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순종실록부록6권, 순종8년 1915년 11월

싸라리리 2025. 2. 1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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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 양력

【음력 을묘년(乙卯年) 9월 24일】 전 참장(參將) 엄준원(嚴俊源)이 양궁(兩宮)에 알현하였다. 토쿄〔東京〕에서 돌아와 왕세자(王世子)의 근황을 아뢰었기 때문이다.


【원본】 6책 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90면
【분류】왕실-국왕(國王) / 외교-일본(日本) / 왕실-종친(宗親)
전 참장(參將) 엄준원(嚴俊源)이 양궁(兩宮)에 알현하였다. 토쿄〔東京〕에서 돌아와 왕세자(王世子)의 근황을 아뢰었기 때문이다.

 

11월 2일 양력

부무관(附武官) 자작(子爵) 이병무(李秉武)에게 앞서 교토〔京都〕에 나아가 대례(大禮)에 참례한 후에 이어 토쿄〔東京〕에 나아가 관병식(觀兵式)을 관람하고 오도록 명하였다.

 

11월 3일 양력

후작(侯爵) 이재각(李載覺), 백작(伯爵) 이완용(李完用)·이지용(李址鎔)·민영린(閔泳璘), 자작(子爵) 이기용(李埼鎔)·민영소(閔泳韶)·박제순(朴濟純)·조중응(趙重應)·이재곤(李載崐)·임선준(任善準)·조민희(趙民熙)·권중현(權重顯), 남작(男爵) 이윤용(李允用)·조동윤(趙東潤)·한창수(韓昌洙)·박기양(朴箕陽)·김가진(金嘉鎭)·박제빈(朴濟斌), 본직 장관(本職長官) 자작 민병석(閔丙奭), 차관(次官) 고미야 미호마쓰〔小宮三保松〕, 찬시(贊侍) 자작(子爵) 윤덕영(尹德榮), 부무관(附武官) 자작 이병무(李秉武), 찬시 남작 김춘희(金春熙), 사무관(事務官) 이항구(李恒九), 고쿠분 쇼타로〔國分象太郞〕가 대례(大禮) 참례차 교토〔京都〕에 가고자 하직인사로 양궁(兩宮)에 알현하였다.

 

11월 6일 양력

이달용(李達鎔)에게 명하여 선원전(璿源殿)을 봉심하게 하였다. 세조 대왕(世祖大王)의 탄신이었기 때문이다.

 

11월 9일 양력

이왕직(李王職)에게 명하여 경기도(京畿道) 수원군(水原郡) 안룡면(安龍面) 오목천리(梧木川里)에 목마장(牧馬場)을 설립하게 하였다. 【대정(大正) 3년 10월 목장 설립 예정계획(牧場設立豫定計劃)을 세웠다. 같은 해 3월에 지면(地面)을 측량하여 민유지를 사들이고 아울러 국유지를 대부받았다. 목장지 면적 합계 350정보로 같은 해 4월 처음 사무소와 마굿간〔廐舍〕를 건립하고 이 때에 이르러 준공하였다. 처음에 종마 1두와 번식마 4두를 구입하여 대정 5년에 마굿간을 증축하고 빈마(牝馬) 5두를 구입하여 해마다 개량하여 대정 9년에 말 50두를 수용하였다. 첫 해의 경비 4만 7,730원에서 매년 증가하여 드디어 12만 6,970원에 이르렀다. 후에 소화(昭和) 4년 4월 조선 총독부(朝鮮總督府) 권업모범장(權業模範場)인 강원도(江原道) 회양(淮陽)의 난곡목장(蘭谷牧場)을 이전대로 합병하여 이왕직 난곡목장(李王職蘭谷牧場)이라 개칭하였다.】


【원본】 6책 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90면
【분류】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농업-축산(畜産)

 

11월 10일 양력

총독 관저(官邸)에 행계(行啓)하여 천황 폐하의 즉위어대전(卽位御大典)의 축하와 아울러 태왕 전하(太王殿下)의 축사를 전해줄 것을 당부하였다.

 

이왕직 사무관(李王職事務官) 현백운(玄百運)을 경성 신사(京城神社)에 보내고 덕수궁(德壽宮)에서도 찬시(贊侍) 이필균(李弼均)을 보내어 대전 봉축제(大典奉祝祭)를 행할 때 참례하게 하고 이어서 폐백료(幣帛料)를 바쳤다.

 

천황 폐하가 조칙(詔勅)을 내려 왕비(王妃)를 훈(勳) 1등에 서훈하고 보관장(寶冠章)을 내렸다.

 

11월 14일 양력

이왕직 사무관(李王職事務官) 현백운(玄百運)을 경성 신사(京城神社)에 보내고 덕수궁(德壽宮)에서도 사무관(事務官) 한상학(韓相鶴)을 보내어 대상제(大嘗祭)를 행할 때 참례하게 하고 이어 폐백료(幣帛料)를 바쳤다.

 

11월 17일 양력

자작(子爵) 이완용(李完鎔)에게 선원전(璿源殿)을 봉심하게 명하였다.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의 탄신이었기 때문이다.

 

11월 21일 양력

후작(侯爵) 이재각(李載覺), 백작(伯爵) 이완용(李完用), 자작(子爵) 조민희(趙民熙), 이기용(李埼鎔), 남작(男爵) 이윤용(李允用), 본직 장관(長官) 자작 민병석(閔丙奭), 장시사 장(掌侍司長) 자작 윤덕영(尹德榮), 남작 조동윤(趙東潤) 등이 대례(大禮) 참례 후 귀환하여 양궁(兩宮)에 알현하였다.

 

11월 22일 양력

여순(旅順) 주둔의 17여단장(旅團長) 마쓰우라 히로타케〔松浦寬威〕가 양궁(兩宮)에 알현하였다. 이어서 물품을 하사하였다. 【창덕궁에서 은제수환호식화병(銀製獸環壺式花甁) 1개를 내리고, 덕수궁(德壽宮)에서 은제원다관(銀製圓茶罐) 1개를 내렸다.】


【원본】 6책 6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90면
【분류】왕실-사급(賜給) / 외교-일본(日本) / 왕실-국왕(國王) / 의생활-장신구(裝身具)

 

11월 27일 양력

왕세자(王世子)가 오늘 근위 보병 제2연대 부속 근무를 마치고 내일 육군사관학교(陸軍士官學校)에 입학한다는 뜻을 양궁(兩宮)에 전보로써 품달(稟達)하였다.

 

11월 28일 양력

육군 대신(陸軍大臣) 오카이치 노스케〔岡市之助〕가 축전을 올렸다. 왕세자(王世子)의 육군사관학교(陸軍士官學校) 입학 때문이다. 이어 사례하는 전보를 보냈다.

 

11월 29일 양력

양궁(兩宮)에서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자작(子爵) 민병석(閔丙奭)을 조선 총독부(朝鮮總督府)에 보내어 문후 인사를 전주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천황 폐하가 교토〔京都〕에서 토쿄〔東京〕로 도로 행차하였기 때문이다.

 

11월 30일 양력

덕수궁(德壽宮)에 나아가 근알(覲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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