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순종실록부록5권, 순종7년 1914년 9월

싸라리리 2025. 2. 9. 22:38
반응형

9월 1일 양력

【음력 갑인년(甲寅年) 7월 12일】 파원(派員)하여 공사를 마쳤다고 보고한 함흥(咸興)과 영흥(永興)의 양 본궁(本宮)의 여러 수리처를 검사하고 동구릉(東九陵) 소속의 산림 및 금곡 봉릉(金谷封陵)의 경계를 사정하게 하였다.


【원본】 6책 5권 8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82면
【분류】왕실-종사(宗社)
파원(派員)하여 공사를 마쳤다고 보고한 함흥(咸興)과 영흥(永興)의 양 본궁(本宮)의 여러 수리처를 검사하고 동구릉(東九陵) 소속의 산림 및 금곡 봉릉(金谷封陵)의 경계를 사정하게 하였다.

 

전주군(全州郡) 오목대(梧木臺) 경역 내의 땅 4정(町) 2반(反)을 대정(大正) 3년부터 32년까지 해당 군의 공립보통학교(公立普通學校)에 무상으로 대여하여 아동에게 나무를 심게 하여 식림 사상을 함양하도록 하였다. 이것은 해당 군수(郡守)의 청구로 인한 것이다.

 

9월 3일 양력

이왕직(李王職) 본 연도 세비의 잉여금이 15만원인데, 조선은행(朝鮮銀行)에 예금하였다.

 

9월 4일 양력

수원군(水原郡)에 인원을 파견하여 목장 개설을 준비하였다. 또 시흥(始興), 고양(高陽), 양천(陽川) 등 군(郡)의 목장 예정지(豫定地)를 조사(調査)하라고 명하였다.

 

9월 5일 양력

양궁(兩宮)에서 특별히 남작(男爵) 이윤용(李允用)에게 일금 400원을 내렸다. 그의 회갑(回甲)이었기 때문이다.

 

반성 부원군(潘城府院君) 박응순(朴應順) 묘의 면례(緬禮) 때 양궁(兩宮)에서 특별히 제자료(祭粢料) 200원을 그의 사손(祀孫) 박승덕(朴勝悳)에게 내렸다.

 

9월 7일 양력

후작(侯爵) 이재각(李載覺)을 보내어 선원전(璿源殿)을 봉심(奉審)하라고 명하였다. 헌종 성황제(憲宗成皇帝)의 탄신일이었기 때문이다.

 

인원을 파견하여 동구릉(東九陵)의 경계를 측량하고 헌릉(獻陵)과 인릉(仁陵) 두 능(陵)의 조림지 성적(成績)을 조사하라고 명하였다.

 

9월 8일 양력

태왕 전하(太王殿下)의 탄신일을 맞아 덕수궁(德壽宮)에 나아가 알현하니 왕비(王妃)도 따라갔다. 태왕 전하를 모시고 석조전(石造殿)에 거둥하여 종척(宗戚), 귀족(貴族), 기사노인(耆社老人) 및 이왕직 고등관(李王職高等官)의 축하를 받았다. 이어서 돈덕전(惇德殿)에서 사찬(賜饌)하였다.

 

9월 10일 양력

이왕직 차관(李王職次官) 고미야 미호마쓰〔小宮三保松〕를 소견(召見)하였다. 토쿄〔東京〕에서 귀임(歸任)하였기 때문이다.

 

9월 12일 양력

총독(總督) 백작(伯爵)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와 의원장(醫院長) 하가 에이지로〔芳賀榮次郞〕를 접견하였다. 이어서 덕수궁(德壽宮)에도 알현하였다.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토쿄〔東京〕에 가므로 고별을 말하였고, 하가 에이지로는 신임이었다.

 

특별히 후작(侯爵) 이해창(李海昌)에게 일금 100원을 내렸다. 그 아들의 혼인 때문이다.

 

9월 13일 양력

찬시(贊侍)인 자작(子爵) 윤덕영(尹德榮)을 남문역(南門驛)에, 사무관(事務官) 현백운(玄百運)을 부산역(釜山驛)에 보내고, 태왕 전하(太王殿下)도 찬시(贊侍)인 남작(男爵) 김춘희(金春熙)를 남문역에 보내어 총독(總督) 백작(伯爵)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를 전송하였다.

 

9월 14일 양력

특별히 김영진(金英鎭)  【충달공(忠達公) 김옥균(金玉均)의 아들이다.】 에게 일금 100원을 내렸다. 그의 모친의 상(喪) 때문이다.

 

특별히 이준 공(李埈公)의 저택에 제수금(祭需金) 500원을 내렸다. 덕수궁(德壽宮)에서도 500원을 내렸다. 그의 부친 이희 공(李熹公)의 대상(大祥)이었기 때문이다.

 

사무관(事務官) 곤도 시로스케〔權藤四郞介〕를 보내어 함흥(咸興) 본 궁의 장벽을 간심(看審)하라고 명하였다. 홍수로 인하여 여러 곳이 파손되었기 때문이다.

 

9월 15일 양력

인원을 보내어 수원(水原), 대전(大田), 아산(牙山), 괴산(槐山), 영동(永同), 밀양(密陽), 김해(金海), 동래(東萊), 양산(梁山), 합천(陜川), 칠곡(漆谷), 달성(達城), 고령(高靈), 청도(淸道), 경주(慶州), 영일(迎日) 등지의 도자기(陶瓷器) 고요지(古窯址)를 조사하도록 명하였다.

 

동물원 기사(動物園技師) 오카다 노부토시〔岡田信利〕를 수원군(水原郡) 화산(花山)에 보내어 해당 동물원의 야수(野獸)를 키우는 데 적합한 땅인가를 알아보도록 명하였다. 이어서 수시로 출장 가도록 하였다.

 

9월 16일 양력

인원을 진위(振威), 천안(天安), 온양(溫陽) 등의 군(郡)에 보내어 목장 개발에 적합한 땅을 선정하라고 명하였다.

 

9월 19일 양력

선정전(宣政殿)에 거둥하였다. 왕비(王妃)도 함께 갔다. 종척(宗戚), 귀족(貴族), 이왕직 고등관(李王職高等官) 이상 및 부인들의 알현과 축하를 받고 이어 사찬(賜饌)하였다. 왕비(王妃)의 탄신 때문이었다.

 

9월 23일 양력

금곡(金谷)의 봉릉(封陵) 지역이 협소하여 자작(子爵) 조중응(趙重應)이 소유한 삼림 중에서 49정(町)을 바쳤다. 【시가 5,100원이다.】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자작(子爵) 민병석(閔丙奭)이 조중응과 함께 삼림양여규칙(森林讓與規則)에 의거하여 서명하였다.

 

9월 26일 양력

인원을 원산부(元山府) 및 연천(璉川), 철원(鐵原), 평강(平康) 등의 군(郡)에 보내어 목장 설치에 적합한 땅을 선정하라고 명하였다.

 

9월 28일 양력

이달용(李達鎔)에게 선원전(璿源殿)을 봉심(奉審)하라고 하였다. 문조 익황제(文祖翼皇帝)의 탄신일이었기 때문이다.

 

9월 29일 양력

비원에 거둥하였는데 왕비(王妃)도 함께 나아갔다. 습율회(拾栗會)를 열고 이어서 다과를 베풀었다. 이강 공(李堈公)의 비(妃) 이하 여러 종척(宗戚), 귀족(貴族)의 부인 및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차관(次官) 이하 여러 인원이 배참(陪參)하였다.

 

9월 30일 양력

총독부 총무 국장(總督府總務局長) 백작(伯爵) 고다마 히데오〔兒玉秀雄〕에게 홍축면(紅縮緬)과 백축면(白縮緬) 1필(疋)을 내렸다. 그 누이의 혼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궁(兩宮)에서 특별히 왕세자(王世子)의 학우인 고(故) 서병갑(徐丙甲)의 유족에게 일금 600원을 내렸다. 왕세자도 또한 300원을 내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