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철종실록2권 철종1년 1850년 8월

싸라리리 2025. 4. 26. 20:51
반응형

8월 2일 신유

민치성(閔致成)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삼았다.

 

8월 4일 계해

도총관 이학수(李鶴秀)가 상소하여 자열(自列)하니, 비답하기를,
"전후의 자교(慈敎)가 경에게는 유감이 없을 것이요, 이번 정경(正卿)의 직질(職秩)은 경을 위해 오래 마련해 둔 자리이니, 다시 머뭇거리지 말고 곧바로 명을 공경하여 받들라."
하였다.

 

8월 5일 갑자

약원에서 희정당에 입진하였다.

 

8월 6일 을축

소대하였다.

 

8월 7일 병인

소대하였다.

 

8월 10일 기사

소대하였다.

 

8월 11일 경오

약원 제조(藥院提調) 이기연(李紀淵)이 현(縣)·도(道)를 거쳐 상소하여 자열(自列)하니, 비답하기를,
"경에게 약원의 소임을 맡긴 것은 그 뜻이 어찌 예사로운 것인가? 이 자리는 나올 수는 있어도 물러갈 수는 없는 곳이니, 자성(慈聖)께서 경을 생각하는 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비록 내 말이 없었더라도 경은 그 지극하신 뜻을 우러러 살펴보고는 의상을 거꾸로 입고 달려왔어야 했을 것이다. 이제 지난일이 말끔히 밝혀진 뒤에도 사의(私義)에 집착하려 하니, 마치 밀가루가 없이 수제비를 마련하는 것과 같구나. 다시는 머뭇거리지 말고 날마다 대후(待候)의 반열에 나오고 준례대로 입진하여 보호의 성의를 다해 주기 바란다."
하였다.

 

8월 14일 계유

소대하였다.

 

8월 15일 갑술

효정전에 나아가 추석제를 행하였다.

 

진전(眞殿)에 나아가 전배(展拜)하였다.

 

약원에서 희정당에 입진하였다.

 

이목연(李穆淵)을 형조 판서로 삼았다.

 

8월 16일 을해

소대하였다.

 

8월 17일 병자

돌아온 진위 진향사(陳慰進香使)를 불러 보았다.

 

약원 제조 이기연이 다시 소를 올려 감고(勘考)하여 주기를 청하니, 비답하기를,
"탕제(湯劑)를 경더러 달이는 일을 감독하도록 하였는데 경의 연고로 인하여 오늘도 약을 들지 못했으니, 경의 마음이 편안하겠는가? 가령 지극히 원통함이 경의 마음에 있다손 치더라도 공사(公事)를 앞에 하고 사의(私義)를 뒤로 한다면, 그 누가 불가하다 하겠는가? 경은 곰곰이 생각해 보라."
하였고, 또 구전(口傳)으로 하교하기를,
"내일도 제조가 감전(監煎)하지 못한다 하니, 이 무슨 도리인가? 어느 날이 되든 제조가 감전한 뒤에라야 약을 들 터이니, 이 뜻을 제조에게 전하라."
하였다.

 

8월 19일 무인

소대하였다.

 

감동(監董)한 대신 이하의 관원을 불러 보았으니, 숭릉(崇陵)의 사초(莎草)를 개수(改修)하고 돌아온 때문이었다.

 

8월 20일 기묘

감동한 대신 이하의 관원을 불러 보았으니, 인릉(仁陵)의 사초를 개수하고 돌아온 때문이었다.

 

8월 21일 경진

희정당(熙政堂)에서 차대(次對)하였다. 세폐(歲幣)의 일로 가는 사신의 명칭을 진하 사은 겸세폐사(進賀謝恩兼歲幣使)로 하라 명하고, 부사 김덕희(金德喜)에게는 가자(加資)하고 서장관 민치상(閔致庠)에게는 승품(陞品)하라 하였으니, 대신의 주청으로 인한 것이었다.

 

오위 장(五衛將) 가운데 두 자리는 중군(中軍)의 이력이 있는 사람을 쓰고, 풍천(豐川)과 장연(長淵) 두 고을의 수령은 변지(邊地)의 이력이 있는 사람을 쓰며, 능마아 낭청(能麽兒郞廳)의 예겸(例兼) 가운데 한 자리는 6품과(六品窠)로 만들어 전함(前銜)이 있고 재주가 있는 사람으로 단부(單付)025)                  하라 명하였다. 또 피폐한 고을에 임명되어 명성과 치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사람은 임기를 채운 뒤에 비록 산정(散政)026)                   때를 당하더라도 될 수 있는 한 좋은 자리로 올려서 옮겨 주라 명하였으니, 대신의 주청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학수(李鶴秀)를 한성부 판윤으로, 윤명검(尹明儉)을 전라우도 수군 절도사로, 이용순(李容純)을 경상좌도 수군 절도사로 삼았다.

 

돌아온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를 불러 보았다.

 

심낙신(沈樂臣)을 우변 포도 대장으로 삼았다.

 

8월 24일 계미

춘당대(春塘臺)에 나아가 칠석제(七夕製)를 행하였다. 부(賦)로 유학(幼學) 정기면(鄭基勉)을 직부 전시(直赴殿試)하게 하였다.

 

8월 25일 갑신

입격한 유생들을 불러 보았다.

 

8월 27일 병술

산릉(山陵)에 나아가 경릉(景陵)에 친히 제사지내고, 이어 휘경원(徽慶園)에 나아가 전배(展拜)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원소(園所)에 전배하니 감회가 더욱 깊다. 부호군 박제헌(朴齊憲)에게 특별히 한 자급(資級)을 더해 주어라."
하였다.

 

8월 29일 무자

김재청(金在淸)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