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갑자
지평(持平) 이증(李增)이 소(疏)를 올려 민암(閔黯)·김덕원(金德遠)·정재숭(鄭載嵩)·조사석(趙師錫)·이정영(李正英)을 발탁 승진시킨 지나침을 논하고 대간(臺諫)의 계청을 따라 명을 환수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윤허하지 않겠다고 비답하였는데, 그 대략은 다음과 같다.
"국가가 사람을 뽑는 도리는 재덕(才德)이 맨 위이고 공로는 그 다음이다. 지금의 몇몇 신하는 다 재주와 인망이 있는 사람인데 선발하여 등용하는 것이 어찌 옳지 못함이 있겠는가? 그러나 지난날의 하찮은 잘못을 지적해 내는 것은 남을 도와서 구비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뜻과는 전혀 다르다."
8월 20일 임오
지평(持平) 이증(李增)이 전일의 아뢴 것을 다시 개진하여 정재숭(鄭載嵩)·이정영(李正英)에게 특별히 제수한 명을 환수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윤허하지 않았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민암(閔黯)이 그 직위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이정영(李正英)과 다를 것이 없으나, 이정영은 행실이 있고, 김덕원(金德遠)의 초탁(超擢)이 정재숭과 동일하나 정재숭은 인망이 있다. 다만 의논이 같지 않다 하여 민암·김덕원·이원록(李元祿)은 두어 차례의 계청으로 논핵을 그만두고, 이 두 사람만 뽑아 내어 논핵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견식이 있는 사람은 내심 탄식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책 8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30면
【분류】역사-사학(史學) / 역사-편사(編史)
사신(史臣)은 논한다. "민암(閔黯)이 그 직위에 적합하지 않은 것은 이정영(李正英)과 다를 것이 없으나, 이정영은 행실이 있고, 김덕원(金德遠)의 초탁(超擢)이 정재숭과 동일하나 정재숭은 인망이 있다. 다만 의논이 같지 않다 하여 민암·김덕원·이원록(李元祿)은 두어 차례의 계청으로 논핵을 그만두고, 이 두 사람만 뽑아 내어 논핵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견식이 있는 사람은 내심 탄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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