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계사
4대문(四大門)에서 영제(禜祭)023) 를 지냈다.
7월 5일 을미
약원(藥院)에서 희정당(熙政堂)에 입진(入診)하였다.
이노병(李魯秉)을 이조 판서로, 이유원(李裕元)을 이조 참의로 삼았다.
7월 6일 병신
소대(召對)하였다.
7월 7일 정유
소대하였다.
7월 8일 무술
소대하였다.
7월 10일 경자
안치 죄인(安置罪人) 이승헌(李承憲)을 석방하였다.
원의(院議)로 아뢰기를,
"빨리 성명(成命)을 거두시기를 청합니다."
하니, 비답하기를,
"그 일은 상소의 어구(語句)를 잘 살펴보지 않은 까닭에 불과하다. 이번에 석방함이 어찌 생각치 않고 한 일이겠는가? 쟁집(爭執)할 것 없이 곧바로 반포하라."
하였다.
옥당에서 연차(聯箚)하여 【부응교 조운경(趙雲卿), 교리 김유연(金有淵)·정유(鄭鎏), 부교리 김세호(金世鎬)·유흥규(柳興奎), 수찬 유내준(柳來駿)·송겸수(宋謙洙), 부수찬 신석희(申錫禧)·이정하(李貞夏)이다.】 빨리 성명(成命)을 거두기를 청하니, 비답하기를,
"원의(院議)의 비답에 그리 된 까닭을 이미 효유하였으니, 너희들은 번거롭게 할 것 없다."
하였다.
양사(兩司)에서 연차하여 【대사헌 서영순(徐英淳), 집의 윤자덕(尹滋悳), 대사간 이교영(李敎英), 사간 이승보(李承輔), 헌납 서익보(徐翼輔), 정언 이계선(李啓善)이다.】 빨리 성명(成命)을 거두기를 청하니, 비답하기를,
"이미 옥당 차자의 비답에 효유했으니, 쟁집할 것 없이 곧바로 정계(停啓)하라."
하였다.
7월 11일 신축
하직(下直)하는 수령들을 불러 보았다.
양사의 합계(合啓) 중에서 이승헌의 일은 정계하였다.
7월 12일 임인
소대하였다.
김병기(金炳冀)·정기세(鄭基世)를 규장각 직제학으로 삼았다.
7월 13일 계묘
4대문(四大門)에서 영제(禜祭)를 행하였다.
수원부(水原府)의 표류되고 붕괴된 가옥에 휼전(恤典)을 주었다.
7월 15일 을사
효정전(孝定殿)에 나아가 망제(望祭)를 행하였다.
진전(眞殿)에 나아가 전배(展拜)하였다.
희정당(熙政堂)에서 약원의 입진과 차대(次對)를 하였다.
7월 18일 무신
효정전에 나아가 작헌례(酌獻禮)를 행하고 찬례(贊禮)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시상하였는데, 찬례(贊禮) 예조 판서 이헌구(李憲球), 집례 부교리 유흥규(柳興奎), 대축(大祝) 부사과 이제달(李濟達), 예방 승지 이규팽(李圭祊)에게 모두 가자(加資)하였다.
주다례(晝茶禮)를 행하였다.
7월 19일 기유
오취선(吳取善)을 이조 참판으로 삼았다.
7월 22일 임자
투비(投畀)024) 한 죄인 이학수(李鶴秀)를 석방하라 명하고, 조금 후에 도총관(都摠管)을 특수(特授)하라 명하였다.
7월 25일 을묘
사은사(謝恩使) 【정사 이경재(李景在), 부사 서헌순(徐憲淳), 서장관 윤육(尹堉)이다.】 를 불러 보았으니, 사폐(辭陛)한 때문이었다.
7월 28일 무오
동칠릉(東七陵)의 비각(碑閣)·정자각(丁字閣)·향사청(香祀廳)을 개수할 때의 감동(監董) 이하에게 차등을 두어 시상하고 지방관 양주 목사 김신근(金愼根)에게 가자하였다.
이헌구(李憲球)를 판의금부사로 삼았다.
7월 29일 기미
약원에서 희정당에 입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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