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철종실록3권 철종2년 1851년 2월

싸라리리 2025. 4. 2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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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무오

진전(眞殿)에 나아가 전배(展拜)하였다.

 

소대하였다.

 

2월 2일 기미

전라 감사(全羅監司) 이유원(李裕元)을 불러 보았으니, 사폐(辭陛)한 때문이었다.

 

김흥근(金興根)을 좌상(左相)으로, 박영원(朴永元)을 우상(右相)으로 제수하라고 명하였다.

 

이헌구(李憲球)를 이조 판서(吏曹判書)로, 서기순(徐箕淳)을 병조 판서(兵曹判書)로 삼았다.

 

2월 4일 신유

소대하였다.

 

2월 5일 임술

소대하였다.

 

2월 6일 계해

이가우(李嘉愚)를 병조 판서로 삼았다.

 

소대하였다.

 

윤정현(尹定鉉)을 예조 판서(禮曹判書)로 삼았다.

 

전교하기를,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 이방(李房) 섭사손(攝祀孫)은 전(前) 현감(縣監) 이시학(李時學)으로 하라."
하고, 구전(口傳)015)  으로 군직(軍職)을 주어 섭사하게 하였다.

 

2월 7일 갑자

소대하였다.

 

2월 8일 을축

소대하였다.

 

전계 대원군(全溪大院君), 완양 부대부인(完陽府大夫人), 용성 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묘소의 사명절(四名節)016)   제수(祭需)는 덕흥 대원군(德興大院君) 묘소의 예에 의해 마련하라고 명하였다.

 

2월 9일 병인

소대하였다.

 

구장화(具鏘和)를 충청도 병마 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로, 신명순(申命淳)을 전라우도 수군 절도사(全羅右道水軍節度使)로 삼았다.

 

2월 10일 정묘

약원(藥院)에서 희정당(熙政堂)에 입진하고, 소대하였다.

 

좌의정 김흥근(金興根)이 진소하여 사직하였으나, 비답을 내려 윤허하지 않았다.

 

2월 11일 무진

소대하였다.

 

우의정 박영원(朴永元)이 진소하여 사직하니, 비답을 내려 허락하지 않았다.

 

이기연(李紀淵)을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로 삼았다.

 

2월 12일 기사

소대하였다.

 

조두순(趙斗淳)을 대제학(大提學)으로 삼았다.

 

2월 13일 경오

각권(閣圈)017)  을 행하였는데, 직각(直閣) 정건조(鄭健朝)·신석희(申錫禧)·홍종서(洪鍾序)·조석여(趙錫輿), 대교(待敎) 김병국(金炳國)·이용은(李容殷)·서상지(徐相至)·이희로(李僖魯)이었다.

 

조두순(趙斗淳)을 규장각 제학(奎章閣提學)으로, 남병철(南秉哲)을 직제학(直提學)으로, 정건조(鄭健朝)를 직각(直閣)으로, 김병국(金炳國)을 대교(待敎)로, 김재청(金在淸)을 이조 참의(吏曹參議)로 삼았다.

 

2월 14일 신미

소대하였다.

 

2월 15일 임신

효정전(孝定殿)018)  에 나아가 망제(望祭)를 행하였다.

 

소대하였다.

 

서영순(徐英淳)을 형조 판서(刑曹判書)로, 윤치겸(尹致謙)을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으로, 윤치정(尹致定)을 성균관 대사성(成均館大司成)으로 삼았다.

 

2월 16일 계유

소대하였다.

 

별강(別講)하였다.

 

좌의정 김흥근(金興根), 우의정 박영원(朴永元)이 두 번째 상소하여 사직하였으나, 비답을 내려 허락하지 않았다.

 

2월 17일 갑술

소대하였다.

 

별강하였다.

 

2월 18일 을해

소대하였다.

 

별강하였다.

 

2월 19일 병자

소대하였다.

 

2월 20일 정축

조강(朝講)에서 《논어(論語)》 제1권을 강하였다.

 

2월 21일 무인

조강하였다.

 

좌의정 김흥근(金興根)이 세 번째 상소하여 사직하였으나, 비답을 내려 허락하지 않았다.

 

하교하기를,
"전후의 신칙(申飭)하는 전교(傳敎)가 간절할 뿐만이 아닌데 한결같이 강력히 항거(抗拒)하니,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 경상 감사(慶尙監司) 이기연(李紀淵)을 바로 그 땅에 정배(定配)하라."
하였다.

 

2월 22일 기묘

주강(晝講)하였다.

 

우의정 박영원이 세 번째 상소하여 사직하였으나, 비답을 내려 윤허하지 않았다.

 

2월 23일 경진

전교하기를,
"행견인(行遣人)019) 이기연(李紀淵)을 분간(分揀)해 전직(前職)에 잉임(仍任)시켜 보외(補外)로 시행하되, 조사(朝辭)를 면제하고 부임하게 하라."
하였다.

 

2월 24일 신사

소대하였다.

 

2월 25일 임오

주강하였다.

 

2월 26일 계미

주강하였다.

 

2월 27일 갑신

진전(眞殿)에 나아가 전배(展拜)하였다.

 

주강하였다.

 

조관석(趙寬錫)을 전라우도 수군 절도사(全羅右道水軍節度使)로 삼았다.

 

좌의정 김흥근이 네 번째 상소하여 사직하였으나, 비답(批答)을 내려 윤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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