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일 을해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종묘(宗廟)의 하향(夏享)에 쓸 향과 축문을 친히 전하였다.
일강하였다.
4월 2일 병자
일강하였다.
4월 3일 정축
일강하였다.
4월 4일 무인
일강하였다.
4월 5일 기묘
희정당(熙政堂)에서 약원(藥院)의 입진(入診)과 차대(次對)를 행하였다.
일강하였다. 영의정 김좌근(金左根)이 아뢰기를,
"4영 파총(四營把摠)의 자벽과(自辟窠)018) 와 좌·우포청(左右捕廳)의 종사관(從事官)은 모두 실직(實職)으로 시행하고, 허사과(虛司果)는 서차(序次)를 따라 구처(區處)하며, 각도의 수군 우후(水軍虞候)의 과한(瓜限)은 전례에 의하여 24개월로 정식(定式)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또 아뢰기를,
"사문(私門)의 봉채(捧債)와 낭관(郞官)이 강제로 대여하는 폐단을 엄히 신칙하여 금단(禁斷)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반족(班族)이 나쁜 짓을 하고 낭관(郞官)의 강제로 대여하는 놀라움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다. 이를 만약 금하지 못하면 백성이 무엇을 믿고 살겠는가? 비변사(備邊司)로 하여금 듣는 대로 즉시 초기(草記)019) 하여 율(律)에 의거하여 찬배(竄配)하게 하라."
하였다.
4월 7일 신사
조충식(趙忠植)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황호민(黃浩民)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
4월 8일 임오
각권(閣圈)020) 을 행하여 김병주(金炳㴤)·정헌교(鄭獻敎)·조병학(趙秉學)·홍석종(洪奭鍾)을 뽑고, 김 병주를 직각(直閣)으로 삼았다.
4월 9일 계미
희정당(熙政堂)에 나아가 봉조하(奉朝賀) 김도희(金道喜)를 소견(召見)하고, 선마(宣麻)021) 를 하사하였다.
이근우(李根友)를 이조 참판으로 삼았다.
4월 10일 갑신
평안 감사(平安監司) 남병철(南秉哲)을 소견(召見)하였으니, 사폐(辭陛)한 때문이었다.
4월 13일 정해
일강(日講)하였다.
4월 14일 무자
일강하였다.
4월 15일 기축
일강하였다.
김병국(金炳國)을 홍문관 부제학으로, 김경선(金景善)을 판의금부사로 삼았다.
4월 16일 경인
일강하였다.
경상 감사 조석우(曹錫雨)를 소견(召見)하였으니, 사폐(辭陛)한 때문이었다.
4월 17일 신묘
일강하였다.
4월 18일 임진
일강하였다.
4월 19일 계사
일강하였다.
병조 판서 김학성(金學性)이 아뢰기를,
"대신의 연주(筵奏)로 인하여 〈함경도(咸鏡道)〉 황토기(黃土岐)·쌍청(雙靑)의 권관(權管)을 혁파하고, 도내의 변장(邊將)을 이보(移補)하는 일로써 명이 있었습니다. 도내의 안원(安原)·황척파(黃拓坡) 양진(兩鎭)이 합당하니 이로써 이보(移補)하되, 시임 권관(時任權管)의 과만(瓜滿)을 기다린 뒤에 자벽(自辟)하여 차송(差送)하게 하소서. 안원은 쌍청의 예(例)에 의하여 초사과(初仕窠)는 30개월을 채우는 것으로 과만(瓜滿)을 삼고, 황척파의 삭수(朔數)는 청컨대 황토기(黃土岐)의 예(例)에 따라 시행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4월 20일 갑오
일강(日講)하였다.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 【정사 강시영(姜時永)·부사 이겸재(李謙在)·서장관 조운경(趙雲卿)이다.】 를 소견(召見)하였으니, 사폐(辭陛)한 때문이었다.
평안 감사 김병기(金炳冀)를 소견(召見)하였다.
4월 21일 을미
일강하였다.
조병기(趙秉夔)를 홍문관 부제학으로 삼았다.
강원 감사 오취선(吳取善)을 소견(召見)하였으니, 사폐(辭陛)한 때문이었다.
한성부(漢城府)에서 서강(西江)의 민가(民家) 1백 43호(戶)가 실화(失火)하였다고 아뢰니, 하교하기를,
"일전에 강가의 화재(火災)로 인하여 허다한 인민이 살 곳을 잃었으니, 아주 불쌍하고 가엾다. 원휼전(元恤典)을 즉시 거행하고, 집을 지어 전접(奠接)할 방안을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잘 의논하여 한 사람도 이산(離散)하는 탄식이 없도록 하라."
하였다.
평안도의 무열사 참봉(武烈祠參奉) 2과(窠)를 이 제독(李提督)022) 의 후예(後裔)와 도내(道內)의 진무사(振武士)로 하여금 충용(充用)하고, 과한(瓜限) 전에는 일체 천전(遷轉)시키지 말도록 명하였다.
4월 22일 병신
일강하였다.
4월 23일 정유
일강하였다.
4월 24일 무술
일강하였다.
4월 25일 기해
일강하였다.
서대순(徐戴淳)을 홍문관 부제학으로 삼았다.
4월 26일 경자
일강하였다. 강원 감사 홍우순(洪祐順)을 소견(召見)하였다.
4월 27일 신축
일강하였다.
이경재(李經在)를 사헌부 대사헌으로, 박효묵(朴斅默)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한계원(韓啓源)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
김병기(金炳冀)를 호조 판서로 삼았으니, 중비(中批)이었다.
4월 28일 임인
일강하였다.
4월 29일 계묘
일강하였다.
4월 30일 갑진
일강하였다.
관록(館錄)023) 을 행하여 이강준(李綱峻)·강장환(姜長煥)·이현문(李玄文)·이응정(李應貞)·김창수(金昌秀)·안희수(安喜壽)·남이륜(南履輪)·송흠익(宋欽翼)·정기직(鄭基稷)·장용규(張龍逵)·임한수(林翰洙)·김완식(金完植)·정환익(鄭煥翼)·김학초(金學初)·이철재(李徹宰)·윤정선(尹定善)·성재원(成載瑗)·조병학(趙秉學)·이윤하(李崙夏)·이유석(李裕奭)·정동규(鄭東奎)·이재문(李在聞)·박난수(朴蘭壽)·한진계(韓鎭棨)·박인하(朴麟夏)·심순택(沈舜澤)·목인회(睦仁會)·서상지(徐相至)·박효정(朴孝正)·유성환(兪晠煥)·김기현(金琦鉉)·이승구(李承九)를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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