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보궐정오7권, 숙종 4년 1678년 2월

싸라리리 2025. 10. 2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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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 갑진

임금이 편치 않으시어, 약방 제조(藥房提調)                     허적(許積)·김석주(金錫胄) 등이 의관(醫官)을 거느리고 입진(入診)하기를 계청(啓請)하니, 임금이 단지 의관(醫官)만 입진(入診)하라고 명(命)하였다. 그러나 대내에서 김석주를 불러 아울러 입시(入侍)하게 하였으니, 대개 김석주가 의술(醫術)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허적과 승지(承旨)·사관(史官)은 모두 입시하니 못하였다.
사관(史官)은 논한다. 군신(君臣)의 사이에 접견(接見)하는 예(禮)는 지극히 엄격하고 또 중하거늘, 더구나 김석주는 외척(外戚)의 중신(重臣)으로서 바야흐로 중병(中兵)001)                                                         을 장악하고 있은즉, 내전(內殿)으로부터 비록 소명(召命)이 있더라도 마땅히 예(例)에 의거하여 품복(稟覆)하여 승지(承旨)와 사관(史官)을 갖춘 뒤에 바야흐로 입진(入診)해야 옳은 것인데, 이제 바로 무단(無端)히 입시(入侍)하였으니, 멀리하고 피혐(避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척리(戚里)가 사사로이 뵙는 폐단이 이로부터 열리게 되었으니, 듣는 자가 해괴하게 여겼다.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01면
【분류】역사-편사(編史)


[註 001]                              중병(中兵) : 병조(兵曹).
사관(史官)은 논한다. 군신(君臣)의 사이에 접견(接見)하는 예(禮)는 지극히 엄격하고 또 중하거늘, 더구나 김석주는 외척(外戚)의 중신(重臣)으로서 바야흐로 중병(中兵)001)                                                         을 장악하고 있은즉, 내전(內殿)으로부터 비록 소명(召命)이 있더라도 마땅히 예(例)에 의거하여 품복(稟覆)하여 승지(承旨)와 사관(史官)을 갖춘 뒤에 바야흐로 입진(入診)해야 옳은 것인데, 이제 바로 무단(無端)히 입시(入侍)하였으니, 멀리하고 피혐(避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척리(戚里)가 사사로이 뵙는 폐단이 이로부터 열리게 되었으니, 듣는 자가 해괴하게 여겼다.

 

2월 29일 경오

우의정(右議政)                     허목(許穆)이 첫번째의 사직서(辭職書)를 올리니, 임금이 우악한 내용으로 비답을 내려 주고 윤허하지 않았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이 때에 증광 시관(增廣試官)                           이원정(李元禎)이 언어(言語)와 용모(容貌)로 책문(策問)을 내어서, 의리(義理)의 공담(空談)은 실효(實効)에는 끝내 유익함이 없고 세상을 예쁘게 단장한 얼굴은 혹 좋은 벼슬에 정을 얽는다는 등의 말이 있었는데, 대개 허목(許穆)과 윤휴(尹鑴)를 가리킴이었다. 두 사람의 문도(門徒)로 제술(製述)하지 않고서 나온 자까지 있었으므로, 허목이 이 때문에 면직(免職)하기를 빌었다.


【태백산사고본】 6책 7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401면
【분류】역사-편사(編史)
사신(史臣)은 논한다. 이 때에 증광 시관(增廣試官)                           이원정(李元禎)이 언어(言語)와 용모(容貌)로 책문(策問)을 내어서, 의리(義理)의 공담(空談)은 실효(實効)에는 끝내 유익함이 없고 세상을 예쁘게 단장한 얼굴은 혹 좋은 벼슬에 정을 얽는다는 등의 말이 있었는데, 대개 허목(許穆)과 윤휴(尹鑴)를 가리킴이었다. 두 사람의 문도(門徒)로 제술(製述)하지 않고서 나온 자까지 있었으므로, 허목이 이 때문에 면직(免職)하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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