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경종수정실록4권, 경종 3년 1723년 8월

싸라리리 2025. 10. 2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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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4일 신해

약방(藥房)에서 들어와 진찰하였다. 임금이 엄한 하교를 내리기를,
"제조(提調) 이태좌(李台佐)는 방자하고 무엄하니, 우선 먼저 파직시키라."
하고는, 다시 잡아다가 국문(鞫問)하라고 명하였다. 도제조(都提調) 최석항(崔錫恒)이 누누이 진달하면서 명을 환수(還收)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처음에는 따르지 않다가 한참 뒤에 웃으면서 허락하였다.

 

8월 17일 갑자

원임(原任) 형조 판서(刑曹判書) 김석연(金錫衍)이 졸(卒)하였다. 김석연은 명성 왕후(明聖王后)087)  의 아우로 소년 때에는 귀가(貴家)의 자제(子弟)라는 것으로 자못 구애되는 것이 없었다. 음관(蔭官)에 보임되자 기절을 굽혀 구습(舊習)을 통렬하게 고치고 이름을 위하여 삼가고 조심했다. 그리하여 지위가 경재(卿宰)에 이르렀어도 조정의 권귀(權貴)를 찾아가거나 자제(子弟)들을 위해 벼슬을 간구(干求)한 적이 없었으며, 의복과 음식은 간검(簡儉)하게 하기를 힘써 전혀 궁가(宮家)의 사치스런 습관이 없었다. 늦게 장임(將任)을 제수받아 20년 동안 재용(財用)을 아껴 절약했으므로 군수(軍需)의 저축이 충일하여 국가에서 힘입는 바가 있게 되었다. 어렸을 때에 정공 태화(鄭公太和)가 보고서 기이하게 여기며 말하기를,
"김씨(金氏)의 문호(門戶)를 보존할 사람은 반드시 이 아이일 것이다."
하였는데, 뒤에 과연 그렇게 되었다. 이때 나이 76세였으니, 임금이 은졸(隱卒)088)  의 하교를 내리고 봉록(俸祿)은 3년을 한정하여 그대로 지급하게 하였다. 좌의정(左議政) 최석항(崔錫恒)의 건백(建白)으로 인하여 1품을 증직(贈職)하였고 해조(該曹)로 하여금 3등(三等)의 예장(禮葬)을 거행하게 하였다.

 

8월 20일 정묘

이광좌(李光佐)를 우의정(右議政)으로, 이조(李肇)를 병조 판서(兵曹判書)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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