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2일 정유
인견하였을 적에 별겸춘추(別兼春秋) 조지겸(趙持謙)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오시수(吳始壽)의 죄는 누가 통분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다만 오시수가 처음 윤계(尹堦)와 쟁변(爭辨)할 때 여러 차례 올린 상소에서 모두 역관(譯官)에게 들었다고 말하였는데, 그 당시의 역관들은 들려주지 않았다고 말하는 자가 없었으니, 반드시 부동(符同)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오시수는 사사(賜死)하면서 역관들은 유배에만 그쳤으니, 이는 옥사(獄事)의 대체에 매우 그릇된 것이라, 역관들을 중하게 다스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오시수가 아무리 간악하고 변변찮은 존재라고 하더라도 자백하기도 전에 곧바로 먼저 사사하는 것은 마땅치가 않습니다. 또 일찍이 대신의 반열에 있었는데, 급급하게 형신(刑訊)을 가한 것은 아마도 중한 듯하옵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국청(鞫廳)의 대신들이 이미 참작해서 조처한 것이다."
하므로, 조지겸이 말하기를,
"역관(譯官)은 다스리지 않고 먼저 오시수를 벌준 것은 옥사의 원칙이 아닙니다."
하고 영부사(領府事) 송시열(宋時烈)이 말하기를,
"말단에 있는 낮은 관원이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할 수 있으니, 진실로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고, 승지(承旨) 정재희(鄭載禧)가 말하기를,
"외부에서도 그러한 말이 있습니다. 박정신(朴廷藎)을 국문하다가 박정신이 죽어도 다른 말을 하지 않으므로, 그 다음에 오시수에게 물어보았으니, 오시수도 반드시 자백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 사대부들이 혹은 빈자(儐者)로 혹은 사자(使者)로 명을 받들고 국경을 나가게 되면 그들과의 대화는 전적으로 역관에게 맡기는데, 만약 역관을 전하는 말을 듣고 치계(馳啓)했다가 나중에 난처한 일이 생길 경우 역관이 말을 바꾸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면 장차 장계(狀啓)한 사람만 다스리겠습니까? 지금 박정신을 다스리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폐단이 끝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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