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갑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조두순(趙斗淳)을 상신(相臣)에 제배(除拜)하라고 명하였다.
이규철(李圭徹)을 삼도 수군 통제사로 삼았다.
6월 2일 을해
김상우(金相宇)를 평안도 병마 절도사로, 서헌순(徐憲淳)을 공조 판서로 삼았다.
6월 5일 무인
약원(藥院)에서 희정당(熙政堂)에 입진(入診)하였다.
6월 7일 경진
서기순(徐箕淳)을 이조 판서로 삼았다.
6월 9일 임오
김병교(金炳喬)를 이조 참판으로, 이돈영(李敦榮)을 판의금부사로 삼았다.
6월 10일 계미
우의정 조두순(趙斗淳)이 진소(陳疏)하여 사직(辭職)하였으나, 비답을 내려 윤허하지 않았다.
6월 12일 을유
윤치수(尹致秀)를 예조 판서로 삼았다.
6월 18일 신묘
우의정 조두순(趙斗淳)이 두 번째 상소하여 사직(辭職)하였으나, 비답을 내려 윤허하지 않았다.
진전(眞殿)에 나아가 다례(茶禮)를 행하였다.
6월 21일 갑오
의주부(義州府)의 물에 떠내려가거나 무너진 집에 휼전(恤典)을 주었다.
6월 23일 병신
우의정 조두순(趙斗淳)이 세 번째 상소하여 사직(辭職)하였으나, 비답을 내려 윤허하지 않았다.
6월 26일 기해
도정(都政)을 행하였다. 하비(下批)하여 김병국(金炳國)을 규장각 직제학으로, 조형복(趙亨復)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황호민(黃浩民)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
6월 27일 경자
수령(守令)과 변장(邊將)의 초사인(初仕人)을 소견(召見)하였다.
6월 28일 신축
희정당(熙政堂)에서 차대(次對)하였다. 영의정 김 좌근이 아뢰기를,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의 사손(祀孫)은 선조(宣祖) 때의 정전(定典)에 의하여 돈녕 도정(敦寧都正)의 1과(窠)를 자급에 따라 세습(世襲)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6월 29일 임인
임긍수(林肯洙)를 이조 참의로 삼았다.
6월 30일 계묘
약원(藥院)에서 희정당(熙政堂)에 입진(入診)하였다.
부사과 김진형(金鎭衡)이 상소하여, 이조 판서 서기순(徐箕淳)을 논척(論斥)하니, 비답하기를,
"지면(紙面)에 가득히 헐뜯고 떠들어대어 같은 조정(朝廷)에서 벼슬하는 충후(忠厚)한 풍도가 전혀 없으니, 너에게 간삭(刊削)의 율(律)을 시행하겠다."
하였다.
'한국사 공부 > 조선왕조실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종실록5권 철종4년 1853년 8월 (1) | 2025.04.30 |
---|---|
철종실록5권 철종4년 1853년 7월 (0) | 2025.04.30 |
철종실록5권 철종4년 1853년 5월 (1) | 2025.04.30 |
철종실록5권 철종4년 1853년 4월 (0) | 2025.04.30 |
철종실록5권 철종4년 1853년 3월 (0) | 2025.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