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순종실록부록13권, 순종15년 1922년 5월

싸라리리 2025. 2. 2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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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양력

【음력 임술년(壬戌年) 4월 초5일】  종묘(宗廟)에 나아가 하향 대제(夏亨大祭)를 행하였다. 왕세자(王世子)도 따라 나아가 예를 행하였다.


【원본】 8책 13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25면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종묘(宗廟)에 나아가 하향 대제(夏亨大祭)를 행하였다. 왕세자(王世子)도 따라 나아가 예를 행하였다.

 

추밀원 고문(樞密院顧問) 간구라 도미유사부로〔官倉富勇三郞〕를 접견하고 이어 인정전(仁政殿)에서 만찬(晩餐)을 베풀었다. 왕세자(王世子)가 시좌(侍座)하였다.

 

5월 2일 양력

종척(宗戚), 귀족(貴族)과 중추원 참의(中樞院參議), 이왕직(李王職)의 고등관(高等官)을 소견하고 이어 인정전(仁政殿)에서 오찬(午餐)을 베풀었다. 왕세자(王世子)가 시좌(侍座)하였다.

 

5월 5일 양력

비원(祕園)에서 원유회(園遊會)를 열었다. 종친(宗親), 귀족(貴族) 및 총독(總督) 남작(男爵)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이하 문무(文武) 칙임관(勅任官)과 주임관(奏任官), 관공리(官公吏), 민간에서 자격 있는 자 등 약 2,000인(人)이 참여하였다.

 

5월 11일 양력

왕손(王孫) 이진(李晉)이 덕수궁(德壽宮)의 석조전(石造殿)에서 훙거(薨去)하였다.

 

종척(宗戚), 귀족(貴族) 및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이하 고등관(高等官)이 알현(謁見)하였다. 이어 석조전(石造殿)에서 회동하여 장의 절차(葬儀節次)를 의논하였다.

 

장의 위원장(葬儀委員長)에 차관(次官) 우에바야시 게이지로〔上林敬次郞〕, 부위원장(副委員長)에 찬시(贊侍) 남작(男爵) 한창수(韓昌洙)·사무관(事務官) 백작(伯爵) 고희경(高羲敬), 위원(委員)에 사무관(事務官) 이항구(李恒九)·곤도 사유이치〔近藤左右一〕·이마무라〔今村鞆〕·스에마쓰 구마히코〔末松熊彦〕·조동원(趙東源)·이원승(李源昇)·박주빈(朴胄彬)·왕세자 부무관(王世子附武官) 김응선(金應善), 제원장(祭員長)에 백작(伯爵) 이지용(李址鎔), 제원(祭員)에 자작(子爵) 이완용(李完鎔), 전사(典祀)에 윤세용(尹世鏞), 이성묵(李聖默) 등이 임명되었다.

 

5월 12일 양력

이왕직(李王職)에서 계청(啓請)하여 명정 서사관(銘旌書寫官)에 사무관(事務官) 이항구(李恒九)를, 비실 상자 서사관(椑室上字書寫官)에 사무관(事務官) 백작(伯爵) 고희경(高羲敬)을, 표석 전면 서사관(表石前面書寫官)에 훈삼등(勳三等) 민형식(閔衡植)을, 지문 제술관(誌文製述官)에 전사(典祀) 정만조(鄭萬朝)를, 지문 서사관(誌文書寫官)에 훈삼등(勳三等) 이달용(李達鎔)을 차출하였다.

 

유시(酉時)에 소렴(小斂)을 행하고 의식대로 전(奠)을 드렸다.

 

추밀원 고문관(樞密院顧問官) 구라토미 유사부로〔倉富勇三郞〕, 차관(次官) 우에바야시 게이지로〔上林敬次郞〕, 사무관(事務官) 백작(伯爵) 고희경(高羲敬), 이원승(李源昇), 박주빈(朴胄彬) 등이 상지관(相地官)을 이끌고 고양군(高陽郡) 영휘원(永徽園) 국내(局內)를 간심(看審)하고는 원소(園所)로 택정(擇定)하였다. 이어 봉표(封標)하였다.

 

원소(園所) 각항(各項)을 택일(擇日)하였다. 원소는 좌선(左旋)한 간손행룡(艮巽行龍)이 을묘방(乙卯方)으로 도두(到頭)하고 묘방(卯方)으로 입수(入首)하는 갑좌경향(甲坐庚向)이며 건해(乾亥)로 돌아가지 못했다. 참초(斬草)와 파토(破土)는 5월 13일 오전 10시이고, 후토(后土)에 제사하고 선원(先園)에 고하는 것은 같은 날 먼저 행하고, 금정(金井)을 여는 것은 같은 달 14일 오전 6시이고, 발인(發靷)은 같은 달 17일 오전 10시이다. 상여를 정지하고 취토(取土)할 방위는 을방(乙方)이며 벽실(椑室)에 하관하는 것은 같은 날 오후 2시이다.

 

5월 13일 양력

석조전(石造殿)에 행계(行啓)하였다. 왕비(王妃)도 따라 나아갔다.

 

미시(未時)에 대렴(大斂)을 행하고 의식대로 설전(設奠)하였다. 소렴(小斂)과 대렴(大斂)의 의대(衣襨)는 단삼(單衫), 단고(單袴) 【백공단(白貢緞)이다.】 , 겹유(袷襦) 1 【외공(外供)은 자지 공단(紫芝貢緞)이고, 내공(內供)은 백삼팔주(白三八紬)이다.】 , 겹유 1 【외공은 옥색 공단(玉色貢緞)이고, 내공은 백삼팔주이다.】 , 겹고(袷袴) 【외공은 백공단(白貢緞)이고 내공은 흰색 삼팔주(三八紬)이다.】 , 겹주의(袷周衣) 【외공은 옥색 공단이고, 내공은 흰색 삼팔주이다.】 , 겹호(袷護) 【외공은 남공단(藍貢緞)이고, 내공은 옥색 삼팔주(玉色三八紬)이다.】 , 도포(道袍) 【남공단이다.】 , 학창의(鶴氅衣) 【옥색 공단과 선아청 공단(縇鴉靑貢緞)과 대홍 공단(帶紅貢緞)이다.】 , 폭건(幅巾) 【아청 공단(鴉靑貢緞)이다.】 , 공정책(空頂幘) 【외공은 아청 공단이고, 내공은 공홍 공단(供紅貢緞)이다.】 , 명목(瞑目) 【아청 공단이다.】 , 악수(握手) 【아청 공단이다.】 , 오낭(五囊) 【아청 공단이다.】 , 버선〔襪〕 【백공단이다.】 , 침(枕) 【자지 공단이다.】 , 용포(龍袍) 【외공은 자지 한단(紫芝漢緞)이고, 내공은 홍한단(紅漢緞)이다.】 , 옥대·견룡·흉배(玉帶肩龍胸褙) 【재여 화본(裁餘畵本)이다.】 , 적석(赤舃) 【홍공단(紅貢緞)이다.】 , 천금(天衾) 【내외공은 남공단이다.】 , 지욕(地褥) 【내외공은 자지 공단이다.】 , 소렴금(小斂衾) 【외공은 초록 공단(草綠貢緞)이고, 내공은 백공단과 영홍 공단(領紅貢緞)이다.】 , 대렴금(大斂衾) 【외공은 남공단이고, 내공은 백공단과 영홍 공단이다.】 , 목화(木靴) 【외공은 아청 공단이고, 내공은 백공단과 선홍 공단이다.】 이다.

 

5월 14일 양력

육군대학(陸軍大學)의 직원(職員)과 생도(生徒)가 만선 견학로(滿鮮見學路)로 경성(京城)을 경유하니 장관(長官) 이하 15인(人), 생도(生徒) 139인에게 차등을 두고 돈을 하사하였다.

 

5월 15일 양력

왕손(王孫)의 원호(園號)를 숭인(崇仁)으로 정하였다.

 

5월 16일 양력

천황(天皇)과 황후(皇后)가 왕손(王孫)의 제자료(祭粢料)로 일금 1만원, 백우(白羽) 2중(重) 3필(疋), 어과자(御菓子) 2절(折), 생화(生花) 2대(對)를 내렸다. 황태자 전하(皇太子殿下)가 어과자(御菓子) 2절, 생화(生花) 2대를 증여하였다.

 

천황(天皇)과 황후(皇后)의 어사(御使) 하라 쓰네타로〔原恒太郞〕, 황태자 전하(皇太子殿下)의 어사 가네다 사이헤이〔金田才平〕, 각궁(各宮) 어사 다케다 쇼리〔武田尙梨〕, 본궁(本宮) 어사 쓰보이 아키라〔坪井祥〕, 수원(隨員) 와타나베 켄〔渡邊顯〕과 가츠다 게이미치〔勝田圭通〕에게 차등 있게 돈을 하사하였다.

 

유시(酉時)에 조전(祖奠)을 행하였다.

 

5월 17일 양력

진시(辰時)에 비실(椑室)을 덕홍전(德弘殿)으로 이안(移安)하였다.

 

사시(巳時)에 발인(發靷)하였다.

 

미시(未時)에 왕손(王孫)을 숭인원(崇仁園)에 장사지냈다.

 

지문(誌文)에,
"오호라, 이것은 왕원손 전하(王元孫殿下) 만세(萬歲)의 수장(壽藏)입니다. 전하께서는 신유년(1921) 8월 18일에 탄생하여 임술년(1922) 5월 11일에 훙서(薨逝)하셨으니, 침상에서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 겨우 10개월이었습니다. 중외에서 추도하고 가슴아파하는 것이 마치 장자(長者)가 상을 당한 것과 같습니다. 대개 우리 전하는 천부의 자품이 우뚝하여 비창(匕鬯)을 위탁 받아 무강함이 기대되었는데, 지난달 토쿄〔東京〕의 저택에서 학가(鶴駕)를 타고 귀성(歸省)하셨습니다. 궁중의 화락하고 기쁜 기운은 무궁한 복록을 맞이하기에 족했는데, 어찌 하루 저녁 무망하게도 갑작스럽게 비상한 참척을 당하셨습니까? 이달 17일에 영휘원(永徽園)의 좌좌갑원(左坐甲原)에 장사지내고 원(園)의 이름을 숭인(崇仁)이라 하였습니다. 오호라, 정의는 오히려 남음이 있건만 예는 미진(未盡)합니다. 천신(天神)이여, 영원히 보호하소서. 오호 슬픕니다. 삼가 지(誌)를 작성합니다."
하였다. 【전사(典祀) 정만조(鄭萬朝)가 짓다.】


【원본】 8책 13권 3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25면
【분류】어문학-문학(文學)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5월 18일 양력

왕세자(王世子), 왕세자비(王世子妃)가 토쿄〔東京〕의 별저(別邸)로 행계(行啓)하였다.

 

백옥제(白玉制) 물품을 천황(天皇)과 황후(皇后)께 헌상(獻上)하였다. 지류(紙類)와 단속(緞屬)을 나시모토노미야〔梨本宮〕으로 보냈다.

 

5월 22일 양력

특별히 전 군수(郡守) 민병길(閔丙吉)에게 일금 200원을 하사하였다. 그의 아들이 혼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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