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일 계해
태백성(太白星)이 사지(巳地)에 나타났다.
1월 3일 을축
우의정 조태구(趙泰耉)가 상소(上疏)하기를,
"성학에 힘쓰시어 덕성(德性)을 도우시고, 효도와 우애를 돈독히 하시어 궁위(宮闈)를 화목하게 하시고, 청단(聽斷)을 부지런히 하시어 만기(萬機)에 응하시고, 기강(紀綱)을 세워서 국세(國勢)를 진작시키시고, 어질고 유능한 이를 임용하여 직사(職事)를 책임지우시고, 언로(言路)를 넓혀서 총명(聰明)을 넓히시고, 백성의 괴로움을 구휼하여 나라의 근본을 굳건하게 하소서."
"전하께서 동궁(東宮)에 계실 적부터 이미 전학(典學)001) 의 보람을 드러내셨는데, 사복(嗣服)하신 초기에 이르러 더욱 이것을 급무로 여기시어 공제(公除)002) 가 막 지나자마자 바로 소대(召對)003) 의 명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나 학문의 공효는 다만 장구(章句)의 말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 삼가 원컨대 자주 경연(經筵)에 나아가시어 토론하고 어려운 것을 물으시며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고 일과 행동에 발현하시어 성덕(聖德)의 근본으로 삼으소서.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시선(視膳)하던 예절004) 과 등(滕)나라 문공(文公)이 의려(倚廬)005) 에 거처하여 심묵(深墨)하던 모습006) 에서 이미 전하의 어버이를 섬기시는 지극한 효성을 우러러보았습니다만, 형제간의 우애 또한 효도로 미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단지 한 분의 아우가 계시니 더욱 돈독히 친애(親愛)하시어 구족(九族)에게까지 미쳐 간다면 그것이 효도와 우애로 정사를 시행하는 도리에 어찌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옛적에 우리 효종(孝宗)께서 장렬 대비(莊烈大妃)를 모실 적에는 그 효도로 봉양을 다하셨고, 인평 대군(麟坪大君)을 대우할 적에도 그 우애를 다하셨으니, 삼가 바라건대 반드시 효종을 본받아서 그 효도와 우애를 다하소서.
생각건대, 우리 선대왕(先大王)께서는 4기(紀)007) 를 임어(臨御)하시는 사이에 여러가지 정사를 근심하고 부지런히 하시어 감히 태만하거나 소홀함이 없었으며, 공거(公車)008) 에는 보류된 소장(疏章)이 없었고 궤안(几案)에는 지체된 문서가 없었으니, 영고(寧考)께서 편안함을 끼치신 아름다움은 어찌 성자(聖子)께서 마땅히 본받아 계승할 바가 아니겠습니까? 근년에는 소장의 비답(批答)이 간혹 한 달이 지나도록 내리지 않는 데 이르렀으니, 삼가 바라건대 더욱 청단(聽斷)을 부지런히 하시어 나랏일을 다행하게 하소서. 우리 나라가 태평한 지 오래 되었으므로, 크고 작은 관원이 헛되이 세월만 보내고 문무(文武) 관원이 맡은 일을 게을리하여 점차 권강(權綱)이 해이해지고 법기(法紀)가 문란해지게 되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심술(心術)의 은미한 곳에 먼저 경계하시고 일과 행동의 말단에 발현하셔서, 군공(群工)009) 을 칙려(飭勵)하며 백도(百度)010) 를 수거(修擧)하여 국체(國體)를 높이소서. 어진이를 임용하고 유능한 이를 부리는 것은 나라를 보유(保有)하는 데에 먼저 힘써야 할 일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말세이므로 인재(人才)가 아주 적은데, 폐고(廢錮)에 구애된 자들이 거의 셋 중에 둘이나 되니, 성세(聖世)의 인재를 고르는 방법은 마땅히 이와 같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공정하게 듣고 두루 관찰하며, 함께 수용하고 두루 길러주어서, 붕당(朋黨)에 구애되지 말고 오직 어진이를 들어 쓰며, 피차를 논할 것 없이 오직 유능한 이를 의지하여 재언(才彦)011) 으로 하여금 모두 나오게 하고 떨어짐이 없게 하소서.
순(舜)은 하잘것 없는 말도 살폈고, 우(禹)는 합당한 말에 절을 했다 합니다. 성인(聖人)도 오히려 그러하였는데 더구나 이보다 못한 사람이겠습니까? 지금의 공거(公車)에 왕래하는 자들을 볼 적에 간혹 당동 벌이(黨同伐異)012) 의 말이 많고, 주광(黈纊)013) 에 진언하는 자들은 건악(謇諤)014) 의 말이 적은데도 전하께서도 또한 일찍이 그 공(公)과 사(私)를 감별(鑑別)하고 그 취하고 버리심을 밝게 보여주지 못하시어, 좋은 지모와 큰 계획이 이미 위에 들리지 못하고, 합해서 받아 펼쳐서 베푸는 것을 일찍이 많이 보지 못하였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반드시 순·우를 모범으로 삼도록 하소서.
나라의 흥망은 백성의 향배(向背)에 달려 있는 것인데, 지난해 이래로 백성의 곤궁이 극심해졌습니다. 해마다 거듭 흉년이 들어 단지와 항아리에는 저축된 것이 없고, 여러 해를 계속하여 전염병이 돌아 사망자가 서로 이어져 백성들이 모두 서로 이끌고 도적이 되었으니, 백성의 근심이 크지 않겠습니까? 선대왕(先大王)께서는 재물을 내어 여러 도의 진휼을 도우시고 배에다가 곡식을 실어 보내어 섬 백성의 굶주림을 구하시어 깊은 인덕(仁德)과 두터운 은택이 사람들의 골수(骨髓)에까지 젖어들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위로 선대왕의 뜻을 본받으시고 아래로 유사(有司)를 신칙하시어 정사를 펴시고 인덕(仁德)을 베푸시되, 반드시 홀아비와 홀어미에게 먼저 하시며, 곤궁함을 구제하고 굶주림을 진휼하기를 마치 불에 타고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듯이 하시어 이로 인해 인심(人心)을 굳게 단결하게 해서 백성으로 하여금 길이 의지하게 하소서.
지금 삼남(三南) 지방은 이제 막 양전(量田)을 행하였고, 양서(兩西)에는 거듭 객사(客使)를 맞았으며, 기전(畿甸)은 막 산릉(山陵)의 큰 역사를 겪어서 여러 도(道)의 피곤하고 초췌함이 더욱 심하니, 대동미(大同米)를 헤아려 감해 주고, 숙포(宿逋)015) 를 덜어 면제하여 화급한 상황을 해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 크고 작은 수용(需用)을 더 절약하고 줄이기에 힘써 한결같은 뜻으로 백성을 구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우악한 비답을 내리고, 아래 사항의 일은 묘당(廟堂)으로 하여금 상확(商確)하여 품처(稟處)하게 하였으며, 이어 사관(史官)을 보내어 효유하게 하였다. 당초 조태구가 ‘왕의 아우가 혐의를 무릅썼다.[王弟冒嫌]’는 설(說)을 진술하였다가 여러 사람의 비난이 떠들썩하게 일어나자, 조태구가 두려워 이에 차자를 올려 말하기를,
"전하께는 단지 한 분의 아우가 계실 뿐이다."
하였으니, 아마도 그의 의도는 스스로 해명하고자 한 것일 것이다.
1월 5일 정묘
태백성(太白星)이 사지(巳地)에 나타났다.
1월 13일 을해
태백성(太白星)이 사지에 나타났다.
1월 29일 신묘
좌의정 이건명(李健命)이 차자를 올리기를,
"영빈(寧嬪)의 제택(第宅)을 고쳐 지으라는 명이 있어 지부(地部)016) 에서 절급(折給)한 값이 2천 금(金)에 이르렀습니다. 그 집은 바로 지난날 귀척(貴戚)의 집이므로 반드시 좁고 누추하지는 않을 것인데, 어찌하여 이에 규모를 넓히고 확장하여 애써 크고 화려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공사(公私)의 제택을 점점 더 확장하여 조종조(祖宗朝)의 옛 제도와 비교해 보면 다만 배사(倍蓰)017) 일 뿐만이 아니니, 식자(識者)들이 근심하고 탄식한 지 오래입니다. 더구나 나라에 크나큰 슬픔이 있는 때이고, 해마다 연이어 거듭 흉년이 들어 바야흐로 진정(賑政)을 강구하고 있는데, 비빈(妃嬪)의 제택에다가 또 허다한 재화(財貨)를 소비한다면, 어찌 검소함을 숭상하고 재물을 절약하는 뜻에 부족한 점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하교하기를,
"옛적의 관례가 있다."
하고 따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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