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무신
병조 판서(兵曹判書) 김석주(金錫胄)가 윤휴(尹鑴)·허목(許穆)이 상소한 말을 가지고 글을 아뢰어 사직(辭職)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재물을 손상시키고 나라를 병들게 한 것은 혹 신(臣)의 죄라 하더라도, 군사를 강하게 하고 권세를 중하게 하였다는 것은 누구의 말입니까? 바라건대, 여러 사무에서 벗어나 물러가서 선인(先人)의 분묘(墳墓)를 지키게 하여 주소서."
하니, 임금이 비답(批答)하여 안심하고 사직하지 말도록 명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김석주(金錫胄)는 지위가 높고 부귀한 집안으로, 나이가 젊고 품행과 재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남이 없었는데도 특별히 임금의 외척(外戚)이라는 이유로 대신(大臣)이 된 자이다. 높은 벼슬을 바라고 총애를 확고히 하려는 계책을 써 갑자기 사람들의 기대 밖에 뛰어올라 발탁되었다. 몇 달 안에 서전(西銓)001) 의 장(長)에 이르러 기무(機務)를 겸하여 총괄하게 되어서는 무릇 군국(軍國)의 큰 일을 손에 쥐고 결정하지 않음이 없었다. 김석주 또한 대신(大臣)으로서 총애를 받아 일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과 서로 인연을 맺어서 뜻을 굽혀 받들었고, 교대로 성원하여 그 사사로운 일을 도와 주었다. 귀현(貴顯)한 사람들 중에 이익을 좋아하고 수치를 모르는 무리들이 또 따라서 붙좇아, 두 번이나 체직(遞職)되었는데도 그대로 있게 하도록 청하여 그 뜻에 아부하였다. 김석주는 교만하고 자부심이 많으며 스스로 방자하여 삼가고 두려워하는 바가 없어서, 둔전(屯田)을 넓게 만들고 자기가 부리는 하인을 나누어 두었으며, 걸핏하면 토목 공사를 일으켜 군사와 백성을 피곤하게 하였다. 무릇 나라를 병들게 하고 정치를 해치는 일이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았으나, 재집 대신(宰執大臣)들이 감히 배척하지 못하고 대각(臺閣)에서도 감히 논하지 못하였다. 간혹 어떤 한두 사람이 글을 올리는 가운데 혹시라도 그의 과실(過失)에 미치게 되면, 김석주는 문득 아랫사람을 원망하고 윗사람에게 구하여 매우 크게 말하였는데, 신신(藎臣)002) ·석보(碩輔)003) 로서 자신이 안위(安危)을 맡고 있다가 두려워하고 꺼리는 참소를 당하여 조정의 위에 계신 분에게 용납되지 못하게 된 것처럼 하였고, 반드시 보전(保全)함이 총애를 움직일까 두렵다는 말로 따뜻한 뜻을 얻도록 기한 후에야 그만두었다. 아아! 또한 이상하도다! 예전에 이르기를, ‘배우지 못한 원숭이가 나무에 오른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어찌 김석주의 죄이겠는가?.
【태백산사고본】 5책 6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378면
【분류】역사-편사(編史)
[註 001] 서전(西銓) : 병조(兵曹).[註 002] 신신(藎臣) : 충군 애국(忠君愛國)하는 마음이 두터운 신하.[註 003] 석보(碩輔) : 보좌하는 현량(賢良)한 신하.
사신(史臣)은 논한다. 김석주(金錫胄)는 지위가 높고 부귀한 집안으로, 나이가 젊고 품행과 재능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남이 없었는데도 특별히 임금의 외척(外戚)이라는 이유로 대신(大臣)이 된 자이다. 높은 벼슬을 바라고 총애를 확고히 하려는 계책을 써 갑자기 사람들의 기대 밖에 뛰어올라 발탁되었다. 몇 달 안에 서전(西銓)001) 의 장(長)에 이르러 기무(機務)를 겸하여 총괄하게 되어서는 무릇 군국(軍國)의 큰 일을 손에 쥐고 결정하지 않음이 없었다. 김석주 또한 대신(大臣)으로서 총애를 받아 일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과 서로 인연을 맺어서 뜻을 굽혀 받들었고, 교대로 성원하여 그 사사로운 일을 도와 주었다. 귀현(貴顯)한 사람들 중에 이익을 좋아하고 수치를 모르는 무리들이 또 따라서 붙좇아, 두 번이나 체직(遞職)되었는데도 그대로 있게 하도록 청하여 그 뜻에 아부하였다. 김석주는 교만하고 자부심이 많으며 스스로 방자하여 삼가고 두려워하는 바가 없어서, 둔전(屯田)을 넓게 만들고 자기가 부리는 하인을 나누어 두었으며, 걸핏하면 토목 공사를 일으켜 군사와 백성을 피곤하게 하였다. 무릇 나라를 병들게 하고 정치를 해치는 일이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았으나, 재집 대신(宰執大臣)들이 감히 배척하지 못하고 대각(臺閣)에서도 감히 논하지 못하였다. 간혹 어떤 한두 사람이 글을 올리는 가운데 혹시라도 그의 과실(過失)에 미치게 되면, 김석주는 문득 아랫사람을 원망하고 윗사람에게 구하여 매우 크게 말하였는데, 신신(藎臣)002) ·석보(碩輔)003) 로서 자신이 안위(安危)을 맡고 있다가 두려워하고 꺼리는 참소를 당하여 조정의 위에 계신 분에게 용납되지 못하게 된 것처럼 하였고, 반드시 보전(保全)함이 총애를 움직일까 두렵다는 말로 따뜻한 뜻을 얻도록 기한 후에야 그만두었다. 아아! 또한 이상하도다! 예전에 이르기를, ‘배우지 못한 원숭이가 나무에 오른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어찌 김석주의 죄이겠는가?.
6월 16일 신유
형조 판서(刑曹判書) 이지익(李之翼)이 상소하여 고묘(告廟)의 부당함을 논하니, 임금이 비답(批答)하여, 내뜻에 바로 맞는다고 답하였다. 【원래의 상소와 비답의 뜻은 앞에 보인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이지익(李之翼)은 사람됨이 거칠고 방자하며 고지식하고 소박하여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르지 않아서, 두 송씨(宋氏)가 정권을 잡았을 때를 당하여 사람들은 복종하여 섬기는 데 분주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유독 일찍이 한 번도 그 문(門)에 가지 않았다. 무릇 그 과오(過誤)를 말로 드러내 놓고 배척하면서도 꺼리는 바가 없었으므로, 그 동배(同輩) 중에서 폐인(廢人)이 되었다. 송시열(宋時烈)이 패망(敗亡)하게 되자, 임금이 평소에 그 이름을 듣고서 맨처음 발탁하여 등용하였으나 또한 세상 사람들의 의논에 맹종하려고 들지 않았으니, 그 당시 사람들이 이로써 그를 뛰어나게 여겼다.
【태백산사고본】 5책 6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378면
【분류】역사-편사(編史)
사신(史臣)은 논한다. 이지익(李之翼)은 사람됨이 거칠고 방자하며 고지식하고 소박하여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르지 않아서, 두 송씨(宋氏)가 정권을 잡았을 때를 당하여 사람들은 복종하여 섬기는 데 분주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유독 일찍이 한 번도 그 문(門)에 가지 않았다. 무릇 그 과오(過誤)를 말로 드러내 놓고 배척하면서도 꺼리는 바가 없었으므로, 그 동배(同輩) 중에서 폐인(廢人)이 되었다. 송시열(宋時烈)이 패망(敗亡)하게 되자, 임금이 평소에 그 이름을 듣고서 맨처음 발탁하여 등용하였으나 또한 세상 사람들의 의논에 맹종하려고 들지 않았으니, 그 당시 사람들이 이로써 그를 뛰어나게 여겼다.
【태백산사고본】 5책 6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378면
【분류】역사-편사(編史)
사신(史臣)은 논한다. 이지익(李之翼)은 사람됨이 거칠고 방자하며 고지식하고 소박하여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르지 않아서, 두 송씨(宋氏)가 정권을 잡았을 때를 당하여 사람들은 복종하여 섬기는 데 분주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유독 일찍이 한 번도 그 문(門)에 가지 않았다. 무릇 그 과오(過誤)를 말로 드러내 놓고 배척하면서도 꺼리는 바가 없었으므로, 그 동배(同輩) 중에서 폐인(廢人)이 되었다. 송시열(宋時烈)이 패망(敗亡)하게 되자, 임금이 평소에 그 이름을 듣고서 맨처음 발탁하여 등용하였으나 또한 세상 사람들의 의논에 맹종하려고 들지 않았으니, 그 당시 사람들이 이로써 그를 뛰어나게 여겼다.
'한국사 공부 > 조선왕조실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숙종실록보궐정오7권, 숙종 4년 1678년 6월 (0) | 2025.10.22 |
|---|---|
| 숙종실록보궐정오7권, 숙종 4년 1678년 2월 (0) | 2025.10.22 |
| 숙종실록보궐정오5권, 숙종 2년 1676년 (1) | 2025.10.22 |
| 숙종실록보궐정오3권, 숙종 1년 1675년 4월 (0) | 2025.10.22 |
| 숙종실록보궐정오2권, 숙종 1년 1675년 1월 (0) | 2025.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