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임신
비국(備局)에서 아뢰기를,
"이번에 일소(一所)014) 초장(初場)의 거자(擧子)가 서로 싸운 것은 듣기에 놀랍습니다. 장내의 단속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삼장(三場)의 책권(策券)이 2천을 충분히 넘는데 겨우 하루 밤을 지내고 곧 출방(出榜)하였으니, 어떻게 많은 선비의 마음을 위로하고 고시(考試)의 체모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해당 시관(試官)에게 모두 견파(譴罷)하는 법을 시행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시관은 서좌보(徐左輔)·이계조(李啓朝)·남헌교(南獻敎)·조봉하(趙鳳夏)이다.】
【태백산사고본】 6책 11권 2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499면
【분류】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사법-탄핵(彈劾)
[註 014] 일소(一所) : 같은 일을 몇 곳에서 나누어 할 경우에 있어서의 첫째 분소(分所). 이를테면 과거(科擧)의 초시(初試)·복시(覆試)에서 응시자를 두세 군데의 시소(試所)에 나누어 시험 보이는데, 두 과장을 각각 일소(一所)·이소 등으로 부름.
3월 6일 계유
임금이 경우궁(景祐宮)에 전배(展拜)하였다.
3월 7일 갑술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 나아가 삼일제(三日製)015) 를 행하였다.
3월 10일 정축
김난순(金蘭淳)을 형조 판서로 삼았다.
3월 11일 무인
임금이 영희전(永禧殿)에 나아가 전알(展謁)하고, 이어서 저경궁(儲慶宮)·육상궁(毓祥宮)·연호궁(延祜宮)·선희궁(宣禧宮)에 나아가 전배(展拜)하였다.
3월 14일 신사
김동건(金東健)을 형조 판서로 삼았다.
3월 17일 갑신
홍경모(洪敬謨)를 한성부 판윤으로, 박윤영(朴潤榮)을 황해도 병마 절도사로, 이응서(李膺緖)를 경상우도 병마 절도사로, 유영로(柳永魯)를 경상좌도 병마 절도사로 삼았다.
3월 18일 을유
민치성(閔致成)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권직(權溭)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삼았다.
3월 19일 병술
임금이 황단(皇壇)의 봉실(奉室)에 나아가 망배례(望拜禮)를 행하였다. 이어서 춘당대(春塘臺)에 나아가 참반(參班)한 유무(儒武)의 시취(試取)를 행하였다. 부(賦)에 으뜸을 차지한 이승규(李承圭)와 그 다음인 유치선(兪致善)과 무사(武士) 김정근(金廷根) 등 세 사람에게 모두 직부 전시(直赴殿試)016) 를 내렸다.
김이재(金履載)를 공조 판서로 삼았다.
3월 20일 정해
중희당(重熙堂)에서 입격(入格)한 유생(儒生)을 소견(召見)하였다.
3월 23일 경인
임금이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태묘 하향(太廟夏享)의 서계(誓戒)를 행하였다.
3월 25일 임진
중희당에서 소대(召對)하였다.
3월 26일 계사
중희당에서 소대하였다.
3월 27일 갑오
임금이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춘도기(春到記)017) 를 행하였다. 강(講)에 으뜸을 차지한 이승택(李承澤)과 부(賦)에 으뜸을 차지한 이승익(李承益)에게 모두 직부 전시(直赴殿試)를 내렸다.
3월 28일 을미
중희당에서 입격한 유생과 돌아온 동지 삼사신(冬至三使臣)을 소견(召見)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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