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양력
【음력 을묘년(乙卯年) 7월 22일】 양궁(兩宮)에서 다케다노미야〔竹田宮〕 쓰네히사왕〔恒久王〕에게 축전을 보냈다. 육군 기병 중좌(陸軍騎兵中佐)로 승진하였기 때문이다.
【원본】 6책 6권 9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88면
【분류】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양궁(兩宮)에서 다케다노미야〔竹田宮〕 쓰네히사왕〔恒久王〕에게 축전을 보냈다. 육군 기병 중좌(陸軍騎兵中佐)로 승진하였기 때문이다.
9월 3일 양력
왕세자(王世子)의 부속 찬시(贊侍) 엄주일(嚴柱日)이 토쿄〔東京〕에서 와서 양궁(兩宮)에 알현하고 왕세자가 올린 은제 연초(銀製煙草) 여러 구와 히가시쿠니가〔東久邇宮家〕에서 답례로 바친 돈 200원과 홍백축면(紅白縮緬) 4필을 바쳤다.
9월 4일 양력
왕세자(王世子)가 근위 제2연대로서 치바현〔千葉縣〕의 나라시노〔習志野〕에서 연습하였다.
9월 7일 양력
양궁(兩宮)에서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자작(子爵) 민병석(閔丙奭)을 조선 총독부(朝鮮總督府)에 보내어 천황 폐하가 닛코〔日光〕의 이궁(離宮)에서 토쿄〔東京〕로 돌아온 데 대해 문후 인사를 전해줄 것을 당부하였다.
9월 8일 양력
덕수궁(德壽宮)에 나아가 근알(覲謁)하였다. 왕비(王妃)도 따라갔다. 이어 표리(表裏)를 올렸다. 종척(宗戚), 귀족(貴族), 기사노인(耆社老人) 및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이하를 돈덕전(惇德殿)에서 소견(召見)하고 사찬(賜饌)하였다. 태왕 전하(太王殿下)의 탄신일이었기 때문이다.
왕세자(王世子)가 연습을 마치고 토쿄〔東京〕의 별저(別邸)로 돌아와 탄신을 봉축하는 뜻을 전보로 양궁(兩宮)에 품달하였다.
9월 10일 양력
후작(侯爵) 윤택영(尹澤榮)이 덕수궁(德壽宮)에 물품을 바쳤다. 탄신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황운문사(黃雲紋紗), 홍운문사(紅雲紋紗), 남화순인(藍花純仁), 옥색순인(玉色純仁), 세저(細苧), 옥양목(玉洋木) 각 1필, 명사(命絲) 1궤(櫃)이다.】
【원본】 6책 6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89면
【분류】왕실-국왕(國王) / 재정-진상(進上) / 왕실-의식(儀式)
9월 12일 양력
경무 총장(警務總長) 다치바나 고이치로〔立花小一郞〕 이하 각도(各道) 경무 부장(警務部長)을 선정전(宣政殿)에서 접견하고 이어 오찬(午餐)을 내렸다.
9월 14일 양력
태왕 전하(太王殿下)가 특별히 강원도청(江原道廳)에 일금 250원을 내렸다. 금강산 여관의 설비(設備)였던 것이다.
9월 17일 양력
자작(子爵) 이완용(李完鎔)에게 명하여 선원전(璿源殿)을 봉심하게 하였다. 문조 익황제(文祖翼皇帝)의 탄신이었기 때문이다.
9월 18일 양력
양궁(兩宮)에서 특별히 전 경성 의원장(京城醫院長) 요시모토 준료〔吉本潤亮〕에게전 대한적십자병원(大韓赤十字病院) 및전 대한병원(大旱病院) 창설에 대한 공로로 돈 1,000원을 내렸다.
9월 19일 양력
왕비(王妃)의 탄신일을 맞아 선정전(宣政殿)에 거둥하여 왕비(王妃)와 함께 가서 종척(宗戚), 귀족(貴族) 및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이하 고등관(高等官)과 그 부인들을 소견(召見)하였다. 이어서 오찬(午餐)을 내렸다.
9월 25일 양력
가마로 경복궁(景福宮)에 거둥하여 공진회(共進會)를 관람하였다.
9월 26일 양력
선정전(宣政殿)에 임어(臨御)하였다. 왕비(王妃)도 따라가 군사령관(軍司令官) 이노구치 쇼고〔井口省吾〕와 그 부인을 접견하였다.
9월 27일 양력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인 자작(子爵) 민병석(閔丙奭) 및 사무관(事務官) 김동완(金東完)을 인천항(仁川港)에 보내고, 덕수궁(德壽宮)에서도 부무관(附武官)인 자작 이병무(李秉武)를 보내어 한원궁(閑院宮) 재인친왕(載仁親王)과 비(妃) 두 전하를 영접하였다.
양심합(養心閤)에 나아갔다. 왕비(王妃)도 따라 나아갔다. 망곡례(望哭禮)를 행하였다. 명성 황후(明星皇后)의 기신제(忌辰祭)였기 때문이다.
9월 28일 양력
용산역(龍山驛)에 행계(行啓)하였다. 왕비(王妃)도 함께 나아갔다. 강이노미야〔閑院宮〕과 비(妃)를 영접하였기 때문이다.
특별히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 조선 본부(本部)에 일금 1,000원을 내렸다. 왕비(王妃)도 일금 1,000원을 내렸다.
특별히 보지신문(報知新聞)에 일금 1만원을 내렸다. 시정 오년(始政五年) 조선물산 공진회 기념호(朝鮮物産共進會記念號)를 창간하였기 때문이다.
9월 29일 양력
용산(龍山)의 총독 관저(官邸)에 행계(行啓)하였다. 왕비(王妃)도 따라 나아갔다. 만찬회(晩餐會) 때문이었다.
9월 30일 양력
천황과 황후가 특별히 양궁(兩宮)에 물품을 내렸다. 【어문부요지문고연상(御紋附料紙文庫硯箱) 1조를 창덕궁(昌德宮)에 내렸다. 또 1조는 덕수궁(德壽宮)에 내리고, 어문부문대연상(御紋附文臺硯箱) 1조는 왕비(王妃)에게 내렸다.】
【원본】 6책 6권 10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89면
【분류】왕실-비빈(妃嬪) / 재정-진상(進上)
인정전(仁政殿)에 거둥하였다. 왕비(王妃)도 따라 나아가 오찬회(午餐會)를 베풀었다. 강이노미야〔閑院宮〕과 비(妃)가 참석하였다. 조선 총독(朝鮮總督) 백작(伯爵)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정무 총감(政務總監)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郞〕 이하 각부(各部) 장관(長官) 및 귀족(貴族) 제원(諸員)이 배식(陪食)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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