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갑신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이달 초 5 일은 곧 우리 영종 대왕(英宗大王)께서 승하(昇遐)하신 구갑(舊甲)이다. 오랜 슬프고도 그리운 정이 더욱 새로워진다. 그날 원릉(元陵)의 작헌례(酌獻禮)는 대신을 보내어 섭행(攝行)하게 하라."
하였다.
대왕 대비가 하교하기를,
"올해의 이달은 곧 우리 정종 대왕(正宗大王)께서 즉위하신 주갑(周甲)이다. 망극한 슬픔과 애절한 생각이 미칠 바가 없다. 초10일 화령전(華寧殿)의 작헌례는 대신을 보내어 섭행하게 하라."
하였다.
김교희(金敎喜)를 이조 참의로 삼았다.
3월 5일 무자
김영(金煐)을 금위 대장(禁衛大將)으로, 구신희(具信喜)를 좌변 포도 대장(左邊捕盜大將)으로 삼았다.
봉심(奉審)한 대신 이상황(李相璜)을 희정당(熙政堂)에서 소견(召見)하였는데, 원릉(元陵)을 봉심하고 들어온 때문이었다.
3월 7일 경인
이돈영(李敦榮)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
3월 14일 정유
원릉(元陵)과 화령전(華寧殿)의 작헌례(酌獻禮) 때의 헌관(獻官) 이하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였다. 원릉의 대축(大祝) 서대순(徐戴淳)과 화령전의 집례(執禮) 조재경(趙在慶), 대축(大祝) 권직(權溭)에게는 모두 가자(加資)하였다.
3월 22일 을사
돌아온 동지(冬至) 세 사신(使臣)을 희정당에서 소견하였다.
3월 23일 병오
익종 대왕(翼宗大王)의 태실(胎室)을 가봉(加封)할 때의 관상감 제조(觀象監提調) 이하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였다. 제조 겸 서표관(提調兼書標官) 신재식(申在植), 경기 감사 김도희(金道喜), 감역 겸 도차사원(監役兼都差使員) 유기상(柳基常)에게는 모두 가자하였다.
3월 27일 경술
승지 윤성대(尹聲大)를 희정당에서 소견하였는데, 종묘와 영녕전(永寧殿)의 환안(還安) 때에 봉심하고 들어온 때문이었다.
3월 29일 임자
태묘 증수 도감(太廟增修都監)의 도제조 이하에게 차등 있게 시상하였다. 제조 이지연(李止淵)·서경보(徐耕輔), 도청(都廳) 김대근(金大根)·윤흥규(尹興圭)에게는 모두 가자(加資)하였다.
조두순(趙斗淳)을 이조 참의로, 김교희(金敎喜)를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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