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경신
하교하기를,
"호서(湖西)의 별천(別薦) 가운데에서 전 교관(敎官) 송달수(宋達洙)는 선정(先正)의 자손으로서 여러 번 제직(除職)하여도 취직하지 않았는데 이제 또 천거에 올랐다. 그 자신을 단속하고 행실을 도타이하는 사실에 우대하고 장려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니, 오늘 정사(政事) 때에 6품 벼슬에 의망(擬望)하여 들이라."
하였다.
6월 18일 을축
임금이 진전(眞殿)에 나아가 다례(茶禮)를 행하였다.
6월 24일 신미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 나아가 일차 유생 전강(日次儒生殿講)과 도정(都政)을 행하였다. 민치성(閔致成)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이풍익(李豐翼)을 사간원 대사간으로, 신종익(申從翼)을 경상좌도 병마 절도사로, 정위(鄭瑋)를 충청도 수군 절도사로, 이원하(李元夏)를 전라도 병마 절도사로, 김한철(金翰喆)을 경기 수군 절도사(京畿水軍節度使) 겸 삼도 통어사 교동 부사(三道統禦使喬桐府使)로 삼았다.
6월 25일 임신
희정당(熙政堂)에서 일차 유생 전강(日次儒生殿講)의 비교를 행하고, 수령(守令)·변장(邊將)으로 초사(初仕)하는 사람을 소견(召見)하였다. 하교하기를,
"일차 유생의 비교는 제술(製述)로 강서(講書)를 대신하라."
하였다. 배율(排律)에 으뜸을 차지한 황종현(黃鍾顯)에게 직부 전시(直赴殿試)를 내렸다.
6월 29일 병자
임금이 춘당대(春塘臺)에 나아가 전경 문신 무신 전강(專經文臣武臣殿講)을 행하였다. 승지(承旨)·사관(史官)·각신(閣臣)·별운검(別雲劍)과 병조(兵曹)·도총부(都摠府)의 당상(堂上)은 입직(入直)하고 옥당(玉堂)과 좌통례(左通禮)·우통례(右通禮)도 모두 칠언 근체시(七言近體詩) 한 수(首)를 지어 들이게 하라고 명하였다.
조귀하(趙龜夏)를 홍문관 부제학으로, 성원묵(成原默)을 성균관 대사성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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