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순종실록부록7권, 순종9년 1916년 3월

싸라리리 2025. 2. 1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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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양력

【음력 병진년(丙辰年) 1월 29일】 천황 폐하가 은기(銀器) 몇 가지를 양궁(兩宮)에 특별히 하사하였다. 즉위례의 기념품이었다.


【원본】 7책 7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92면
【분류】왕실-국왕(國王) / 식생활-기명제물(器皿祭物) / 왕실-사급(賜給)
천황 폐하가 은기(銀器) 몇 가지를 양궁(兩宮)에 특별히 하사하였다. 즉위례의 기념품이었다.

 

3월 2일 양력

평양(平壤) 복심법원장(覆審法院長) 도이 요타로〔土井庸太郞〕에게 은제 물품 수종(數種)을 특별히 하사하였다. 법원장직에서 퇴직하였기 때문이다.

 

3월 7일 양력

태왕 전하가 특별히 일금 35원을 윤달영(尹達榮)에게 하사하였다. 그의 어머니 정부인(貞夫人) 서씨(徐氏)가 91세의 고령이므로 노인을 우대하기 위해서이다.

 

양궁(兩宮)에서 기사노인(耆社老人) 【전 판서(判書)이다.】 조종필(趙鍾弼)의 상(喪)에 일금 100원을 특별히 하사하였다.

 

3월 18일 양력

후작(侯爵) 이재완(李載完)에게 축의금 200원을 특별히 하사하였다. 그의 손자 이해선(李海善)이 혼례를 치렀기 때문이었다. 또한 민범식(閔範植)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永煥)의 아들이다.】        에게도 축의금 200원을 특별히 하사하였다. 그의 누이가 혼례를 치렀기 때문이다.

 

3월 20일 양력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자작(子爵) 민병석(閔丙奭)을 총독부(總督府)에 보내어 문후를 아뢰어 주도록 당부하였다. 천황과 황후가 하야마〔葉山〕에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제9사단장(師團長) 가와무라 소고로〔川村宗五郞〕의 상(喪)에 특별히 돈 500원과 생화(生花) 1대(對)를 하사하였다. 덕수궁(德壽宮)에서도 돈 200원과 생화 1대를 하사하였다.

 

3월 21일 양력

부무관(附武官) 자작(子爵) 이병무(李秉武)를 고(故) 육군 중장(陸軍中將) 가와무라 소고로〔川村宗五郞〕의 추도회에 보냈다. 덕수궁(德壽宮)에서도 찬시(贊侍) 남작(男爵) 김춘희(金春熙)를 참여하게 하였다.

 

3월 25일 양력

왕실의 종척(宗戚)과 귀족(貴族) 및 이왕직(李王職)의 고등관(高等官)을 소견하고, 이어 인정전(仁政殿)에서 오찬을 베풀었다. 탄신일이기 때문이다.

 

총독(總督)을 대리(代理)한 후지나미 요시쓰라〔藤波義貫〕와 군사령관(軍司令官) 이노구치 세이고〔井口省吾〕를 희정당(熙政堂)에서 접견하였는데, 이들이 왕의 탄신일을 축하하러 왔기 때문이다.

 

덕수궁(德壽宮)에 나아가 근알(覲謁)하였는데 왕비도 따라갔다. 이어 경효전(景孝殿)에 나아가 전알하였다.

 

3월 29일 양력

사무관(事務官) 현백운(玄百運)을 남대문역에 보내고, 덕수궁(德壽宮)에서도 찬시(贊侍) 이성묵(李聖默)을 보내어 정무 총감(政務總監)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郞〕의 귀임을 환영하게 하였다.

 

3월 30일 양력

제9사단장(師團長) 하시모토 가쓰타로〔橋本勝太郞〕가 군사령관(軍司令官) 이노구치 세이고〔井口省吾〕와 부사령관 노즈 요타로〔野津要太郞〕, 구마노 도시코토〔熊野利功〕를 대동하고 양궁(兩宮)에 알현하여 신임 인사를 하였다.

 

3월 31일 양력

총독(總督) 백작(伯爵)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와 정무 총감(政務總監)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郞〕, 각부(各部)와 각국(各局)의 장관(長官)을 인정전(仁政殿)에서 접견하고 이어 오찬을 베풀었다. 귀족(貴族) 및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이하 고등관(高等官)이 배식(陪食)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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