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양력
【음력 을묘년(乙卯年) 5월 19일】 특별히 민정식(閔庭植)에게 일금 200원을 내렸다. 부친 고(故) 판서(判書) 민영익(閔泳翊)의 연제(練祭) 때문이다.
【원본】 6책 6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88면
【분류】왕실-사급(賜給) / 금융-화폐(貨幣)
특별히 민정식(閔庭植)에게 일금 200원을 내렸다. 부친 고(故) 판서(判書) 민영익(閔泳翊)의 연제(練祭) 때문이다.
7월 5일 양력
양궁(兩宮)에서 각기 불교진흥회(佛敎振興會)에 일금 100원을 내렸다.
정무 총감(政務總監)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郞〕가 양궁(兩宮)에 알현하였다. 잠시 토쿄〔東京〕에 가기 때문이다.
이왕직 사무관(李王職事務官) 현백운(玄百運)을 남대문역(南大門驛)에 보내고 덕수궁(德壽宮)에서도 찬시(贊侍) 이성묵(李聖默)을 보내어 정무 총감(政務總監)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郞〕의 토쿄〔東京〕행을 전송하였다.
선교 양종(禪敎兩宗)의 대본산(大本山)인 함흥군(咸興郡) 귀주사(歸州寺)에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 용잠(龍潛) 때의 독서당 유적(讀書堂遺蹟)에 대하여 보조금 50원을 하사하였다. 【올해부터 시작하여 향후 5년간 매년 50원이다.】
【원본】 6책 6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88면
【분류】왕실-사급(賜給) / 사상-불교(佛敎) / 왕실-국왕(國王) / 금융-화폐(貨幣)
7월 16일 양력
왕세자(王世子)가 해당 연대의 야외 연습으로 오늘 시즈오카현〔靜岡縣〕 후지 기슭의 타키하라〔下富士瀧原〕 창사(廠舍)에 출장하였다.
전 총독부 사무관(總督府事務官) 사타케 요시노리〔佐竹義準〕가 양궁(兩宮)에 알현하니 물품을 내렸다. 해직하였기 때문이다.
7월 19일 양력
특별히 자작(子爵) 윤덕영(尹德榮)에게 장수금(葬需金) 3,000원, 비단(緞屬) 5필, 백미(白米) 35표(俵)를 내렸다. 덕수궁(德壽宮)에서도 일금 1,000원을 내렸다. 그의 모친 정경 부인(貞敬夫人) 홍씨(洪氏)의 상(喪)이었기 때문이다.
7월 20일 양력
양궁(兩宮)에서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자작(子爵) 민병석(閔丙奭)을 총독부(總督府)에 보내어 황후의 임신에 축하를 전해줄 것을 당부하였다.
7월 21일 양력
덕수궁(德壽宮)에 나아가 근알(覲謁)하였다. 여름 문안 인사이다.
7월 22일 양력
양궁(兩宮)에서 특별히 일금 5백 원을 내렸다. 또 유족에게 구휼금(救恤金) 2천 5백원을 하사하였다. 고(故) 남작(男爵) 조의연(趙義淵)의 상(喪)이었기 때문이다.
7월 23일 양력
이왕직(李王職)에서 가지고 있는 한성은행(漢城銀行)의 주식(株式) 【3,758주분에 1주당 금액 87전 5리이다.】 대정(大正) 4년도 상반기 배당금(配當金) 3,288원 25전을 이왕직 회계과(會計課)로부터 수령하였다.
7월 24일 양력
이왕직(李王職)에서 가지고 있는 조선상업은행(朝鮮商業銀行)의 주식(株式) 【750주분에 1주당 금액 2원 25전이다.】 대정(大正) 4년도 상반기 배당금(配當金) 1,698원 75전을 이왕직 회계과(會計課)로부터 수령하였다.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자작(子爵) 민병석(閔丙奭)을 총독부(總督府)에 보내어 여름 문안을 전해줄 것을 당부하였다.
7월 26일 양력
양궁(兩宮)에서 특별히 자작(子爵) 윤덕영(尹德榮)에게 일금 2,000원과 공단(貢緞) 50필을 내렸다. 선대묘(先代墓)를 한 곳에 집장(集葬)하였기 때문이다.
7월 27일 양력
왕비(王妃)가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조선 총독 비서관(朝鮮總督祕書官) 이케베 류이치〔池邊龍一〕를 접견하였다. 천황과 황후가 위문과 아울러 내리신 과자를 전달하였기 때문이다.
왕비(王妃)가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자작(子爵) 민병석(閔丙奭)을 총독부(總督府)에 보내어 사례를 전해줄 것을 당부하였다.
총독(總督) 백작(伯爵)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본부(本府)에서 간행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2부를 양궁(兩宮)에 바쳤다.
7월 28일 양력
창덕궁(昌德宮) 인근의 민호(民戶)에 구휼금(救恤金)을 차등 있게 내렸다. 폭우로 피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7월 29일 양력
자작(子爵) 이완용(李完鎔)에게 명하여 선원전(璿源殿)을 봉심하게 하였다. 철종 장황제(哲宗章皇帝)의 탄신이기 때문이다.
7월 30일 양력
자작(子爵) 이완용(李完鎔)에게 명하여 선원전(璿源殿)을 봉심하게 하였다. 순조 숙황제(純祖肅皇帝)의 탄신이기 때문이다.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인 자작(子爵) 민병석(閔丙奭)을 왜성대 공원(倭城臺公園)에 보내고, 덕수궁(德壽宮)에서도 찬시(贊侍) 남작(男爵) 김춘희(金春熙)를 보내어 명치 천황(明治天皇)의 삼년제(三年祭)를 행할 때 참례하게 하고 이어 폐백료(幣帛料)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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