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임자
임금이 외방에 있는 대신들에게 별도의 유시(諭示)를 내려 거둥나간 능소(陵所)로 와서 모이도록 했었는데, 원임(原任)과 조사석(趙師錫) 등은 모두 사양하고 오지 않았다. 【자세한 것은 앞에 보인다.】 조사석은 이미 한없는 모함을 받은 사람이니, 서계(書啓)를 올려 대변(對辯)할 적에 어찌 격앙(激昂)된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마는, 당초에 역사를 찬수(纂修)하는 사람들이 뒤쫓아 험악한 일을 했다고 기록해 놓았으니, 그 역시 지나치게 된 것이다.
전(前) 집의(執義) 한태동(韓泰東)이 졸(卒)했다. 한태동은 자(字)가 노첨(魯瞻)으로, 지극히 효성스럽고 우애있는 천성이 있었고, 정직하고 신실하며, 준엄(峻嚴)하고 청렴하여 뭇사람보다 뛰어난 지조가 있었다. 24세에 괴과(魁科)037) 에 올랐는데, 정직한 도리를 지키므로 부합하게 되는 사람이 적었지만 관심이 없어 개의치 않았다. 대관(臺官)으로 들어가서는 곧바로 범안(犯顔)038) 하며 과감하게 말을 하여 권세있는 드센 사람들을 공격하여 단죄(斷罪)하기를 거리낄 것 없이 하므로, 훈척(勳戚)들이 기가 죽게 되자, 청류(淸流)들이 크게 중시하게 되었었다. 그러나 당로(當路)039) 에게 거슬리어 여러 차례 실패를 겪다가 마침내 용납되지 않아, 물러가 광릉(廣陵)에서 살다가 돌아갔다. 글을 지으면 뛰어나고 날카롭게 쓰기를 마치 바람이 일듯이 했고, 빙벽(氷蘗)040) 보다도 더 청고(淸苦)041) 하게 지내며 곤궁에 처하기를 태연하게 하였다. 비록 온종일 굶주리고 앉는 자리마다 비가 새게 되어도 편안히 있기를 마치 처음부터 그렇지 않았던 듯이 하였고, 털끝만치도 구차하게 취하는 적이 없어 참으로 옛적의 정직한 사람과 옛적의 청렴한 사람 같았다. 술마시기를 좋아했는데, 일찍이 도성(都城)에 들어왔다가 술이 취한 채 돌아가게 되자, 신완(申琓)이 옷이 얇은데 갑작스러운 추위를 만나게 될까 염려하여 솜을 넣은 옷을 보냈었는데, 큰 글씨로 ‘광에게도 또한 이러했다.[於光亦如]’라고 써서 받지 않고 돌려 보냈었다. 늦게야 옥서(玉署)042) 에 들어가 교리(校理)를 제수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었다. 나이가 겨우 42세이므로 사림(士林)들이 서러워했다. 호(號)는 시와(是窩)이다. 아들 한지(韓祉)가 또한 등제(登第)했는데, 침착하고 신중하며 준엄하고 청렴하여 아버지의 기풍(氣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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