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갑술
이단하(李端夏)를 특별히 형조 판서(刑曹判書)에 제수했다. 이단하는 천성이 순박하고 착하였으며 문장에 능하였다. 그러나 나약하고 특별한 지조는 없었다. 갑인년에 행장을 지어 올릴 적에 두려움을 못이겨 지켜야 할 도리를 못지켰으며, 또 상소로 목창명(睦昌明)과 이우정(李宇鼎)을 추천하여 당시 무리들을 기쁘게 하는 등 행동거지가 유치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비루하게 여겼다. 다만 송시열(宋時烈)을 매우 정성스럽게 섬겼으므로 김수항(金壽恒)이 이끌어다가 자기 편을 만들어서 맨먼저 추천하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바야흐로 새 인재 등용을 힘쓰고 있어서 흉당(凶黨)에게 조금이라도 기운 적이 있으면 곧 비판을 받곤 하였었는데, 이단하는 큰 하자가 있으면서도 거리낌없이 승진되니, 공론이 승복하지 아니하였다.
11월 26일 신사
지평(持平) 한구(韓構)가 〈공신을〉 추가 등록하는 일과 신종화(申宗華) 사건의 논계(論啓) 중지를 담당했다가 물의를 빚고 상소하여 사직을 청했는데, 임금이 친절하게 비답을 내리고 사직하지 말라고 하였다. 【비지(批旨)는 앞에 보인다.】 사신(史臣)은 말한다. "한구(韓構)은 원훈(元勳)의 집에서 매와 사냥개 노릇을 하면서 턱짓에 따라 행동했고 자립하는 것이 없었다. 대간이 되고서는 임금의 뜻을 받들어 갑자기 중한 공론(公論)을 중지시켰다가, 사직 상소까지 하여 신종화(申宗華)를 구제하려는 생각을 드러내어 권귀(權貴)에게 잘보이려는 태도를 하였으니, 사람들이 더럽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태백산사고본】 9책 10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508면
【분류】역사-사학(史學) / 역사-편사(編史) / 인물(人物)
사신(史臣)은 말한다. "한구(韓構)은 원훈(元勳)의 집에서 매와 사냥개 노릇을 하면서 턱짓에 따라 행동했고 자립하는 것이 없었다. 대간이 되고서는 임금의 뜻을 받들어 갑자기 중한 공론(公論)을 중지시켰다가, 사직 상소까지 하여 신종화(申宗華)를 구제하려는 생각을 드러내어 권귀(權貴)에게 잘보이려는 태도를 하였으니, 사람들이 더럽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태백산사고본】 9책 10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508면
【분류】역사-사학(史學) / 역사-편사(編史) / 인물(人物)
사신(史臣)은 말한다. "한구(韓構)은 원훈(元勳)의 집에서 매와 사냥개 노릇을 하면서 턱짓에 따라 행동했고 자립하는 것이 없었다. 대간이 되고서는 임금의 뜻을 받들어 갑자기 중한 공론(公論)을 중지시켰다가, 사직 상소까지 하여 신종화(申宗華)를 구제하려는 생각을 드러내어 권귀(權貴)에게 잘보이려는 태도를 하였으니, 사람들이 더럽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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