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경진
주강(晝講) 때에 영의정(領議政) 남구만(南九萬)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는 오직 인재를 얻기에 달린 것입니다. 요사이 이여(李畬)·임영(林泳)·오도일(吳道一)·서종태(徐宗泰)·김창협(金昌協) 같은 사람들은 모두 글을 잘하고 청렴하다는 명망이 있는데, 이여·임영은 시골에 있으면서 올라오지 않고, 오도일은 바야흐로 파산(罷散)이 되었으며, 서종태는 걸군(乞郡)043) 하고서 조정에 있지 않고, 김창협은 또한 실정과 형세가 불안스러운 것 때문에 외방(外方)의 직임에 제수(除授)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모두 모아들여 고문(顧問)에 대비하도록 한다면 어찌 도움되는 바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내직(內職)과 외직(外職)이 비록 경중(輕重)이 있기는 하지만 고을을 다스리다가 도로 들어오는 것은 옛적부터 그러했으니, 마땅히 점차로 불러들여 임용(任用)해야 하고, 파산이 된 사람과 시골에 있는 사람도 마땅히 수습하여 임용해야 한다."
하였다.
11월 9일 갑신
황해 감사(黃海監司) 임영(林泳)이 상소하여 신명(新命)을 사직하니, 임금이 비답하기를,
"경(卿)은 글을 잘하므로 경연(經筵)에 있는 것이 합당하지만, 이번에 번유(藩維)044) 를 다스리도록 한 것은 또한 반착(盤錯)045) 에서 경의 이기(利器)046) 를 시험해보려는 것이다."
하였다. 임영(林泳)은 글을 잘하여 명류(名流)들의 으뜸이었지만 시의(時議)에 거슬리어 오랫동안 파산(罷散)이 되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견복(甄復)047) 하게 되고, 비답한 교지가 또한 너그러우므로 사류(士流)들이 서로 경하(慶賀)했었다.
11월 17일 임진
오도일(吳道一)·이익수(李益壽)·유집일(兪集一) 등을 서용(敍用)하도록 명했다. 오도일 등은 청의(淸議)를 지키다가 시론(時論)에 거슬리어 오랫동안 침체(沈滯)되어 있어야 했으니, 나라의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 책임을 면하지 못할 일이다. 이때에 이르러 대신이 이미 견복(甄復)하기를 청했었고, 임금도 또한 당인(黨人)에 싫증이 났었기 때문에 이번의 특별한 서용이 있게 된 것이다. 사류(士流)들은 폐종(嬖宗)에 대해서 자못 풍마우(風馬牛)048) 와 같았었다. 그 뒤에 수립(樹立)해 놓은 바에서 보더라도 또한 명백하게 알 수 있었는데, 당초에 역사(歷史)를 찬수(纂修)한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한 것이 아니면서도, 뒤쫓아 꾸밈을 가하여 기필코 더럽히고 욕되게 하려고 하였으니, 어째서인가? 그들 또한 당동 벌이(黨同伐異)하는 병폐가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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