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갑술
초복(初複)을 실시하고 인견(引見)을 할 적에 정언(正言) 남후(南垕)가 전일의 아뢴 일을 다시 개진하고 예조 참의 김만중(金萬重)을 체직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영의정 허적(許積)에게 이르기를,
"경(卿)은 알지 못하겠는가? 계사(啓辭)에 민정중(閔鼎重)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로 본다면 영원히 버리고자 함이다."
하니, 허적이 아뢰기를,
"송시열(宋時烈)과 송준길(宋浚吉)은 모두 김만중의 할아비인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므로, 김만중과 송시열과의 친분이 민정중과 다를 것이 없다는 뜻이지 죄가 같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였다. 남후가 인피(引避)하니 임금이 특별히 체직하였고, 승지(承旨)가 환수할 것을 청하고 대신도 또 아뢰니, 임금이 처음에는 어려워하다가 나중에는 따랐다. 【위에 상세히 보인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김만중은 한 사람의 척리(戚里)로서 그를 쓰고 쓰지 않는 것이 국가에 그다지 관계되지 않는데도 이조가 수용함에 반드시 이 사람을 먼저하고, 임금도 이 사람을 위하여 대간(臺諫)을 꺾는 기색이 자신도 모르게 노출된 것은 무슨 까닭이겠는가? 근래 이조에서 사람을 쓰는 것이 한결같이 사의(私意)만 따라서, 다만 자기와 맞으면 발탁하기에 겨를이 없고 다만 자기와 다르면 공격하여 끝장을 내었다. 준엄한 교지가 한 번 내려지자, 허적 이하가 자리를 잃을 것이 두려워서 논의를 화평하게 갖고 저쪽 사람도 수용한다는 뜻을 임금의 안전에서 진달하여 일시적으로 무사하기를 바라고, 물러나서는 또 그 한 사람을 쓰지 않았다가 다시 임금을 기만한 죄에 빠질 것이 두려워서 서둘러 한 사람의 척리를 기용하여 임금의 뜻에 영합하여 책임을 다하려는 계획을 삼으므로, 대각(臺閣)의 의논이 대체로 좋은데도 천둥 같은 위엄이 갑자기 이르러 형편이 없다고 꾸짖은 것이다. 아! 임금이 하는 일이 또한 사의(私意)의 작용을 면치 못하면서 신하에게 사심(私心)을 없애라고 꾸짖기는 또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대간이 논한 것 또한 우습다. 허적을 주석(柱石)의 대신이라 하여 허적을 지척한 것으로 죄를 삼으니, 이러고도 어찌 임금의 마음에 줏대가 있기를 바라겠는가?"
【태백산사고본】 7책 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30면
【분류】역사-사학(史學) / 역사-편사(編史)
사신(史臣)은 논한다. "김만중은 한 사람의 척리(戚里)로서 그를 쓰고 쓰지 않는 것이 국가에 그다지 관계되지 않는데도 이조가 수용함에 반드시 이 사람을 먼저하고, 임금도 이 사람을 위하여 대간(臺諫)을 꺾는 기색이 자신도 모르게 노출된 것은 무슨 까닭이겠는가? 근래 이조에서 사람을 쓰는 것이 한결같이 사의(私意)만 따라서, 다만 자기와 맞으면 발탁하기에 겨를이 없고 다만 자기와 다르면 공격하여 끝장을 내었다. 준엄한 교지가 한 번 내려지자, 허적 이하가 자리를 잃을 것이 두려워서 논의를 화평하게 갖고 저쪽 사람도 수용한다는 뜻을 임금의 안전에서 진달하여 일시적으로 무사하기를 바라고, 물러나서는 또 그 한 사람을 쓰지 않았다가 다시 임금을 기만한 죄에 빠질 것이 두려워서 서둘러 한 사람의 척리를 기용하여 임금의 뜻에 영합하여 책임을 다하려는 계획을 삼으므로, 대각(臺閣)의 의논이 대체로 좋은데도 천둥 같은 위엄이 갑자기 이르러 형편이 없다고 꾸짖은 것이다. 아! 임금이 하는 일이 또한 사의(私意)의 작용을 면치 못하면서 신하에게 사심(私心)을 없애라고 꾸짖기는 또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대간이 논한 것 또한 우습다. 허적을 주석(柱石)의 대신이라 하여 허적을 지척한 것으로 죄를 삼으니, 이러고도 어찌 임금의 마음에 줏대가 있기를 바라겠는가?"
【태백산사고본】 7책 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30면
【분류】역사-사학(史學) / 역사-편사(編史)
사신(史臣)은 논한다. "김만중은 한 사람의 척리(戚里)로서 그를 쓰고 쓰지 않는 것이 국가에 그다지 관계되지 않는데도 이조가 수용함에 반드시 이 사람을 먼저하고, 임금도 이 사람을 위하여 대간(臺諫)을 꺾는 기색이 자신도 모르게 노출된 것은 무슨 까닭이겠는가? 근래 이조에서 사람을 쓰는 것이 한결같이 사의(私意)만 따라서, 다만 자기와 맞으면 발탁하기에 겨를이 없고 다만 자기와 다르면 공격하여 끝장을 내었다. 준엄한 교지가 한 번 내려지자, 허적 이하가 자리를 잃을 것이 두려워서 논의를 화평하게 갖고 저쪽 사람도 수용한다는 뜻을 임금의 안전에서 진달하여 일시적으로 무사하기를 바라고, 물러나서는 또 그 한 사람을 쓰지 않았다가 다시 임금을 기만한 죄에 빠질 것이 두려워서 서둘러 한 사람의 척리를 기용하여 임금의 뜻에 영합하여 책임을 다하려는 계획을 삼으므로, 대각(臺閣)의 의논이 대체로 좋은데도 천둥 같은 위엄이 갑자기 이르러 형편이 없다고 꾸짖은 것이다. 아! 임금이 하는 일이 또한 사의(私意)의 작용을 면치 못하면서 신하에게 사심(私心)을 없애라고 꾸짖기는 또한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대간이 논한 것 또한 우습다. 허적을 주석(柱石)의 대신이라 하여 허적을 지척한 것으로 죄를 삼으니, 이러고도 어찌 임금의 마음에 줏대가 있기를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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