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갑오
임금이 한재(旱災) 때문에 소결(疏決)을 시행하니, 영의정(領議政) 김수항(金壽恒)과 좌의정(左議政) 민정중(閔鼎重)이 재이(災異)를 그치게 하는 방도라 하여 고(故) 재신(宰臣) 심집(沈諿)의 관작(官爵)을 추복(追復)할 것을 청하였다. 우의정(右議政) 이상진(李尙眞)도 또한 신원 설치(伸寃雪恥)할 만하다 하니, 임금이 명하여 직첩(職牒)을 돌려주게 하였다. 【위에 상세히 보인다.】 심집(沈諿)은 인조조(仁祖朝) 때 사명(使命)을 받들고 오랑캐의 진중(陣中)에 갔다가, 오랑캐에게 협박받아 스스로 가함(假銜)의 실상을 진술하고 구차하게 모면하니, 세상에서 모두 비루하게 여겼다. 효종(孝宗) 때 사람들을 말로 인해서 추삭(追削)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그 손자 심유방(沈攸方)이 당로자(當路者)에 아부[昵附]하였기 때문에, 대신(大臣)들이 가뭄이 답답함을 빙자(憑藉)하여 근거없는 말로 추복(追復)을 허락받아 사사로움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때 대옥(大獄)의 끝에 죄없이 주련(株連)007) 된 자가 또한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였는데, 또 걸핏하면 윤의(倫義)를 빙자해서 일체 엄한 법으로 처치하여 실로 벌이(伐異)008) 에 전력하였으니, 광탕(曠蕩)009) 의 은혜는 오로지 사당(私黨)으로서 억울한 자의 고골(枯骨)010) 에까지 미쳤다. 그 거조(擧措)가 이와 같았으니, 어떻게 능히 나라가 되었겠는가?
【태백산사고본】 10책 1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541면
【분류】역사-편사(編史)
[註 007] 주련(株連) : 연루자를 모조리 형벌에 처함.[註 008] 벌이(伐異) : 반대편의 사람을 무조건 공격함.[註 009] 광탕(曠蕩) : 죄를 크게 씻어주는 것.[註 010] 고골(枯骨) : 죽은 사람.
심집(沈諿)은 인조조(仁祖朝) 때 사명(使命)을 받들고 오랑캐의 진중(陣中)에 갔다가, 오랑캐에게 협박받아 스스로 가함(假銜)의 실상을 진술하고 구차하게 모면하니, 세상에서 모두 비루하게 여겼다. 효종(孝宗) 때 사람들을 말로 인해서 추삭(追削)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그 손자 심유방(沈攸方)이 당로자(當路者)에 아부[昵附]하였기 때문에, 대신(大臣)들이 가뭄이 답답함을 빙자(憑藉)하여 근거없는 말로 추복(追復)을 허락받아 사사로움을 이루었던 것이다. 이때 대옥(大獄)의 끝에 죄없이 주련(株連)007) 된 자가 또한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였는데, 또 걸핏하면 윤의(倫義)를 빙자해서 일체 엄한 법으로 처치하여 실로 벌이(伐異)008) 에 전력하였으니, 광탕(曠蕩)009) 의 은혜는 오로지 사당(私黨)으로서 억울한 자의 고골(枯骨)010) 에까지 미쳤다. 그 거조(擧措)가 이와 같았으니, 어떻게 능히 나라가 되었겠는가?
4월 21일 갑진
대사간(大司諫) 윤지완(尹趾完)이 오시수(吳始壽)를 국문(鞫問)해야 한다고 아뢴 데 대하여 이론(異論)을 제기하고 인피(引避)하니, 임금이 명하여 사피(辭避)하지 말도록 하였다. 【원계(原啓)는 위에 보인다.】 성인(聖人)은 진실로 말하기를, ‘하늘은 죄있는 이를 토벌한다.’고 하였고 또, ‘죄가 의심스러우면 오로지 가볍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아니하였는가? 범인(凡人)이 사죄(死罪)를 범하였어도 오히려 흠휼(欽恤)할 수 있는데, 하물며 대신(大臣)에 있어서랴? 오시수(吳始壽)의 ‘신하(臣下)가 강성(强盛)하다.’는 말은 진실로 ‘콧대가 세다.’는 등의 말을 부회(傅會)한 듯한데, 역(逆) 이남(李柟)의 장문(狀聞)한 것을 추실(追實)해 보면 죄가 진실로 주살(誅殺)을 면할 수가 없다. 그러나 다만 오시수(吳始壽)가 친히 장효례(張孝禮)와 수작(酬酢)할 수 없었고, 역관[譯舌]이 말을 전한 때 그릇됨[註誤]이 없었다고 보증하기 어렵고, 장효례(張孝禮)는 이미 언근(言根)을 끝까지 힐문(詰問)할 수가 없었으며, 역관이 때로 말을 변개(變改)하지 않았다고 기필(期必)할 수 없으니, 오시수가 저뢰(抵賴)011) 하는 것은 또한 말이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명백한 죄안(罪案)이라고 말할 수 없다면 오시수를 반신 반의(半信半疑)하는 처지에 두어 그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죽음을 면하게 하는 것이 또한 관대한 정사(政事)를 위하여 해롭지 않을 것인데, 시의(時議)가 허락하지 아니하여 아울러 역관[象譯]을 국문하게 하면서 반드시 먼저 오시수를 법으로 다스리게 한 것이, 반드시 천리(天理)의 공변됨과 천토(天討)의 정대(正大)함에서 나왔는지를 알지 못하겠으니, 윤지완이 이론을 제기한 것이 마땅하다. 대저 뇌정(雷霆)도 범할 수 있고, 백인(白刃)도 밟을 수 있으나, 태평한 세상을 당하여 많은 사람들의 분노(憤怒)를 범하고 독견(獨見)을 믿어 적중(的中)함을 세우는 자는 그 부담(負擔)하는 용기(勇氣)와 조수(操守)의 확고함이 또한 어찌 뇌정을 범하고 백인(白刃)을 밟는 절개보다 못하겠는가? 윤지완이 이 점에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니, 식자(識者)들이 다른 날 사직지신(社稷之臣)012) 이 될 것을 이미 알았다. 그러나 그가 깊이 생각하고, 또 첨고(瞻顧)한다 하여 기롱(譏弄)한 자들은 또한 윤지완이 얕은 수작을 부리는 줄 알았다.
【태백산사고본】 10책 1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8책 541면
【분류】역사-편사(編史)
[註 011] 저뢰(抵賴) : 범죄 사실을 인정하지 않음.[註 012] 사직지신(社稷之臣) : 나라의 안위(安危)를 맡길 만한 신하.
성인(聖人)은 진실로 말하기를, ‘하늘은 죄있는 이를 토벌한다.’고 하였고 또, ‘죄가 의심스러우면 오로지 가볍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아니하였는가? 범인(凡人)이 사죄(死罪)를 범하였어도 오히려 흠휼(欽恤)할 수 있는데, 하물며 대신(大臣)에 있어서랴? 오시수(吳始壽)의 ‘신하(臣下)가 강성(强盛)하다.’는 말은 진실로 ‘콧대가 세다.’는 등의 말을 부회(傅會)한 듯한데, 역(逆) 이남(李柟)의 장문(狀聞)한 것을 추실(追實)해 보면 죄가 진실로 주살(誅殺)을 면할 수가 없다. 그러나 다만 오시수(吳始壽)가 친히 장효례(張孝禮)와 수작(酬酢)할 수 없었고, 역관[譯舌]이 말을 전한 때 그릇됨[註誤]이 없었다고 보증하기 어렵고, 장효례(張孝禮)는 이미 언근(言根)을 끝까지 힐문(詰問)할 수가 없었으며, 역관이 때로 말을 변개(變改)하지 않았다고 기필(期必)할 수 없으니, 오시수가 저뢰(抵賴)011) 하는 것은 또한 말이 없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명백한 죄안(罪案)이라고 말할 수 없다면 오시수를 반신 반의(半信半疑)하는 처지에 두어 그 마음을 불쌍히 여겨 죽음을 면하게 하는 것이 또한 관대한 정사(政事)를 위하여 해롭지 않을 것인데, 시의(時議)가 허락하지 아니하여 아울러 역관[象譯]을 국문하게 하면서 반드시 먼저 오시수를 법으로 다스리게 한 것이, 반드시 천리(天理)의 공변됨과 천토(天討)의 정대(正大)함에서 나왔는지를 알지 못하겠으니, 윤지완이 이론을 제기한 것이 마땅하다. 대저 뇌정(雷霆)도 범할 수 있고, 백인(白刃)도 밟을 수 있으나, 태평한 세상을 당하여 많은 사람들의 분노(憤怒)를 범하고 독견(獨見)을 믿어 적중(的中)함을 세우는 자는 그 부담(負擔)하는 용기(勇氣)와 조수(操守)의 확고함이 또한 어찌 뇌정을 범하고 백인(白刃)을 밟는 절개보다 못하겠는가? 윤지완이 이 점에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니, 식자(識者)들이 다른 날 사직지신(社稷之臣)012) 이 될 것을 이미 알았다. 그러나 그가 깊이 생각하고, 또 첨고(瞻顧)한다 하여 기롱(譏弄)한 자들은 또한 윤지완이 얕은 수작을 부리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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