한 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기일 이전에 올라오게 할 일을 역말을 내주어 행이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헌가(軒架)와 잡상(雜像)을 들여놓을 임시 가옥을 공작 감역관(工作監役官)이 마땅히 지어야 하는데, 국(局)을 설치한 뒤로 날마다 독촉을 했는데도 아직도 형체가 없습니다. 해당 감역관을 추고하고, 기일까지 짓게 하여 들여놓을 장소를 만들게 하소서. 세 번째 습의(習儀)를 이달 28일로 앞당겨 정하였는데, 각도의 희자(戲子)들이, 공문을 보내어 재촉하기를 네 차례나 하였는데도, 한 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기일 이전에 올라오게 할 일을 역말을 내주어 행이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8월 21일 기미
임취정이 아뢰었다. "역적들을 추형하고 난 뒤에 종묘에 고할 제문(祭文) 및 진하할 전문(箋文)과 반포할 교서를 대제학이 지금 바야흐로 짓고 있습니다. 김제남과 최기 등에 대해서는 합하여 하나의 교서를 짓게 하라고 대제학에게 말하소서. 감히 아룁니다."
"역적들을 추형하고 난 뒤에 종묘에 고할 제문(祭文) 및 진하할 전문(箋文)과 반포할 교서를 대제학이 지금 바야흐로 짓고 있습니다. 김제남과 최기 등에 대해서는 합하여 하나의 교서를 짓게 하라고 대제학에게 말하소서. 감히 아룁니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역적을 토벌하는 일은 일각이 급한 것인데 네 명의 역적의 시신을 전시한 지가 이미 수십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추형을 하지 않았으니 매우 한심합니다. 대관(臺官) 한 사람이 병으로 출사하지 않았으나 즉시 오늘 추형을 행하여 신령과 백성들의 울분을 흔쾌히 풀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부제학과 양사가 모두 출사한 뒤에 시행하라." 하였다.
"역적을 토벌하는 일은 일각이 급한 것인데 네 명의 역적의 시신을 전시한 지가 이미 수십일이 지났는데도 아직 추형을 하지 않았으니 매우 한심합니다. 대관(臺官) 한 사람이 병으로 출사하지 않았으나 즉시 오늘 추형을 행하여 신령과 백성들의 울분을 흔쾌히 풀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부제학과 양사가 모두 출사한 뒤에 시행하라."
하였다.
왕이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네 명의 역적을 시신을 전시한 지가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아직 추형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제학은 이미 체차되었고 대간은 단지 금개(琴愷)만 출사하지 않았습니다. 어찌 대간 한 사람 때문에 추형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을 지나고 나면 잇달아 거동이 있으니 오늘 안으로 추형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왕이 이르기를, "부제학은 차출하지 않더라도 대간이 출사한 뒤에 시행하라." 하였다.
"네 명의 역적을 시신을 전시한 지가 여러 날이 지났는데도 아직 추형을 하지 않았습니다. 부제학은 이미 체차되었고 대간은 단지 금개(琴愷)만 출사하지 않았습니다. 어찌 대간 한 사람 때문에 추형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을 지나고 나면 잇달아 거동이 있으니 오늘 안으로 추형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왕이 이르기를,
"부제학은 차출하지 않더라도 대간이 출사한 뒤에 시행하라."
하였다.
왕이 일렀다. "김제남의 일은 우선 종묘에 고하고 진하하고 교서를 반포하되, 역적 최기 등의 일과 순경 등의 일은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으니 종묘에 고하는 등의 일을 천천히 의논하여 시행하라."
"김제남의 일은 우선 종묘에 고하고 진하하고 교서를 반포하되, 역적 최기 등의 일과 순경 등의 일은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으니 종묘에 고하는 등의 일을 천천히 의논하여 시행하라."
한찬남이 아뢰기를, "헌부는 장령 금개만이 정고(呈告) 중이었는데 이제 출사하였습니다. 즉시 오늘 안으로 추형을 하여 신령과 백성들의 울분을 흔쾌하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기를, "오늘은 바로 국기(國忌)로 재계(齋戒)를 하는 날이고 또한 조시(朝市)를 정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또한 추형을 할 수가 있겠는가?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다. 영상이 의논드리기를, "이러한 추국청의 일은 국기일이더라도 또한 시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추국청의 여러 신료들에게 하문하시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판의금부사가 의논드리기를, "무릇 이러한 일들은 비가 오거나 어두운 밤에는 시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만, 역적인 경우에는 지체없이 참수해야 하니, 나라의 기일이라 재계를 하고 있는 날이더라도 시행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대사헌과 동지의금부사 이하의 의견은 판의금부사의 의견과 같았다. 대사간이 의논드리기를, "이미 때맞추어 추형을 하지 못했고 보면 어찌 굳이 나라의 기일이라 재계를 하는 날에 추형을 한단 말입니까. 미안하게 될 듯합니다."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나라의 기일이라 재계를 하는 날에 상께서 특별히 친국을 하신 것은 대개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는 매우 엄하고 시급한 것이어서 종묘 사직을 위한 부득이한 거조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오늘을 지나게 되면 앞으로 있을 교서를 반포하고 진하를 하는 등의 일을 장차 시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 안으로 서둘러 추형을 시행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기를, "오늘 추형을 하지 않는다면 25일에 있을 교서를 반포하는 등의 일을 어째서 시행할 수가 없단 말인가?"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앞으로 잇달아 습의 등의 일이 있습니다. 오늘을 지나게 되면 근간에는 시행할 만한 날이 다시 없습니다. 그리고 역적을 토벌하는 것은 신하의 크나큰 의리인데 어찌 감히 일각인들 지체시키며 편안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23일에 시행하라고 전교하였다.
"헌부는 장령 금개만이 정고(呈告) 중이었는데 이제 출사하였습니다. 즉시 오늘 안으로 추형을 하여 신령과 백성들의 울분을 흔쾌하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기를,
"오늘은 바로 국기(國忌)로 재계(齋戒)를 하는 날이고 또한 조시(朝市)를 정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또한 추형을 할 수가 있겠는가?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다. 영상이 의논드리기를,
"이러한 추국청의 일은 국기일이더라도 또한 시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추국청의 여러 신료들에게 하문하시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판의금부사가 의논드리기를,
"무릇 이러한 일들은 비가 오거나 어두운 밤에는 시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만, 역적인 경우에는 지체없이 참수해야 하니, 나라의 기일이라 재계를 하고 있는 날이더라도 시행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대사헌과 동지의금부사 이하의 의견은 판의금부사의 의견과 같았다. 대사간이 의논드리기를,
"이미 때맞추어 추형을 하지 못했고 보면 어찌 굳이 나라의 기일이라 재계를 하는 날에 추형을 한단 말입니까. 미안하게 될 듯합니다."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나라의 기일이라 재계를 하는 날에 상께서 특별히 친국을 하신 것은 대개 역적을 토벌하는 의리는 매우 엄하고 시급한 것이어서 종묘 사직을 위한 부득이한 거조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오늘을 지나게 되면 앞으로 있을 교서를 반포하고 진하를 하는 등의 일을 장차 시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 안으로 서둘러 추형을 시행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기를,
"오늘 추형을 하지 않는다면 25일에 있을 교서를 반포하는 등의 일을 어째서 시행할 수가 없단 말인가?"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앞으로 잇달아 습의 등의 일이 있습니다. 오늘을 지나게 되면 근간에는 시행할 만한 날이 다시 없습니다. 그리고 역적을 토벌하는 것은 신하의 크나큰 의리인데 어찌 감히 일각인들 지체시키며 편안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23일에 시행하라고 전교하였다.
죄인 법륜(法輪), 신예붕(申禮鵬), 순경(順慶), 권익(權㢞), 연금(連金)이 공초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신이 전에 풍문으로 들은 바에 의하면, 이현문(李顯門), 허국(許國), 조직(趙稷) 등은 모두가 흉도입니다. 속히 법률에 의거하여 죄를 정해야만 이러한 일을 없게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허국이 편지를 통한 곳은 어디라고 하던가? 윤정직(尹廷稷)이 고발하고자 한 일은 또한 무슨 일인가? 다시 물어서 아뢰라." 하였다.
"신이 전에 풍문으로 들은 바에 의하면, 이현문(李顯門), 허국(許國), 조직(趙稷) 등은 모두가 흉도입니다. 속히 법률에 의거하여 죄를 정해야만 이러한 일을 없게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허국이 편지를 통한 곳은 어디라고 하던가? 윤정직(尹廷稷)이 고발하고자 한 일은 또한 무슨 일인가? 다시 물어서 아뢰라."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었다. "순경에게 다시 물었더니, 허국이 최기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윤정직이 이 편지 보낸 일 등을 고발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허국이 황공해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순경에게 다시 물었더니, 허국이 최기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윤정직이 이 편지 보낸 일 등을 고발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허국이 황공해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정조(鄭造)가 아뢰기를, "지금 들으니, 순경의 공초 사연에는 허국 등의 일에 대해서 매우 많이 숨기고 있다고 합니다. 엄하게 국문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허국, 이현문, 조직 등을 지금 대궐로 불러 올려 빙문을 해야 하는가?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다.
"지금 들으니, 순경의 공초 사연에는 허국 등의 일에 대해서 매우 많이 숨기고 있다고 합니다. 엄하게 국문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허국, 이현문, 조직 등을 지금 대궐로 불러 올려 빙문을 해야 하는가?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다.
영상과 양사와 추관들이 모두들, ‘성상의 분부가 지당합니다.’라고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윤정직도 아울러 대궐로 불러 올려 함께 빙문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아울러 대궐로 불러 올리라." 하였다.
"윤정직도 아울러 대궐로 불러 올려 함께 빙문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아울러 대궐로 불러 올리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의인 왕후(懿仁王后)와 공성 왕후(恭聖王后)의 책문(冊文)을 대신과 대제학으로 하여금 상세히 의논하여 감정해서 쓰도록 하라."
"의인 왕후(懿仁王后)와 공성 왕후(恭聖王后)의 책문(冊文)을 대신과 대제학으로 하여금 상세히 의논하여 감정해서 쓰도록 하라."
선수 도감이 아뢰기를, "비망기에, ‘선수를 하는 데에 사용하고 남은 재목과 기와를 저장해 둘 곳을 서둘러 마련하라. 인왕산 아래와 경복궁 모처 중에서 선택하여 임시 가옥을 잘 지어서 두껍게 덮어 보관해 두었다가 뒷날의 용도에 사용하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전일에 남은 재목의 숫자를 별단으로 서계한 뒤에 추가로 전지를 받든 숫자는 단지 1백 50여 조(條)뿐인데 영조할 곳은 날마다 더 생겨서 한정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내반원(內班院)에 50칸을 더 짓는 곳 및 대루청(待漏廳)의 당직소 등에 들어갈 재목이 2백 70여 조나 됩니다. 문정전의 보계(補階)를 만들 판자(板子)는 공장(工匠)을 불러 계산해 보았더니 9백여 판(板)은 있어야 배설을 할 수가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재목 1백여 조를 우선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계산해 볼 때에 남는 것은 7백여 조이고, 연목(椽木)은 1천 5, 6백 조입니다. 대목(大木)은 두 대의 수레에 하나를 싣고 그 다음 크기의 것은 한 대의 수레에 하나씩 싣고 소재(小材)는 한 대의 수레에 두 개씩을 실어야 하는데, 이렇게 계산하면 목재와 연목을 운반할 수레가 몇 백 대나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해를 넘기는 큰 공역으로 공사간의 거자(車子)가 목재(木材)와 석재(石材)를 운반하는 일에 지쳐 있는데다가 수레는 부서지고 소들까지 죽어서 원망이 극심합니다. 수송해 운반하는 일을 시키는 것은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도감의 쓰고 남은 미포(米布)로 거가(車價)를 넉넉하게 지급하고 도성 안팎의 거부(車夫)들을 전부 장부(帳簿)에 올려 그들로 하여금 실어 운반하게 해야 하겠고, 거기다가 더하여 도감의 수레를 일제히 동원하여 실어들여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잘 쌓아두고 대연(大椽)으로 가가(假家)를 짓고 쓰고 남은 진장목(眞長木)으로 두루 덮어 두면 비나 이슬을 맞아 썩게 될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경복궁과 인왕산 아래 중에서 실어다 둘 처소는 상께서 결정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인왕산 아래로 운반해다가 쌓아두고 수직 내관(守直內官)과 금군 군사(禁軍軍士)들로 하여금 착실하게 지키게 하여 허술하게 될 염려가 없도록 하라." 하였다.
"비망기에, ‘선수를 하는 데에 사용하고 남은 재목과 기와를 저장해 둘 곳을 서둘러 마련하라. 인왕산 아래와 경복궁 모처 중에서 선택하여 임시 가옥을 잘 지어서 두껍게 덮어 보관해 두었다가 뒷날의 용도에 사용하도록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전일에 남은 재목의 숫자를 별단으로 서계한 뒤에 추가로 전지를 받든 숫자는 단지 1백 50여 조(條)뿐인데 영조할 곳은 날마다 더 생겨서 한정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내반원(內班院)에 50칸을 더 짓는 곳 및 대루청(待漏廳)의 당직소 등에 들어갈 재목이 2백 70여 조나 됩니다. 문정전의 보계(補階)를 만들 판자(板子)는 공장(工匠)을 불러 계산해 보았더니 9백여 판(板)은 있어야 배설을 할 수가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재목 1백여 조를 우선 가져왔습니다. 이렇게 계산해 볼 때에 남는 것은 7백여 조이고, 연목(椽木)은 1천 5, 6백 조입니다.
대목(大木)은 두 대의 수레에 하나를 싣고 그 다음 크기의 것은 한 대의 수레에 하나씩 싣고 소재(小材)는 한 대의 수레에 두 개씩을 실어야 하는데, 이렇게 계산하면 목재와 연목을 운반할 수레가 몇 백 대나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해를 넘기는 큰 공역으로 공사간의 거자(車子)가 목재(木材)와 석재(石材)를 운반하는 일에 지쳐 있는데다가 수레는 부서지고 소들까지 죽어서 원망이 극심합니다. 수송해 운반하는 일을 시키는 것은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도감의 쓰고 남은 미포(米布)로 거가(車價)를 넉넉하게 지급하고 도성 안팎의 거부(車夫)들을 전부 장부(帳簿)에 올려 그들로 하여금 실어 운반하게 해야 하겠고, 거기다가 더하여 도감의 수레를 일제히 동원하여 실어들여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잘 쌓아두고 대연(大椽)으로 가가(假家)를 짓고 쓰고 남은 진장목(眞長木)으로 두루 덮어 두면 비나 이슬을 맞아 썩게 될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경복궁과 인왕산 아래 중에서 실어다 둘 처소는 상께서 결정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인왕산 아래로 운반해다가 쌓아두고 수직 내관(守直內官)과 금군 군사(禁軍軍士)들로 하여금 착실하게 지키게 하여 허술하게 될 염려가 없도록 하라."
하였다.
서적 교인 도감(書籍校印都監)이 아뢰기를, "주자(鑄字)의 일에 대하여 이미 윤허를 받았습니다. 주자 도감(鑄字都監)을 지금 만약 별도로 하나의 국(局)으로 설치하게 되면 교인도감의 원역(員役)과 공장(工匠)을 나누어 보내야 할 것이니, 쓸데없는 낭비가 매우 심할 뿐만 아니라 힘이 분산되어 지금 찍고 있는 여러 서적들이 모양을 이루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당초 대신의 계사에, ‘도감이 너무 많으니 우선 정지하자.’고 하였는데, 참으로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주자(鑄字)하는 일은 모두가 교인(校印)하는 일과 같은 일입니다. 별도로 도감을 설치하지 않더라도, 들어갈 물품들을 전례대로 마련해 주어 교인도감에서 글자를 만들도록 하면 편리하고 온당하게 될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주자(鑄字)의 일에 대하여 이미 윤허를 받았습니다. 주자 도감(鑄字都監)을 지금 만약 별도로 하나의 국(局)으로 설치하게 되면 교인도감의 원역(員役)과 공장(工匠)을 나누어 보내야 할 것이니, 쓸데없는 낭비가 매우 심할 뿐만 아니라 힘이 분산되어 지금 찍고 있는 여러 서적들이 모양을 이루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당초 대신의 계사에, ‘도감이 너무 많으니 우선 정지하자.’고 하였는데, 참으로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주자(鑄字)하는 일은 모두가 교인(校印)하는 일과 같은 일입니다. 별도로 도감을 설치하지 않더라도, 들어갈 물품들을 전례대로 마련해 주어 교인도감에서 글자를 만들도록 하면 편리하고 온당하게 될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훈련 도감이 아뢰기를, "지난번의 도감의 계사에, ‘도감에는 삼수 초군(三手哨軍) 외에 장관 별무사(將官別武士)와 금군 별대(禁軍別隊)가 있는데, 이 사람들은 평소에 포(砲)를 쏘거나 칼을 쓰는 기예는 익히지 않고 오직 활쏘기와 말타기를 학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힘이 없어서 말을 소유한 자가 전혀 없으니, 급한 일이 있을 때에 그들에게 말을 타고 나서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신들이 삼가 도감의 《등록(謄錄)》을 조사해 보았더니, 선왕 때의 비망기에, 「도감에서 단지 보졸(步卒)만 훈련시키고 다시 마병(馬兵)이 없으니 아주 잘못된 일이다. 지금 마병도 아울러 훈련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장마(場馬)를 갖다가 용맹 있는 무사들에게 나누어 주어 별도로 하나의 부대를 만들어서 말을 탄 채로 창으로 치고 찌르는 기예를 익히게 하면, 싸움터에서 도움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하고, 인하여 장마 20필을 장사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해가 오래되어 말들이 거의 늙어서 죽고 단지 한 필만 남았는데 늙은 말이라서 쓸모가 없습니다. 현재 장관 이하로서 활쏘기와 말타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자들에게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돌격하는 기예를 착실히 익히게 하고 있으니 필시 싸움터에 나가면 보탬이 있게 될 것입니다만, 그들이 스스로 전마(戰馬)를 준비하기에는 힘이 미치지 못합니다. 해당 관사로 하여금 국가의 용도에 합당치 않은 말 약간 필을 덜어내어 장사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고 도감에서 마료(馬料)를 지급하게 하여 즐거이 훈련을 하게 하되, 장관 가운데에서 명망이 있는 자를 가려 파총(把摠)에 차임하여 그들을 맡아 거느리고 독려하게 하소서. 그러면 병사를 길러 적을 방어하는 방도에 반드시 이익이 많을 것입니다. 지금 북방으로 방어하러 나가는 교대 군사 가운데 별무사 5명은 기사(騎射)를 익힌 병사인데 그들은 가난하여 스스로 마필을 준비할 수 없으니 또한 해당 관사로 하여금 편리에 따라 말 다섯 필을 조발하여 이 사람들에게 지급해 보내도록 하여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기쁘게 하소서.’ 하였는데, 입계하니, 상께서, ‘윤허한다. 마병(馬兵) 50명을 별도로 훈련시키라. 장마(場馬)를 속히 나누어 주어 가르치며 기르게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래서 별대와 별무사 그리고 초군 가운데에서 말타는 재주가 많은 자를 뽑아내어 기병(騎兵)이라고 호칭하고, 파총 한 사람을 이미 계청하여 차출해서 통솔하게 하였습니다. 일찍이 습진(習陣)을 시험해 보았더니, 병영(兵營)을 개설하고 진형(陣形)을 펼치고 앉고 일어나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절차가 군대를 운용하는 법도에 맞는 듯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초에 계하된 마필을 아직도 지급하지 않고 있으니, 다시 해당 관사로 하여금 속히 말을 가려다가 나누어 주게 하여 가르치며 기르게 하도록 하소서. 그리고 지난해 별무사들에게 나누어 준 전마(戰馬) 4필은 지난달에 교체되어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대로 도감에 두고 훈련시키며 기르게 하여 조용(調用)에 대비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마병(馬兵)은 마음을 다해 연습을 하여 기어이 성취하도록 하라." 하였다.
"지난번의 도감의 계사에, ‘도감에는 삼수 초군(三手哨軍) 외에 장관 별무사(將官別武士)와 금군 별대(禁軍別隊)가 있는데, 이 사람들은 평소에 포(砲)를 쏘거나 칼을 쓰는 기예는 익히지 않고 오직 활쏘기와 말타기를 학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힘이 없어서 말을 소유한 자가 전혀 없으니, 급한 일이 있을 때에 그들에게 말을 타고 나서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신들이 삼가 도감의 《등록(謄錄)》을 조사해 보았더니, 선왕 때의 비망기에, 「도감에서 단지 보졸(步卒)만 훈련시키고 다시 마병(馬兵)이 없으니 아주 잘못된 일이다. 지금 마병도 아울러 훈련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장마(場馬)를 갖다가 용맹 있는 무사들에게 나누어 주어 별도로 하나의 부대를 만들어서 말을 탄 채로 창으로 치고 찌르는 기예를 익히게 하면, 싸움터에서 도움되는 바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하고, 인하여 장마 20필을 장사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해가 오래되어 말들이 거의 늙어서 죽고 단지 한 필만 남았는데 늙은 말이라서 쓸모가 없습니다. 현재 장관 이하로서 활쏘기와 말타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자들에게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돌격하는 기예를 착실히 익히게 하고 있으니 필시 싸움터에 나가면 보탬이 있게 될 것입니다만, 그들이 스스로 전마(戰馬)를 준비하기에는 힘이 미치지 못합니다. 해당 관사로 하여금 국가의 용도에 합당치 않은 말 약간 필을 덜어내어 장사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고 도감에서 마료(馬料)를 지급하게 하여 즐거이 훈련을 하게 하되, 장관 가운데에서 명망이 있는 자를 가려 파총(把摠)에 차임하여 그들을 맡아 거느리고 독려하게 하소서. 그러면 병사를 길러 적을 방어하는 방도에 반드시 이익이 많을 것입니다. 지금 북방으로 방어하러 나가는 교대 군사 가운데 별무사 5명은 기사(騎射)를 익힌 병사인데 그들은 가난하여 스스로 마필을 준비할 수 없으니 또한 해당 관사로 하여금 편리에 따라 말 다섯 필을 조발하여 이 사람들에게 지급해 보내도록 하여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기쁘게 하소서.’ 하였는데, 입계하니, 상께서, ‘윤허한다. 마병(馬兵) 50명을 별도로 훈련시키라. 장마(場馬)를 속히 나누어 주어 가르치며 기르게 하라.’고 전교하셨습니다.
그래서 별대와 별무사 그리고 초군 가운데에서 말타는 재주가 많은 자를 뽑아내어 기병(騎兵)이라고 호칭하고, 파총 한 사람을 이미 계청하여 차출해서 통솔하게 하였습니다. 일찍이 습진(習陣)을 시험해 보았더니, 병영(兵營)을 개설하고 진형(陣形)을 펼치고 앉고 일어나고 나아가고 물러나는 절차가 군대를 운용하는 법도에 맞는 듯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초에 계하된 마필을 아직도 지급하지 않고 있으니, 다시 해당 관사로 하여금 속히 말을 가려다가 나누어 주게 하여 가르치며 기르게 하도록 하소서. 그리고 지난해 별무사들에게 나누어 준 전마(戰馬) 4필은 지난달에 교체되어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대로 도감에 두고 훈련시키며 기르게 하여 조용(調用)에 대비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마병(馬兵)은 마음을 다해 연습을 하여 기어이 성취하도록 하라."
하였다.
병조가 아뢰기를, "이달 10일의 본조의 계사를 가져다가 상고하니, ‘무예를 공부하는 자가 해마다 점점 줄고 있으니 참으로 나라를 수비하는 방책이 아닙니다. 부묘한 것으로 인한 시험과 중시(重試)를 합하여 치루는 것은 대거(大擧)라고 할 수가 있고 그 규구(規矩)도 느슨하였는데 입격한 숫자가 액수(額數)를 채우지 못하였으니, 권장하여 흥기시키는 방책을 마땅히 강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알성 초시(謁聖初試)에 참방(參榜)한 자에게 모두 급제(及第)를 허락하는 것은 참으로 세상에 드문 은전(恩典)입니다. 이미 대신에게 하문하여 결정하였으니 다른 의논을 허용할 수는 없겠으나, 마침 지금 양사(兩司)가 입시하였으니 모두 취할 뜻을 또한 하문하시는 것이 대간을 우대하는 도리에 참으로 합당하겠습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른바 ‘권장하여 흥기시키는 방책을 강구해야 마땅하겠다.’라고 한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적체되어 있는 무사들을 사목(事目)에 의거하여 재주를 시험보여, 재주가 있는 자를 시용(試用)하고 재주가 없는 자를 도태해 버린다면 스스로 흥기하여 모두들 무예 익히기를 힘쓸 것입니다. 이것이 권장하여 흥기시키는 방책이 아니겠습니까. 모두에게 직부(直赴)를 허락하는 것은 규정 밖의 일이니, 비록 상께서 명을 내리셨더라도, 해조에서는 전례를 근거로 방계(防啓)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어찌 감히 법을 어기면서 먼저 청한단 말입니까. 알성 초시에 참방한 자들에게 모두 급제를 허락하는 것도 타당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상의 분부가 이미 이러하고 대신들의 의논도 또한 이러하여 감히 다시 다른 의견을 낼 수는 없으나, 양사의 장관이 마침 사단(射壇)에 입시하였기 때문에 감히 하문하시기를 청한 것입니다. 이 또한 과거를 신중히 하고 대간을 중시하는 뜻입니다. 삼가 양사의 계사를 보건대, 근래의 문무과(文武科)의 정미롭지 못하고 참되지 못한 폐단을 바로잡으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이것이 절실한 의논이니, 신들은 따르기에 겨를이 없어야 합니다. 다만 ‘해조가 청한, 중시와 별시를 모두 취하자는 공사를 거행하지 말라.’는 말은 탄식스럽게도 멋대로 판단을 내리고 한 말입니다. 해조가 참으로 직부와 별시에 대한 계청을 하였다면 그 전횡한 죄는 죽여도 되는 것이고 귀양을 보내도 되는 것입니다. 본래 ‘모두 취하자.’고 한 공사가 없는데도 이와 같이 말을 하였으니 참으로 그렇게 말한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신들이 문사(文辭)에 능하지 못하여, 지난번의 계사를 분명하게 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지난번의 계사를 거듭 자세히 보았으나 ‘모두 취하자.’는 말은 없는 듯합니다. 이것은 본래 신 승종(承宗)이 기초(起草)한 것인데, 일을 맡은 제 직임이 장관이니 그 죄는 동료들보다 더 큽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황공해 하지 말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이 계사의 뜻을 양사에 말하라." 하였다.
"이달 10일의 본조의 계사를 가져다가 상고하니, ‘무예를 공부하는 자가 해마다 점점 줄고 있으니 참으로 나라를 수비하는 방책이 아닙니다. 부묘한 것으로 인한 시험과 중시(重試)를 합하여 치루는 것은 대거(大擧)라고 할 수가 있고 그 규구(規矩)도 느슨하였는데 입격한 숫자가 액수(額數)를 채우지 못하였으니, 권장하여 흥기시키는 방책을 마땅히 강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알성 초시(謁聖初試)에 참방(參榜)한 자에게 모두 급제(及第)를 허락하는 것은 참으로 세상에 드문 은전(恩典)입니다. 이미 대신에게 하문하여 결정하였으니 다른 의논을 허용할 수는 없겠으나, 마침 지금 양사(兩司)가 입시하였으니 모두 취할 뜻을 또한 하문하시는 것이 대간을 우대하는 도리에 참으로 합당하겠습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른바 ‘권장하여 흥기시키는 방책을 강구해야 마땅하겠다.’라고 한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적체되어 있는 무사들을 사목(事目)에 의거하여 재주를 시험보여, 재주가 있는 자를 시용(試用)하고 재주가 없는 자를 도태해 버린다면 스스로 흥기하여 모두들 무예 익히기를 힘쓸 것입니다. 이것이 권장하여 흥기시키는 방책이 아니겠습니까. 모두에게 직부(直赴)를 허락하는 것은 규정 밖의 일이니, 비록 상께서 명을 내리셨더라도, 해조에서는 전례를 근거로 방계(防啓)해야 마땅한 것입니다. 어찌 감히 법을 어기면서 먼저 청한단 말입니까. 알성 초시에 참방한 자들에게 모두 급제를 허락하는 것도 타당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상의 분부가 이미 이러하고 대신들의 의논도 또한 이러하여 감히 다시 다른 의견을 낼 수는 없으나, 양사의 장관이 마침 사단(射壇)에 입시하였기 때문에 감히 하문하시기를 청한 것입니다. 이 또한 과거를 신중히 하고 대간을 중시하는 뜻입니다.
삼가 양사의 계사를 보건대, 근래의 문무과(文武科)의 정미롭지 못하고 참되지 못한 폐단을 바로잡으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이것이 절실한 의논이니, 신들은 따르기에 겨를이 없어야 합니다. 다만 ‘해조가 청한, 중시와 별시를 모두 취하자는 공사를 거행하지 말라.’는 말은 탄식스럽게도 멋대로 판단을 내리고 한 말입니다. 해조가 참으로 직부와 별시에 대한 계청을 하였다면 그 전횡한 죄는 죽여도 되는 것이고 귀양을 보내도 되는 것입니다. 본래 ‘모두 취하자.’고 한 공사가 없는데도 이와 같이 말을 하였으니 참으로 그렇게 말한 까닭을 모르겠습니다. 신들이 문사(文辭)에 능하지 못하여, 지난번의 계사를 분명하게 하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지난번의 계사를 거듭 자세히 보았으나 ‘모두 취하자.’는 말은 없는 듯합니다. 이것은 본래 신 승종(承宗)이 기초(起草)한 것인데, 일을 맡은 제 직임이 장관이니 그 죄는 동료들보다 더 큽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황공해 하지 말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이 계사의 뜻을 양사에 말하라."
하였다.
병조 판서 박승종이 차자를 올렸다. 그 대략에, "삼가 아룁니다. 신이 글을 올려 해직을 빈 것이 이미 열 몇 차례나 되었으니, 무릅쓰고 번독스럽게 한 것이 극에 달하여 신의 죄가 큽니다. 하늘을 우러러 가슴을 치며 더 이상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정직하지 않으면 뜻을 드러낼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진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은 본래 용렬하여 벼슬에 뜻을 두었으니, 무슨 멀리 은거할 마음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다만 분수에 맞지 않는 직책을 오래 차지하고 있다 보니, 자연히 사람들의 말이 날로 많아지고 많은 사람들의 노여움이 끓게 된 것입니다. 이름이 흉서에 거론되었으나 다행히 죽을 죄를 용서받았는데, 정충남(鄭忠男)이 또 공초하는 사연에 신을 끌어넣었으므로 간담이 내려 앉아 며칠 동안 죽은 목숨과 같았습니다. 앞으로 다시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호랑이가 있을 리 없는 시장터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도 두번 세번 하면 믿게 되고 증자(曾子)가 살인을 했다는 말을 여러 사람이 자꾸 하자 베짜던 증자의 어머니도 북을 내던지고 달아났습니다. 신이 한번 죽는 것이야 본디 애석할 것도 없겠으나, 대륙(大戮)을 당하여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다면 관계있는 혈족들이 귀천을 막론하고 그 여파가 미쳐나가는 근심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어찌 국가의 불행이 아니겠습니까. 예로부터 인척의 신하가 오래 권력을 잡고 있으면 패하지 않는 경우가 드무니, 그 형세가 그러한 것입니다. 신과 같은 자가 한산한 자리에 두어져 태평의 노래를 읊으며 지내다가 집에서 편안히 늙어죽는다면, 신에게만 영화로움이 될 뿐 아니라, 국가에 있어서도 또한 하나의 아름다운 일인 것입니다. 근래에 추웠다 더웠다 하는 학질에 걸린 데다가 심질(心疾)까지 점점 심해져서 때로는 높은 곳에 올라가 웃기도 하고 통곡을 하기도 하니 보는 자들이 매우 해괴하게 여깁니다. 비록 한결같은 성상의 보살핌을 받더라도 신의 병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미치광이가 되는 데에 이르게 된다면 그 형세가 체직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니, 청명한 조정에 큰 수치를 끼치지 않을까 매우 염려가 됩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미치광이가 되어 죽어가는 신을 불쌍히 여기시고 속히 명하여 신의 본병(本兵)과 금오(金吾)의 직임을 체차하소서. 그러면 공사간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나의 운수가 기구하여 옥사가 누차 일어나 마침내 경들을 불안하게 하였으니 항상 두렵게 생각하고 있다. 경들은 바로 사직(社稷)의 신하이다. 사람들의 말이 어찌 맞는 말이겠는가.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나랏일에 마음을 다하라." 하였다.
"삼가 아룁니다. 신이 글을 올려 해직을 빈 것이 이미 열 몇 차례나 되었으니, 무릅쓰고 번독스럽게 한 것이 극에 달하여 신의 죄가 큽니다. 하늘을 우러러 가슴을 치며 더 이상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정직하지 않으면 뜻을 드러낼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진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은 본래 용렬하여 벼슬에 뜻을 두었으니, 무슨 멀리 은거할 마음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다만 분수에 맞지 않는 직책을 오래 차지하고 있다 보니, 자연히 사람들의 말이 날로 많아지고 많은 사람들의 노여움이 끓게 된 것입니다. 이름이 흉서에 거론되었으나 다행히 죽을 죄를 용서받았는데, 정충남(鄭忠男)이 또 공초하는 사연에 신을 끌어넣었으므로 간담이 내려 앉아 며칠 동안 죽은 목숨과 같았습니다. 앞으로 다시 무슨 말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호랑이가 있을 리 없는 시장터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도 두번 세번 하면 믿게 되고 증자(曾子)가 살인을 했다는 말을 여러 사람이 자꾸 하자 베짜던 증자의 어머니도 북을 내던지고 달아났습니다. 신이 한번 죽는 것이야 본디 애석할 것도 없겠으나, 대륙(大戮)을 당하여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다면 관계있는 혈족들이 귀천을 막론하고 그 여파가 미쳐나가는 근심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어찌 국가의 불행이 아니겠습니까.
예로부터 인척의 신하가 오래 권력을 잡고 있으면 패하지 않는 경우가 드무니, 그 형세가 그러한 것입니다. 신과 같은 자가 한산한 자리에 두어져 태평의 노래를 읊으며 지내다가 집에서 편안히 늙어죽는다면, 신에게만 영화로움이 될 뿐 아니라, 국가에 있어서도 또한 하나의 아름다운 일인 것입니다.
근래에 추웠다 더웠다 하는 학질에 걸린 데다가 심질(心疾)까지 점점 심해져서 때로는 높은 곳에 올라가 웃기도 하고 통곡을 하기도 하니 보는 자들이 매우 해괴하게 여깁니다. 비록 한결같은 성상의 보살핌을 받더라도 신의 병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미치광이가 되는 데에 이르게 된다면 그 형세가 체직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니, 청명한 조정에 큰 수치를 끼치지 않을까 매우 염려가 됩니다.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미치광이가 되어 죽어가는 신을 불쌍히 여기시고 속히 명하여 신의 본병(本兵)과 금오(金吾)의 직임을 체차하소서. 그러면 공사간에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답하기를,
"나의 운수가 기구하여 옥사가 누차 일어나 마침내 경들을 불안하게 하였으니 항상 두렵게 생각하고 있다. 경들은 바로 사직(社稷)의 신하이다. 사람들의 말이 어찌 맞는 말이겠는가.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나랏일에 마음을 다하라."
하였다.
8월 23일 신유
전교하였다. "대제학을 명초하여 25일에 반교(頒敎)할 교서(敎書)를 지어 올리게 하라. 책보(冊寶)를 받들고 종묘(宗廟)로 나아갈 때에, 왕후의 산선(繖扇)은 내관이 받들고 가겠으나 대왕의 산선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받들게 할 것인가? 예관으로 하여금 서둘러 의논하여 정하게 하라."
"대제학을 명초하여 25일에 반교(頒敎)할 교서(敎書)를 지어 올리게 하라. 책보(冊寶)를 받들고 종묘(宗廟)로 나아갈 때에, 왕후의 산선(繖扇)은 내관이 받들고 가겠으나 대왕의 산선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받들게 할 것인가? 예관으로 하여금 서둘러 의논하여 정하게 하라."
김우형(金又亨)의 상소에 답하였다. "추형(追刑)을 이미 시행하였다."
"추형(追刑)을 이미 시행하였다."
왕이 인정문에 나아가 친국하였다.
한찬남 이하가 아뢰기를, "교사(郊祀)에 대한 일을 삼사가 이미 진계하였습니다. 나라의 중대한 일 중의 하나가 제사이니 제사는 본디 임금이 반드시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오래되지 않은 정응태(丁應泰) 사건을 거울로 삼을 만하니, 앞날에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성상께서 몸소 밤 기운을 무릅쓰고 행행하시는 것도 미안한 일입니다. 신하로서 임금을 사랑하는 심정을 진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禮)에 이익됨이 없고 일에 해로움만 있으니, 교사(郊祀)는 시행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반드시 세조조의 고사를 본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흉악한 역적을 토벌하여 평정하였기에 단지 그 성공한 것을 고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였다.
"교사(郊祀)에 대한 일을 삼사가 이미 진계하였습니다. 나라의 중대한 일 중의 하나가 제사이니 제사는 본디 임금이 반드시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오래되지 않은 정응태(丁應泰) 사건을 거울로 삼을 만하니, 앞날에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까 염려됩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성상께서 몸소 밤 기운을 무릅쓰고 행행하시는 것도 미안한 일입니다. 신하로서 임금을 사랑하는 심정을 진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禮)에 이익됨이 없고 일에 해로움만 있으니, 교사(郊祀)는 시행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반드시 세조조의 고사를 본받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흉악한 역적을 토벌하여 평정하였기에 단지 그 성공한 것을 고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였다.
양사가 이운상의 일과 교사에 대한 일을 합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사헌부가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었다.
사간원이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뢰었다.
합계에 대해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남근과 유간이 아뢰기를, "박흥빈(朴興贇), 박이문(朴而文), 오기일(吳起一), 이원(李元) 등에 대해서 당초에 실정을 모두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국문하라는 하명이 있었습니다. 지금 최기(崔沂) 등이 이미 추형(追刑)을 당하였으니, 이 네 사람에게는 다시 물어볼 일이 없습니다. 죽기 전에 속히 정형(正刑)을 시행하여 신령과 사람들의 울분을 흔쾌하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기를,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추관들의 뜻은, 네 역적에 대해서 만약 오늘 정형을 시행하려면 마땅히 먼저 결안(結案)을 받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네 역적을 즉시 대궐로 불러 올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왕이 이르기를, "판의금(判義禁)에게 물어본 뒤에 처리하라." 하였다.
"박흥빈(朴興贇), 박이문(朴而文), 오기일(吳起一), 이원(李元) 등에 대해서 당초에 실정을 모두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국문하라는 하명이 있었습니다. 지금 최기(崔沂) 등이 이미 추형(追刑)을 당하였으니, 이 네 사람에게는 다시 물어볼 일이 없습니다. 죽기 전에 속히 정형(正刑)을 시행하여 신령과 사람들의 울분을 흔쾌하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기를,
"의논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추관들의 뜻은, 네 역적에 대해서 만약 오늘 정형을 시행하려면 마땅히 먼저 결안(結案)을 받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네 역적을 즉시 대궐로 불러 올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왕이 이르기를,
"판의금(判義禁)에게 물어본 뒤에 처리하라."
하였다.
임취정(任就正)이 아뢰기를, "죄인들에 대해서 이미 수의(收議)하였습니다. 최유영(崔有泳)은 참으로 역모의 주역인데 지레 죽어버렸기 때문에 정형을 시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아울러 추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왕이,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하였다.
"죄인들에 대해서 이미 수의(收議)하였습니다. 최유영(崔有泳)은 참으로 역모의 주역인데 지레 죽어버렸기 때문에 정형을 시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아울러 추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왕이,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최유영을 추형하는 일에 대하여, 임취정의 계달로 인하여,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하명하셨습니다. 대신과 추관에게도 하문합니까?" 하니, 왕이 윤허한다고 하였다. 양사와 추관이 의논드리기를, "신들도 미처 계달하지 못했을 따름이지 임취정의 뜻과 같습니다." 하고, 영상의 의논도 또한 그러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알았다. 판의금이 들어오거든 물어서 처리하라." 하였다.
"최유영을 추형하는 일에 대하여, 임취정의 계달로 인하여, 의논하여 처리하라고 하명하셨습니다. 대신과 추관에게도 하문합니까?"
하니, 왕이 윤허한다고 하였다. 양사와 추관이 의논드리기를,
"신들도 미처 계달하지 못했을 따름이지 임취정의 뜻과 같습니다."
하고, 영상의 의논도 또한 그러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알았다. 판의금이 들어오거든 물어서 처리하라."
하였다.
박승종이 들어온 뒤에 의논드리기를, "신이 종전의 해주(海州)의 옥사에 대해서는 황공하여 한 번도 의논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하문하신 일은 크나큰 거조에 대한 것이니 진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큰 우두머리에게 이미 정형을 시행하였다면 조무라기 역적들에 대해서도 마땅히 차례대로 정형을 시행해야 할 듯합니다. 대신과 양사 추관들의 뜻이 지당합니다." 하니, 왕이 알았다고 하였다.
"신이 종전의 해주(海州)의 옥사에 대해서는 황공하여 한 번도 의논을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하문하신 일은 크나큰 거조에 대한 것이니 진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큰 우두머리에게 이미 정형을 시행하였다면 조무라기 역적들에 대해서도 마땅히 차례대로 정형을 시행해야 할 듯합니다. 대신과 양사 추관들의 뜻이 지당합니다."
하니, 왕이 알았다고 하였다.
윤수민(尹壽民)이 아뢰기를, "최유영을 추형하는 일에 대해서 하문하셨습니다. 당초에 본 바로는 최유영의 흉악한 정상이 실로 최기(崔沂)보다도 심하였습니다. 추형하는 것이 지당합니다." 하니, 왕이 알았다고 하였다.
"최유영을 추형하는 일에 대해서 하문하셨습니다. 당초에 본 바로는 최유영의 흉악한 정상이 실로 최기(崔沂)보다도 심하였습니다. 추형하는 것이 지당합니다."
하니, 왕이 알았다고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박흥빈 등에게 정형을 시행하고 최유영을 추형할 일에 대해서 대신과 양사와 추관들의 의견이 이미 하나로 일치하였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죄인 원덕기(元德淇)는 도로 하옥하고 김상(金瑺)을 대궐로 올려 보내라." 하였다.
"박흥빈 등에게 정형을 시행하고 최유영을 추형할 일에 대해서 대신과 양사와 추관들의 의견이 이미 하나로 일치하였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하였다. 왕이 이르기를,
"죄인 원덕기(元德淇)는 도로 하옥하고 김상(金瑺)을 대궐로 올려 보내라."
하였다.
왕이 한찬남에게 분부하였다. "최유영은 의논대로 하라. 박흥빈 등은 다시 전교가 있은 뒤에 처리하라."
"최유영은 의논대로 하라. 박흥빈 등은 다시 전교가 있은 뒤에 처리하라."
한찬남이 아뢰기를, "최유영을 추형할 일로 하명하셨습니다. 부대시참(不待時斬)이 마땅할 듯하여 오늘 당장 추형해야 하겠습니다만, 최유영의 죄상에 대해서 반드시 여러 역적들의 공초를 모두 상고하여 하나하나 상세하게 전지(傳旨) 안에 넣은 뒤라야 바야흐로 시행할 수가 있는 것이니, 오늘 안으로는 시행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이 필시 가까운 곳에 있지 않을 것이니 오늘은 추형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왕이 알았다고 하였다.
"최유영을 추형할 일로 하명하셨습니다. 부대시참(不待時斬)이 마땅할 듯하여 오늘 당장 추형해야 하겠습니다만, 최유영의 죄상에 대해서 반드시 여러 역적들의 공초를 모두 상고하여 하나하나 상세하게 전지(傳旨) 안에 넣은 뒤라야 바야흐로 시행할 수가 있는 것이니, 오늘 안으로는 시행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리고 그의 시신이 필시 가까운 곳에 있지 않을 것이니 오늘은 추형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왕이 알았다고 하였다.
유간이 아뢰기를, "금부 도사가 정원에 언서(諺書)를 올리면서 본부에는 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해당 도사를 파직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기를, "우선 추고하라." 하였다.
"금부 도사가 정원에 언서(諺書)를 올리면서 본부에는 고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해당 도사를 파직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기를,
"우선 추고하라."
하였다.
왕이 한찬남에게 분부하였다. "죄인 김상을 도로 하옥하고 김거(金鉅)를 대궐로 올리라."
"죄인 김상을 도로 하옥하고 김거(金鉅)를 대궐로 올리라."
분부하였다. "죄인 김거를 도로 하옥하고 유감(柳堪)을 대궐로 올리라."
"죄인 김거를 도로 하옥하고 유감(柳堪)을 대궐로 올리라."
분부하였다. "죄인 김거를 도로 하옥하고 유감(柳堪)을 대궐로 올리라."
"죄인 김거를 도로 하옥하고 유감(柳堪)을 대궐로 올리라."
남근과 유간이 아뢰기를, "박흥빈 등은 다시 전교가 있은 뒤에 추형하라고 하명하셨습니다. 최기를 추형한 것은 대개 이 역적들이 이미 모두 승복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증거로 삼아 죄를 정한 것입니다. 승복한 죄인은 하루도 살아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옥사가 않아서, 이 역적들이 만약 이러한 말을 듣게 되면 반드시 도망칠 계책을 부릴 것입니다. 서둘러 정형을 시행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기를, "오늘은 이미 날이 저물었고 내일은 습의(習儀)가 있다. 다시 전교가 있은 뒤에 시행하라."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네 역적에게 정형을 시행할 일이 만약 누설되어 그들이 알게 되면, 죽게 될 판에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단단히 가두고 엄하게 형틀을 씌워두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기를, "우선 단가(短枷)를 씌워두라. 윤여익(尹汝翼)도 그렇게 하라." 하였다.
"박흥빈 등은 다시 전교가 있은 뒤에 추형하라고 하명하셨습니다. 최기를 추형한 것은 대개 이 역적들이 이미 모두 승복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증거로 삼아 죄를 정한 것입니다. 승복한 죄인은 하루도 살아 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옥사가 않아서, 이 역적들이 만약 이러한 말을 듣게 되면 반드시 도망칠 계책을 부릴 것입니다. 서둘러 정형을 시행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기를,
"오늘은 이미 날이 저물었고 내일은 습의(習儀)가 있다. 다시 전교가 있은 뒤에 시행하라."
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네 역적에게 정형을 시행할 일이 만약 누설되어 그들이 알게 되면, 죽게 될 판에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단단히 가두고 엄하게 형틀을 씌워두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기를,
"우선 단가(短枷)를 씌워두라. 윤여익(尹汝翼)도 그렇게 하라."
하였다.
왕이 일렀다. "전계(殿階)가 넓고 툭 트여 있으니, 죄인들의 공초를 받을 때에 큰 소리로 공초하도록 하라."
"전계(殿階)가 넓고 툭 트여 있으니, 죄인들의 공초를 받을 때에 큰 소리로 공초하도록 하라."
왕이 이현문이 올린 언서(諺書)를 승지에게 내리고 이르기를,
"이 글을 대신과 추관들에게 두루 보이라."
하였다. 좌우가 다 본 뒤에 한찬남이 다시 언서(諺書)를 상에게 올렸다.
이현문과 순경을 면질시킨 뒤에, 왕이 의논해 아뢰라고 하였다. 영상이 의논드리기를, "이 일은 그들의 본죄(本罪)와는 관계가 없을 듯합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그건 그렇다만, 알아내려면 어떻게 하면 알아낼 수가 있겠는가?" 하였다. 판의금이 의논드리기를, "순경이 비록 현문 등의 일을 고하기는 하였으나 반드시 이것으로 면죄될 수는 없는 것이고, 현문이 이 일을 꾸며냈더라도 만약 실제로 그렇게 말하였다면 이것으로 자취를 은폐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대개 원죄(元罪)는 매우 중하고 이 일 은 모두 원죄에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언서(諺書) 안에, ‘최 정자(崔正字)가 출거(出去)하였다.’는 등의 말이 있는데, 현문이 만약 조작한 것이라면, 옥중에서 어떻게 최 정자가 출거한 것을 알았겠습니까. 이 언서가 그날 밤에 올려졌다면, 현문은 금방 하옥되어 그 사이에 거의 조금도 틈이 없었는데 현문이 어느 겨를에 조작하였겠습니까. 대개 이러한 일로 논죄를 한다면, 죄인들이 누군들 이러한 일을 하여 살기를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 일이 만약 조작된 것이라면 죄는 허국(許國)에게 있습니다. 허국이 조작을 하였을 듯합니다. 어떻게 현문이 조작하겠습니까." 하니, 왕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는가?" 하였는데, 판의금이 의논드리기를, "원죄를 먼저 정한 뒤에 이 일은 천천히 조사해서 처리해도 됩니다. 반드시 형장(刑杖)을 사용한 뒤라야 원죄를 결단할 수 있겠습니다." 하였다.
"이 일은 그들의 본죄(本罪)와는 관계가 없을 듯합니다."
하니, 왕이 이르기를,
"그건 그렇다만, 알아내려면 어떻게 하면 알아낼 수가 있겠는가?"
하였다. 판의금이 의논드리기를,
"순경이 비록 현문 등의 일을 고하기는 하였으나 반드시 이것으로 면죄될 수는 없는 것이고, 현문이 이 일을 꾸며냈더라도 만약 실제로 그렇게 말하였다면 이것으로 자취를 은폐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대개 원죄(元罪)는 매우 중하고 이 일 은 모두 원죄에는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언서(諺書) 안에, ‘최 정자(崔正字)가 출거(出去)하였다.’는 등의 말이 있는데, 현문이 만약 조작한 것이라면, 옥중에서 어떻게 최 정자가 출거한 것을 알았겠습니까. 이 언서가 그날 밤에 올려졌다면, 현문은 금방 하옥되어 그 사이에 거의 조금도 틈이 없었는데 현문이 어느 겨를에 조작하였겠습니까. 대개 이러한 일로 논죄를 한다면, 죄인들이 누군들 이러한 일을 하여 살기를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 일이 만약 조작된 것이라면 죄는 허국(許國)에게 있습니다. 허국이 조작을 하였을 듯합니다. 어떻게 현문이 조작하겠습니까."
하니, 왕이 이르기를,
"그렇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는가?"
하였는데, 판의금이 의논드리기를,
"원죄를 먼저 정한 뒤에 이 일은 천천히 조사해서 처리해도 됩니다. 반드시 형장(刑杖)을 사용한 뒤라야 원죄를 결단할 수 있겠습니다."
하였다.
8월 24일 임술
우변 나례 도감이 아뢰기를, "나례의 일이 하루가 급하기 때문에 ‘도감의 관원은 공회(公會)에 참여하지 말게 하고, 제관(祭官)으로 차임하지 말라.’고 이미 계하하였습니다. 그런데 헌가(軒架)와 잡상(雜像) 등의 물품을 바야흐로 감독하는 때에, 도청(都廳)인 군기시 정(軍器寺正) 송극인(宋克訒)은 추숭할 때의 독책관(讀冊官) 예차(預差)에 차정되었고 낭청인 부정(副正) 안세걸(安世傑)은 친제(親祭) 때의 봉조관(捧俎官)에 차정되었고 주부(主簿) 심이(沈怡)는 추숭 때 책안(冊案)을 받드는 자에 차정되어, 더없이 중대한 일에 주관하는 자가 없게 되었으니, 매우 민망하고 염려가 됩니다. 모두 개차할 일을 승전을 받들어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나례의 일이 하루가 급하기 때문에 ‘도감의 관원은 공회(公會)에 참여하지 말게 하고, 제관(祭官)으로 차임하지 말라.’고 이미 계하하였습니다. 그런데 헌가(軒架)와 잡상(雜像) 등의 물품을 바야흐로 감독하는 때에, 도청(都廳)인 군기시 정(軍器寺正) 송극인(宋克訒)은 추숭할 때의 독책관(讀冊官) 예차(預差)에 차정되었고 낭청인 부정(副正) 안세걸(安世傑)은 친제(親祭) 때의 봉조관(捧俎官)에 차정되었고 주부(主簿) 심이(沈怡)는 추숭 때 책안(冊案)을 받드는 자에 차정되어, 더없이 중대한 일에 주관하는 자가 없게 되었으니, 매우 민망하고 염려가 됩니다. 모두 개차할 일을 승전을 받들어 시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의금부가 아뢰기를, "역적의 괴수 김제남(金悌男)과 최기(崔沂), 역적 김기(金錡)와 박계운(朴啓運) 등을 이미 추형(追刑)하였습니다. 연좌(緣坐)하고 적몰(籍沒)시키고 집을 부수고 파서 못을 만드는 일 및 각 죄인들이 거주하던 곳의 관호(官號)를 강호(降號)하고 그 수령을 파직하는 등의 일을 전례대로 거행할 일로 승전을 받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파직할 관원은 해주 판관이 해당될 듯하다. 다시 살펴 처리하라." 하였다.
"역적의 괴수 김제남(金悌男)과 최기(崔沂), 역적 김기(金錡)와 박계운(朴啓運) 등을 이미 추형(追刑)하였습니다. 연좌(緣坐)하고 적몰(籍沒)시키고 집을 부수고 파서 못을 만드는 일 및 각 죄인들이 거주하던 곳의 관호(官號)를 강호(降號)하고 그 수령을 파직하는 등의 일을 전례대로 거행할 일로 승전을 받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파직할 관원은 해주 판관이 해당될 듯하다. 다시 살펴 처리하라."
하였다.
정원이 아뢰기를, "당일에 신들이 사진(仕進)할 때에 시민(市民)들이 궐문 밖에 모두 모여 함께 호소하기를, ‘돈피(獤皮) 4백 47령(令), 적호피(赤狐皮) 1백 령, 서피(鼠皮) 6백여 령을 책임지워 시정(市井)에서 무역하게 하였으므로 장차 보존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로 아뢰어 살아갈 길을 열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근래에 국가에 일이 많아서 시민들에게 책임지워 마련하게 하는 것이 한이 없고 끝이 없습니다. 양계(兩界)는 모물(毛物)이 생산되는 곳이라고 하여 잔패됨이 있을까 염려하여 원공 모물(元貢毛物)을 이미 줄여 주었으니, 그 백성들을 돌보는 뜻이 극진한 것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안과 밖을 가지고 말하자면 안이 중요하고 밖은 덜 중요한 것이며, 생산되는 것을 가지고 말하자면 양계(兩界)는 평소 모물을 생산하지만 시정(市井)은 양계에서 무역을 하여 모물을 구합니다. 외방의 백성들을 돌보고자 하여 서울의 백성들을 침해하고, 모물이 생산되는 지역을 편하게 하려고 하여 무역해 구해야 하는 지역에다 판출하기를 책임지우는 것은 모든 백성을 같은 마음으로 돌보는 정치가 아닌 듯합니다. 신들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시정에서 무역할 값을 기일에 앞서 양계에 나누어 보내 각종 모물을 무역하도록 하면 그 비용은 반드시 적게 들 것이고 모물은 반드시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올해는 국용(國用)이 매우 급하여 미처 주선하지 못할 형세이니, 해조로 하여금 그 모물의 숫자에 준하여 일일이 가물(價物)을 먼저 지급해서 무역하게 하도록 하여, 시민들이 스스로 판출하느라 뼈를 깎는 원통함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또 한 가지 큰 폐단이 있습니다. 시민들이 비록 마음을 다하여 무역하고 해조가 비록 마음을 다하여 선별하여 바치더라도 상의원(尙衣院)의 장인(匠人)이 모품(毛品)에 대해서 잘 안다고 칭탁하고 멋대로 누차 점퇴(點退)를 하고, 그런 뒤에 시민이 간절하게 빌면 장인배들이 가물(價物)을 두 배로 받고는 자기가 저축해 두었던 모물을 대신 바칩니다. 장인이 ‘좋다’고 하면 비록 털이 적어 전혀 쓸 수가 없는 것이라도 관원이 감히 거부하지를 못합니다. 장인들은 단지 뇌물의 많고 적음만을 따지며, 그것에 따라 모물이 받아들여지는 여부가 결정됩니다. 이 때문에 이익은 아랫것들에게 돌아가고 원망은 성상께 돌아가며, 들어가는 가물은 많은데 받아들이는 모물은 품질이 좋지 않습니다. 만약 호조의 담당 관원으로 하여금 무역한 모물을 봉납(封納)하게 하고, 그뒤 재조(裁造)할 때에 상방(尙方)의 관원이 호조의 낭관과 함께 재조하는 것을 감독한다면 반드시 장인들이 조종하여 바꾸는 폐단이 없어질 것입니다. 호조와 상방으로 하여금 서로 의논하여 잘 처리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호조와 상방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아뢰게 하라." 하였다.
"당일에 신들이 사진(仕進)할 때에 시민(市民)들이 궐문 밖에 모두 모여 함께 호소하기를, ‘돈피(獤皮) 4백 47령(令), 적호피(赤狐皮) 1백 령, 서피(鼠皮) 6백여 령을 책임지워 시정(市井)에서 무역하게 하였으므로 장차 보존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로 아뢰어 살아갈 길을 열기를 원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근래에 국가에 일이 많아서 시민들에게 책임지워 마련하게 하는 것이 한이 없고 끝이 없습니다. 양계(兩界)는 모물(毛物)이 생산되는 곳이라고 하여 잔패됨이 있을까 염려하여 원공 모물(元貢毛物)을 이미 줄여 주었으니, 그 백성들을 돌보는 뜻이 극진한 것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안과 밖을 가지고 말하자면 안이 중요하고 밖은 덜 중요한 것이며, 생산되는 것을 가지고 말하자면 양계(兩界)는 평소 모물을 생산하지만 시정(市井)은 양계에서 무역을 하여 모물을 구합니다. 외방의 백성들을 돌보고자 하여 서울의 백성들을 침해하고, 모물이 생산되는 지역을 편하게 하려고 하여 무역해 구해야 하는 지역에다 판출하기를 책임지우는 것은 모든 백성을 같은 마음으로 돌보는 정치가 아닌 듯합니다.
신들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시정에서 무역할 값을 기일에 앞서 양계에 나누어 보내 각종 모물을 무역하도록 하면 그 비용은 반드시 적게 들 것이고 모물은 반드시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올해는 국용(國用)이 매우 급하여 미처 주선하지 못할 형세이니, 해조로 하여금 그 모물의 숫자에 준하여 일일이 가물(價物)을 먼저 지급해서 무역하게 하도록 하여, 시민들이 스스로 판출하느라 뼈를 깎는 원통함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또 한 가지 큰 폐단이 있습니다. 시민들이 비록 마음을 다하여 무역하고 해조가 비록 마음을 다하여 선별하여 바치더라도 상의원(尙衣院)의 장인(匠人)이 모품(毛品)에 대해서 잘 안다고 칭탁하고 멋대로 누차 점퇴(點退)를 하고, 그런 뒤에 시민이 간절하게 빌면 장인배들이 가물(價物)을 두 배로 받고는 자기가 저축해 두었던 모물을 대신 바칩니다. 장인이 ‘좋다’고 하면 비록 털이 적어 전혀 쓸 수가 없는 것이라도 관원이 감히 거부하지를 못합니다. 장인들은 단지 뇌물의 많고 적음만을 따지며, 그것에 따라 모물이 받아들여지는 여부가 결정됩니다. 이 때문에 이익은 아랫것들에게 돌아가고 원망은 성상께 돌아가며, 들어가는 가물은 많은데 받아들이는 모물은 품질이 좋지 않습니다. 만약 호조의 담당 관원으로 하여금 무역한 모물을 봉납(封納)하게 하고, 그뒤 재조(裁造)할 때에 상방(尙方)의 관원이 호조의 낭관과 함께 재조하는 것을 감독한다면 반드시 장인들이 조종하여 바꾸는 폐단이 없어질 것입니다. 호조와 상방으로 하여금 서로 의논하여 잘 처리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윤허한다. 호조와 상방으로 하여금 의논하여 아뢰게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양전(兩殿)의 대련(大輦)과 소련(小輦)을 덕응방(德應房)에 넣어두었는데 자문감(紫門監)으로 하여금 조성(造成)하게 하면 필시 때맞춰 일을 마치지 못할 것이니 선수도감으로 하여금 다음달 안으로 서둘러 조성하게 하라. 이 일을 도감에 말하라."
"양전(兩殿)의 대련(大輦)과 소련(小輦)을 덕응방(德應房)에 넣어두었는데 자문감(紫門監)으로 하여금 조성(造成)하게 하면 필시 때맞춰 일을 마치지 못할 것이니 선수도감으로 하여금 다음달 안으로 서둘러 조성하게 하라. 이 일을 도감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명정전은 터가 매우 넓어서 만약 동쪽으로 기둥을 조금 물려 잘 지으면 인정전과 다름이 없을 것인데, 지금은 지은 것이 규모가 너무 좁고 어탑(御榻)도 낮고 협착하니 대례(大禮)는 이곳에서 행하기 어렵겠다. 공역(工役)이 매우 아깝다. 혹 보첨(補簷)을 덧붙이고 월대(月臺)를 더 쌓고 어탑도 조금 보충하여 만들면 어떨지 모르겠다. 다시 상세히 살펴 의논해 처리할 일을 선수도감에 말하라."
"명정전은 터가 매우 넓어서 만약 동쪽으로 기둥을 조금 물려 잘 지으면 인정전과 다름이 없을 것인데, 지금은 지은 것이 규모가 너무 좁고 어탑(御榻)도 낮고 협착하니 대례(大禮)는 이곳에서 행하기 어렵겠다. 공역(工役)이 매우 아깝다. 혹 보첨(補簷)을 덧붙이고 월대(月臺)를 더 쌓고 어탑도 조금 보충하여 만들면 어떨지 모르겠다. 다시 상세히 살펴 의논해 처리할 일을 선수도감에 말하라."
양사가 이운상의 일을 합계하고, 남교(南郊) 친사(親祀)의 명을 속히 정지하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을 이미 하유하였다. 교사(郊祀)에 대한 일은, 세조조에는 옛 전례에 통달한 식견있는 사람들이 조정에 가득했었는데 만약 비례(非禮)에 관계되는 것이었다면 어찌 바로잡는 자가 없었겠는가. 그 당시의 대신과 대간들이 오늘날의 대간만 못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계축년의 난역을 평정한 것을 세조 때의 일에 견주려는 것이 아니다. 여러 역적과 뭇 흉악한 자들을 모두 소탕하였으니 고사(古事)를 모방하여 그 성공을 고하는 것도 무방한 일일 듯하다.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을 이미 하유하였다. 교사(郊祀)에 대한 일은, 세조조에는 옛 전례에 통달한 식견있는 사람들이 조정에 가득했었는데 만약 비례(非禮)에 관계되는 것이었다면 어찌 바로잡는 자가 없었겠는가. 그 당시의 대신과 대간들이 오늘날의 대간만 못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계축년의 난역을 평정한 것을 세조 때의 일에 견주려는 것이 아니다. 여러 역적과 뭇 흉악한 자들을 모두 소탕하였으니 고사(古事)를 모방하여 그 성공을 고하는 것도 무방한 일일 듯하다. 번거롭게 논집하지 말라."
하였다.
헌부가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룄다.
간원이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룄다.
양사에게 답하기를,
"윤허하지 않는다는 뜻을 이미 하유하였다."
하였다.
의금부가 아뢰기를, "지금 평안 감사 김신국(金藎國)의 장계(狀啓)를 보니, ‘박순현(朴順賢)의 가속들이 그들의 노비를 거느리고 이미 서울로 올라갔다.’고 하였기에 본가(本家)에 물어보았더니, 이개(異介)는 이미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잡아올 수가 없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지금 평안 감사 김신국(金藎國)의 장계(狀啓)를 보니, ‘박순현(朴順賢)의 가속들이 그들의 노비를 거느리고 이미 서울로 올라갔다.’고 하였기에 본가(本家)에 물어보았더니, 이개(異介)는 이미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잡아올 수가 없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한찬남에게 전교하였다. "최유영을 추형(追刑)할 때에 유생(儒生)들을 늘어 세워 놓고 시행하라."
"최유영을 추형(追刑)할 때에 유생(儒生)들을 늘어 세워 놓고 시행하라."
8월 25일 계해
한찬남이 아뢰기를, "반사(頒赦)할 일에 대해 하명하셨습니다. 무슨 죄 이하를 사면합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기축년의 전례대로 시행하라." 하였는데, 한찬남이 아뢰기를, "기축년에는 잡범 사죄 이하를 사면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반사(頒赦)할 일에 대해 하명하셨습니다. 무슨 죄 이하를 사면합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기축년의 전례대로 시행하라."
하였는데, 한찬남이 아뢰기를,
"기축년에는 잡범 사죄 이하를 사면하였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한찬남이 아뢰기를, "죄인의 단자(單子)는 으레 서계(書啓)를 합니다. 오늘은 진하(陳賀)를 하는 날인데 추국하는 일은 어찌합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길사(吉事)와 흉사(凶事)를 하루 안에 섞어 시행할 수는 없다. 추국하는 일은 시행하지 말라." 하였다.
"죄인의 단자(單子)는 으레 서계(書啓)를 합니다. 오늘은 진하(陳賀)를 하는 날인데 추국하는 일은 어찌합니까? 감히 여쭙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길사(吉事)와 흉사(凶事)를 하루 안에 섞어 시행할 수는 없다. 추국하는 일은 시행하지 말라."
하였다.
한찬남에게 전교하였다. "사면을 반포하고 백관들에게 가자(加資)하는 일을 시행하라."
"사면을 반포하고 백관들에게 가자(加資)하는 일을 시행하라."
최유영의 추형 단자를 가지고 한찬남에게 전교하였다. "진하를 하는 날에 어찌 추형을 할 수가 있겠는가. 다음달 4일이 지난 뒤에 시행하라. 오늘 이후로 색승지는 더욱 잘 살피도록 하라."
"진하를 하는 날에 어찌 추형을 할 수가 있겠는가. 다음달 4일이 지난 뒤에 시행하라. 오늘 이후로 색승지는 더욱 잘 살피도록 하라."
훈련 도감이 아뢰기를, "호조의 계사에, ‘도감의 삼수량(三手糧)으로 1년에 받아들이는 것이 2만 8천여 석입니다. 금년에 비록 각도에 재해가 들어 견감해 주었고 군사의 숫자를 더 차출하였다고는 하나 갑자기 완전히 바닥이 난 것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5월치의 요미(料米)도 부족하다고 하여 본조에서 빌려다 사용하였는데 지금 또 이와 같이 계청을 하였습니다. 모두가 같은 국가의 비용이니 남의 일처럼 무관심할 수는 없습니다. 삼수량은 한 달에 방출(放出)하는 것이 2천 4백여 석을 밑돌지 않으니, 1년을 통계(通計)하면 거의 반록(頒祿)하는 숫자와 서로 비등합니다. 국가의 경비(經費)가 해마다 고갈되어 매 분등(分等)의 반록을 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데, 삼수량 같은 막대한 지출을 달마다 본조에다가 책임을 떠맡기면 앞으로의 경비를 참으로 잇대기 어렵습니다. 전일에 본조가, 「삼도(三道)의 삼수량을 매 1결마다 쌀 3승(升) 혹은 2승을 더 거두어 지출을 잇댈 수 있게 하는 방책으로 삼아야 합니다.」라고 계청하였는데, 비변사가, 「도감이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혹 차인(差人)을 시켜 무판(貿販)하게 한 것은 진정으로 이러한 때의 수용(需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도감이 받아들이는 포보목(砲保木)을 미루어 옮겨다 바꾸어 쓰면 잇대기 어려울 걱정이 없습니다. 결코 민결(民結)에서 더 거두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계청한 일을 상께서 계하하셨습니다. 본조에서는 다시 손을 쓸 만한 방책이 없습니다. 뒷날은 논할 것도 없이 이달치의 양료(糧料)를 마련해 줄 길이 없습니다. 비변사의 계사대로, 도감의 둔전(屯田)과 어전(魚箭)의 온갖 무판(貿辦)한 목면과 삼수량을 작목(作木)한 것과 포보(砲保)로 거두어들인 목면을 옮겨다 방출하고, 그 나머지 부족한 숫자는 도감이 다시 비변사와 상의하여 혹 쌀을 더 거두어서 별도로 처리하게 하소서.’ 한 일에 대해, 윤허를 내리시어 이문(移文)을 하였습니다. 육도(六道)의 삼수량은 1년에 받아들이는 것이 2만 8천여 석인데, 으레 그해 겨울에 경기(京畿)로부터 시작하여 거두어들여 방출에 충당하는 것이 이미 영구한 법식이 되었습니다. 당초에 삼수량을 설립할 때에는 1년에 방출할 숫자를 가지고 결수를 계산하여 쌀을 거두었기 때문에 지출하기에 충분하였고, 그 당시의 군액(軍額)은 3천 몇 백 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뒤 노약자는 도태시키지 않고 그대로 두고서 잇달아 사람을 모집해 들여 날마다 달마다 증가되어 지금의 원액(元額)은 이미 4천 수백여 명이 넘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방출하는 것이 거의 2천 5백 석에 이릅니다. 이밖에도 장관(將官)의 참상(參上)과 참하(參下) 및 궁전(弓箭), 조총(鳥銃), 화약(火藥), 염초(焰硝), 서적(書籍), 별도로 만드는 신서(新書), 그리고 각청(各廳)의 감관(監官), 장인(匠人), 서리(書吏), 사령(使令), 고직(庫直), 주사(舟師), 수직(守直) 등에게 소요되는 매달의 양료(糧料) 등도 2백 50석을 밑돌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모두 삼수량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해조에서는 매양 이러한 양료들은 삼수량에서 뒤섞어 방출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하지만, 이는 도감이 삼수량을 관리하여 거두어들이게 된 뒤에 뒤섞어 방출하기를 처음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당초 둔전을 혁파했을 때에 도감의 수용(需用)이 나올 곳이 없게 되자, 대신의 수의(收議)를 인하여 호조로 하여금 장관(將官)과 장인(匠人)의 양료 및 각종 해용(該用)에 1년 동안 지출할 2천 5백 석을 계산하여 덜어내서 도감으로 이송하게 하여, 용도에 사용하게 하였으니, 이러한 양료를 삼수량에서 방출하는 것은 또한 오래된 일입니다. 군료(軍料)를 통계하면 한 달에 방출하는 것이 2천 7백여 석이고 1년을 통틀어 3만 2천 4백여 석입니다. 이 1년에 받아들일 것으로 그 1년의 비용을 계산해 보면, 원수(元數)가 부족한 것이 이미 4천여 석인데, 지난해에는 윤달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해에 지공할 쌀 2천 4백여 석을 이미 앞당겨 끌어다 사용하였고, 또 흉년으로 인하여 하삼도(下三道)의 전결이 감축된 것이 4만 9천 2백 20여 결로, 작미(作米) 2천 7백 30여 석이 줄었습니다. 합해서 계산해 보면, 금년의 삼수량이 감축된 것이 5천 수백여 석입니다. 그리고 응당 봉납해야 할 것 가운데에, 공홍도(公洪道)의 산군(山郡)과 강원도(江原道) 영동(嶺東) 등의 작미(作米)를 올려 보내야 할 고을들이 혹 이미 올려보낸 곳도 있고 올려보내지 않은 곳도 있는데, 원수(元數)는 60여 동(同)도 되지 않습니다. 경상도는 원결(元結)의 수미(收米)가 5천 7백 10여 석이고 작목(作木)은 4백 50여 동인데, 누차 독촉을 하였으나 아직 수송해 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경기, 황해도, 공홍도, 전라도 등에서 납부하는 쌀 가운데에서 아직 거두어들이지 못한 것을 계산하여 덜어내고 나면 실제로 봉납한 것이 1만 8천 7백여 석인데, 지난 겨울부터 7월에 이르기까지 삭반료(朔半料)를 방출하는 것도 혹 부족한 때가 있어서 또한 호조에서 빌려다가 사용함을 면치 못하였으니, 지금에 이르러 바닥이 난 것은 형세가 본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급급한 때를 당하여 만약 변통하지 않는다면 올해에만 그러할 뿐이 아니라 내년에는 더욱 심할 것이고 그 다음해는 더더욱 심해져서 장차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전일의 해조의 계사에, ‘매 1결마다 3승 혹은 2승씩을 더 거두어 지출을 잇댈 방책으로 삼아야 합니다.’라고 한 것은 참으로 부득이한 일이거니와, 비변사의 계사 안에, ‘도감이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혹 차인(差人)을 보내어 무판(貿販)하게 한 것은 참으로 이러한 때의 수용(需用)을 위해서였습니다. 도감이 받아들이는 포보(砲保)의 목면을 미루어 이송해다가 바꾸어 사용하면 잇대기 어려울 염려가 없습니다. 결코 민결(民結)에서 더 거두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한 것은 실로 묘당이 백성들을 보존시키려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만둘 수가 없는 의논이었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비국과 도감은 관장하는 바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실로 도감에서는 추용(推用)할 길이 없다는 것을 자세히 알지 못한 것입니다. 둔전의 무판은 혁파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다만 역적 이진(李珒)의 전답만 있어서 처음에는 도감에 소속시켰었는데, 일찍이 충훈부의 계사로 인하여 반을 나누어 이송시켰고, 그대로 도감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그 숫자가 많지 않습니다. 백성들의 전답을 빼앗았던 것들도 모두 본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나머지를 본관으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였는데, 그 수확으로 1년에 들어오는 것이 몇 백 석도 되지 않습니다. 어전(魚箭)은 단지 하찮은 두서너 곳 있는 것을 또한 본관으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였는데 거두는 세금 1년치의 작포(作布)가 겨우 두세 동입니다. 서적(書籍)의 무포(貿布)와 선세(船稅)의 작목(作木)도 약간 보탤 것이 있으나 모두 각각 사용되는 곳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군향(軍餉) 이외에, 군중(軍中)의 깃발과 포장(布帳), 군인의 호의(號衣)와 호건(號巾)을 해어지는 대로 개비하는 데에 드는 비용 및 빈한한 각 초군(哨軍)들의 옷감, 북방에 방수 나가는 군인들의 장속 제구(裝束諸具), 거동할 때의 등촉가(燈燭價), 장관(將官)과 감관(監官)들의 부마료(夫馬料), 장인(匠人)과 하인들에게 매달 내려주는 옷감, 기타 온갖 잡물들의 비용이 모두가 여기에서 나오는 것인데, 오히려 부족합니다. 그리고 각색(各色)에 비록 혹 여러 가지 조판(措辦)하는 일이 있으나 그 조판한 것으로 본색(本色)에 옮겨다 조치하고 나면 그 외의 나머지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포보의 역(役)과 같은 것은 단지 군병들의 옷감만 있으니, 군병들이 믿고서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어찌 월삭(月朔)의 봉료(捧料)에 견주어 경중이 있겠습니까. 설사 여정(餘丁)의 사소한 저축이 있더라도 군수(軍需) 한두 가지를 보충하는 일이라면 그래도 혹 가능하겠으나 이것으로 허다한 군료(軍料)에 추용(推用)하는 것은 결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이 호조의 계사는 방책이 없는 데에서 나온 것이고, 도감이 요리한 것도 쌀을 더 거두는 한 가지 일에 지나지 않으며, 노약자들을 도태하여 비용을 절약하고 줄이자는 것은 또한 전일의 해조의 계사가 있었으니, 앞으로의 절실하고 시급한 방책은 이 두 가지 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도감이 쉽게 의논해 처리할 문제가 아닙니다. 노약자를 도태시키는 것의 편리 여부는 마땅히 도감에서 다시 의논하여 아뢸 것이나, 쌀을 더 거두는 일은 호조로 하여금 다시 묘당과 더불어 속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소서. 그런데 금년 8월의 삭료(朔料)는 한 달이 단지 5, 6일 남았는데, 미루어 조용(調用)하는 일을 서로 떠넘기며 그 굶주리는 것을 멀거니 보고만 있다가 밤낮으로 호위하는 군졸들로 하여금 불만스런 마음을 갖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호조로 하여금 더욱 잘 요리해서 급급히 이송해다가 제급하여 눈앞에 닥친 근심을 구제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호조의 계사에, ‘도감의 삼수량(三手糧)으로 1년에 받아들이는 것이 2만 8천여 석입니다. 금년에 비록 각도에 재해가 들어 견감해 주었고 군사의 숫자를 더 차출하였다고는 하나 갑자기 완전히 바닥이 난 것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5월치의 요미(料米)도 부족하다고 하여 본조에서 빌려다 사용하였는데 지금 또 이와 같이 계청을 하였습니다. 모두가 같은 국가의 비용이니 남의 일처럼 무관심할 수는 없습니다. 삼수량은 한 달에 방출(放出)하는 것이 2천 4백여 석을 밑돌지 않으니, 1년을 통계(通計)하면 거의 반록(頒祿)하는 숫자와 서로 비등합니다. 국가의 경비(經費)가 해마다 고갈되어 매 분등(分等)의 반록을 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는데, 삼수량 같은 막대한 지출을 달마다 본조에다가 책임을 떠맡기면 앞으로의 경비를 참으로 잇대기 어렵습니다. 전일에 본조가, 「삼도(三道)의 삼수량을 매 1결마다 쌀 3승(升) 혹은 2승을 더 거두어 지출을 잇댈 수 있게 하는 방책으로 삼아야 합니다.」라고 계청하였는데, 비변사가, 「도감이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혹 차인(差人)을 시켜 무판(貿販)하게 한 것은 진정으로 이러한 때의 수용(需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도감이 받아들이는 포보목(砲保木)을 미루어 옮겨다 바꾸어 쓰면 잇대기 어려울 걱정이 없습니다. 결코 민결(民結)에서 더 거두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계청한 일을 상께서 계하하셨습니다. 본조에서는 다시 손을 쓸 만한 방책이 없습니다. 뒷날은 논할 것도 없이 이달치의 양료(糧料)를 마련해 줄 길이 없습니다. 비변사의 계사대로, 도감의 둔전(屯田)과 어전(魚箭)의 온갖 무판(貿辦)한 목면과 삼수량을 작목(作木)한 것과 포보(砲保)로 거두어들인 목면을 옮겨다 방출하고, 그 나머지 부족한 숫자는 도감이 다시 비변사와 상의하여 혹 쌀을 더 거두어서 별도로 처리하게 하소서.’ 한 일에 대해, 윤허를 내리시어 이문(移文)을 하였습니다.
육도(六道)의 삼수량은 1년에 받아들이는 것이 2만 8천여 석인데, 으레 그해 겨울에 경기(京畿)로부터 시작하여 거두어들여 방출에 충당하는 것이 이미 영구한 법식이 되었습니다. 당초에 삼수량을 설립할 때에는 1년에 방출할 숫자를 가지고 결수를 계산하여 쌀을 거두었기 때문에 지출하기에 충분하였고, 그 당시의 군액(軍額)은 3천 몇 백 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뒤 노약자는 도태시키지 않고 그대로 두고서 잇달아 사람을 모집해 들여 날마다 달마다 증가되어 지금의 원액(元額)은 이미 4천 수백여 명이 넘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방출하는 것이 거의 2천 5백 석에 이릅니다. 이밖에도 장관(將官)의 참상(參上)과 참하(參下) 및 궁전(弓箭), 조총(鳥銃), 화약(火藥), 염초(焰硝), 서적(書籍), 별도로 만드는 신서(新書), 그리고 각청(各廳)의 감관(監官), 장인(匠人), 서리(書吏), 사령(使令), 고직(庫直), 주사(舟師), 수직(守直) 등에게 소요되는 매달의 양료(糧料) 등도 2백 50석을 밑돌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모두 삼수량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해조에서는 매양 이러한 양료들은 삼수량에서 뒤섞어 방출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하지만, 이는 도감이 삼수량을 관리하여 거두어들이게 된 뒤에 뒤섞어 방출하기를 처음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당초 둔전을 혁파했을 때에 도감의 수용(需用)이 나올 곳이 없게 되자, 대신의 수의(收議)를 인하여 호조로 하여금 장관(將官)과 장인(匠人)의 양료 및 각종 해용(該用)에 1년 동안 지출할 2천 5백 석을 계산하여 덜어내서 도감으로 이송하게 하여, 용도에 사용하게 하였으니, 이러한 양료를 삼수량에서 방출하는 것은 또한 오래된 일입니다.
군료(軍料)를 통계하면 한 달에 방출하는 것이 2천 7백여 석이고 1년을 통틀어 3만 2천 4백여 석입니다. 이 1년에 받아들일 것으로 그 1년의 비용을 계산해 보면, 원수(元數)가 부족한 것이 이미 4천여 석인데, 지난해에는 윤달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해에 지공할 쌀 2천 4백여 석을 이미 앞당겨 끌어다 사용하였고, 또 흉년으로 인하여 하삼도(下三道)의 전결이 감축된 것이 4만 9천 2백 20여 결로, 작미(作米) 2천 7백 30여 석이 줄었습니다. 합해서 계산해 보면, 금년의 삼수량이 감축된 것이 5천 수백여 석입니다. 그리고 응당 봉납해야 할 것 가운데에, 공홍도(公洪道)의 산군(山郡)과 강원도(江原道) 영동(嶺東) 등의 작미(作米)를 올려 보내야 할 고을들이 혹 이미 올려보낸 곳도 있고 올려보내지 않은 곳도 있는데, 원수(元數)는 60여 동(同)도 되지 않습니다. 경상도는 원결(元結)의 수미(收米)가 5천 7백 10여 석이고 작목(作木)은 4백 50여 동인데, 누차 독촉을 하였으나 아직 수송해 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경기, 황해도, 공홍도, 전라도 등에서 납부하는 쌀 가운데에서 아직 거두어들이지 못한 것을 계산하여 덜어내고 나면 실제로 봉납한 것이 1만 8천 7백여 석인데, 지난 겨울부터 7월에 이르기까지 삭반료(朔半料)를 방출하는 것도 혹 부족한 때가 있어서 또한 호조에서 빌려다가 사용함을 면치 못하였으니, 지금에 이르러 바닥이 난 것은 형세가 본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급급한 때를 당하여 만약 변통하지 않는다면 올해에만 그러할 뿐이 아니라 내년에는 더욱 심할 것이고 그 다음해는 더더욱 심해져서 장차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전일의 해조의 계사에, ‘매 1결마다 3승 혹은 2승씩을 더 거두어 지출을 잇댈 방책으로 삼아야 합니다.’라고 한 것은 참으로 부득이한 일이거니와, 비변사의 계사 안에, ‘도감이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혹 차인(差人)을 보내어 무판(貿販)하게 한 것은 참으로 이러한 때의 수용(需用)을 위해서였습니다. 도감이 받아들이는 포보(砲保)의 목면을 미루어 이송해다가 바꾸어 사용하면 잇대기 어려울 염려가 없습니다. 결코 민결(民結)에서 더 거두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한 것은 실로 묘당이 백성들을 보존시키려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으로서 그만둘 수가 없는 의논이었습니다.
다만 생각건대, 비국과 도감은 관장하는 바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실로 도감에서는 추용(推用)할 길이 없다는 것을 자세히 알지 못한 것입니다. 둔전의 무판은 혁파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다만 역적 이진(李珒)의 전답만 있어서 처음에는 도감에 소속시켰었는데, 일찍이 충훈부의 계사로 인하여 반을 나누어 이송시켰고, 그대로 도감에 소속되어 있는 것은 그 숫자가 많지 않습니다. 백성들의 전답을 빼앗았던 것들도 모두 본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 나머지를 본관으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였는데, 그 수확으로 1년에 들어오는 것이 몇 백 석도 되지 않습니다. 어전(魚箭)은 단지 하찮은 두서너 곳 있는 것을 또한 본관으로 하여금 관리하게 하였는데 거두는 세금 1년치의 작포(作布)가 겨우 두세 동입니다. 서적(書籍)의 무포(貿布)와 선세(船稅)의 작목(作木)도 약간 보탤 것이 있으나 모두 각각 사용되는 곳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군향(軍餉) 이외에, 군중(軍中)의 깃발과 포장(布帳), 군인의 호의(號衣)와 호건(號巾)을 해어지는 대로 개비하는 데에 드는 비용 및 빈한한 각 초군(哨軍)들의 옷감, 북방에 방수 나가는 군인들의 장속 제구(裝束諸具), 거동할 때의 등촉가(燈燭價), 장관(將官)과 감관(監官)들의 부마료(夫馬料), 장인(匠人)과 하인들에게 매달 내려주는 옷감, 기타 온갖 잡물들의 비용이 모두가 여기에서 나오는 것인데, 오히려 부족합니다. 그리고 각색(各色)에 비록 혹 여러 가지 조판(措辦)하는 일이 있으나 그 조판한 것으로 본색(本色)에 옮겨다 조치하고 나면 그 외의 나머지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포보의 역(役)과 같은 것은 단지 군병들의 옷감만 있으니, 군병들이 믿고서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어찌 월삭(月朔)의 봉료(捧料)에 견주어 경중이 있겠습니까. 설사 여정(餘丁)의 사소한 저축이 있더라도 군수(軍需) 한두 가지를 보충하는 일이라면 그래도 혹 가능하겠으나 이것으로 허다한 군료(軍料)에 추용(推用)하는 것은 결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 이 호조의 계사는 방책이 없는 데에서 나온 것이고, 도감이 요리한 것도 쌀을 더 거두는 한 가지 일에 지나지 않으며, 노약자들을 도태하여 비용을 절약하고 줄이자는 것은 또한 전일의 해조의 계사가 있었으니, 앞으로의 절실하고 시급한 방책은 이 두 가지 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도감이 쉽게 의논해 처리할 문제가 아닙니다. 노약자를 도태시키는 것의 편리 여부는 마땅히 도감에서 다시 의논하여 아뢸 것이나, 쌀을 더 거두는 일은 호조로 하여금 다시 묘당과 더불어 속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소서. 그런데 금년 8월의 삭료(朔料)는 한 달이 단지 5, 6일 남았는데, 미루어 조용(調用)하는 일을 서로 떠넘기며 그 굶주리는 것을 멀거니 보고만 있다가 밤낮으로 호위하는 군졸들로 하여금 불만스런 마음을 갖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시 호조로 하여금 더욱 잘 요리해서 급급히 이송해다가 제급하여 눈앞에 닥친 근심을 구제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양사가 합계하여 이운상의 일을 아뢰고, 또 아뢰기를, "신들이 삼가 보건대, 어제의 성상의 비답에, ‘교사(祀)의 일은, 세조 때에는 옛 전례에 통달한 유식한 사람들이 조정에 가득했었는데, 만약 비례(非禮)에 관계되는 것이었다면 어찌 바로잡는 자가 없었겠는가. 그 당시의 대신과 대간이 오늘날의 대간만 못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등의 말로 전교하셨습니다. 신들은 삼가 의혹스럽습니다. 사람이 예를 모르고 일에 옛것을 상고할 수 없다면 비록 가벼이 의논할 수가 없겠습니다만, 교사(郊祀)가 비례(非禮)라는 것은 실로 이전의 성인이신 공자(孔子)께서 확정지은 의논입니다. 당시에 그것을 바로잡지 못한 것은, 어찌 당시의 수치가 아니겠으며 후세에서 경계로 삼아야 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근년 이래로 중국과 우리 나라는 의리로 보아 한 집안과 같아서 사신들이 잇달아 오고가 안팎의 간격이 없으니, 우리 나라의 크고 작은 일에 대해서 중국에서 모를 리가 만무합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남들이 못 듣도록 하려면 말하지 않는 것만한 것이 없고 남들이 모르도록 하려면 행하지 않는 것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천자를 참람하게 핍박하는 이러한 제사를, 어찌 감히 이미 시행한 규례가 있다고 핑계대고 행하여, 참소하는 적들의 구실거리를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더구나 오늘날의 성상께서는 흉악한 역적들을 소탕하여 나라를 다시 재건하였으니 난리를 평정한 공로는 전대보다 훨씬 우뚝합니다. 그래서 장차 보좌(輔佐)한 신료들과 함께 천지(天地)와 산하(山河)에 맹서하고 북단(北壇)에서 희생과 폐백을 사용하여 제사를 지내려고 하니, 이것은 참으로 그 성공을 고하려는 뜻입니다. 어찌 굳이 남교(南郊)에 제사를 지내야 할 일이겠습니까. 남교에 몸소 제사하겠다는 명을 속히 거두소서." 하니, 이미 하유하였다고 답하였다.
"신들이 삼가 보건대, 어제의 성상의 비답에, ‘교사(祀)의 일은, 세조 때에는 옛 전례에 통달한 유식한 사람들이 조정에 가득했었는데, 만약 비례(非禮)에 관계되는 것이었다면 어찌 바로잡는 자가 없었겠는가. 그 당시의 대신과 대간이 오늘날의 대간만 못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등의 말로 전교하셨습니다.
신들은 삼가 의혹스럽습니다. 사람이 예를 모르고 일에 옛것을 상고할 수 없다면 비록 가벼이 의논할 수가 없겠습니다만, 교사(郊祀)가 비례(非禮)라는 것은 실로 이전의 성인이신 공자(孔子)께서 확정지은 의논입니다. 당시에 그것을 바로잡지 못한 것은, 어찌 당시의 수치가 아니겠으며 후세에서 경계로 삼아야 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근년 이래로 중국과 우리 나라는 의리로 보아 한 집안과 같아서 사신들이 잇달아 오고가 안팎의 간격이 없으니, 우리 나라의 크고 작은 일에 대해서 중국에서 모를 리가 만무합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남들이 못 듣도록 하려면 말하지 않는 것만한 것이 없고 남들이 모르도록 하려면 행하지 않는 것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천자를 참람하게 핍박하는 이러한 제사를, 어찌 감히 이미 시행한 규례가 있다고 핑계대고 행하여, 참소하는 적들의 구실거리를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더구나 오늘날의 성상께서는 흉악한 역적들을 소탕하여 나라를 다시 재건하였으니 난리를 평정한 공로는 전대보다 훨씬 우뚝합니다. 그래서 장차 보좌(輔佐)한 신료들과 함께 천지(天地)와 산하(山河)에 맹서하고 북단(北壇)에서 희생과 폐백을 사용하여 제사를 지내려고 하니, 이것은 참으로 그 성공을 고하려는 뜻입니다. 어찌 굳이 남교(南郊)에 제사를 지내야 할 일이겠습니까. 남교에 몸소 제사하겠다는 명을 속히 거두소서."
하니, 이미 하유하였다고 답하였다.
헌부가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룄다.
간원이 윤영현과 박엽의 일을 아룄다.
양사에게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하였다.
8월 26일 갑자
양사가, 남교에서 친제하겠다는 명을 속히 거두기를 합계하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으니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관학(館學) 유생(儒生) 심지청(沈之淸) 등이 상소하여, ‘조식(曺植)을 문묘(文廟)에 종사(從祀)할 것’을 청하였는데, 답하기를, "상소를 살펴 보고 모두 잘 알았다. 다만 종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니 경솔하게 거행하기가 어렵다." 하였다.
"상소를 살펴 보고 모두 잘 알았다. 다만 종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니 경솔하게 거행하기가 어렵다."
하였다.
8월 27일 을축
한찬남이 아뢰기를, "역적의 괴수 김제남의 집에 대하여, 집을 없애고 못을 만들라고 하명하셨는데, 호조와 한성부가 각사를 거느리고 어제 집을 철거하려고 하였더니, 그곳의 별장(別將)이 말하기를, ‘바야흐로 역적의 집을 지키고 있는데, 지키는 일을 그만두라는 명이 아직 없었다. 역적의 아내를 처치하기 전에는 철거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역적의 아내를 처치할 일을 의금부로 하여금 급속히 시행하게 한 뒤에 율문에 의거하여 집을 헐어버리고 파서 못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금부로 하여금 의논하여 아뢰게 한 뒤에 처치하라." 하였다.
"역적의 괴수 김제남의 집에 대하여, 집을 없애고 못을 만들라고 하명하셨는데, 호조와 한성부가 각사를 거느리고 어제 집을 철거하려고 하였더니, 그곳의 별장(別將)이 말하기를, ‘바야흐로 역적의 집을 지키고 있는데, 지키는 일을 그만두라는 명이 아직 없었다. 역적의 아내를 처치하기 전에는 철거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역적의 아내를 처치할 일을 의금부로 하여금 급속히 시행하게 한 뒤에 율문에 의거하여 집을 헐어버리고 파서 못을 만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금부로 하여금 의논하여 아뢰게 한 뒤에 처치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이번 주청(奏請) 방물(方物)은, 해사에 저축된 것이 없으면 속히 편의에 따라 조치해 준비하여 잘 처리하라고 해조에 말하라."
"이번 주청(奏請) 방물(方物)은, 해사에 저축된 것이 없으면 속히 편의에 따라 조치해 준비하여 잘 처리하라고 해조에 말하라."
선수도감이 아뢰기를, "유지(有旨)에, ‘명정전(明政殿)은 보첨(補簷)을 더하여 조성하고 월대(月臺)를 더 축조하고 어탑도 보충하여 만들면 좋겠다. ’고 전교하셨습니다. 지난해 이 명정전(明政殿)을 중건(重建)할 때에, 술관(術官) 이의신(李懿信)이 ‘형국(形局)을 변경하여 남향(南向)으로 짓는 것이 마땅하겠다.’고 하고, 그 나머지 많은 술관들은 ‘결코 형국을 변경시킬 수 없다. 옛 제도대로 짓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여,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그럭저럭 반 년이 지나, 가을 절기가 이미 늦었는데도 일을 시작하지 못하였습니다. 신들이 민망함을 못하여, ‘속히 명지(明旨)를 내리시어 방향을 단정지으소서.’라고 계사를 올리자, 성상의 비답에, ‘정전(正殿)을 제외하고는 옛 제도대로 지으라.’고 하명하셨습니다. 신들은 단지 옛 제도를 따라 지킬 줄만 알았고 또 간곡한 성상의 분부를 받들었기에 그대로 지금 이미 완성을 하였는데, 완성해 놓은 뒤에, 지나치게 좁다는 이 분부를 받들고 보니, 신들은 멍하니 넋이 나간 것처럼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만약 성상의 분부처럼 기둥을 물려서 잘 지어 인정전(仁政殿)과 다름이 없게 하자면, 안쪽의 간가(間架)가 반드시 월대(月臺)에 가득차게 되고, 그래서 부득이 월대를 물려 쌓게 되면 남북(南北) 대정(大庭)에 남는 땅이 아주 작게 되어 결코 모양을 이루지 못하게 되니, 인정전처럼 할 수가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월대를 한 칸쯤 물려 쌓고 보첨(補簷)을 더하여 조성하면 매우 편리하고 좋을 듯한데, 재주 있는 목수(木手) 황송룡(黃松龍)과 이가응손(李加應孫) 등 10여 명과 반복하여 상세히 의논하였더니, 모두들 말하기를, ‘우리들은 둔한 목수인지라 논란할 수는 없겠지만, 설령 옛날의 이른바 아주 재주있는 양공(良工)이 다시 살아나더라도 결코 시행할 만한 계책이 없을 것이다. 온갖 계책을 다 생각해 보아도 다시 진달할 말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생각건대, 조종조에서 처음으로 이 집을 지을 때에 필시 안목이 있는 사람에게 널리 자문을 구하여 이 변동할 수 없는 기지(基址)를 창건했을 것이니, 전각(殿閣)의 크고 작음과 기지(基址)의 내고 물리는 것을 필시 예사롭게 강정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 술관들과 성지(性智)를 불러 모아, 월대를 물려쌓고 조금 보첨(補簷)을 덧붙이는 것이 어떨지에 대하여 상세히 물어보았더니, 모두들 말하기를, ‘집터를 정하는 옛 사람의 법에 「그 산판(山坡) 형세의 고저(高低)와 광협(廣狹)을 보고 짓는다.」고 하였다. 때문에 형국(形局)이 작은 곳에는 결코 광대한 집을 지을 수가 없다. 이 명정전의 터를 보니, 우묵한 곳에서 돌출된 형세의 터[窩中起突]이므로, 지세의 형국이 본래 협소한 곳이다. 그러므로 당초에 광대하게 지으면 아름답다는 것을 모른 것이 아니나 지형의 협소함을 인하여 편의에 따라 지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곳은 명당(明堂)이 가로로 좁게 배치되어 있고 전안(前案)이 매우 가까운지라 설령 오늘날 비록 신전(新殿)을 이곳에 짓더라도 반드시 지세(地勢)에 맞추어 지어야 한다. 이 터에는 결코 광대하게 건축을 할 수가 없다.’ 하였습니다. 장인(匠人)들의 말이 이미 저러하고 술관(術官)들의 말이 또 이러한데, 성지(性智)의 말까지도 ‘이 터에 궁전을 만약 크게 짓는다면 그것은 마치 접시에 모과(木瓜)를 가득 담아 놓는 것과 같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았으나 계책을 낼 수가 없습니다. 결코 다시 고칠 수는 없으며 여러 사람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어탑(御榻)이 낮고 좁아서 조금 더 보충하여 짓는 일에 대해서도 장인들에게 의논하였더니, ‘어탑은 궁전의 형세와 서로 걸맞게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만약 더 보충한다면, 모양이 서로 걸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몇 촌(寸)을 더하게 되면 계단의 모양이 경사가 급하게 되어 오르내리는 데에 불편할 것이다. 전각을 더 높이지 않고서는 계단도 보충하여 만들기가 어렵다.’ 하였습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보첨을 덧붙일 수 있으면 도형(圖形)을 입계한 뒤에 공장(工匠)으로 하여금 잘 짓도록 하라. 전내(殿內)가 비좁을 듯하더라도 어탑의 모양을 동쪽으로 더 덧붙여 만들면 편리하고 좋겠는데, 다시 방법을 생각하여 상세히 의논하여 잘 처리하도록 하라." 하였다.
"유지(有旨)에, ‘명정전(明政殿)은 보첨(補簷)을 더하여 조성하고 월대(月臺)를 더 축조하고 어탑도 보충하여 만들면 좋겠다. ’고 전교하셨습니다.
지난해 이 명정전(明政殿)을 중건(重建)할 때에, 술관(術官) 이의신(李懿信)이 ‘형국(形局)을 변경하여 남향(南向)으로 짓는 것이 마땅하겠다.’고 하고, 그 나머지 많은 술관들은 ‘결코 형국을 변경시킬 수 없다. 옛 제도대로 짓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여,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그럭저럭 반 년이 지나, 가을 절기가 이미 늦었는데도 일을 시작하지 못하였습니다. 신들이 민망함을 못하여, ‘속히 명지(明旨)를 내리시어 방향을 단정지으소서.’라고 계사를 올리자, 성상의 비답에, ‘정전(正殿)을 제외하고는 옛 제도대로 지으라.’고 하명하셨습니다. 신들은 단지 옛 제도를 따라 지킬 줄만 알았고 또 간곡한 성상의 분부를 받들었기에 그대로 지금 이미 완성을 하였는데, 완성해 놓은 뒤에, 지나치게 좁다는 이 분부를 받들고 보니, 신들은 멍하니 넋이 나간 것처럼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만약 성상의 분부처럼 기둥을 물려서 잘 지어 인정전(仁政殿)과 다름이 없게 하자면, 안쪽의 간가(間架)가 반드시 월대(月臺)에 가득차게 되고, 그래서 부득이 월대를 물려 쌓게 되면 남북(南北) 대정(大庭)에 남는 땅이 아주 작게 되어 결코 모양을 이루지 못하게 되니, 인정전처럼 할 수가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월대를 한 칸쯤 물려 쌓고 보첨(補簷)을 더하여 조성하면 매우 편리하고 좋을 듯한데, 재주 있는 목수(木手) 황송룡(黃松龍)과 이가응손(李加應孫) 등 10여 명과 반복하여 상세히 의논하였더니, 모두들 말하기를, ‘우리들은 둔한 목수인지라 논란할 수는 없겠지만, 설령 옛날의 이른바 아주 재주있는 양공(良工)이 다시 살아나더라도 결코 시행할 만한 계책이 없을 것이다. 온갖 계책을 다 생각해 보아도 다시 진달할 말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생각건대, 조종조에서 처음으로 이 집을 지을 때에 필시 안목이 있는 사람에게 널리 자문을 구하여 이 변동할 수 없는 기지(基址)를 창건했을 것이니, 전각(殿閣)의 크고 작음과 기지(基址)의 내고 물리는 것을 필시 예사롭게 강정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 술관들과 성지(性智)를 불러 모아, 월대를 물려쌓고 조금 보첨(補簷)을 덧붙이는 것이 어떨지에 대하여 상세히 물어보았더니, 모두들 말하기를, ‘집터를 정하는 옛 사람의 법에 「그 산판(山坡) 형세의 고저(高低)와 광협(廣狹)을 보고 짓는다.」고 하였다. 때문에 형국(形局)이 작은 곳에는 결코 광대한 집을 지을 수가 없다. 이 명정전의 터를 보니, 우묵한 곳에서 돌출된 형세의 터[窩中起突]이므로, 지세의 형국이 본래 협소한 곳이다. 그러므로 당초에 광대하게 지으면 아름답다는 것을 모른 것이 아니나 지형의 협소함을 인하여 편의에 따라 지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곳은 명당(明堂)이 가로로 좁게 배치되어 있고 전안(前案)이 매우 가까운지라 설령 오늘날 비록 신전(新殿)을 이곳에 짓더라도 반드시 지세(地勢)에 맞추어 지어야 한다. 이 터에는 결코 광대하게 건축을 할 수가 없다.’ 하였습니다. 장인(匠人)들의 말이 이미 저러하고 술관(術官)들의 말이 또 이러한데, 성지(性智)의 말까지도 ‘이 터에 궁전을 만약 크게 짓는다면 그것은 마치 접시에 모과(木瓜)를 가득 담아 놓는 것과 같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신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았으나 계책을 낼 수가 없습니다. 결코 다시 고칠 수는 없으며 여러 사람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어탑(御榻)이 낮고 좁아서 조금 더 보충하여 짓는 일에 대해서도 장인들에게 의논하였더니, ‘어탑은 궁전의 형세와 서로 걸맞게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만약 더 보충한다면, 모양이 서로 걸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몇 촌(寸)을 더하게 되면 계단의 모양이 경사가 급하게 되어 오르내리는 데에 불편할 것이다. 전각을 더 높이지 않고서는 계단도 보충하여 만들기가 어렵다.’ 하였습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보첨을 덧붙일 수 있으면 도형(圖形)을 입계한 뒤에 공장(工匠)으로 하여금 잘 짓도록 하라. 전내(殿內)가 비좁을 듯하더라도 어탑의 모양을 동쪽으로 더 덧붙여 만들면 편리하고 좋겠는데, 다시 방법을 생각하여 상세히 의논하여 잘 처리하도록 하라."
하였다.
호조가 아뢰기를, "훈련 도감 초기(草記)의 ‘도감의 군병 가운데 노약자를 도태시킬 일은 도감에서 다시 의논하여 아뢸 것이고, 쌀을 더 거두는 일은 호조로 하여금 다시 묘당(廟堂)과 더불어 속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되, 8월의 삭료(朔料)는 호조로 하여금 더욱 잘 요리하여 서둘러 미루어 옮겨서 제급(題給)하게 할 일’에 대하여, 윤허를 내리셨습니다. 군향(軍餉)이 부족함이 이토록 극도에 이르렀으니 군사들이 불만을 품고 변란을 일으킬 상황이 눈앞에 닥쳤습니다. 신들이 탁지(度支)를 담당하고 있으니 어찌 도감의 소관이라고 하며 그들의 굶주림을 남의 일처럼 여기고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세 창고의 저축이 겨우 눈앞에 닥친 경비나 지탱할 정도이어서 10월의 반록(頒祿)도 부족할 듯하여 바야흐로 큰 염려를 하고 있는데, 또 이 뜻밖의 방출할 일을 만났습니다. 반록과 방량(放糧) 두 가지는 함께 시행하기 어려운 형세인데 눈앞의 일은 시급하니 다시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이 없습니다. 삼수량을 더 거두는 일은 대개 부득이한 조치입니다. 군량을 저축하지 않고서 병사를 잘 기르는 일은 예로부터 없었습니다. 이전의 계사대로 대신에게 의논하여 시행해서 가을에는 거두어들일 수 있게 하소서. 8월의 삭료로 지출할 쌀은 본조에서 미루어 옮겨서 제급하겠습니다만, 다음달의 삭료는 도감으로 하여금 기일 이전에 미리 잘 계획하여 처리하게 하소서. 노약자를 도태시켜서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는 일과 번(番)을 나누어 번갈아 쉬게 하여 군사들이 바라는 대로 하는 등의 일도 도감으로 하여금 속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훈련 도감 초기(草記)의 ‘도감의 군병 가운데 노약자를 도태시킬 일은 도감에서 다시 의논하여 아뢸 것이고, 쌀을 더 거두는 일은 호조로 하여금 다시 묘당(廟堂)과 더불어 속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되, 8월의 삭료(朔料)는 호조로 하여금 더욱 잘 요리하여 서둘러 미루어 옮겨서 제급(題給)하게 할 일’에 대하여, 윤허를 내리셨습니다.
군향(軍餉)이 부족함이 이토록 극도에 이르렀으니 군사들이 불만을 품고 변란을 일으킬 상황이 눈앞에 닥쳤습니다. 신들이 탁지(度支)를 담당하고 있으니 어찌 도감의 소관이라고 하며 그들의 굶주림을 남의 일처럼 여기고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세 창고의 저축이 겨우 눈앞에 닥친 경비나 지탱할 정도이어서 10월의 반록(頒祿)도 부족할 듯하여 바야흐로 큰 염려를 하고 있는데, 또 이 뜻밖의 방출할 일을 만났습니다. 반록과 방량(放糧) 두 가지는 함께 시행하기 어려운 형세인데 눈앞의 일은 시급하니 다시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이 없습니다.
삼수량을 더 거두는 일은 대개 부득이한 조치입니다. 군량을 저축하지 않고서 병사를 잘 기르는 일은 예로부터 없었습니다. 이전의 계사대로 대신에게 의논하여 시행해서 가을에는 거두어들일 수 있게 하소서.
8월의 삭료로 지출할 쌀은 본조에서 미루어 옮겨서 제급하겠습니다만, 다음달의 삭료는 도감으로 하여금 기일 이전에 미리 잘 계획하여 처리하게 하소서. 노약자를 도태시켜서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는 일과 번(番)을 나누어 번갈아 쉬게 하여 군사들이 바라는 대로 하는 등의 일도 도감으로 하여금 속히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양사가 합계하여, 남교(南郊)에서 몸소 제사지내겠다는 명을 속히 거두기를 청하니, 답하기를, "이미 하유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이미 하유하였다.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옥당이 교사(郊祀)를 정지할 것을 청하는 차자를 올렸는데, 답하기를, "세조조에는 옛 전례에 통달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조정에 가득했었는데, 만약 합당한 예가 아니었다면 어찌 바로잡는 자가 없었겠는가. 그 당시의 대신과 삼사가 오늘날의 삼사만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계축년의 난리를 평정한 일을 가지고 세조 때의 일에 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역적들과 뭇 흉도들을 모두 소탕하였으니, 고사(古事)를 모방하여 그 성공을 고하여도 방해로움이 없을 듯하다. 번거롭게 논란하지 말라." 하였다.
"세조조에는 옛 전례에 통달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조정에 가득했었는데, 만약 합당한 예가 아니었다면 어찌 바로잡는 자가 없었겠는가. 그 당시의 대신과 삼사가 오늘날의 삼사만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계축년의 난리를 평정한 일을 가지고 세조 때의 일에 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역적들과 뭇 흉도들을 모두 소탕하였으니, 고사(古事)를 모방하여 그 성공을 고하여도 방해로움이 없을 듯하다. 번거롭게 논란하지 말라."
하였다.
한찬남에게 전교하였다. "박흥빈 등 다섯 역적은 수금된 지가 오래된 죄인이다. 만약 병이 위중하면 즉시 칼을 풀고 구료하도록 하라."
"박흥빈 등 다섯 역적은 수금된 지가 오래된 죄인이다. 만약 병이 위중하면 즉시 칼을 풀고 구료하도록 하라."
생원 심지청(沈之淸)의 상소에 답하기를, "어제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어제 이미 하유하였다.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였다.
8월 28일 병인
전교하였다. "추숭(追崇)을 마치고 궁궐로 돌아올 때에 병관(兵官)과 근신(近臣)은 한결같이 지난해의 전례에 따라 보행(步行)으로 시위할 일을 상세히 살펴 시행하라."
"추숭(追崇)을 마치고 궁궐로 돌아올 때에 병관(兵官)과 근신(近臣)은 한결같이 지난해의 전례에 따라 보행(步行)으로 시위할 일을 상세히 살펴 시행하라."
호조가 아뢰기를, "정원의 계사의 ‘반사(頒賜)할 이엄(耳掩)을 만들 모물(毛物)을 해조로 하여금 미리 양계(兩界)에서 무역하게 하고, 색관(色官)으로 하여금 무역한 모물을 봉납(封納)하게 해서 상방(尙方)의 관원과 함께 감독하여 이엄을 만들도록 할 일’로 전교하셨습니다. 모물을 무역하는 일은 시민(市民)들에게 커다란 폐단을 끼치며, 매년 으레 지급하는 가포(價布)가 56동이나 됩니다. 신들이 지난해 겨울에 북도(北道)로 내려보낼 호인(胡人)의 녹봉(祿俸) 중에 남은 목면 10동을 가지고 본도로 하여금 돈피를 무역해 보내게 해서 반사할 용도로 쓰고자 하였는데, 본도가 장계(狀啓)를 올려 막았기 때문에 부득이 그 목면으로 곡물(穀物)을 무역하여 변방의 군량을 삼았습니다. 금년에 또 백지(白紙) 2천 권(卷)을 북도에 보내어 돈피와 서피, 황모 포자(黃毛布子) 등의 물품을 무역하여 바꾸고자 하였는데, 들으니 본도가 또 막으려 한다고 합니다. 본조에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대개 이전부터 본조가 혹 때맞추어 그 값을 지급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쪽에서 스스로 대출하여 무역해 납부하게 되어 원망을 사게 된 것입니다. 금년에는 값을 먼저 지급하여 값에 준하여 무역해 납부하게 하고, 본조에서 품질을 살펴 봉납하여, 장인(匠人)들이 농간을 부리는 폐단을 없애고자 합니다. 함께 감독하는 가운데 이엄을 만드는 등의 일은 아뢴 내용대로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다만 시장에 모물이 희귀하고 적호피(赤狐皮)는 더욱 얻기 어렵다고 합니다. 금년은 대례(大禮)가 거듭 있어서 국용(國用)이 바닥이 났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부역도 전일에 비해 1백 배나 되었습니다. 돈피와 서피로 만드는 사모 이엄(紗帽耳掩), 입이엄(笠耳掩)은 그 숫자를 요량하여 줄이소서. 적호피와 같은 것은 하인들이 착용하는 물품에 불과하니 금년만큼은 전부를 감면하거나 절반을 감면하되, 전부를 감면할 수 없다면, 왜적호피(倭赤狐皮)를 편의에 따라 무역해다가 사용하면 거의 그 혜택을 입게 될 것입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반사할 날이 다가왔다. 더구나 이엄은 숫자가 많은 것도 아다. 이것은 난리 뒤 선조(先朝) 때에 만들어 납입하던 옛 전례대로이다. 비록 바닥이 났다고는 하나 난리 초와는 차이가 있다. 호피는 한결같이 선조 때의 옛 전례에 의해서 만들어 납입하라. 왜호피로 구차하게 충당해서는 안 된다. 호조의 낭청이 상방의 관원과 합동으로 재조하는 것도 전례가 아니다. 다만 시민들에게 해당하는 가물(價物)을 지급하여 원망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정원의 계사의 ‘반사(頒賜)할 이엄(耳掩)을 만들 모물(毛物)을 해조로 하여금 미리 양계(兩界)에서 무역하게 하고, 색관(色官)으로 하여금 무역한 모물을 봉납(封納)하게 해서 상방(尙方)의 관원과 함께 감독하여 이엄을 만들도록 할 일’로 전교하셨습니다.
모물을 무역하는 일은 시민(市民)들에게 커다란 폐단을 끼치며, 매년 으레 지급하는 가포(價布)가 56동이나 됩니다. 신들이 지난해 겨울에 북도(北道)로 내려보낼 호인(胡人)의 녹봉(祿俸) 중에 남은 목면 10동을 가지고 본도로 하여금 돈피를 무역해 보내게 해서 반사할 용도로 쓰고자 하였는데, 본도가 장계(狀啓)를 올려 막았기 때문에 부득이 그 목면으로 곡물(穀物)을 무역하여 변방의 군량을 삼았습니다. 금년에 또 백지(白紙) 2천 권(卷)을 북도에 보내어 돈피와 서피, 황모 포자(黃毛布子) 등의 물품을 무역하여 바꾸고자 하였는데, 들으니 본도가 또 막으려 한다고 합니다. 본조에서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대개 이전부터 본조가 혹 때맞추어 그 값을 지급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쪽에서 스스로 대출하여 무역해 납부하게 되어 원망을 사게 된 것입니다. 금년에는 값을 먼저 지급하여 값에 준하여 무역해 납부하게 하고, 본조에서 품질을 살펴 봉납하여, 장인(匠人)들이 농간을 부리는 폐단을 없애고자 합니다. 함께 감독하는 가운데 이엄을 만드는 등의 일은 아뢴 내용대로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다만 시장에 모물이 희귀하고 적호피(赤狐皮)는 더욱 얻기 어렵다고 합니다. 금년은 대례(大禮)가 거듭 있어서 국용(國用)이 바닥이 났을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부역도 전일에 비해 1백 배나 되었습니다. 돈피와 서피로 만드는 사모 이엄(紗帽耳掩), 입이엄(笠耳掩)은 그 숫자를 요량하여 줄이소서. 적호피와 같은 것은 하인들이 착용하는 물품에 불과하니 금년만큼은 전부를 감면하거나 절반을 감면하되, 전부를 감면할 수 없다면, 왜적호피(倭赤狐皮)를 편의에 따라 무역해다가 사용하면 거의 그 혜택을 입게 될 것입니다.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반사할 날이 다가왔다. 더구나 이엄은 숫자가 많은 것도 아다. 이것은 난리 뒤 선조(先朝) 때에 만들어 납입하던 옛 전례대로이다. 비록 바닥이 났다고는 하나 난리 초와는 차이가 있다. 호피는 한결같이 선조 때의 옛 전례에 의해서 만들어 납입하라. 왜호피로 구차하게 충당해서는 안 된다. 호조의 낭청이 상방의 관원과 합동으로 재조하는 것도 전례가 아니다. 다만 시민들에게 해당하는 가물(價物)을 지급하여 원망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비변사가 아뢰기를, "겨울 이전에 시장 백성들이 본사에 연명(連名)으로 정장(呈狀)하기를, ‘시민들이 지탱할 수 없어 원망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정상은 다 진달드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 각 도감에서 사용할 황금(黃金) 70여 냥 및 각종 필단(疋段)과 채색(彩色) 등의 잡물(雜物)이 전일에 비해 1백 배나 되는데, 그 가목(價木) 3백여 동을 받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호소하는 바입니다. 이에 이엄전(耳掩前) 때문에 전옥 우전(典獄隅前)과 상우전(上隅前) 등 조금 충실한 시장[前]도 지탱하여 보전할 수가 없어서 지금 이미 시장이 잔폐되었습니다. 그 나머지 다른 시장의 백성들도 날로 도망해 흩어져 버렸는데, 상의원이 연례로 사급하는 이엄을 마련하기 위하여 돈피 4백 47령(令), 적호피 1백 령, 서피 6백 령을 지금 또 시장의 백성들에게 책임지워 납부하게 하니, 빈털터리가 된 백성들이 구덩이에 나뒨굴어 죽게 될 일이 조석에 박두하였습니다. 고통이 하늘에 사무칩니다. 계품하여 처리해서 저희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조정에서 양계(兩界) 변방 백성들의 폐해를 덜어주기 위하여, 상납할 많은 모물의 숫자를 모두 감면하고, 매년 반사할 이엄을 호조로 하여금 값을 지급하여 시장에서 마련하게 하였으니, 국가가 변방 백성들을 돌보는 뜻이 매우 훌륭한 것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시장 백성들은 모물이 생산되지 않는 도성 안에 살고 있으므로, 모물을 무역하는 날이 되면 으레 비싼 값으로 어렵게 모물을 구하여 공가(公家)의 독촉에 응하게 되어 그 비용이 적지 않게 드는데, 해조에서는 또 때맞추어 값을 지급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생업을 잃은 자들이 매우 많아 곳곳에서 호소를 하니, 처참하여 차마 들을 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정원의 계사에 사정이 자세하게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변통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만, 올해는 추운 계절이 이미 박두하였으니 그대로 호조로 하여금 값을 지급하고 구해서 사용하게 하소서. 이 무리들의 호소가 더욱 심해질 터인데, 은전(恩典)에 관계되는 일이라 신들이 감히 입을 놀릴 수 없습니다만, 도감의 독촉을 누차 당하여 시장의 힘이 이미 고갈되었으니, 외정(外廷)의 조신(朝臣)들에게 이엄을 반사하는 일은 우선 1년 동안 정지하여 궁박한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도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안에 들이는 모물에 대해서는, 해조로 하여금 그 값을 수량에 준하여 지급하는 일을 때맞춰 즉시 시행하게 하는 것이 온당할 듯합니다. 민간의 근심과 고통에 관계되는 일이라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해조로 하여금 가물(價物)을 해당하는 만큼 지급해서 무역하여 만들어 들이도록 하라." 하였다.
"겨울 이전에 시장 백성들이 본사에 연명(連名)으로 정장(呈狀)하기를, ‘시민들이 지탱할 수 없어 원망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정상은 다 진달드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 각 도감에서 사용할 황금(黃金) 70여 냥 및 각종 필단(疋段)과 채색(彩色) 등의 잡물(雜物)이 전일에 비해 1백 배나 되는데, 그 가목(價木) 3백여 동을 받아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호소하는 바입니다. 이에 이엄전(耳掩前) 때문에 전옥 우전(典獄隅前)과 상우전(上隅前) 등 조금 충실한 시장[前]도 지탱하여 보전할 수가 없어서 지금 이미 시장이 잔폐되었습니다. 그 나머지 다른 시장의 백성들도 날로 도망해 흩어져 버렸는데, 상의원이 연례로 사급하는 이엄을 마련하기 위하여 돈피 4백 47령(令), 적호피 1백 령, 서피 6백 령을 지금 또 시장의 백성들에게 책임지워 납부하게 하니, 빈털터리가 된 백성들이 구덩이에 나뒨굴어 죽게 될 일이 조석에 박두하였습니다. 고통이 하늘에 사무칩니다. 계품하여 처리해서 저희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조정에서 양계(兩界) 변방 백성들의 폐해를 덜어주기 위하여, 상납할 많은 모물의 숫자를 모두 감면하고, 매년 반사할 이엄을 호조로 하여금 값을 지급하여 시장에서 마련하게 하였으니, 국가가 변방 백성들을 돌보는 뜻이 매우 훌륭한 것입니다. 다만 생각건대, 시장 백성들은 모물이 생산되지 않는 도성 안에 살고 있으므로, 모물을 무역하는 날이 되면 으레 비싼 값으로 어렵게 모물을 구하여 공가(公家)의 독촉에 응하게 되어 그 비용이 적지 않게 드는데, 해조에서는 또 때맞추어 값을 지급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생업을 잃은 자들이 매우 많아 곳곳에서 호소를 하니, 처참하여 차마 들을 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정원의 계사에 사정이 자세하게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변통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만, 올해는 추운 계절이 이미 박두하였으니 그대로 호조로 하여금 값을 지급하고 구해서 사용하게 하소서. 이 무리들의 호소가 더욱 심해질 터인데, 은전(恩典)에 관계되는 일이라 신들이 감히 입을 놀릴 수 없습니다만, 도감의 독촉을 누차 당하여 시장의 힘이 이미 고갈되었으니, 외정(外廷)의 조신(朝臣)들에게 이엄을 반사하는 일은 우선 1년 동안 정지하여 궁박한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도 안 될 것이 없습니다. 안에 들이는 모물에 대해서는, 해조로 하여금 그 값을 수량에 준하여 지급하는 일을 때맞춰 즉시 시행하게 하는 것이 온당할 듯합니다. 민간의 근심과 고통에 관계되는 일이라 황공하게도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해조로 하여금 가물(價物)을 해당하는 만큼 지급해서 무역하여 만들어 들이도록 하라."
하였다.
전교하였다. "전일 음복연을 할 때에 전좌(殿坐) 후의 연례(宴禮)를 즉시 거행하지 않아서 밤에까지 이어졌다. 지금 이후로는 이전의 전교에 의거하여, 전좌한 뒤에 즉시 연례를 거행하여 지체시키지 말 일을 사옹원에 말하라."
"전일 음복연을 할 때에 전좌(殿坐) 후의 연례(宴禮)를 즉시 거행하지 않아서 밤에까지 이어졌다. 지금 이후로는 이전의 전교에 의거하여, 전좌한 뒤에 즉시 연례를 거행하여 지체시키지 말 일을 사옹원에 말하라."
교사(郊祀)에 대한 일을 합계하니, 답하기를, "교사는 삼사가 논집할 뿐만 아니라, 날씨도 점점 추워지고 나도 건강이 좋지 않으니 이러한 때에 추위를 무릅쓰고 교외에 나아가 제사를 행하기는 어렵겠다. 우선은 아뢴 대로 하겠다." 하였다.
"교사는 삼사가 논집할 뿐만 아니라, 날씨도 점점 추워지고 나도 건강이 좋지 않으니 이러한 때에 추위를 무릅쓰고 교외에 나아가 제사를 행하기는 어렵겠다. 우선은 아뢴 대로 하겠다."
하였다.
8월 29일 정묘
흠경각 교정청이 아뢰기를, "흠경각을 밤낮으로 교정(校正)하였는데, 감조관(監造官)들이 매양 조금도 오차가 없다고 할 뿐만 아니라 신 이충(李沖)이 끝까지 교정을 하였는데도 잘못됨이 없었습니다. 때로 막히는 경우가 있다고 한 일에 대해서는, 신들의 생각에도 의아스러우니, 성상께서 혹 미진한 바가 있을까를 염려하시어 교정을 정파하라는 명을 못 내리고 계신 것이 마땅합니다. 감조관은 원래 6명인데, 각각 밤낮으로 매 1각(刻)에 분정(分定)하여 교정하게 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전히 오차가 없다고 보고를 하고 분정기(分定記)를 입계하고서 뒷날 어떤 시각에 한 번 정도 오차가 있는 것이라면 이는 우연히 그렇게 된 것에 불과한 것이고, 만약 날마다 오차가 있게 되면 당초에 교정을 착실하게 하지 않고서 범연하게 오차가 없다고 거짓으로 보고를 한 것이 분명할 터이니, 당해 감조관에게 무겁게 책임을 물으소서. 오늘 밤은 감조관 6명을 모두 들어와 교정을 보게 하였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흠경각을 밤낮으로 교정(校正)하였는데, 감조관(監造官)들이 매양 조금도 오차가 없다고 할 뿐만 아니라 신 이충(李沖)이 끝까지 교정을 하였는데도 잘못됨이 없었습니다. 때로 막히는 경우가 있다고 한 일에 대해서는, 신들의 생각에도 의아스러우니, 성상께서 혹 미진한 바가 있을까를 염려하시어 교정을 정파하라는 명을 못 내리고 계신 것이 마땅합니다. 감조관은 원래 6명인데, 각각 밤낮으로 매 1각(刻)에 분정(分定)하여 교정하게 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전히 오차가 없다고 보고를 하고 분정기(分定記)를 입계하고서 뒷날 어떤 시각에 한 번 정도 오차가 있는 것이라면 이는 우연히 그렇게 된 것에 불과한 것이고, 만약 날마다 오차가 있게 되면 당초에 교정을 착실하게 하지 않고서 범연하게 오차가 없다고 거짓으로 보고를 한 것이 분명할 터이니, 당해 감조관에게 무겁게 책임을 물으소서. 오늘 밤은 감조관 6명을 모두 들어와 교정을 보게 하였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교외에서 친히 제사를 지내어 그 성공을 고하는 것은 그만둘 수가 없는 예이다. 다만, 나의 건강이 좋지 않고 다음달은 절기가 추울 것이니, 예를 행하기 어려울 듯하다. 외방에서 하전(賀箋)과 물선(物膳) 등을 올리는 일도 다시 행회(行會)한 뒤에 봉진하라고 통지하고 신칙하도록 하라."
"교외에서 친히 제사를 지내어 그 성공을 고하는 것은 그만둘 수가 없는 예이다. 다만, 나의 건강이 좋지 않고 다음달은 절기가 추울 것이니, 예를 행하기 어려울 듯하다. 외방에서 하전(賀箋)과 물선(物膳) 등을 올리는 일도 다시 행회(行會)한 뒤에 봉진하라고 통지하고 신칙하도록 하라."
전교하였다. "비록 재계(齋戒)하는 날이더라도 병든 죄인들은 일일이 입계하여 처리하라고 금부에 말하라."
"비록 재계(齋戒)하는 날이더라도 병든 죄인들은 일일이 입계하여 처리하라고 금부에 말하라."
전교하였다. "역적의 괴수 김제남의 처를 처치하기 전에는 역적 수직(守直)을 가벼이 하지 말 일을 병조로 하여금 더욱 살펴 시행하게 하라."
"역적의 괴수 김제남의 처를 처치하기 전에는 역적 수직(守直)을 가벼이 하지 말 일을 병조로 하여금 더욱 살펴 시행하게 하라."
전교하였다. "죄인 이원(李源)은 아직 형장을 받은 일도 없는데 구료 단자가 잇달아 입계되고 있으니 구료를 삼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금부의 당해 도사와 월령 의원을 각별히 기찰하여 착실하게 다방면으로 구료하게 하되, 월령 의원을 가려 정하는 일은 색승지가 더욱 살펴 시행하라."
"죄인 이원(李源)은 아직 형장을 받은 일도 없는데 구료 단자가 잇달아 입계되고 있으니 구료를 삼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금부의 당해 도사와 월령 의원을 각별히 기찰하여 착실하게 다방면으로 구료하게 하되, 월령 의원을 가려 정하는 일은 색승지가 더욱 살펴 시행하라."
의금부가 아뢰기를, "‘역적 최기(崔沂)와 역적 김기(金錡)·박계운(朴啓運) 등을 이미 추형하였으니, 연좌하여 적몰하고 집을 부수어 못을 만들고 각각 그들이 살던 고을의 읍호를 강등하고 그 수령을 파직시키소서.’라는 초기(草記)에 대해서, 답하시기를, ‘윤허한다. 관원을 파직하는 일은 해주 판관이 해당될 듯하다. 다시 살펴서 처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전교대로 판관을 파직할 일을 승전을 받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역적 최기(崔沂)와 역적 김기(金錡)·박계운(朴啓運) 등을 이미 추형하였으니, 연좌하여 적몰하고 집을 부수어 못을 만들고 각각 그들이 살던 고을의 읍호를 강등하고 그 수령을 파직시키소서.’라는 초기(草記)에 대해서, 답하시기를, ‘윤허한다. 관원을 파직하는 일은 해주 판관이 해당될 듯하다. 다시 살펴서 처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전교대로 판관을 파직할 일을 승전을 받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전교하였다. "내일 대제학을 명초하여 다음달 3일에 반포할 교서를 기일 이전에 지어 올리게 하라."
"내일 대제학을 명초하여 다음달 3일에 반포할 교서를 기일 이전에 지어 올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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