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공부/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보궐정오11권, 숙종 7년 1681년 1월

싸라리리 2025. 10. 2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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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정사

임금이 완녕군(完寧君) 이사명(李師命)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오게 하고 말하기를,
"역절(逆節)이 처음 싹틀 때를 당하여 경(卿)과 두세 원훈(元勳)이 기찰(譏察)하여 은밀하게 도운 공이 제일 많았는데, 당초 감훈(勘勳)할 때에 경이 사피(辭避)하기 때문에 함께 녹훈(錄勳)하지 못하였다. 이후 역옥(逆獄)이 다시 일어나자, 여러 적(賊)의 초사(招辭)가 일일이 서로 부합(符合)되고 공로(功勞)가 더욱 빛나니, 추록(追錄)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경이 잇달아 글을 올려 고사(固辭)하며 오랫동안 나와서 숙배(肅拜)하지 않기 때문에, 패초(牌招)하여 입시(入侍)하게 한 것이다."
하였는데, 이사명이 말하기를,
"소명(召命)을 내리셨으므로, 지숙(祗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만, 신에게 만약 조금이라도 기록할 만한 공로가 있다면, 어떻게 감히 잇달아 글을 올려 고사(固辭)하였겠습니까? 형찰(詗察)001)  한 일은 두서너 사람에세 위임하였으되, 지휘는 오로지 두 원훈(元勳)에게서 나왔고, 신은 묘연(眇然)한 일개 서생(書生)으로서 비록 원훈(元勳)과 일가(一家)가 되었으나, 어떻게 함께 일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경과 두 원훈이 공로가 같은 것을 내가 이미 상세히 알고 있으니, 다시 너무 사양하지 말라."
하였다.

 

1월 11일 을축

소대(召對)하였을 때 참찬관(參贊官) 홍만용(洪萬容)이 말하기를,
"이사명(李師命)의 재주는 조정(朝廷)에서 모두 아는 바이지만, 조화(造化)하는 권병(權柄)은 오로지 성상께 달려 있으니, 비록 순서에 따라 임용한다 하더라도 재상(宰相)의 반열(班列)에 갑자기 이르게 하고자 하는 것이 또한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그러나 등과(登科)한 지 겨우 7개월만에 갑자기 재상의 반열에 승진되니, 이사명의 뜻 또한 매우 불안(不安)하다고 합니다."
하자, 시독관(侍讀官) 조지겸(趙持謙)이 말하기를,
"홍만용(洪萬容)이 이사명도 또한 매우 불안하게 여긴다고 한 말은 진실로 실언(失言)입니다. 옛날 포의(布衣)에서 발탁되어 곧바로 정승이 된 자도 있었는데, 임용(任用)한 바가 진실로 옳다면, 이사명의 불안한 여부(與否)는 논할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국조(國朝)의 고사(故事)에는 이와 같이 갑자기 승진한 자가 없었고, 지금은 전쟁[干戈]으로 소란스러운 때와 다르니, 순서에 따라 임용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였다. 홍만용이 말하기를,
"임진 병란(壬辰兵亂) 때 박동량(朴東亮)이 겸육조 낭관(兼六曹郞官)으로서 도승지(都承旨)에 초배(超拜)되었는데, 이는 평소에는 예로 끌어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심기원(沈器遠)·김자점(金自點) 두 적(賊)이 비록 주살(誅殺)당했다고 하나, 반정(反正) 때에는 공로가 제일 많았었는데, 처음에는 지평(持平)에 제수되었다가 다시 승지(承旨)에 제수되고, 이어서 가선 대부(嘉善大夫)에 올라 봉군(封君)되었으니, 순서에 따라 임용하는 것이 이와 같았습니다."
하였다.

 

1월 18일 임신

소대하였을 때 시독관(侍讀官) 송광연(宋光淵)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지난번에 대신(大臣)이 소두산(蘇斗山)의 선치(善治) 상황을 아뢰니, 먼저 형조 참의(刑曹參議)에 제수하였다가 장차 감사(監司)에 제수하신다 합니다. 신이 호남(湖南)에 있을 때 들었는데, 소두산이 번거로운 일을 결단하는 재주는 넉넉하나, 맑고 깨끗한 명망(名望)은 부족(不足)하다고 하였으니, 방백(方伯)의 직임(職任)을 가볍게 제수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군읍(郡邑)에서 영송(迎送)하는 폐단이 또한 매우 작지 아니하니, 우선 강릉 부사(江陵府使)를 그대로 맡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맑고 깨끗한 명망이 비록 부족하다 하나, 대신(大臣)이 그 사람의 임금 섬기는 뜻을 보고 진달(陳達)하여 내직(內職)으로 옮겼으니, 우선 그대로 두고, 마땅히 대신들에게 물어 보고 처치(處置)하도록 하겠다."
하자, 영부사(領府事) 송시열(宋時烈)이 말하기를,
"성상께서 처치하신 바가 진실로 득체(得體)한 것입니다. 대신(大臣)이 이미 진달(陳達)하여 제직(除職)하였으니, 훗날 다시 물어서 처치하시겠다는 전교(傳敎)는 진실로 재결(裁決)하시는 데 마땅함을 얻은 것입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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