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보궐정오10권, 숙종 6년 1680년 8월

싸라리리 2025. 10. 23.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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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기미

인견(引見)할 때에 전한(典翰)                     최석정(崔錫鼎)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신익상(申翼相)의 상소 중의 한 가지 문제는 곧 이사명(李師命)의 일로서, 이사명이 영분(榮墳)하기 위하여 수유(受由)하였을 적에 갑자기 말을 주고 요전상(澆奠床)002)                                             을 갖추어 주라는 명이 계셨는데, 그것도 응당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신료(臣僚)를 생각해 주시고 인재를 권장하시는 것은 진실로 아름다운 일입니다만, 은총과 예의는 신중하게 해야만 기강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옛날 임금은 한 번 찡그리고 한 번 웃는 것도 아꼈습니다. 요전상을 갖추어 주는 것은 곧 대신(大臣)을 우대하는 예인데, 이사명은 보잘것이 없는 신진 인물로서 그렇게 특이한 예우를 받은 것은 진실로 너무도 지나친 것입니다."
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나는 다만 그의 재주만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역적을 토벌할 적에 은밀하게 도운 공이 있으므로 특별히 은전(恩典)을 베푼 것이다."
하였다. 이사명은 일개 서생[措大]이었다. 어떻게 역적 토벌을 은밀하게 도울 수 있었으며, 실제로 도운 것이란 또 어떤 일인가? 설혹 은밀하게 도운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임금이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그 은밀하게 도왔다[密贊]는 두 글자가 나오고부터는 숨겨졌던 자취가 드러나서 이사명의 몸이 위태롭게 되었다. 당당하게 역적을 토벌한 대의(大義)를 가지고서야 의심받는 것을 면하짐 못하여 역적을 비호하며 떠드는 무리에게 입방아에 오르는 구실거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8월 8일 갑자

대사헌(大司憲)                     정재숭(鄭載嵩)이 앞서 조경(趙絅)이 일을 아뢴 것 중에 이미 배식(配食)시킨 것을 다시 출향(黜享)시키라고 한 것이 타당한 것인지를 알 수가 없어 인피(引避)하니, 임금이 비답을 내려주면서 나의 뜻과 서로 부합하니, 사양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계사(啓辭)·비지(批旨)는 앞에 보인다.】 조경은 젊었을 적에 깨끗한 명성과 곧은 절개로 한 세상에 으뜸이었는데, 만년에 윤선도(尹善道)를 두둔하다가 공의(公議)에 죄를 얻었다. 이는 당습(黨習)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깊이 문제삼을 것은 못된다. 그러나 이미 하루의 제우(際遇)도 없었으니 애당초 한 세상의 홍유(鴻儒)와 석덕(碩德)을 다 등용하지 못할 바에는 조경에만 배식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 불행하게도 배식하게 한 다음에는 특별한 하자가 없었으니, 다만 그 제우가 없었다고 도로 출향(黜享)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대간들의 공론(公論)이 진실로 주관이 없는 것도 아니나, 정재숭의 인피 역시 화평한 마음으로 용서하는 도리를 깊이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신(史臣)이 그것을 매우 무식한 것이라고 탓한 것은 세속적인 논의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8월 17일 계유

병조 판서(兵曹判書)                     김석주(金錫胄)가 대궐 문 밖에 거적을 깔고 앉아 상소하여 신범화(申範華) 등의 억울함을 밝히고, 또 개인적으로 찾아가 은밀하게 모의한 사실도 말했는데, 임금이 국청(鞫廳)에 보내라고 명하였다.                        【앞에 자세히 보인다.】 신범화·신종화(申宗華)는 곧 죄로 죽은 신면(申冕)의 자질(子姪)이다. 신면의 억울함을 신원하기 위하여 허적(許積)에게 아부하다가 마침내 역적 허견(許堅)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정원로(鄭元老)의 공초(供招)가 나오게 되자 그의 역모(逆謀)를 권한 사실은 마땅히 죽는 데 해당하는 것이나, 김석주는 곧 그의 내종(內從)으로서 그의 죄를 벗겨 주기를 꾀하여, 신범화 등은 지령을 받고 정탐을 한 것이지 사실 역적에게 편든 것은 아니라고 하며, 드디어 상소로써 그의 은밀히 이룩한 공을 크게 칭찬하였는데, 사람들은 끝내 분명히 알 수가 없었다. 대개 기미년·경신년 경에 간흉(奸凶)들이 설치면서 역모를 벗어내었으므로 종사(宗社)는 진실로 털끝처럼 위태로왔으니, 폐부(肺腑)003)                                             에 있는 자로서는 어찌 이를 다스리는데 고심하여 제거시킬 계획을 세우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바로 김석주가 종사를 보전한 데 큰 공이 있었던 것이기는 하였으나, 궁위(宮闈)를 통하여 주고 밀고하였으니, 이는 본래 남의 신하된 자로서의 올바른 도리는 아니다.
애석하도다! 스스로 삼가지 못하고 이에 그것을 빙자하여 공과 죄를 올렸다 내렸다 하였으며. 이미 훈공(勳功)을 감정(勘定)할 당초에 신중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가 이름이 역적 명단에 오르고 자신이 법망(法網)에 걸린 다음에야 문득 또다시 친척의 혐의를 무릅쓰고 인척의 도리를 내세워 죽음에서 구출하였고, 또 다시 그의 공을 과장하여 은연 중 천지를 진동시킬 기세가 있었으니, 이것은 실로 공론이 막힌 까닭이다. 급변의 보고를 올릴 때 만약 역모를 협조하여 도와줄 낌새가 있었다든가, 우당(友黨)들의 죽음을 부추김이 있었다든가, 역적을 두둔한 것으로 잘못 걸려든 자가 있었다든가 했다면, 이는 충분히 할말이 있는 것으로서 당당하게 죄를 토벌하여 한 점 숨김이 없어야 할 것인데도 드러나지 않은 것은 개탄할 일이다. 더구나 그로부터 밀고의 문이 크게 열리고 은밀한 길을 막지 못하여 위태로움을 틈타 공로를 다투는 무리와 남을 모함하고 승진을 구하는 무리들이 세상에 줄지어 일어나 분주하게 오가면서 경쟁을 함으로써 사변(事變)은 끝이 없고 나라는 낭패를 당하게 되었다. 그런즉 세상에서는 진실로 공의 우두머리요 죄의 으뜸인 자로서 김석주(金錫胄)를 치고, 후세의 군자(君子)도 만약 다시 음양(陰陽) 소장(消長)의 변화를 논하면서 갑인년 화의 뿌리를 미루어 본다면 또 반드시 그 공이 죄를 갚기에 모자란다고 할 것이다. 아! 애석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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