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보궐정오7권, 숙종 4년 1678년 6월

싸라리리 2025. 10. 22. 20:25
반응형

6월 12일 신사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민정중(閔鼎重)이 진소(陳疏)하여 윤휴(尹鑴)의 패륜(悖倫)하고 의(義)를 업신여긴 상황을 극론(極論)하고, 일찍이 더불어 교유(交遊)하고 천거한 것으로 책임지고 사직(辭職)하니, 임금이 비답하기를,
"동료 사이에 서로 삼가고 협화하기를 생각하지 않으니, 내가 실로 개탄하여 이를 책망한다.                        【원소(原疏)의 비지(批旨)는 위에 보인다.】                      이 민정중(閔鼎重)의 소(疏)를 보면, 그 윤휴(尹鑴)가 《중용(中庸)》의 주(注)를 고치고 예(禮)를 논(論)한 뒤에 끊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송시열(宋時烈)이 어찌 당여(黨與)로써 배척하지 않고서 도리어 유독 갑인년002)                                              전에 이미 죽은 윤선거(尹宣擧)만을 미워하며 싫어하였으니 어찌된 것인가? 이와 같이 하면서 공심(公心)을 자허(自許)하니, 사람들이 누가 믿겠는가?"
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민정중(閔鼎重)은 윤휴(尹鑴)를 따라 교유(交遊)한 지가 가장 오래였으며, 섬기기를 심히 근신(謹愼)하였다. 일찍이 집을 윤휴가 사는 곁에다 짓고, 집경(執經)하기를 다시 청하여 문생(門生)으로 자칭(自稱)하더니, 이에 이르러 드디어 배반하였고, 또 상장(上章)하여 윤휴를 배척하였으니, 시의(時議)가 그르다고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01면
【분류】역사-편사(編史) / 역사-사학(史學)


[註 002]                        갑인년 : 1674 숙종 즉위년.
사신(史臣)은 논한다. 민정중(閔鼎重)은 윤휴(尹鑴)를 따라 교유(交遊)한 지가 가장 오래였으며, 섬기기를 심히 근신(謹愼)하였다. 일찍이 집을 윤휴가 사는 곁에다 짓고, 집경(執經)하기를 다시 청하여 문생(門生)으로 자칭(自稱)하더니, 이에 이르러 드디어 배반하였고, 또 상장(上章)하여 윤휴를 배척하였으니, 시의(時議)가 그르다고 하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