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 부마항쟁의 불씨가된 YH무역 사건 - 박정희 독재에 저항한 김영삼의 노동운동

싸라리리 2025. 5. 31. 16:24
반응형

 

 

YH무역은 1965년에 설립된 가발 수출 전문 기업으로, 1970년대 초반에는 종업원 수가 4,000여 명에 달하며 대한민국 수출 순위 15위에 오를 정도로 급성장한 회사였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가발 산업의 사양화와 장용호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방만한 운영, 자금 유출 등으로 인해 경영난이 심화된다. 이로 인해 종업원 수는 1978년 5월 기준으로 약 550명으로 감소했다.

 

1975년 4월부터 YH무역은 반발하는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인사조치를 진행하기 시작한다. 이에대한 노동자들의 반발이 계속되었다

 

1979년 8월 YH무역이 폐업한다.

7월부터노동자들이 회사를 정상화하라는 요구를 계속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8월 6일 회사는 일방적으로 폐업 공고를 한다. 

 

7일에는 기숙사 식당을 폐쇄한다.

 

9일 YH무역의 여성노동자 172명은 마포 신민당사에 찾아가 김영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은 이들의 요청에 응답히 공개적으로 지지를 선언한다. 

당시 신민당은 제1 야당으로 민주공화당유신정우회(박정희가 국회를 해산하고 만든 당) 145석(간선의원 77명) 다음으로 61석의 국회의원을 보유한 제1야당이었다.

 

김영삼 총재는 9일부터 기자회견과 면담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박정희 정권은 이를 정치적 도전으로 간주하고 강경대응한다.

 

8월 11일 박정희는 내무부장관 장기명에게 직접 지시하여 진압을 명령한다. 

새벽 경찰 1000 여 명이 신민당사를 포위한 후 곧이어 난입해 강제로 난입해 진압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김경숙이 사망하고 100여명을 연행한다.

김영삼은 이 사건 직후 "이 정권은 피를 보고 머지 않아서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는 방법도 비참하게 쓰러질 것이다." 라고 한다.


 

김영삼 총재는 9월 자택에서 뉴욕타임즈 기자 헨리 스콧 스톡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 내용이 뉴욕타임즈 국제면에 9월 16일 게재된다. 김영삼은 박정희 정권을 “소수 독재 정권(minority dictatorial regime)”으로 규정하며, 미국 카터 행정부에 대해 “국민과 점점 유리되고 있는 근본적으로 독재적인 정권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다수 중에서 미국이 어느 쪽을 선택할지를 분명히 할 때가 왔다”고 발언한다.

 

뉴욕타임즈의 기사를 뉴스페퍼민트에서 번역해서 올려놓았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1979년 뉴욕타임스 인터뷰 전문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79년 이 인터뷰를 하는 바람에 의원 제명을 당했으며 이후 부마사태와 10.26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newspeppermint.com

 

 


 

박정희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국무총리 최규하 등과 상황을 점검하고 김영삼 제거 방침을 내린다. 


 

10월 4일 김영삼은 “외세를 끌어들여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여당과 유신정우회에 의해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된다. 

이 직후 신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유명한 발언을 한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 한국일보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유신정권 막바지였던 1979년 10월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된 후

www.hankookilbo.com

 

 


이 사건은 1979년 10월 부마항쟁의 시발점이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