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갑진
허목(許穆)이 졸(卒)하였다. 허목은 옛날 사람의 풍모와 흰 털이 섞인 눈썹으로서 학(鶴)과 같은 자태가 있었다. 학식이 넓고 성품이 아담하며 옛것을 좋아하였고, 문장(文章)은 고상하고 간결하였으며, 전법(篆法)은 매우 기이하였고, 속류(俗流)에 비하여 특별히 다른 것이 있었으나, 학문은 실지의 공부가 없었다. 대개 송시열(宋時烈)의 예론(禮論)으로써 효종(孝宗)을 깎아 박대하였다 하여 반드시 고묘(告廟)하여 법대로 적용하려고 한 것은, 그가 중한 일를 핑계하여 남을 얽어서 해치는 죄과에 스스로 들어감을 몰랐던 것이다. 또한 허목은 조경(趙絅)과 함께 묘문(墓文)을 많이 지었는데, 혼조(昏朝)009) 의 여파(餘派)에서 조경은 척도(尺度)가 매우 엄하였으나, 허목은 그렇지 못하여 사물의 청탁(淸濁)에 분별이 적었다. 만년(晩年)인 갑인년010) 이후에 여러 사람을 따라서 〈조정에〉 들어간 지 반 년 만에 경상(卿相)에 이르렀는데, 자기의 역량을 헤아리지 않고서 직임(職任)을 받았으니, 늙어 쇠약하여 〈일이〉 전도(顚倒)되고 착오(錯誤)되어 부딪치는 곳에서 웃음거리를 남겼다. 그러므로 삼자(三者)가 모두 마음 수양의 깊고 얕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윤휴(尹鑴)와 허적(許積)과는 다른 점이 있어서 이따금 좋은 언론(言論)이 있기도 하였다. 그 일을 논한 차자(箚子)에,
"남구만(南九萬)이 유배되고 허견(許堅)의 무리가 마침내 무사하였다."
하는 것을 사람들이 대부분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 외게 되었다. 애당초 사서(史書)에서는 죽은 것으로써 썼는데, 이후로 이하진(李夏鎭)의 당론(黨論)으로 유배되는 자에 대해서 모두 이 예(例)를 썼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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