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임오
우의정(右議政) 김석주(金錫胄)를 겸 호위 대장(兼扈衞大將)으로 삼았다. 임금은 김석주가 재상(宰相)에 임명되었으나 수하(手下)의 군사가 없는 이유로써 영상(領相) 김수항(金壽恒)에게 물으니, 김수항이 호위 대장 1원(員)을 더 설치하여 김석주로 하여금 겸하게 하도록 청하였다. 김수항은 외척(外戚)에게 붙어서 다만 병권(兵權)이 혹시라도 떠날까 염려함이 매양 이와 같았다.
8월 16일 신묘
전(前) 집의(執義) 윤증(尹拯)이 상소하여 사직(辭職)하니, 특별히 유지(諭旨)를 내렸다. 이어서 재앙을 그치게 할 방책을 아뢰기를,
"임금과 신하가 위아래에서 함께 서로 경계하고 행동하여 한결같은 마음의 성실이 하늘과 서로 통한 후에야 진실한 사업이 시행되고 실제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대개 이를 어찌 다른 것에서 구하겠습니까? 오직 성상(聖上)께서 뜻을 세우는 여하에 달려 있으며, 성상의 뜻을 세우는 것은 실로 성상의 학문의 정진(精進)에 달려 있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우악한 비답(批答)을 내려서 속히 서울에 올라오게 하였다. 얼마 안되어 호조 참의(戶曹參議)에 발탁하여 임명되었으나, 또한 명(命)을 받들지 않았다.
8월 23일 무술
남구만(南九萬)을 병조 판서(兵曹判書)로 삼았다. 남구만은 관직을 맡으면 직분을 다하여 있는 곳마다 대단히 성과가 있었다. 본병(本兵)011) 에 제수되자 허지(許墀)를 불러와서 낭관(郞官)으로 삼고, 숨어 있는 간신(奸臣)과 오래 된 좀벌레 같은 사람들을 정리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용도(用度)의 출입(出入)은 규제(規制)가 정연하였다. 1년도 되지 않아서 부고(府庫)가 가득차 여분의 베[布]가 15만 필(匹)이나 쌓이게 되었고, 또 무사(武士)들을 수습하여 채용하고 버리는 것이 공명 정대하였다. 당시 사람들의 의논이 대단히 칭송하였으니, 근년에 병조(兵曹)를 다스리는 자들은 미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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