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무오
주강(晝講)하였다.
홍기섭(洪耆燮)을 황해도 관찰사로 삼았으니, 특명으로 의망(擬望)에 넣은 것이었다.
이경재(李景在)를 형조 판서로 삼았다.
12월 2일 기미
주강하였다.
12월 3일 경신
조강(朝講)하였다.
석강(夕講)하였다.
12월 5일 임술
약원(藥院)에서 희정당(熙政堂)에 입진(入診)하였다.
12월 6일 계해
영의정 조인영(趙寅永)이 졸(卒)하였다. 하교(下敎)하기를,
"정량(貞亮)047) 한 용자(容姿)와 신밀(愼密)한 규모(規模)로써 일에 임해서는 조심하며 두려워하고 집에 있어서는 검소하고 절약하였으며 나라를 걱정하고 집안 일을 잊음이 종시토록 간절하였으니, 내가 보고 듣는 바로는 이와 같은 대신이 있지 않았다. 더구나 문학의 유창(流暢)함과 재유(才猷)의 숙달(熟達)됨은 오늘날 찾아보려 해도 어디서 구해 오겠는가? 근래에 신절(愼節)048) 이 걱정되지 않은 바는 아니었으나, 갑자기 이렇게까지 될 줄은 헤아리지도 못하였다. 오직 과매(寡昧)한 나는 성취할 길이 없어졌고 백성과 나라 일을 생각해 보면 실로 망연할 따름이다. 졸(卒)한 영의정의 집에 동원 부기(東園副器)049) 한 벌을 보내 주고, 성복일(成服日)에는 승지를 보내어 치제(致祭)할 것이며, 녹봉은 3년을 기한하여 그대로 지급하고, 예장(禮葬) 등의 일은 해조(該曹)로 하여금 전례를 참작하여 거행케 하라."
하였다. 조인영은 풍은 부원군(豐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아우이니, 집안은 효우(孝友)로 전해 왔고 몸소 검약을 실천하여 언행(言行)과 조리(操履)가 가히 5척의 어린 임금을 부탁하고 큰 일을 맡길 만하였다. 순조의 지우(知遇)를 받아 헌종을 보도(輔導)하느라 8년을 궁중에서 지냈는데, 전일(專一)한 충심(忠心)은 임금을 받들고 백성을 보살핌을 자기의 소임으로 삼았고, 나라를 걱정하고 집안을 잊음을 살림살이로 여겼다. 일을 헤아리고 이치를 보는 데에는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고, 모든 일을 설계하여 펼치고 시행함에 있어 조야(朝野)가 믿고 중히 여겼음이 마치시귀(蓍龜)050) 와 같았다. 문학과 사장(詞章)에 있어서도 세상의 종장(宗匠)051) 이 되었는데, 육경(六經)에 근저(根柢)를 두고 백가(百家)를 섭렵(涉獵)하여 문단의 맹주(盟主)로 지냄이 10여 년이나 되었고, 관각(館閣)에 있으면서 제고(制誥)로 지은 글은 거의가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052) 되었었다.
김좌근(金左根)을 형조 판서로 삼았다.
12월 8일 을축
이유원(李裕元)을 전라도 관찰사로 삼았다.
조인영에게 특별히 문충(文忠)의 시호를 내렸다.
12월 11일 무진
좌포장(左捕將) 이경순(李景純)과 우포장 심낙신(沈樂臣)을 파직하고 유상필(柳相弼)·오일선(吳一善)으로 대체하였다.
12월 12일 기사
약원에서 희정당에 입진하였다.
돌아온 사은사(謝恩使) 및 충청도 감사 홍열모(洪說謨)를 불러 보았으니, 사폐(辭陛)한 때문이었다.
12월 13일 경오
좌우 포장(捕將)을 엄히 신칙하여 도둑을 잡도록 하였다.
12월 16일 계유
인정전(仁政殿)에 나아가 감제(柑製)053) 를 행하였다. 부(賦)로 유학(幼學) 윤정구(尹正求)를 직부 전시(直赴殿試)하게 하였다.
전 충청 감사 조득림(趙得林)을 불러 보았다.
12월 18일 을해
소대하였다.
12월 19일 병자
소대하였다.
12월 20일 정축
어영 대장(御營大將) 이경순(李景純)을 잉임(仍任)054) 시키라고 명하였다.
희정당에서 차대(次對)하였다.
소대하였다.
12월 21일 무인
소대하였다.
12월 22일 기묘
소대하였다.
은전군(恩全君)의 복작(復爵)을 명하였다.
12월 23일 경진
소대하였다.
12월 26일 계미
도정(都政)을 행하였다. 하비(下批)하여 오취선(吳取善)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송능규(宋能圭)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서기순(徐箕淳)을 판의금부사로, 박제헌(朴齊憲)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윤명검(尹明儉)을 전라도 병마 절도사로, 유영로(柳永魯)를 삼도 수군 통어사로 삼았다.
12월 27일 갑신
수령·변장(邊將)의 초사인(初仕人)을 불러 보았다.
12월 28일 을유
소대(召對)하였다.
12월 29일 병술
약원에서 희정당(熙政堂)에 입진(入診)하였다.
12월 30일 정해
효정전(孝定殿)에 나아가 저녁 상식을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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