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6일 임진
임진089) 임금이 구선남극단(癯仙南極丹)을 진어(進御)했는데, 또한 이공윤(李公胤)의 의논에 따라서 쓴 것이다. 이것은 준제(峻齊)인데, 이름을 바꾼 것이다.
【태백산사고본】 3책 4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1책 396면
【분류】왕실(王室)
[註 089] 임진 : 임진: 임진일의 이 기사는 원문에는 계사일 기사 다음에 기록되어 있었으나, 실록 편찬시 일진의 착오로 보고 바로 잡았다.
임금이 구선남극단(癯仙南極丹)을 진어(進御)했는데, 또한 이공윤(李公胤)의 의논에 따라서 쓴 것이다. 이것은 준제(峻齊)인데, 이름을 바꾼 것이다.
9월 17일 계사
약방(藥房)에서 임금의 체후(體候)가 미령하다는 것으로 들어가 진찰하였다. 임금이 엄한 하교를 내려 정원(政院)에서 자주 공사(公事)를 출납한다는 것으로 도승지(都承旨) 이진검(李眞儉)을 파직시키고 이어 속히 나가라고 명하였다. 도제조(都提調) 최석항(崔錫恒)과 우의정(右議政) 이광좌(李光佐)가 그 무죄(無罪)하다는 것을 아뢰고 명을 환수할 것을 청하니, 한참 만에야 추고(推考)하라고 명하였다.
예조 참판(禮曹參判) 김일경(金一鏡)이 소장을 올려 다시 김동필(金東弼)의 소장에 대해 대변(對辨)했는데, 대략 말하기를,
"김동필의 처음 소장에서는 단지 교문(敎文)에서 인용한 것이 정당한 데 어긋났다고만 말하고 분별하여 지적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신은 그의 의도가 어느 단락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혹자는 화심(禍心)을 품었다고 김동필을 면대해서 배척(排斥)한 자가 있었는데, 김동필은 또한 다른 의도가 없었다고 가는 곳마다 스스로 해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신이 자겸(自謙)하는 뜻에서 쓴 예사(例辭)를 수미(首尾)를 끊어내고 공교롭게 꾸며대었으며, 또다시 ‘망발(妄發)’이라는 두 글자를 만들어 내어 홀연히 삽입시킨 다음 멋대로 하늘을 속이고 사람을 속였으니, 그가 스스로 만들어 내고 스스로 창도하는 방법이 갈수록 더욱 주밀하였습니다. 신이 아무리 반복해서 생각하여 보아도 당초 인유(引喩)가 정당한 데에 어긋난 것과 망발이라고 지적할 만한 문자(文字)가 없었습니다. 김동필은 그런 것이 있으면 분명히 말하고 곧바로 지척하는 것이 뭐 안될 것이 있기에 말을 할 듯 말 듯 입을 열려다가 열지 않는단 말입니까? 신은 그윽이 통분스럽습니다."
하였다. 김동필이 올린 두 번째 소장에서도 다시 전의 이야기를 하면서 직절(直切)하게 설명하지 못하였고, 또 남에게 말한 것도 약간 미봉(彌縫)한 것에 관계되었기 때문에 김일경이 더욱 방자하게 기세(氣勢)를 부렸다.
9월 20일 병신
승지(承旨)가 공사(公事)를 가지고 옥당(玉堂)의 소대(召對)에 함께 입시(入侍)하였다. 제신(諸臣)들이 나아가 엎드리자마자 임금이 엄한 하교를 내려 좌의정(左議政) 최석항(崔錫恒)을 잡아다 국문하여 엄하게 단죄(斷罪)하라고 명하고, 또 옥당(玉堂) 유필원(柳弼垣)과 윤유(尹游)를 잡아다가 추문하라고 명하였다. 승지(承旨) 양정호(梁廷虎)가 진달하려고 하니, 임금이 갑자기 파직시키라고 명하였다. 그러고 조금 있다가 임금이 하교하기를,
"한때의 울화 때문에 갑자기 지나친 거조가 있게 되었다. 승지(承旨)·사관(史官)·옥당(玉堂)은 다시 입시하라."
하니, 제신(諸臣)이 다시 입시하였다. 임금이 이어 승지에게 공사(公事)를 품재(稟裁)하게 하였다. 옥당(玉堂)이 강독(講讀)했는데 강독이 끝나자 양정호 등이 교대로 좌상(左相)의 충근(忠勤)한 정상을 진달하였으나, 임금이 답하지 않았다. 우의정(右議政) 이광좌(李光佐)가 청대(請對)하여 명을 환수할 것을 진청(陳請)하였는데, 말이 매우 간곡하였다. 도승지(都承旨) 이진검(李眞儉)도 계속해서 아뢰니, 임금이 또 엄한 하교를 내려 최석항을 극변(極邊)에 원찬(遠竄)하고 이진검은 관작(官爵)을 삭탈하고 문외 출송(門外黜送)시키라고 하였다. 이광좌가 입이 닳도록 극력 진청하니, 임금이 비로소 도로 중지하라고 명하였다. 최석항이 금오(金吾)에서 명을 기다리니 임금이 사관(史官)을 보내어 명을 기다리지 말라고 효유(曉諭)하였다.
이조 판서(吏曹判書) 유봉휘(柳鳳輝)를 면직시키고 이태좌(李台佐)로 대신시켰다. 유봉휘를 호조 판서(戶曹判書)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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