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순종실록부록2권, 순종4년 1911년 12월

싸라리리 2025. 2. 7. 09:21
반응형

12월 1일 양력

【음력 신해년(辛亥年) 10월 초9일】 후작(侯爵) 윤택영(尹澤榮)에게 황마거(幌馬車) 1대(臺)를 내렸다.


【원본】 6책 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69면
【분류】교통-마정(馬政) / 왕실-사급(賜給)
후작(侯爵) 윤택영(尹澤榮)에게 황마거(幌馬車) 1대(臺)를 내렸다.

 

12월 2일 양력

이왕직 사무관(李王職事務官)을 파견하여 총독부(總督府) 농상공부(農商工部) 출장원들이 각릉(各陵) 각원(各園) 각묘(各墓)의 경계를 정하고 조정할 때 입회하게 하였다. 【광릉(光陵), 경릉(敬陵), 창릉(昌陵), 온릉(溫陵), 희릉(禧陵), 태릉(泰陵), 효릉(孝陵), 강릉(康陵), 명릉(明陵), 익릉(翼陵), 홍릉(弘陵), 예릉(睿陵), 순창원(順昌園), 순강원(順康園), 소경원(昭慶園), 소녕원(昭寧園), 수길원(綏吉園), 휘경원(徽慶園), 숙의 나씨묘(淑儀羅氏墓), 안빈 이씨묘(安嬪李氏墓), 숙신 공주묘(淑愼公主墓), 소의 유씨묘(昭儀劉氏墓), 영빈 김씨묘(寧嬪金氏墓), 귀인 김씨묘(貴人金氏墓), 영조 대왕(英祖大王)의 첫째딸 묘(墓), 태왕 전하의 넷째아들 묘, 인성 대군묘(仁城大君墓), 명빈 김씨묘(明嬪金氏墓), 연산군묘(燕山君墓), 경빈 이씨묘(慶嬪李氏墓), 공빈 김씨묘(恭嬪金氏墓), 광해군묘(光海君墓)이다.】


【원본】 6책 2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69면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종친(宗親)

 

12월 5일 양력

지난번 충청남도(忠淸南道)와 충청북도(忠淸北道), 전라북도(全羅北道) 각군(各郡)에 있는 태실(胎室)을 묻은 산의 경계를 정하는 일로 이왕직 속(李王職屬) 미야키〔宮氣〕에게 출장을 가도록 명하였다. 궁기(宮氣)가 지금 충청남도에 있고 전라북도의 사무가 급하기 때문에 또 속(屬) 가토 헤이지〔加藤兵次〕에게 전주(全州) 진산군(珍山郡) 등에 출장 가서 사무를 겸하라고 명하였다.

 

12월 6일 양력

왕세자(王世子)가 영왕(英王)으로 있을 때 순헌 귀비(純獻貴妃)가 조선상업은행(朝鮮商業銀行)에 【전 천일은행(天一銀行)이다.】  금액(金額) 20만 2,240여원을 예치했는데, 지금 권리를 상속받은 자의 명의(名義)로써 【이왕가(李王家)이다.】  그 은행과 교섭하여 위의 금액을 청구하였다. 금(金) 5만 2,243원 35전(錢)은 현금으로 지불하고 잔액 금 15만원은 명치(明治) 45년 1월부터 54년 12월까지 10년 동안 무이자로 매년 1만 5,000원을 2기분으로 지불할 것을 협정하여 계약하였다.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자작(子爵) 민병석(閔丙奭)과 그 은행장 이봉래(李鳳來)가 계약서를 교환하였다.

 

12월 8일 양력

총독부 부무관(總督府附武官) 해군 소장(海軍小將) 도나미 구라키치〔外波內藏吉〕에게 은제(銀製) 주식(周式) 형선(邢鱓) 1개(箇)를 내렸다.

 

12월 14일 양력

경기도(京畿道) 각군(各郡)에 있는 능(陵) 원(園) 묘(墓) 및 태실(胎室)을 묻은 부속 지역의 경계를 정하는 일로써 출장을 간 아리마 슈이치〔有馬秀一〕를 일로 인하여 소환하였다. 또 해원(該員)에게 양주군(楊州郡), 포천군(抱川郡), 가평군(加平郡), 영평군(永平郡) 등에 출장을 가라고 명하였다.

 

12월 15일 양력

덕수궁(德壽宮)에 나아가 근알(覲謁)하였다. 왕비(王妃)도 따라 나아갔다.

 

12월 18일 양력

부무관(附武官) 자작(子爵) 이병무(李秉武)·신우균(申羽均)·이병규(李秉規)·강필우(康弼祐)·김응선(金應善)·장인근(張寅根)·권태한(權泰翰), 남작(男爵) 조동윤(趙東潤) 및 두 궁의 위병 근무 장교와 준사관(準士官) 등에게 차등 있게 상금을 주고 세찬(歲饌)을 하사하였다.

 

총독부 비서관(總督府祕書官) 구와바라 하치시〔桑原八司〕, 인사국장(人事局長) 고쿠분 쇼타로〔國分象太郞〕, 회계국장(會計局長) 고다마 히데오〔兒玉秀雄〕, 수원(水原) 권업 모범장장(勸業模範場長) 혼다 코스케〔本田幸介〕, 통신 기사(通信技師) 오카모토 게이지로〔岡本桂次郞〕, 수원 농림학교(農林學校) 교유(敎諭) 우에키 슈칸〔植木秀幹〕 등에게 차등 있게 상금을 주고 세찬(歲饌)을 하사하였다.

 

12월 19일 양력

후작(侯爵) 이해승(李海昇)에게 금(金) 200원(圓)을 특별히 내렸다. 그의 조부 고(故) 청안군(淸安君) 이재순(李載純)의 회갑제(回甲祭)였기 때문이다.

 

12월 20일 양력

총독(總督) 백작(伯爵)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정무총감(政務總監)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郞〕, 군사령관(軍司令官) 우에다 아리사와〔上田有澤〕에게 세찬(歲饌)에 관한 물종(物種)을 각각 차등 있게 증여하였다.

 

12월 22일 양력

묘(廟), 전(殿), 궁(宮), 능(陵), 원(園), 단(壇), 묘(墓)에 출직 재관(出直齋官) 등의 직무에 관한 사항 및 집무 시간을 반시(頒示)하였다.

 

12월 23일 양력

왕세자(王世子)가 동계 휴학(冬季休學)으로 별저(別邸)에 돌아갔다.

 

총독(總督) 백작(伯爵)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황감(黃柑) 15상(箱)을 바쳤다.

 

12월 25일 양력

이강 공(李堈公), 이희 공(李熹公), 후작(侯爵) 윤택영(尹澤榮)에게 각각 금(金) 1,000원(圓)을 내렸다. 세찬(歲饌)이다.

 

12월 27일 양력

총독(總督) 백작(伯爵)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칠보향로(七寶香罏) 1개(箇)를 바쳤고, 군사령관(軍司令官) 우에다 아리사와〔上田有澤〕가 은으로 만든 초합(草盒) 1개를 바쳤으며, 한성미술품제작소(漢城美術品製作所) 이사장(理事長) 이봉래(李鳳來)가 모본단(模本緞) 2권(卷)을 바쳤다.
【순종 문온 무녕 돈인 성경 효황제 실록(純宗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實錄) 부록(附錄) 제2권 끝】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