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양력
【음력 무오년(戊午年) 9월 29일】 양궁(兩宮)에서 부무관(附武官) 자작(子爵) 이병무(李秉武)와 찬시(贊侍) 자작(子爵) 조민희(趙民熙)를 경성 신사(京城神社)의 진좌(鎭座) 22년제(祭)에 참석하게 하고 폐백료(幣帛料)를 제공하였다.
【원본】 7책 9권 5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04면
【분류】왕실-사급(賜給)
양궁(兩宮)에서 부무관(附武官) 자작(子爵) 이병무(李秉武)와 찬시(贊侍) 자작(子爵) 조민희(趙民熙)를 경성 신사(京城神社)의 진좌(鎭座) 22년제(祭)에 참석하게 하고 폐백료(幣帛料)를 제공하였다.
왕비가 치부(齒部)에 불편한 징후가 있어 총독부 의관(總督府醫官) 야나기라쿠 다쓰미〔柳樂達見〕가 입진(入診)하였다.
11월 3일 양력
왕세자가 지바〔千葉〕·이바라키〔茨城〕·군마(群馬)·도치기〔枍木〕의 1부(府) 4현(縣)에 행계(行啓)하였다. 근위사단에서 연습을 하였기 때문이다.
11월 4일 양력
전 참판(參判) 민병승(閔丙承)의 아버지 문충공(文忠公) 민응식(閔應植) 【임오공신(壬午功臣)이다.】 의 면례(緬禮) 및 그의 어머니 정경 부인(貞敬夫人) 송씨(宋氏)의 상(喪)에 돈 300원을 특별히 하사하였다.
11월 7일 양력
경기도(京畿道) 경무부(警務部)에 일금 1,650원을 특별히 하사하였다. 소방 자동차 구입을 보조한 것이다.
11월 18일 양력
양궁(兩宮)에서 특별히 총독부 경시(總督府警視) 이헌규(李憲珪)의 상(喪)에 일금 150원을 하사하였다. 그가 경위 사무에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11월 19일 양력
양궁(兩宮)에서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자작(子爵) 민병석(閔丙奭)을 총독부(總督府)에 보내어 천황 폐하가 도치기현〔栃木縣〕에서 특별히 대연습(大演習)을 하고 토쿄〔東京〕로 돌아온 것에 대한 안부를 전해주기를 당부하였다.
11월 20일 양력
왕세자가 연습을 종료하고 토쿄〔東京〕의 별저(別邸)에 돌아왔다.
11월 26일 양력
왕세자 가례비(嘉禮費) 10만원을 이왕직(李王職)의 금년도 세비 예금금 가운데서 지출할 것을 명하고, 이어 총독부(總督府)의 승인을 받았다.
11월 28일 양력
이왕직(李王職) 직원에게 당일 휴가에 황실 전범(皇室典範)을 증보 제정하여 보고하라고 명하였다. 궁내성(宮內省)의 통지에 의한 것이다.
〈황실전범증보조칙(皇室典範增補詔勅)〉
천황 폐하의 조서에,
"짐이 생각건대 조종(祖宗)의 유범(遺範)을 소술(紹述)하고 수시 제의(隨時制宜)하여 국운(國運)의 진전(進展)에 순응함은 황고(皇考)의 커다란 계획으로서 짐이 따르는 바이다. 지금 황가(皇家)의 성전(成典)을 증광(增廣)할 필요를 인식하여 황족회의(皇族會議) 및 추밀원 고문(樞密院顧問)의 자문을 거쳐 황실 전범(皇室典範)의 증보(增補)를 재정(裁定)하여 이에 이를 공포하게 한다."
하였다.
〈황실전범증보(皇室典範增補)〉
황족(皇族)의 여자는 왕족(王族) 또는 공족(公族)에게 시집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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