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8일 을축
새로 급제한 황윤(黃玧)이 청(淸)나라 연호(年號)를 홍패(紅牌)에 쓰지 말도록 청하였으나, 임금이 허가하지 않았다. 【자세한 것은 위에 보인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황윤은 곧 고(故) 부윤(府尹) 황일호(黃一晧)의 아들이다. 황일호가 청(淸)나라 사람에게 살해되었는데, 황윤의 그때 나이 이미 20여 세였다. 황일호가 죽을 때 황윤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네 아비는 죄없이 죽으니, 관직에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과거를 보지 말고 벼슬할 생각을 하지 말고 물러가 집안을 보존하면서 타고난 수명을 마치라.’ 하니, 황윤은 울면서 가르침을 받았다. 상복을 벗자 자기 마음대로 과거에 응시하여 머리를 굽히고 벼슬살이를 하면서,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하고서도 일찍이 부끄럽게 여기는 기색이 없었다. 이와 같은 짓을 차마 하는데, 다른 짓은 무엇을 못하겠는가? 연호를 쓰는 일은 사소한 의리(義理)인데도, 땅에 엎드려 번거롭게 청하여 격외(格外)로 은혜를 구하니, 참으로 이른바 능히 3년의 상(喪)을 치르지 못하면서, 시마(緦麻)나 소공(小功)을 살피는 짓이라 할 수 있다."
【태백산사고본】 8책 9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67면
【분류】역사-편사(編史)
사신(史臣)은 논한다. "황윤은 곧 고(故) 부윤(府尹) 황일호(黃一晧)의 아들이다. 황일호가 청(淸)나라 사람에게 살해되었는데, 황윤의 그때 나이 이미 20여 세였다. 황일호가 죽을 때 황윤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네 아비는 죄없이 죽으니, 관직에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과거를 보지 말고 벼슬할 생각을 하지 말고 물러가 집안을 보존하면서 타고난 수명을 마치라.’ 하니, 황윤은 울면서 가르침을 받았다. 상복을 벗자 자기 마음대로 과거에 응시하여 머리를 굽히고 벼슬살이를 하면서,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하고서도 일찍이 부끄럽게 여기는 기색이 없었다. 이와 같은 짓을 차마 하는데, 다른 짓은 무엇을 못하겠는가? 연호를 쓰는 일은 사소한 의리(義理)인데도, 땅에 엎드려 번거롭게 청하여 격외(格外)로 은혜를 구하니, 참으로 이른바 능히 3년의 상(喪)을 치르지 못하면서, 시마(緦麻)나 소공(小功)을 살피는 짓이라 할 수 있다."
【태백산사고본】 8책 9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67면
【분류】역사-편사(編史)
사신(史臣)은 논한다. "황윤은 곧 고(故) 부윤(府尹) 황일호(黃一晧)의 아들이다. 황일호가 청(淸)나라 사람에게 살해되었는데, 황윤의 그때 나이 이미 20여 세였다. 황일호가 죽을 때 황윤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네 아비는 죄없이 죽으니, 관직에 있었기 때문이다. 너는 과거를 보지 말고 벼슬할 생각을 하지 말고 물러가 집안을 보존하면서 타고난 수명을 마치라.’ 하니, 황윤은 울면서 가르침을 받았다. 상복을 벗자 자기 마음대로 과거에 응시하여 머리를 굽히고 벼슬살이를 하면서,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하고서도 일찍이 부끄럽게 여기는 기색이 없었다. 이와 같은 짓을 차마 하는데, 다른 짓은 무엇을 못하겠는가? 연호를 쓰는 일은 사소한 의리(義理)인데도, 땅에 엎드려 번거롭게 청하여 격외(格外)로 은혜를 구하니, 참으로 이른바 능히 3년의 상(喪)을 치르지 못하면서, 시마(緦麻)나 소공(小功)을 살피는 짓이라 할 수 있다."
6월 13일 경오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이 전(前) 감찰(監察) 이상익(李商翼)을 잡아와서 홍씨의 소장으로 조사하여 처리할 것을 청하니, 임금이 허가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이상익은 본래 요망하고 음탕한 자질로써 형세 있는 가문에 의탁하고, 그것을 빙자하여 간사한 짓을 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故) 목사(牧使) 홍계일(洪桂一)의 첩의 딸의 시아비가 이상익과 사이가 좋았다. 이상익이 왕래하며 방문할 때마다 창이나 벽 사이로 엿보고, 홍씨의 딸이 용모와 자색이 있음을 알았다. 그 시아비와 남편이 밖에 나가는 것을 엿보아, 사나운 종을 거느리고 밤중에 그 집으로 들어가니, 홍씨의 딸은 놀라서 달아나 담을 넘어 피하려 하였다. 이상익이 잡아당겨 땅에 떨어뜨려 겨드랑이에 끼고 방으로 들어가 마침내 강간하였다. 이웃 집에서 소문이 서로 전해져 마을 거리가 떠들썩하였다. 나졸들이 소문을 듣고, 도둑질하는 아이가 남의 집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고는 잡으려 하자, 이상익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나는 곧 송상(宋相)의 문인이고, 명사(名士) 이굉(李宏)의 아비인데, 너희들이 죽고 싶으면 잡아가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어라.’ 하니, 나졸들은 마침내 물러갔다. 여자의 생질인 홍만범(洪萬範)이 사헌부에 고소장을 제출하였으나, 사헌부의 관원이 심문하지 않았다. 김수항이, 그 일이 여기저기 퍼져나가 마침내 숨길 수 없음을 듣고, 탑전(榻前)에서 진달하니, 비로소 체포하여 문초하는 조치가 있었으나, 자기 편의 무리들이 변명해 구해내서 죄가 없다고 깨끗이 하기를 옥과 같이 하였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는가? 대체로 이 일은, 역적 허견(許堅)이 다른 사람의 처를 약탈한 일과 서로 같은데도 허견이 약탈한 것은 양녀(良女)이고, 이상익이 강간한 것은 사대부(士大夫)의 골육(骨肉)이다. 그 죄상을 논한다면 허견보다 더한 점이 있는데도, 허견의 재판은 느슨하게 되어 대하(大河)에 버려두고, 이상익은 비호되어 편안하여 지장이 없으니, 이와 같이 하고도 민심을 진정하여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참으로 애석하도다."
【태백산사고본】 8책 9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67면
【분류】역사-사학(史學) / 역사-편사(編史)
사신(史臣)은 논한다. "이상익은 본래 요망하고 음탕한 자질로써 형세 있는 가문에 의탁하고, 그것을 빙자하여 간사한 짓을 한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故) 목사(牧使) 홍계일(洪桂一)의 첩의 딸의 시아비가 이상익과 사이가 좋았다. 이상익이 왕래하며 방문할 때마다 창이나 벽 사이로 엿보고, 홍씨의 딸이 용모와 자색이 있음을 알았다. 그 시아비와 남편이 밖에 나가는 것을 엿보아, 사나운 종을 거느리고 밤중에 그 집으로 들어가니, 홍씨의 딸은 놀라서 달아나 담을 넘어 피하려 하였다. 이상익이 잡아당겨 땅에 떨어뜨려 겨드랑이에 끼고 방으로 들어가 마침내 강간하였다. 이웃 집에서 소문이 서로 전해져 마을 거리가 떠들썩하였다. 나졸들이 소문을 듣고, 도둑질하는 아이가 남의 집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고는 잡으려 하자, 이상익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나는 곧 송상(宋相)의 문인이고, 명사(名士) 이굉(李宏)의 아비인데, 너희들이 죽고 싶으면 잡아가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어라.’ 하니, 나졸들은 마침내 물러갔다. 여자의 생질인 홍만범(洪萬範)이 사헌부에 고소장을 제출하였으나, 사헌부의 관원이 심문하지 않았다. 김수항이, 그 일이 여기저기 퍼져나가 마침내 숨길 수 없음을 듣고, 탑전(榻前)에서 진달하니, 비로소 체포하여 문초하는 조치가 있었으나, 자기 편의 무리들이 변명해 구해내서 죄가 없다고 깨끗이 하기를 옥과 같이 하였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는가? 대체로 이 일은, 역적 허견(許堅)이 다른 사람의 처를 약탈한 일과 서로 같은데도 허견이 약탈한 것은 양녀(良女)이고, 이상익이 강간한 것은 사대부(士大夫)의 골육(骨肉)이다. 그 죄상을 논한다면 허견보다 더한 점이 있는데도, 허견의 재판은 느슨하게 되어 대하(大河)에 버려두고, 이상익은 비호되어 편안하여 지장이 없으니, 이와 같이 하고도 민심을 진정하여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참으로 애석하도다."
6월 24일 신사
이사명(李師命)을 특별히 제수하여 수찬(修撰)으로 삼았다. 이사명이 처음으로 벼슬한 지 일년도 넘지 않아 군부(君父)의 도리가 어떤가를 알지 못하였는데도, 중비(中批)가 갑자기 내려져서, 극선(極選)에 두었으니, 온 세상이 떠들썩하고 의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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